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종환원(年終還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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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부터 조선초까지 매년 절과 산천을 찾아가 왕을 위해 복을 빌던 불교식 의례.

개설

왕의 복을 빌고자 연초에 축원장을 써서 그것을 연말에 거두는 연종환원(年終還願)은 고려시대 중에서도 특히 고려말에 성행한 불교 의례였다. 조선초에도 연종환원이 계속되다가 별다른 효력이 없다는 이유로 폐지가 건의되었다. 결국 세종 때 절에서 연종환원을 시행하는 것이 폐지되고 산천 등에서는 그대로 지속되었다.

내용 및 특징

왕을 위해 복을 비는 연종환원은 고려말에 성대히 시행되었던 연중 의례였다. 왕을 위해 축원장(祝願狀)을 지어 부처와 신에게 복을 빌고, 연말이 되면 제사하여 그 축원장을 다시 거두는 의례였다. 조선 건국 초인 1400년(정종 2)에 절에서 베풀어지는 도량(道場), 법석(法席), 국복(國卜), 기은(祈恩) 등과 함께 연종환원의 폐지가 건의되었다. 불교가 전래된 이후 특히 고려말에 불법을 숭상하여 절에서 열심히 복을 빌었지만, 그 징험함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 폐지가 건의된 주된 이유였다. 그러나 세종 때에도 매년 연말에 내시별감(內侍別監)을 보내 절과 산천에서 복을 비는 연종환원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비록 연종환원이 부처에게 복을 비는 의식이었지만 그대로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왕을 위하여 기도하는 연중 의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의 측근에 있던 신하도 연종환원의 폐지를 쉽게 거론할 수 없었다.

변천

1421년(세종 3) 세종이 연종환원은 불교를 숭상하는 단서가 된다고 지적하자, 이에 신하들이 차마 왕의 복을 기원하는 일이라 불가의 일이라도 폐지를 논하지 못하였음을 밝힌다. 그러자 세종이 스스로 이를 폐지하겠다고 밝혀, 이후부터는 연종환원이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그러나 절에서 복을 비는 것을 폐지하였을 뿐 산악(山嶽), 해독(海瀆), 산천(山川) 등에서의 제사는 그대로 허락했다(『세종실록』 3년 1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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