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闍梨)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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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사리 |
한글표제 | 사리 |
한자표제 | 闍梨 |
동의어 | 계사(戒師), 궤범사(軌範師), 아사리(阿闍梨), 정행(正行) |
관련어 | 불교(佛敎), 승려(僧侶), 계율(戒律), 갈마아사리(羯磨阿闍梨), 교수아사리(敎授阿闍梨), 수경아사리(受經阿闍梨), 의지아사리(依止阿闍梨), 출가아사리(出家阿闍梨) |
분야 | 문화/종교/불교 |
유형 | 개념용어 |
집필자 | 이종수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사리(闍梨)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명종실록』 21년 7월 25일, 『선조실록』 34년 12월 29일, 『선조실록』 37년 3월 14일 |
불교 교단에서 규범과 학문을 가르치는 스승.
개설
불교에서 스승을 뜻하는 아사리(阿闍梨)를 줄여서 사리(闍梨)라 한다. 석가모니가 세상에 있을 때, 가르침을 제대로 받지 못해 갖가지 죄를 저지르는 승려들이 있었으므로 각자 스승을 정하여 지도를 받도록 하였다. 아사리는 항상 제자들 곁에 있으면서 교법을 가르치고 보살펴 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아사리는 언행이 진실하고 학덕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지혜와 자비를 갖추어야 한다.
내용 및 특징
아사리는 산스크리트어 ‘아짜리야(ācārya)’의 음역어로, 궤범사(軌範師)·정행(正行)·계사(戒師) 등으로 번역한다. 10회 이상 안거(安居)를 지낸 승려 가운데 계율에 밝고 지혜와 복덕을 겸비한 사람만이 아사리가 될 수 있다. 아사리는 출가(出家)아사리·교수(敎授)아사리·갈마(羯磨)아사리·수경(受經)아사리·의지(依止)아사리 등 5종 아사리로 구분된다. 출가아사리는 20세 미만의 출가자에게 사미계(沙彌戒)를 주는 스승을 말하고, 교수아사리는 출가자가 구족계를 받을 때 승려로서 갖추어야 할 예절을 가르치는 스승을 일컫는다. 갈마아사리는 구족계를 받을 때 계율을 가르치는 스승을, 수경아사리는 경전을 독송하게 하고 그 뜻을 가르쳐 주는 스승을 뜻하며, 의지아사리는 함께 기거하며 지도해 주는 스승을 말한다. 여기에 머리를 깎아주는 체발(剃髮)아사리를 더해 6종 아사리로 구분하기도 한다. 서역에서는 관정사를 군지(君持)아사리로 부르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아사리 제도를 만든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석가모니가 재세할 당시에 곁에서 이끌어 주는 스승이 없어 갖가지 죄악을 저지르는 어린 승려들과 병이 들어도 옆에서 간호해 주는 사람이 없는 승려들이 있었다. 이를 본 석가모니는 제자들을 곁에서 보살피면서 교법을 설명해 주는 아사리를 정해 주려 하였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아사리가 되려는 승려가 없었기 때문에 석가모니는 아사리 제도를 만들어 출가하는 승려들에게 스승을 지정해 주었다.
이 제도에 따라 아사리가 된 승려는 제자를 가까이서 교화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제자의 주변을 단속하여 악한 이를 멀리하고 선한 이를 가까이하도록 하고, 옷과 발우를 갖추어 줄 뿐 아니라 병이 들면 잘 보살펴 주어야 한다. 제자는 외출할 때 아사리에게 보고하고, 궁금한 점은 아사리에게 물어서 해결해야 한다.
경전에서는 아사리가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13가지를 제시한다. ① 진리를 알고자 하는 보리심을 일으켜야 하고, ② 지혜와 자비가 있어야 하며, ③ 여러 능력이 있어야 하고, ④ 반야바라밀을 잘 수행해야 하며, ⑤ 성문·연각·보살의 3승(乘)에 통달해야 하고, ⑥ 진언(眞言)의 참된 뜻을 잘 이해해야 하며, ⑦ 중생의 마음을 파악할 줄 알아야 하고, ⑧ 모든 부처와 보살의 가르침을 믿어야 하며, ⑨ 만다라(曼茶羅)를 잘 이해해야 하고, ⑩ 성품이 조화롭고 부드러워 아집(我執)에서 벗어나야 하며, ⑪ 진실한 언행으로 잘 결정해야 하고, ⑫ 유식(唯識)의 뜻을 익혀 잘 알아야 하며, ⑬ 보리심에 굳건히 머물러야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사리
『조선왕조실록』에서 사리라는 용어가 3차례 보인다. 첫 번째는 명종대에 정엄(鄭淹)이 사헌부(司憲府) 지평(持平)으로 발탁되자 그가 어렸을 때 승려 보우(普雨)에게 수학하였는데 사람들이 보우를 사리라고 불렀다고 기록하였다(『명종실록』 21년 7월 25일). 두 번째는 임진왜란 당시 이덕형(李德馨)이 유정(惟政)이라고 하면 왜군들도 그 명성을 들어서 알고 있으므로 영리한 승려를 유정 사리라고 속여 왜군 진영에 보내자고 주장한 내용에서 유정을 사리라고 하였다(『선조실록』 34년 12월 29일). 세 번째는 임기응변에 능한 사리를 시켜 유정의 편지를 왜군에 전달하도록 비변사에서 임금에게 아뢴 사실이 있다(『선조실록』 37년 3월 14일). 이러한 사례를 통해 조선시대에는 사리가 지식을 갖춘 승려에게 붙여진 명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대비로자나성불신변가지경(大毘盧遮那成佛神變加持經)』권1,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脩大藏經) 18.
- 『미사색부화혜오분율(彌沙塞部和醯五分律)』권16,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脩大藏經) 22.
- 『십송율(十誦律)』권56,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脩大藏經) 23.
- 한정섭, 『불교계율해설』, 불교통신대학,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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