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륙사(水陸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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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수륙재를 설행하도록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지정한 사찰.

개설

수륙재(水陸齋)는 무주고혼(無主孤魂)을 달래고 위로하기 위해 불법을 강설하고 음식을 베푸는 의식으로, 수륙사(水陸社)는 이러한 수륙재를 설행하기 위해 국가에서 공식 지정한 사찰을 말한다. 수륙재는 중국 양나라의 무제(武帝)에 의해 시작되었다. 무제는 떠도는 외로운 영혼들을 널리 구제하는 것이 불교의 제일가는 공덕이라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친히 의식문(儀式文)을 만들고 505년에 최초의 수륙재를 베풀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고려초기인 968년(고려 광종 19)에 귀법사(歸法寺)에서 무차수륙재(無遮水陸會)라는 이름으로 처음 시작되어, 고려시대 전 기간에 걸쳐 여러 차례 시행되었다. 조선초기에는 국가에서 진관사(津寬寺)를 국행수륙재(國行水陸齋)를 설행하는 수륙사로 공식적으로 지정할 만큼 중요한 불교 의식이었다.

내용 및 특징

고려시대에는 수륙재가 11차례 이상 개설된 사례가 확인된다. 그 가운데 5번은 영혼을 천도(薦度)하기 위한 것이었고, 나머지는 치병(治病), 재액(災厄), 죄업 참회, 공덕 기원 등 다양한 목적으로 시행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억불 정책을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륙재는 오히려 국가불교 시대였던 고려 때보다 더 많이 개설되었다. 태조가 조선 건국 초기에 국가 차원에서 수륙재를 설행한 데 크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태조는 1395년(태조 4)에 고려의 왕족인 왕씨를 위해 관음굴(觀音堀)·견암사(見巖寺)·삼화사(三和寺)에서 수륙재를 베풀고, 매년 봄과 가을에 항상 재를 거행하게 하였다(『태조실록』 4년 2월 24일).

태조는 신왕조를 개창한 뒤, 민심을 수습하고 화합을 이루기 위해 유화 정책을 펼쳤다. 그 일환으로 공양왕을 비롯한 고려의 왕족을 죽이지 않고 살려 두었다. 하지만 신하들의 거듭된 주청으로 결국 그들을 수장(水葬)하고 말았는데, 이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수륙재를 베푼 것이었다. 태조가 베푼 국행수륙재는 좁은 의미에서 보면 고려 왕족을 죽인 데 따른 자신의 업장(業障)을 없애기 위한 의식이었지만, 여기에는 개인적인 차원 이상의 국가적, 사회적 배경이 자리 잡고 있었다.

태조는 건국 직후 국가의 안정을 위해 민심을 결집할 수 있는 방안을 수륙재에서 찾았다. 수륙재는 불교의 영혼 천도 의식 중에서 가장 효율적이었으며, 대규모 의식을 통해 많은 사람의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공동체의 일체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더할 나위 없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왕이 친히 수륙재에 참여하여 고려 왕족을 비롯해 신왕조 개창 과정에서 사망한 영혼들을 천도함으로써 신왕조의 포용성과 관용을 보여 주었다. 이처럼 태조는 수륙재를 통해 자신의 과거를 참회하는 동시에 사회적 공감과 결집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국행수륙재를 설행한 지 2년 뒤인 1397년에는 한걸음 더 나아가 진관사에 수륙재를 상설화하는 국가의 수륙재도량 수륙사(水陸社)를 건립하였다. 진관사 수륙사는 1397년 1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그해 9월에 완공되었다. 태조는 나랏일에 목숨을 바친 신하와 백성, 그리고 선조의 명복을 빌고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 수륙사를 조성한다고 밝혔다. 또한 불사가 진행되는 동안 두 차례나 몸소 왕림하였고, 제단 위치를 직접 지정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조성된 수륙사에는 중단과 하단을 마련하고, 각각 그 좌우에 욕실을 두었다. 또 하단 좌우에는 영가(靈駕)를 모시는 영실(靈室)을 배치하였다. 모두 59칸에 이르는 큰 규모였으며, 대문을 따로 두어 독자적인 영역으로 구성하였다. 이처럼 수륙사를 건립한 뒤, 태조는 수륙재를 국가의 법령을 통해 공식적으로 규정하였다. 즉 1397년 12월 26일에 조선시대 최초의 공식 법전인 『경제육전(經濟六典)』을 공포하면서 그 가운데 수륙재 관련 조항을 포함시켜 명실공히 국가 의식으로서의 위상을 갖추게 하였다.

조선시대 국행수륙재의 절차는 다음과 같다. 먼저 왕과 왕비는 재계(齋戒)를 한다. 그 다음 선왕의 신주를 백색의 평상(白平床)이나 가마 위에 올리고 사찰 일주문 밖 동구에서 모셔 오는데, 이때 대열의 앞뒤에서 승려들이 목탁과 징, 북 등을 친다. 이를 ‘하단시련(下壇侍輦)’이라고 하는데, 재를 설행하는 법당 아래의 영실로 신주를 모시는 과정이다.

이어서 대령의(對靈儀)를 행한다. 정결하지 못한 영가이기에 불단에 곧바로 나아갈 수 없으므로, 불보살을 맞이할 차비를 하는 의례이다. 다음은 영가를 불단으로 모셔 불법을 듣기 전에, 중단과 하단의 좌우에 있는 욕실에서 더럽혀진 몸을 깨끗이 씻는 관욕의(灌浴儀)를 행한다. 이제 영가는 정결해져서 불법을 들을 수 있게 되었으므로, 도량을 청정하게 한 뒤 공양을 올리는 신중작법(神衆作法)이 이어진다. 그 다음으로는 상단권공(上壇勸供)으로 불보살께 예배 공양을 올린다. 왕이 보낸 행향사(行香使)가 분향하고, 유치청사(由致請詞)로 수륙재의 취지를 아뢴 뒤 불보살이 도량에 강림하기를 빈다. 대례(大禮)의 경우 거불전(擧佛前)에 재회의 취지를 아뢰는 상단소(上壇疎)를 행한다. 왕이 자신의 이름을 쓰거나 수결한 소문(疎文)을 상단의 불전에 놓는 절차이다. 이 소문은 공통적으로 ‘보살계제자 조선 국왕 이모(李某)’로 시작하여 ‘무임건도지지(無任虔禱之至)’로 끝맺는다.

이후 중단권공(中壇勸供)을 행하는데, 지장보살과 명부 시왕(十王)에 대한 권공 의식이다. 사람이 죽으면 극락 또는 지옥에 이르기 전에 지장보살과 명부 시왕, 판관들에 의해 생전의 죄업을 심판받게 되므로, 이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중단권공을 마치면 시식(施食)이라 하여 재의 주인공에 대한 제사를 올린다. 이때 축관(祝官)은 왕이 내린 축문을 낭독하면서, 재를 베푼 후손의 공덕을 영가에게 회향하며 극락왕생을 빈다. 뒤이어 무주고혼과 아귀들에게 법식(法食)을 베푸는 전시식(奠施食)을 거행한다. 1432년(세종 14) 한강에서 개설한 무차수륙재에서는 7일 동안이나 행인에게 공양을 베풀고, 날마다 쌀 2~3섬을 강물의 물고기에게 뿌려 주기도 하였다. 모든 중생에게 차별 없이 공양을 베풀어 공덕을 쌓는다는 의미였다. 끝으로 재를 위해 도량에 모셨던 모든 불보살과 영혼을 다시 되돌려 보내는 봉송(奉送)을 행한다. 이러한 수륙재의 절차는 고려시대인 1090년(고려 선종 9)에 송나라에서 들여온 『수륙의문』에 의거해 진행되었는데, 이 책은 조선시대에도 여러 차례 간행되었다. 1467년(세조 13)에는 세조가 친히 『수륙문』을 간행하였고, 1469년(예종 1)에도 『수륙잡문(水陸雜文)』을 간행하였다.

1397년 수륙사가 조성되면서 국가의 공식적인 수륙재 도량이 된 진관사에서는 이후 10여 차례 재를 설행하였다. 수륙재는 국가를 위해 헌신한 조상들을 위로하기 위한 의식이었으므로, 재를 올릴 때마다 왕을 비롯한 왕족과 대신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수륙재 개설을 반대하는 몇몇 여론이 있기는 했으나, 사직과 종묘를 기린다는 명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변천

수륙재는 1515년(중종 10) 무렵까지 큰 변동 없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중종대 이후 조광조 등의 사림파가 득세하고 『주자가례』가 확립되면서 수륙재는 점차 설 자리를 잃었다. 이후 국가에서 주관하는 수륙재는 더 이상 설행되지 않았고, 진관사에 건립한 수륙사 기능도 쇠퇴하였다. 다만 민간 차원의 수륙재는 단절되지 않았으며, 본래의 목적인 영혼 천도뿐 아니라 장수와 질병 구제, 해운의 안전, 후손의 발복(發福), 천재(天災) 퇴치 등 다양한 목적을 위해 지속되었다. 수륙재는 불교 의식이라는 종교적인 차원을 넘어서 조선시대의 전통 문화와 풍속으로 자리매김해 나갔다. 결국 수륙재는 억불의 시대에 불교가 존립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를 제공하였으며, 그 핵심에는 수륙사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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