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향도(念佛香徒)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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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염불향도 |
한글표제 | 염불향도 |
한자표제 | 念佛香徒 |
관련어 | 만일회(萬日會), 백련결사(白蓮結社), 아미타불(阿彌陀佛), 염불결사(念佛結社), 염불계(念佛契), 염불도량[念佛道場], 염불회(念佛會), 사장(社長), 향도연(香徒宴) |
분야 | 문화/종교/불교 |
유형 | 개념용어 |
집필자 | 이종수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염불향도(念佛香徒)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종실록』 31년 8월 5일, 『세종실록』 31년 8월 8일 |
염불 수행을 위해 모인 불교 신앙 단체.
개설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염불하는 모임을 염불회(念佛會) 또는 염불계(念佛契)라 하며, 그 모임에 소속된 무리를 염불향도(念佛香徒)라 부른다. 신라시대 이래로 염불향도는 단체를 결성하여 징과 북을 치면서 염불을 하였는데, 때로는 잔치를 벌이기도 하고 싸움을 일삼기도 하였다. 염불향도의 야단법석은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순수한 신앙 행위였으나, 조선시대의 유학자들은 풍기를 문란케 한다는 이유로 이를 금지하려 하였다. 사찰의 여러 기록에 따르면 염불향도는 조선시대 후기까지 존속한 것으로 보인다.
내용 및 특징
염불향도는 염불(念佛)과 향도(香徒)의 합성어이다. 염불은 산스크리트어 ‘붓다누스므르티(buddhānusmṛti)’를 한역(漢譯)한 말로, 현재 일어나는 마음을 따라 부처를 잊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한순간이라도 부처를 잊지 않기 위해 마음속으로 혹은 입으로 계속 부처를 부르는 행위를 말한다. 여기서 부처는 일반적으로 아미타불을 의미한다. 그런 까닭에 역사적으로 염불은 정토종(淨土宗)의 신앙 형태로 인식되어 왔다.
향도는 향을 사르는 무리라는 뜻으로, 신라시대 이래 불교 신앙을 위해 모인 사람들을 의미하였다. 비슷한 용어로 계(契)·회(會)·사(社) 등이 있는데, 향도가 다수의 사람을 가리키는 데 비해 계·회·사 등은 그 조직을 의미한다. 『고려사』에서는 계를 맺어 향을 사르는 이들을 향도라 하고, 서로 돌아가면서 연회를 베풀고 남녀노소가 서열에 따라 자리를 잡고 앉아 함께 술을 마시는 것을 향도연(香徒宴)이라 한다고 설명하였다. 또 조선시대에는 서울과 지방에서 계를 맺어 잘못된 풍속을 규찰하는 무리를 향도라 하였다. 그러므로 염불향도는 염불을 위해 모인 불교 신앙 단체로 해석할 수 있다.
염불신앙의 변천
아미타불을 부르는 염불신앙은 신라시대부터 성행하였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경덕왕대에 삽량주(歃良州: 현 양산) 근처 포천산(布川山)에서 염불 수행을 하던 다섯 비구가 아미타불이 있다는 서방으로 날아갔다고 한다. 또 강주(康州: 현 진주)에서 수십명이 모여 서방정토에 극락왕생하기를 빌며 10,000일 동안 염불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고려시대에도 승속(僧俗)을 가리지 않고 무리를 이루어 염불했다는 기록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특히 천태종에서는 염불 수행을 적극적으로 권장하였는데, 백련결사(白蓮結社)를 개창한 요세(了世)는 날마다 1,000번씩 염불을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염불신앙은 백성들에게 가장 일반적인 불교 신앙이었다. 조정에서는 숭유억불 정책을 내세우며 불교를 배척하였으나 백성들의 불교 신앙은 여전하였다. 1449년(세종 31)에, 저잣거리에 불당을 지어 놓고 법석을 베푼 염불향도들을 사헌부에서 잡아들여 추문(推問)한다는 소식을 들은 세종은 승정원에 명하여 이들을 방면하도록 하였다(『세종실록』 31년 8월 5일). 사헌부에서는 염불향도들의 불당을 헐기를 청하였으나 세종은 염불향도의 유래가 오래되었다는 이유를 들어 윤허하지 않았다(『세종실록』 31년 8월 8일). 이처럼 조선시대 초기에는 도성 안이나 저잣거리에 염불당이 개설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이는 유학자 관료들의 비판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조선후기에는 유교식 제사 문화가 정착되었지만, 사후 세계에 대한 심리적 안정을 주지 않는 유교에 비해 불교는 내세에 대한 확신을 줌으로써 백성의 신앙을 유도해 낼 수 있었다. 특히 염불신앙은 이러한 점에 가장 부합하는 신앙 형태였다. 그에 따라 10,000일 동안 염불하면 서방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여러 곳에서 만일염불결사가 결성되기도 하였다. 염불결사로 잘 알려진 곳은 쌍계사 칠불암, 철원 심원사, 금강산 건봉사, 경주 기림사, 포항 오어사 등인데, 그 가운데 건봉사의 만일회가 가장 유명하다. 건봉사 만일회는 19세기 초에 용허(聳虛)의 주도로 개설된 이래 20세기 초까지 다섯 번에 걸쳐 이어지면서 전국적으로 염불신앙을 주도하였다.
참고문헌
- 『삼국유사(三國遺事)』
- 『고려사(高麗史)』
- 『지봉유설(芝峯類說)』
- 한상길, 『조선후기 불교와 사찰계』, 경인문화사, 2006.
- 이종수, 「조선후기 불교의 수행체계 연구」,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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