"담무갈보살(曇無竭普薩)"의 두 판 사이의 차이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XML 가져오기)
 
 
1번째 줄: 1번째 줄:
  
  
{{개념용어|대표표제=담무갈보살|한글표제=담무갈보살|한자표제=曇無竭普薩|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법기보살(法起菩薩)|관련어=금강산(金剛山), 화엄경(華嚴經), 금강산신앙(金剛山信仰), 괘번(掛幡), 산악신앙(山岳信仰), 지달(枳怛)|분야=문화/종교/불교|유형=개념용어|지역=대한민국|시대=고려|왕대=|집필자=윤기엽|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3125|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ca_10409021_001 『태종실록』 4년 9월 21일], [http://sillok.history.go.kr/id/kia_10105009_002 『성종실록』 1년 5월 9일], [http://sillok.history.go.kr/id/kga_11203128_003 『세조실록』 12년 윤3월 28일]}}
+
{{개념용어|대표표제=담무갈보살|한글표제=담무갈보살|한자표제=曇無竭普薩|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법기보살(法起菩薩)|관련어=금강산(金剛山), 화엄경(華嚴經), 금강산신앙(金剛山信仰), 괘번(掛幡), 산악신앙(山岳信仰), 지달(枳怛)|분야=문화/종교/불교|유형=개념용어|지역=대한민국|시대=고려|왕대=|집필자=윤기엽|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3125|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ca_10409021_001 『태종실록』 4년 9월 21일], [http://sillok.history.go.kr/id/kia_10105009_002 『성종실록』 1년 5월 9일], [http://sillok.history.go.kr/id/kga_11203128_003 『세조실록』 12년 윤3월 28일]}}
  
 
금강산에 머물며 설법을 하는 보살.
 
금강산에 머물며 설법을 하는 보살.
11번째 줄: 11번째 줄:
 
=='''내용 및 특징'''==
 
=='''내용 및 특징'''==
  
담무갈(曇無竭)은 산스크리트어 ‘다르모가타(Dharmogata)’의 음역으로, 법(法)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법성(法性), 법용(法勇), 또는 법상(法尙)을 의미하는데, 이것을 법기(法起)라고도 한다. 따라서 담무갈보살은 법기보살(法起菩薩)의 음역이다. 408~429년 불타발타라가 번역한 『육십화엄경(六十華嚴經)』에서 "현재 지달(枳怛)에서 담무갈보살이 12,000의 보살을 권속으로 하여 항상 설법을 한다."고 하였다. 지달이란 산스크리트어로 용출(湧出)함을 뜻하는 말로 금강산의 상(狀)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래서 담무갈보살은 금강산에 머물면서 12,000의 보살을 거느리며 설법을 한다는 이야기가 성립된다.
+
담무갈(曇無竭)은 산스크리트어 ‘다르모가타(Dharmogata)’의 음역으로, 법(法)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법성(法性), 법용(法勇), 또는 법상(法尙)을 의미하는데, 이것을 법기(法起)라고도 한다. 따라서 담무갈보살은 법기보살(法起菩薩)의 음역이다. 408~429년 불타발타라가 번역한 『육십화엄경(六十華嚴經)』에서 "현재 지달(枳怛)에서 담무갈보살이 12,000의 보살을 권속으로 하여 항상 설법을 한다."고 하였다. 지달이란 산스크리트어로 용출(湧出)함을 뜻하는 말로 금강산의 상(狀)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래서 담무갈보살은 금강산에 머물면서 12,000의 보살을 거느리며 설법을 한다는 이야기가 성립된다.
  
 
금강산의 명칭은 『육십화엄경』보다 조금 후대의 경전으로 695~704년 실차난타가 번역한 『팔십화엄경(八十華嚴經)』에 등장하는데, "바다 가운데에 금강산이 있는데 옛적부터 보살들이 그곳에 머물렀다. 지금은 법기보살이 거처하며 12,000여 권속(眷屬)과 함께 머물며 항상 설법을 한다."고 하였다.
 
금강산의 명칭은 『육십화엄경』보다 조금 후대의 경전으로 695~704년 실차난타가 번역한 『팔십화엄경(八十華嚴經)』에 등장하는데, "바다 가운데에 금강산이 있는데 옛적부터 보살들이 그곳에 머물렀다. 지금은 법기보살이 거처하며 12,000여 권속(眷屬)과 함께 머물며 항상 설법을 한다."고 하였다.
  
‘금강’이란 금강석을 말하는 것으로, 인도 신화에서는 폭풍의 신인 인드라가 지니고 있던 강력한 무기인 바즈라(vajra)를 뜻한다. 금강석은 다이아몬드로서 더 이상 쪼깨지지 않는 가장 견고한 금속이다. 불교에서는 이 금강석으로 번뇌와 무명을 퇴치한다고 한다. 아무리 두터운 번뇌와 무명도 단번에 퇴치해 버리는 지혜의 상징이 금강인 것이다. 초기 반야계의 대표적인 경전도 그 이름을 『금강경(金剛經)』으로 칭하고 있다. 금강산의 이름은 불교 경전인 『금강경』에서 따온 것으로 반야의 속성인 굳셈, 날카로움, 밝음을 상징한다.
+
‘금강’이란 금강석을 말하는 것으로, 인도 신화에서는 폭풍의 신인 인드라가 지니고 있던 강력한 무기인 바즈라(vajra)를 뜻한다. 금강석은 다이아몬드로서 더 이상 쪼깨지지 않는 가장 견고한 금속이다. 불교에서는 이 금강석으로 번뇌와 무명을 퇴치한다고 한다. 아무리 두터운 번뇌와 무명도 단번에 퇴치해 버리는 지혜의 상징이 금강인 것이다. 초기 반야계의 대표적인 경전도 그 이름을 『금강경(金剛經)』으로 칭하고 있다. 금강산의 이름은 불교 경전인 『금강경』에서 따온 것으로 반야의 속성인 굳셈, 날카로움, 밝음을 상징한다.
  
 
담무갈보살(법기보살)이 설법하고 있다는 금강산의 위치를 명확히 제시하고 있는 서책은 중국 당나라 때 승려인 징관(澄觀)의 『화엄경소(華嚴經疏)』이다. 그에 의하면 "동해의 동쪽에 금강이라는 산이 있다. 전체가 금은 아니지만 위아래 사방으로부터 산간에 이르기까지 흐르는 물과 모래 속에 금이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전체가 곧 금이라 할 만하다. 또 해동(海東) 사람들은 예로부터 서로 전하기를 이 산에 왕왕 성인(聖人)이 출현한다."고 하였다. 담무갈보살을 중심으로 한 이와 같은 이야기는 자연히 담무갈보살 신앙을 낳았고, 이것이 실제로 금강산이 있는 한국 땅에서 크게 유행할 수 있었다. 또한 금강산이 담무갈보살이 주처(主處)하는 성지(聖地)가 되면서 담무갈보살 신앙은 곧 금강산 신앙을 의미하게 되었다.
 
담무갈보살(법기보살)이 설법하고 있다는 금강산의 위치를 명확히 제시하고 있는 서책은 중국 당나라 때 승려인 징관(澄觀)의 『화엄경소(華嚴經疏)』이다. 그에 의하면 "동해의 동쪽에 금강이라는 산이 있다. 전체가 금은 아니지만 위아래 사방으로부터 산간에 이르기까지 흐르는 물과 모래 속에 금이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전체가 곧 금이라 할 만하다. 또 해동(海東) 사람들은 예로부터 서로 전하기를 이 산에 왕왕 성인(聖人)이 출현한다."고 하였다. 담무갈보살을 중심으로 한 이와 같은 이야기는 자연히 담무갈보살 신앙을 낳았고, 이것이 실제로 금강산이 있는 한국 땅에서 크게 유행할 수 있었다. 또한 금강산이 담무갈보살이 주처(主處)하는 성지(聖地)가 되면서 담무갈보살 신앙은 곧 금강산 신앙을 의미하게 되었다.
25번째 줄: 25번째 줄:
 
『화엄경』과 『화엄경소』 등에 근거하여, 담무갈보살이 동북쪽의 금강산에서 12,000의 권속을 데리고 설법하고 있다는 금강산 신앙(법기보살 신앙)이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8세기 이후였을 것으로 본다. 이 신앙이 크게 유행한 것은 고려시대 원 간섭기였다. 강원도 고성군에 위치한 금강산은 그 이름이 『화엄경』에서 유래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리적으로도 중국의 동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실제로 12,000이라는 봉우리의 수가 담무갈보살이 거느리는 12,000의 권속에 대응한다. 고려인들은 불교 경전 속에 등장하는 금강산을 실제로 소유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금강산 신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또한 불교가 국교였던 시대인 만큼 사회적 공감대 형성도 쉬워 더욱 크게 유행한 것으로 보인다.
 
『화엄경』과 『화엄경소』 등에 근거하여, 담무갈보살이 동북쪽의 금강산에서 12,000의 권속을 데리고 설법하고 있다는 금강산 신앙(법기보살 신앙)이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8세기 이후였을 것으로 본다. 이 신앙이 크게 유행한 것은 고려시대 원 간섭기였다. 강원도 고성군에 위치한 금강산은 그 이름이 『화엄경』에서 유래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리적으로도 중국의 동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실제로 12,000이라는 봉우리의 수가 담무갈보살이 거느리는 12,000의 권속에 대응한다. 고려인들은 불교 경전 속에 등장하는 금강산을 실제로 소유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금강산 신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또한 불교가 국교였던 시대인 만큼 사회적 공감대 형성도 쉬워 더욱 크게 유행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후기의 문신인 민지(閔漬)는 『금강산유점사사적기』에서, "신라의 옛 기록에 의하면 의상 법사께서 처음 오대산에 드셨다가 금강산에 이르자 담무갈보살이 현신하여 법사에게 말하기를 ‘오대산은 수행이 있는 사람들만 세간의 티끌을 벗어날 수 있는 땅이다’라고 이르셨다."하였다. 고려에서 금강산은 담무갈보살의 주처라는 확고한 신앙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고려 원 간섭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이곡(李穀)은 「장안사비(長安寺碑)」에서, "『화엄경』에 이르기를 동북 바다 가운데에 금강산이 있는데, 담무갈보살이 12,000의 보살과 함께 항상 반야(般若)를 강설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곡은 또 금강산 신앙의 유행으로 인한 그 지역의 잦은 불사를 "천자의 사신이 향과 폐백을 가져오는 것이 길에 늘어섰고, 사방의 사녀(士女)들이 천리길을 멀다 하지 아니하면서 소에 싣고 말에 싣고 등에 지고 머리에 이고 와 부처님과 스님에게 공양하는 자가 발꿈치가 서로 닿았다."고 서술하였다.
+
고려후기의 문신인 민지(閔漬)는 『금강산유점사사적기』에서, "신라의 옛 기록에 의하면 의상 법사께서 처음 오대산에 드셨다가 금강산에 이르자 담무갈보살이 현신하여 법사에게 말하기를 ‘오대산은 수행이 있는 사람들만 세간의 티끌을 벗어날 수 있는 땅이다’라고 이르셨다."하였다. 고려에서 금강산은 담무갈보살의 주처라는 확고한 신앙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고려 원 간섭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이곡(李穀)은 「장안사비(長安寺碑)」에서, "『화엄경』에 이르기를 동북 바다 가운데에 금강산이 있는데, 담무갈보살이 12,000의 보살과 함께 항상 반야(般若)를 강설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곡은 또 금강산 신앙의 유행으로 인한 그 지역의 잦은 불사를 "천자의 사신이 향과 폐백을 가져오는 것이 길에 늘어섰고, 사방의 사녀(士女)들이 천리길을 멀다 하지 아니하면서 소에 싣고 말에 싣고 등에 지고 머리에 이고 와 부처님과 스님에게 공양하는 자가 발꿈치가 서로 닿았다."고 서술하였다.
  
 
이같은 기록들은 고려후기 지식층이나 일반 서민들을 막론하고 사회 전반에 걸쳐 금강산 보살신앙이 크게 유행했음을 보여준다.
 
이같은 기록들은 고려후기 지식층이나 일반 서민들을 막론하고 사회 전반에 걸쳐 금강산 보살신앙이 크게 유행했음을 보여준다.
33번째 줄: 33번째 줄:
 
원 간섭기에 유행한 금강산 보살신앙은 고려에 국한되지 않고 이웃한 원나라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먼저 고려 공녀(貢女) 출신으로 원 순제(順帝)의 제2황후가 된 기황후(奇皇后)가 금강산[[장안사(長安寺)]]에 보시를 한 것을 들 수 있다. 당시 기황후가 금강산 장안사에 보시할 때 "복을 빌어 위에 보답하고자 한다면 금강산 장안사만 한 곳이 없다."고 한 이야기는 당시의 금강산 신앙의 유행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전부터 원 황실과 관계를 맺고 있던 장안사가 담무갈보살이 상주하는 금강산에 소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황후 역시 황제와 아들의 복을 비는 불사를 펼치기에 가장 적합한 사원으로 장안사를 꼽은 것이다.
 
원 간섭기에 유행한 금강산 보살신앙은 고려에 국한되지 않고 이웃한 원나라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먼저 고려 공녀(貢女) 출신으로 원 순제(順帝)의 제2황후가 된 기황후(奇皇后)가 금강산[[장안사(長安寺)]]에 보시를 한 것을 들 수 있다. 당시 기황후가 금강산 장안사에 보시할 때 "복을 빌어 위에 보답하고자 한다면 금강산 장안사만 한 곳이 없다."고 한 이야기는 당시의 금강산 신앙의 유행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전부터 원 황실과 관계를 맺고 있던 장안사가 담무갈보살이 상주하는 금강산에 소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황후 역시 황제와 아들의 복을 비는 불사를 펼치기에 가장 적합한 사원으로 장안사를 꼽은 것이다.
  
원나라 때 고승인 몽산덕이(夢山德異)의 제자 철산소경(鐵山昭瓊)이 1304년(고려 충렬왕 30) 고려 불교계의 초청으로 고려에 왔을 때, 그가 방문한 장소 중 하나가 금강산이었다. 이때 철산소경을 금강산으로 안내한 민지는 사적기에 금강산을 담무갈보살의 주처라고 기록했다. 민지는 철산의 금강산 순례가 담무갈보살 신앙에 의해서 시행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또한 고려말의 왕사였던 나옹혜근(懶翁惠勤)의 스승인 원나라의 승려 지공(指空)이 1326년(고려 충숙왕 13) 고려를 방문했을 때, 지공은 개경을 거쳐 바로 금강산에 들어가 한 달 동안 유력하였다. 당시 지공이 찾은 곳은 금강산의 법기도량(法起道場) 즉 유점사였다고 한다. 도량의 이름을 법기도량이라고 한 데에서 지공이 법기보살(담무갈보살) 신앙의 발로에서 금강산을 참례하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
원나라 때 고승인 몽산덕이(夢山德異)의 제자 철산소경(鐵山昭瓊)이 1304년(고려 충렬왕 30) 고려 불교계의 초청으로 고려에 왔을 때, 그가 방문한 장소 중 하나가 금강산이었다. 이때 철산소경을 금강산으로 안내한 민지는 사적기에 금강산을 담무갈보살의 주처라고 기록했다. 민지는 철산의 금강산 순례가 담무갈보살 신앙에 의해서 시행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또한 고려말의 왕사였던 나옹혜근(懶翁惠勤)의 스승인 원나라의 승려 지공(指空)이 1326년(고려 충숙왕 13) 고려를 방문했을 때, 지공은 개경을 거쳐 바로 금강산에 들어가 한 달 동안 유력하였다. 당시 지공이 찾은 곳은 금강산의 법기도량(法起道場) 즉 유점사였다고 한다. 도량의 이름을 법기도량이라고 한 데에서 지공이 법기보살(담무갈보살) 신앙의 발로에서 금강산을 참례하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금강산 신앙은 중국에서도 전승되고 있었는데, 중국에서는 ‘고려에 태어나 친히 금강산을 보는 것이 소원이다.’라는 속담이 있었다고 한다([http://sillok.history.go.kr/id/kca_10409021_001 『태종실록』 4년 9월 21일]). 이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조선에 파견되는 명의 사신들이 금강산 방문을 청하곤 했는데, 때때로 황제가 금강산에 번을 달라고 명하기도 했다([http://sillok.history.go.kr/id/kia_10105009_002 『성종실록』 1년 5월 9일]).
 
금강산 신앙은 중국에서도 전승되고 있었는데, 중국에서는 ‘고려에 태어나 친히 금강산을 보는 것이 소원이다.’라는 속담이 있었다고 한다([http://sillok.history.go.kr/id/kca_10409021_001 『태종실록』 4년 9월 21일]). 이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조선에 파견되는 명의 사신들이 금강산 방문을 청하곤 했는데, 때때로 황제가 금강산에 번을 달라고 명하기도 했다([http://sillok.history.go.kr/id/kia_10105009_002 『성종실록』 1년 5월 9일]).
46번째 줄: 46번째 줄:
 
=='''관계망'''==
 
=='''관계망'''==
 
<html><script>function reload() {window.location.reload();} </script><input type="button" value="Graph" onclick="reload();"><iframe width="100%" height="670px" src="http://encysilloknetwork.aks.ac.kr/Content/index?id=na00013125"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html>
 
<html><script>function reload() {window.location.reload();} </script><input type="button" value="Graph" onclick="reload();"><iframe width="100%" height="670px" src="http://encysilloknetwork.aks.ac.kr/Content/index?id=na00013125"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html>
 +
 +
{{불교}}
 +
  
 
[[분류:문화]][[분류:종교]][[분류:불교]][[분류:개념용어]][[분류:대한민국]][[분류:고려]]
 
[[분류:문화]][[분류:종교]][[분류:불교]][[분류:개념용어]][[분류:대한민국]][[분류:고려]]

2018년 1월 30일 (화) 13:31 기준 최신판



금강산에 머물며 설법을 하는 보살.

개설

담무갈보살(曇無竭普薩)은 법기보살이라고도 하며, 『화엄경』에 의하면 금강산에 머물면서 12,000의 보살을 거느리고 설법을 한다고 한다. 불교의 주요 경전인 『화엄경』에 근거를 둔 담무갈보살 설화는 담무갈보살 신앙 또는 금강산 신앙으로 발전하였고, 특히 원 간섭기에 크게 유행하였다. 금강산 신앙은 고려만이 아닌 이웃한 원나라에도 영향을 미쳐, 당시 금강산은 동아시아의 불교 성지로 인식되었다.

내용 및 특징

담무갈(曇無竭)은 산스크리트어 ‘다르모가타(Dharmogata)’의 음역으로, 법(法)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법성(法性), 법용(法勇), 또는 법상(法尙)을 의미하는데, 이것을 법기(法起)라고도 한다. 따라서 담무갈보살은 법기보살(法起菩薩)의 음역이다. 408~429년 불타발타라가 번역한 『육십화엄경(六十華嚴經)』에서 "현재 지달(枳怛)에서 담무갈보살이 12,000의 보살을 권속으로 하여 항상 설법을 한다."고 하였다. 지달이란 산스크리트어로 용출(湧出)함을 뜻하는 말로 금강산의 상(狀)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래서 담무갈보살은 금강산에 머물면서 12,000의 보살을 거느리며 설법을 한다는 이야기가 성립된다.

금강산의 명칭은 『육십화엄경』보다 조금 후대의 경전으로 695~704년 실차난타가 번역한 『팔십화엄경(八十華嚴經)』에 등장하는데, "바다 가운데에 금강산이 있는데 옛적부터 보살들이 그곳에 머물렀다. 지금은 법기보살이 거처하며 12,000여 권속(眷屬)과 함께 머물며 항상 설법을 한다."고 하였다.

‘금강’이란 금강석을 말하는 것으로, 인도 신화에서는 폭풍의 신인 인드라가 지니고 있던 강력한 무기인 바즈라(vajra)를 뜻한다. 금강석은 다이아몬드로서 더 이상 쪼깨지지 않는 가장 견고한 금속이다. 불교에서는 이 금강석으로 번뇌와 무명을 퇴치한다고 한다. 아무리 두터운 번뇌와 무명도 단번에 퇴치해 버리는 지혜의 상징이 금강인 것이다. 초기 반야계의 대표적인 경전도 그 이름을 『금강경(金剛經)』으로 칭하고 있다. 금강산의 이름은 불교 경전인 『금강경』에서 따온 것으로 반야의 속성인 굳셈, 날카로움, 밝음을 상징한다.

담무갈보살(법기보살)이 설법하고 있다는 금강산의 위치를 명확히 제시하고 있는 서책은 중국 당나라 때 승려인 징관(澄觀)의 『화엄경소(華嚴經疏)』이다. 그에 의하면 "동해의 동쪽에 금강이라는 산이 있다. 전체가 금은 아니지만 위아래 사방으로부터 산간에 이르기까지 흐르는 물과 모래 속에 금이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전체가 곧 금이라 할 만하다. 또 해동(海東) 사람들은 예로부터 서로 전하기를 이 산에 왕왕 성인(聖人)이 출현한다."고 하였다. 담무갈보살을 중심으로 한 이와 같은 이야기는 자연히 담무갈보살 신앙을 낳았고, 이것이 실제로 금강산이 있는 한국 땅에서 크게 유행할 수 있었다. 또한 금강산이 담무갈보살이 주처(主處)하는 성지(聖地)가 되면서 담무갈보살 신앙은 곧 금강산 신앙을 의미하게 되었다.

변천

(1) 고려시대의 금강산 신앙

『화엄경』과 『화엄경소』 등에 근거하여, 담무갈보살이 동북쪽의 금강산에서 12,000의 권속을 데리고 설법하고 있다는 금강산 신앙(법기보살 신앙)이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8세기 이후였을 것으로 본다. 이 신앙이 크게 유행한 것은 고려시대 원 간섭기였다. 강원도 고성군에 위치한 금강산은 그 이름이 『화엄경』에서 유래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리적으로도 중국의 동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실제로 12,000이라는 봉우리의 수가 담무갈보살이 거느리는 12,000의 권속에 대응한다. 고려인들은 불교 경전 속에 등장하는 금강산을 실제로 소유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금강산 신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또한 불교가 국교였던 시대인 만큼 사회적 공감대 형성도 쉬워 더욱 크게 유행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후기의 문신인 민지(閔漬)는 『금강산유점사사적기』에서, "신라의 옛 기록에 의하면 의상 법사께서 처음 오대산에 드셨다가 금강산에 이르자 담무갈보살이 현신하여 법사에게 말하기를 ‘오대산은 수행이 있는 사람들만 세간의 티끌을 벗어날 수 있는 땅이다’라고 이르셨다."하였다. 고려에서 금강산은 담무갈보살의 주처라는 확고한 신앙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고려 원 간섭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이곡(李穀)은 「장안사비(長安寺碑)」에서, "『화엄경』에 이르기를 동북 바다 가운데에 금강산이 있는데, 담무갈보살이 12,000의 보살과 함께 항상 반야(般若)를 강설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곡은 또 금강산 신앙의 유행으로 인한 그 지역의 잦은 불사를 "천자의 사신이 향과 폐백을 가져오는 것이 길에 늘어섰고, 사방의 사녀(士女)들이 천리길을 멀다 하지 아니하면서 소에 싣고 말에 싣고 등에 지고 머리에 이고 와 부처님과 스님에게 공양하는 자가 발꿈치가 서로 닿았다."고 서술하였다.

이같은 기록들은 고려후기 지식층이나 일반 서민들을 막론하고 사회 전반에 걸쳐 금강산 보살신앙이 크게 유행했음을 보여준다.

(2) 고려말 조선초 금강산 신앙의 파급

원 간섭기에 유행한 금강산 보살신앙은 고려에 국한되지 않고 이웃한 원나라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먼저 고려 공녀(貢女) 출신으로 원 순제(順帝)의 제2황후가 된 기황후(奇皇后)가 금강산장안사(長安寺)에 보시를 한 것을 들 수 있다. 당시 기황후가 금강산 장안사에 보시할 때 "복을 빌어 위에 보답하고자 한다면 금강산 장안사만 한 곳이 없다."고 한 이야기는 당시의 금강산 신앙의 유행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전부터 원 황실과 관계를 맺고 있던 장안사가 담무갈보살이 상주하는 금강산에 소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황후 역시 황제와 아들의 복을 비는 불사를 펼치기에 가장 적합한 사원으로 장안사를 꼽은 것이다.

원나라 때 고승인 몽산덕이(夢山德異)의 제자 철산소경(鐵山昭瓊)이 1304년(고려 충렬왕 30) 고려 불교계의 초청으로 고려에 왔을 때, 그가 방문한 장소 중 하나가 금강산이었다. 이때 철산소경을 금강산으로 안내한 민지는 사적기에 금강산을 담무갈보살의 주처라고 기록했다. 민지는 철산의 금강산 순례가 담무갈보살 신앙에 의해서 시행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또한 고려말의 왕사였던 나옹혜근(懶翁惠勤)의 스승인 원나라의 승려 지공(指空)이 1326년(고려 충숙왕 13) 고려를 방문했을 때, 지공은 개경을 거쳐 바로 금강산에 들어가 한 달 동안 유력하였다. 당시 지공이 찾은 곳은 금강산의 법기도량(法起道場) 즉 유점사였다고 한다. 도량의 이름을 법기도량이라고 한 데에서 지공이 법기보살(담무갈보살) 신앙의 발로에서 금강산을 참례하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금강산 신앙은 중국에서도 전승되고 있었는데, 중국에서는 ‘고려에 태어나 친히 금강산을 보는 것이 소원이다.’라는 속담이 있었다고 한다(『태종실록』 4년 9월 21일). 이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조선에 파견되는 명의 사신들이 금강산 방문을 청하곤 했는데, 때때로 황제가 금강산에 번을 달라고 명하기도 했다(『성종실록』 1년 5월 9일).

조선시대에는 세조가 직접 금강산에 올라 담무감보살에게 참배를 했다. 세조는 일본 국왕에게 보낸 친서에서 "『화엄경』에 담무갈보살이 12,000 권속과 더불어 상시로 머물면서 설법한다는 절이 바로 금강산"이라며 "요즘 내가 지방을 순행하고 인하여 이 산에 나아가서 삼보(三寶)에 첨례(瞻禮)하였는데 …… 명양승회(明揚勝會)를 열자 위와 같은 여러 가지 기이한 상서가 거듭 나타나고, 또 담무갈보살이 무수한 소상(小相)을 나타내었다가 다시 대상(大相)을 나타내어 그 길이가 하늘에 닿았다."고 밝혔다(『세조실록』 12년 윤3월 28일). 세조의 이 같은 전언은 조선시대에도 금강산 신앙이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하며 전승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참고문헌

  • 윤기엽, 『고려후기의 불교』, 일조각, 2012.
  • 한국불교연구원, 『북한의 사찰』, 일지사, 1991.
  • 허흥식, 『고려로 옮긴 인도의 등불』, 일조각, 1997.

관계망

불교(佛敎) 표제어
불교개념

가유왕(迦維王) · 감로(甘露) · 견성성불(見性成佛) · 금강륜(金剛輪) · 금강수(金剛樹) · 금강지(金剛地) · 담무갈보살(曇無竭普薩) · 도솔천(兜率天) · 미타국(彌陁國) · 범천(梵天) · 복전(福田) · 사라쌍수(沙羅雙樹) · 사리분신(舍利分身) · 사장(社長) · 사중(四衆) · 석가(釋迦) · 수타미(須陀味) · 아승지(阿僧祗) · 억불(抑佛) · 우화(雨花) · 윤회설(輪廻說) · 제석(帝釋) · 좌선(坐禪) · 직지인심(直指人心) · 진언(眞言) · 참선(參禪) · 팔정도(八正道) · 해탈문(解脫門) · 화장(華藏)

불교공간

강경당(講經堂) · 계단(戒壇) · 내불당(內佛堂) · 내원당(內願堂) · 대장경판당(大藏經板堂) · 미륵당(彌勒堂) · 법연(法筵) · 봉선전(奉先殿) · 비보사찰(裨補寺刹) · 사리전(舍利殿) · 수륙사(水陸社) · 안일원(安逸院) · 어실각(御室閣) · 어필각(御筆閣) · 원당(願堂) · 원당촌(願堂村) · 인수궁(仁壽宮) · 재궁(齋宮) · 절수사찰(折受寺刹) · 정업원(淨業院) ·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 · 총림(叢林) · 판교원(板橋院) · 향상회관(向上會館)

불교문헌

경률론소(經律論疏) · 대선첩문(大選帖文) · 대장경(大藏經) · 시경도목(試經都目) · 참학입선첩(參學入選帖) · 패엽경(貝葉經)

불교물품

가사(袈裟) · 괘번(掛幡) · 괘불(掛佛) · 두루(兜樓) · 발우(鉢盂) · 번당(幡幢) · 범패(梵唄) · 법기(法器) · 보살봉(菩薩棒) · 부도(浮圖) · 불유(佛油) · 불자(拂子) · 불탱(佛幀) · 삼보인(三寶印) · 신당퇴미(神堂退米) · 요발(鐃鈸) · 의발(衣鉢) · 장삼(長衫) · 축원패(祝願牌) · 하등(河燈)

불교의식

경찬회(慶讚會) · 경행(經行) · 구병정근(救病精勤) · 금경법석(金經法席) · 기신재(忌晨齋) · 기양법석(祈禳法席) · 기우보공재(祈雨報供齋) · 나한재(羅漢齋) · 다비(茶毗) · 대상재(大祥齋) · 무차대회(無遮大會) · 문수법회(文殊法會) · 반승(飯僧) · 방생연(放生宴) · 백고좌법석(百高座法席) · 백재(百齋) · 법화법석(法華法席) · 북방흑룡기우제(北方黑龍祈雨祭) · 불공(佛供) · 불재(佛齋) · 사대연성법석(四大緣成法席) · 삼성재(三聖齋) · 소상재(小祥齋) · 소재법석(消災法席) · 수륙재(水陸齋) · 승재(僧齋) · 십이인연법석(十二因緣法席) · 안거작법(安居作法) · 안거회(安居會) · 약사정근(藥師精勤) · 연등회(燃燈會) · 연비(燃臂) · 연수도량(延壽道場) · 연종환원(年終還願) · 우란분재(盂蘭盆齋) · 장경도량(藏經道場) · 전경법석(轉經法席) · 점등(點燈) · 점안법회(點眼法會) · 정근기도(精勤祈禱) · 진언법석(眞言法席) · 초재(初齋) · 초혼(招魂) · 추천재(追薦齋) · 축수재(祝壽齋) · 칠칠재(七七齋) · 팔관회(八關會) · 하안거(夏安居) · 화엄법석(華嚴法席)

불교법제

거승위전(居僧位田) · 계율(戒律) · 교서관(校書館) · 교종도회소(敎宗都會所) · 금승절목(禁僧節目) · 내원당완호지법(內願堂完護之法) · 도첩제(度牒制) · 모연(募緣) · 법손노비(法孫奴婢) · 부녀상사금지(婦女上寺禁止) · 보살계(菩薩戒) · 사사노비(寺社奴婢) · 사사전(寺社田) · 사위전(寺位田) · 삼십육사(三十六寺) · 선과(禪科) · 선과첩(禪科帖) · 선시(選試) · 선종도회소(禪宗都會所) · 성중승인금제조(城中僧人禁制條) · 수륙전(水陸田) · 승록사(僧錄司) · 승역(僧役) · 승인추핵조(僧人推劾條) · 승인호패법(僧人號牌法) · 승직(僧職) · 시납전(施納田) · 염불향도(念佛香徒) · 의승방번전(義僧防番錢) · 정전(丁錢) · 향도(香徒)

종파

교종(敎宗) · 남산종(南山宗) · 도문종(道門宗) · 마하연(摩訶衍) · 백련교(白蓮敎) · 법사종(法事宗) · 선교양종(禪敎兩宗) · 선종(禪宗) · 소자종(疏字宗) · 시흥종(始興宗) · 신인종(神印宗) · 오교양종(五敎兩宗) · 자은종(慈恩宗) · 조계종(曹溪宗) · 중도종(中道宗) · 중신종(中神宗) · 천태종(天台宗) · 청련교(靑蓮敎) · 총남종(摠南宗) · 총지종(摠持宗) · 화엄종(華嚴宗)

사찰

가림사(嘉林寺) · 가지사(迦智寺) · 각림사(覺林寺) · 감로사(甘露寺) · 강서사(江西寺) · 개경사(開慶寺) · 개암사(開庵寺) · 개태사(開泰寺) · 건봉사(乾鳳寺) · 건성사(乾聖寺) · 견암사(見岩寺) · 경복사(景福寺) · 경천사(敬天寺) · 계룡사(鷄龍寺) · 계봉사(鷄鳳寺) · 공림사(公林寺) · 관음굴(觀音窟) · 관음사(觀音寺) · 광덕사(廣德寺) · 광명사(廣明寺) · 광암사(光巖寺) · 광흥사(廣興寺) · 국분사(國分寺) · 귀주사(歸州寺) · 금사사(金沙寺) · 금장사(金藏寺) · 기림사(祇林寺) · 길상사(吉祥寺) · 낙산사(洛山寺) · 내제석원(內帝釋院) · 능침사(陵寢寺) · 단속사(斷俗寺) · 대자암(大慈庵) · 덕천사(德泉寺) · 도갑사(道岬寺) · 도량사(道場寺) · 동학사(東鶴寺) · 동화사(桐華寺) · 만덕사(萬德寺) · 만연사(萬淵寺) · 만의사(萬義寺) · 명통사(明通寺) · 무량사(無量寺) · 무위사(無爲寺) · 문수사(文殊寺) · 미륵사(彌勒寺) · 백련사(白蓮寺) · 백암사(白巖寺) · 백운사(白雲寺) · 범굴사(梵窟寺) · 법주사(法住寺) · 법천사(法泉寺) · 법화사(法華寺) · 보광사(普光寺) · 보련사(寶蓮寺) · 보현사(普賢寺) · 복세암(福世菴) · 복천사(福泉寺) · 봉덕사(奉德寺) · 봉선사(奉先寺) · 봉원사(奉元寺) · 봉은사(奉恩寺) · 봉정사(鳳停寺) · 북신사(北神寺) · 사나사(舍那寺) · 삼화사(三和寺) · 상원사(上院寺) · 서봉사(瑞峰寺) · 석남사(石南寺) · 석왕사(釋王寺) · 선운사(禪雲寺) · 선원사(禪源寺) · 성불사(成佛寺) · 성주사(聖住寺) · 소요사(逍遙寺) · 송광사(松廣寺) · 송림사(松林寺) · 수종사(水鐘寺) · 순천사(順天寺) · 숭효사(崇孝寺) · 승가사(僧伽寺) · 신광사(新光寺) · 신륵사(神勒寺) · 신암사(神巖寺) · 신혈사(神穴寺) · 심원사(深源寺) · 쌍봉사(雙峰寺) · 쌍봉사(雙鳳寺) · 안국사(安國寺) · 안암사(安巖寺) · 안양사(安養寺) · 앙암사(仰庵寺) · 억정사(億正寺) · 연경사(衍慶寺) · 연굴사(演窟寺) · 연복사(演福寺) · 영국사(寧國寺) · 영명사(永明寺) · 영통사(靈通寺) · 오봉사(五峰寺) · 왕륜사(王輪寺) · 용문사(龍門寺) · 용주사(龍珠寺) · 용천사(龍泉寺) · 운부사(雲浮寺) · 원각사(圓覺寺) · 월광사(月光寺) · 월암사(月巖寺) · 월영사(月影寺) · 월정사(月精寺) · 유점사(楡岾寺) · 은해사(銀海寺) · 인각사(麟角寺) · 인왕사(仁王寺) · 자복사(資福寺) · 자운사(慈雲寺) · 자혜사(慈惠寺) · 장곡사(長谷寺) · 장안사(長安寺) · 장의사(藏義寺) · 적산사(積山寺) · 전등사(傳燈寺) · 정곡사(亭谷寺) · 정수사(淨水寺) · 정양사(正陽寺) · 정인사(正因寺) · 정토사(淨土寺) · 조포사(造泡寺) · 중흥사(重興寺) · 지천사(支天寺) · 진관사(津寬寺) · 창성사(彰聖寺) · 천왕사(天王寺) · 청계사(淸溪寺) · 청룡사(靑龍寺) · 태안사(胎安寺) · 토당사(土堂寺) · 통도사(通度寺) · 패엽사(貝葉寺) · 표훈사(表訓寺) · 학림사(鶴林寺) · 해인사(海印寺) · 향림사(香林寺) · 현성사(賢聖寺) · 화엄사(華嚴寺) · 화장사(華藏寺) · 회강사(會剛寺) · 회암사(檜巖寺) · 효의사(曉義寺) · 흥교사(興敎寺) · 흥국사(興國寺) · 흥덕사(興德寺) · 흥룡사(興龍寺) · 흥복사(興福寺) · 흥천사(興天寺)

승려(僧侶)

감역승(監役僧) · 강주승(講主僧) · 거사(居士) · 국사(國師) · 내원당감주(內願堂監主) · 노승(奴僧) · 대사(大師) · 대선(大選) · 대선사(大禪師) · 대신승(代身僧) · 대처승(帶妻僧) · 도승(度僧) · 도승통(都僧統) · 도총섭(都摠攝) · 매골승(埋骨僧) · 모화승(募化僧) · 무도첩승(無度牒僧) · 밀원(密員) · 방장(方丈) · 번승(番僧) · 법사(法師) · 보살계제자(菩薩戒弟子) · 부역승(赴役僧) · 북한승장(北漢僧將) · 분수승(焚修僧) · 비구니(比丘尼) · 사경승(寫經僧) · 사리(闍梨) · 사미(沙彌) · 사승(使僧) · 산성승(山城僧) · 산성총섭(山城總攝) · 선사(禪師) · 승장(僧匠) · 승통(僧統) · 안거승(安居僧) · 역자승(驛子僧) · 연화승(緣化僧) · 왕사(王師) · 용면(龍眠) · 원주승(院主僧) · 율사(律師) · 의승장(義僧將) · 입선(入選) · 작두승(作頭僧) · 작법승(作法僧) · 장교승(將校僧) · 주지승(住持僧) · 죽반승(粥飯僧) · 중덕(中德) · 증명법사(證明法師) · 지음승(持音僧) · 차비승(差備僧) · 참학승(參學僧) · 총섭(摠攝) · 출신승(出身僧) · 판교종사(判敎宗師) · 판선종사(判禪宗師) ·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 · 향화승(香火僧) · 호승(胡僧) · 화주승(化主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