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佛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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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와 여러 성중(聖衆) 및 승려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의식.

개설

불공(佛供)은 좁은 의미에서는 부처에게 공양을 올리는 의식을 가리키지만, 넓은 의미로는 부처를 비롯한 제천(諸天)의 신중(神衆)에게, 나아가 승려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행위를 뜻한다. 불교를 믿고 따르는 일반 재가들에게 불공은 자신의 업(業)을 청정하게 하고 복을 비는 가장 중요한 신앙 행위이다. 그러므로 불공은 불교가 발생한 이래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으며, 어떠한 불교 의례에서도 생략되지 않는다. 또 불공은 여럿이 함께 올리기도 하고 혼자 올리기도 하는데, 조선시대에 성종은 가뭄이 들자 홀로 불공을 올렸다.

연원 및 변천

불공은 불교의 발생과 함께 생겨난 종교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불교를 신행하는 신도들은 누구나 불공을 올리는 것이 의무이다. 석가모니가 재세할 당시는 물론이고, 열반에 든 뒤에도 불교 신자들은 꽃이나 향 등 여러 가지 공양물을 바쳤다. 우리나라에서는 차(茶)를 포함한 여섯 가지 공양물 즉 육법공양(六法供養)을 올리는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다.

불공 가운데는 하루 한 끼를 먹은 붓다의 공양법에 따라 매일 사시(巳時)에 ‘공들여 만든 맛있는 음식’이라는 의미의 마지(摩旨)를 올리는 사시마지가 가장 대표적이다. 또 특별한 법회가 열리는 날에는 그날 청한 부처들에게 공양을 올린다. 1450년(문종 즉위)에 대자암 바위 아래에 새 샘물이 생겨나 부처에게 넉넉히 공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사나(『문종실록』 즉위년 3월 1일), 1477년(성종 8)에 성종이 한재를 근심하여 정전을 피하고 수라를 감하면서 독불공(獨佛供)을 행했다는 기사(『성종실록』 8년 4월 21일) 등은 불공의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불공에는 홀로 올리는 독불공과 여럿이 함께 올리는 동참불공(同參佛供)이 있다. 또한 특별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설행하는 칠칠재나 수륙재 등에서도 불공을 올린다(『세종실록』 29년 2월 13일). 수륙재는 성인과 범부를 차별 없이 청해 음식을 베풀고 불교의 진리를 설파하여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의식인데, 이때 상단에서는 불공을 올리고, 중단에서는 천신과 선신에게 공양을 올리며, 하단에서는 무주구혼(無主孤魂)들에게 음식을 베푼다.

억불숭유를 표방한 조선시대의 경우 불공을 올리는 행위는 왕의 성향에 따라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불교를 신봉한 세조는 승정원에 명하여, 흥천사(興天寺)에 불공드리는 것을 빼먹은 판사윤자(尹慈), 판관이월(李越), 주부정우(鄭俁) 등을 포박하여 국문하도록 하였다(『세조실록』 7년 12월 26일). 그러나 세조대를 제외하고는 왕실에서 주도하는 불공은 신하들의 엄청난 저항에 부딪혔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올리는 불공은 조선중기 이후에 사라졌지만, 왕실 비빈들의 불공은 면면히 이어졌다. 왕실의 비빈들은 인수궁이나 자수궁 등의 궁방에 불당을 마련해 놓고 선왕(先王)을 위한 불공을 올렸으며, 창덕궁 인근에 위치한 정업원(淨業院), 안일원 등의 비구니원에서도 왕실 비빈들의 불공이 이어졌다. 인조반정 때 상궁 김개시(金介屎)가 정업원에서 불공을 드리고 있다가 사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민가에 숨었으나 군인에게 베임을 당했다는 기사를 통해(『광해군일기(중초본)』 15년 3월 13일), 임진왜란 이후에도 왕실 여성들이 계속해서 불공을 올리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조선초기에는 궁궐 안에 위치한 내불당에서 매일 사시마지 불공을 올렸으나, 조선중기에 국행 기신재가 혁파된 뒤에는(『중종실록』 11년 6월 2일) 왕실의 개인적인 신앙과 취향에 따라 불공을 드렸다. 궁궐 내에서의 불공은 점차 사라졌지만, 사찰에서는 왕이나 왕비를 위한 불공이 이어졌다. 여러 사찰의 『영산대회 작법절차』나 『권공제반문』에는 왕을 위한 축상작법(祝上作法)이 불공의 첫째 목적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절차 및 내용

조선시대에 사시마지가 어떤 방식으로 설행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1496년(연산군 2)에 간행된 『진언권공』을 살펴보면, 오늘날 행해지는 사시마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① 사시가 되면 종을 세 번 울리며 마지를 올리는데, 공양주는 밥을 지어 그 가운데 가장 잘된 부분을 마지 그릇에 담아 부처에게 진지(進旨)한다.

② 진지가 끝남과 동시에 정법계진언(淨法界眞言) ‘옴 람’을 21번 염송하고, 공양을 올리는 진공진언(進供眞言)을 3번 읽는다.

③ 변식진언(變食眞言), 출생공양진언(出生供養眞言), 정식진언(淨食眞言)을 각각 21번 읽어 공양을 질적·양적으로 변하게 한다.

④ 변식이 끝난 공양물을 올리는 보공양진언(普供養眞言)을 한 뒤 향(香) 등 여섯 가지 공양물을 올리는 말씀을 아뢰는데, ‘향을 피워 공양하오니 자비를 버리지 마시고 받으소서’라고 한다. 향에 이어 등불[燈], 꽃[花], 과일[菓], 차(茶), 쌀[米]의 순서로 공양을 한다.

⑤ 마음을 움직여 공양을 올리는 운심공양진언(運心供養眞言)과 게송을 읽는다. 이어 일체의 불법승 삼보에게 경례를 하고, 퇴공진언(退供眞言)을 하며 공양물을 물린다.

⑥ 물린 공양은 중단으로 옮긴다.

이러한 진언권공 의식은 조선중기 이후 의례 수순에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1496년에 간행된 『작법절차』에는 훨씬 더 화려한 장엄과 절차가 나타난다. 『작법절차』는 통상 공양문(供養文)이라 불린다.

① 대중이 법당에서 향을 올리고 바라를 울리며, 향과 등과 꽃에 대해 찬탄하면서 향을 사르고 등불을 밝히고 꽃이 피어나는 게송을 외우며 불사가 원만히 이뤄지기를 발원한다.

②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고 예경함으로써 삼악도의 고통을 소멸한다.

③ 합장하여 연꽃의 향기로 삼보를 법회에 청한다.

법연(法筵)이 펼쳐지게 되었음을 아뢰며, 여러 성인들에게 청정한 감로수를 뿌려 도량을 깨끗하게 해 줄 것을 청한다. 특히 관세음보살을 청해 천수다라니를 염송하여 도량을 청정하게 한다.

⑤ 법회에서 행할 법석을 마치고 나면, 일심으로 삼보를 청해 자리에 모시고 공양물을 올린다. 바라를 울리고 아뢰는 문장을 읽고 공양물을 변하게 하는 여러 진언을 읽은 다음 향·등불·꽃·과일·차·쌀 등을 공양한다.

⑥ 진언권공의 운심공양진언에 해당하는 향화게송을 읽는데, ‘한 몸에서 한량없는 몸을 내고 한 몸에 있는 백 천의 손에 향을 잡고 불법승 삼보에 공양을 올리니 자비를 버리지 마시고 공양을 받으시고 불사를 베풀어 중생을 건져 달라’고 청한다.

⑦ 보공양진언을 7번 읽고, 보회향진언을 3번 읽는다.

⑧ 『반야심경』을 염송하며 법당을 돈다.

⑨ ‘부처님께 제가 귀의하오니 중생들이 큰 도를 체득하여 위없는 뜻을 발하게 하소서. 법보에 제가 귀의하오니 중생들이 경장에 깊이 들어 지혜가 바다 같게 하소서. 승보에 제가 귀의하오니 중생들이 대중을 모두 다스려 일체 장애가 없게 하소서’라고 자삼귀의를 한다.

⑩ 바라를 울린 뒤, 불공을 올린 연유에 따라 원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다시 한 번 삼보에게 축원을 아뢴다.

⑪ 환희장마니보적불, 원만장보살마하살, 회향장보살마하살을 칭명하며 공양을 마친다.

『삼단시식문』의 불공은 간단하게 정리되어 있다.

① 도량을 청정하게 하기 위해 감로수를 뿌리는 쇄수게송(灑水偈頌)을 외우고 천수심주 ‘옴 아로봐하’를 3번 읽은 뒤 보리심을 내고 삼귀의를 한 다음, 진언을 읽고 삼보를 청한다. 이때 삼보에 불부(佛部), 연화부(蓮花部), 금강부(金剛部)를 소청하는 진언을 읽고, 청하는 말을 아뢴 뒤 자리를 드리는 헌좌진언을 3번 읽는다.

② 중위의 여러 천신과 하위의 영가를 청해 자리에 모신 다음 불공을 올린다. 불공을 올릴 때는 변식진언과 운심공양진언을 21번씩 읽고, ‘이 향으로 올리는 공양이 법계에 가득하여 다함없는 삼보님께 널리 공양하오니, 자비로 공양을 받으셔서 선근을 더해 법이 세상에 머물게 되어 부처님의 은혜를 갚게 하소서’라는 운심공양게송을 읽는다.

③ 여러 천신들에 공양하고 하위의 영가에게 음식을 베푸는 의식을 행한다.

사시마지, 영산재, 수륙재 등에서 불공하는 방법에는 각각 차이가 있는데, 이는 불공을 올리는 시기와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틀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일상적으로 행하는 불공이나 특정한 소원을 비는 불공을 막론하고, 모든 불공은 공덕을 일체 중생에게 회향하는 것이 원칙이다. 또 축원을 할 때도 국가 및 다른 사람의 안녕과 수복을 먼저 발원하고, 불공을 올리는 시주의 축원을 뒤로 미룬다. 여기에는 ‘너와 내가 둘이 아니며, 일체의 중생을 건지겠다’고 발원하는 대승불교의 보살 정신이 담겨 있다.

참고문헌

  • 『진언권공(眞言勸供)』
  • 『작법절차(作法節次)』
  • 『삼단시식문(三壇施食文)』
  • 심상현, 『불교의식각론』, 한국불교출판부, 2001.
  • 정각, 『한국의 불교의례』, 운주사,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