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암사(見岩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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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초에 고려 왕씨들의 명복을 비는 수륙사로 지정된 사찰로, 세종대 36사 가운데 교종에 속한 절.

개설

견암사(見岩寺)는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우두산(牛頭山)에 위치한 절로, 통일신라 때인 9세기 초에 창건되었다. 조선전기에는 고려 왕씨들의 명복을 비는 수륙재로 유명하였으며, 세종대 선·교 양종의 교종 18개 사찰 중 하나였다. 현재는 고견사(古見寺)로 칭해지고 있다.

연원

신라 애장왕대에 순응(順應)과 이정(理貞)이 당에서 귀국 후 창건했다고 전한다. 고려말 나옹(懶翁) 혜근(惠勤)과 관련이 있는 달순(達順)이 중창하였고 혜근의 영정을 모신 영당도 건립되었다.

변천

조선초기 견암사는 개성관음굴(觀音窟), 서울진관사(津寬寺) 등과 함께 수륙재(水陸齋) 도량으로 유명하였다. 1395년(태조 4)에는 고려 왕씨의 명복을 빈다는 명목으로 전지 50결이 내려졌고, 태종대에는 그동안 매년 2월 15일 상원(上元)에 행해지던 수륙재를 정월 15일에 거행하게 하였다(『태종실록』 14년 2월 6일).

1424년(세종 6) 세종은 기존의 7개 종단을 선·교 양종으로 나누고 각각 18개씩 36개 사찰만 공인하였는데, 이때 견암사는 교종 18사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견암사는 원래 보유하던 전지 50결에 추가로 100결이 지급되어 150결이 되었으며 거주하는 승려의 수는 70명으로 정해졌다(『세종실록』 6년 4월 5일). 『세종실록』「지리지」 거창현(居昌縣) 조에서는 견암사가 우두산(牛頭山)에 위치하며 교종에 속하고 전지 150결이 지급되었다고 하여 앞의 내용과 부합한다. 또 태조의 명으로 견암사에 수륙사(水陸社)가 만들어졌고 매년 봄가을에 향을 내려서 재를 설행한다고 기록하였다.

연산군대에도 견암사는 전라도쌍봉사(雙峯寺), 황해도패엽사(貝葉寺) 등과 함께 수륙재를 거행하는 사찰로 조정에서 지목되었고 향축사신[香使]을 보내는 일이 논의되었다(『연산군일기』 9년 1월 28일). 당시 상·중·하의 단을 설치하여 상단에는 부처, 중단에는 승려를, 하단에는 왕후를 공양하는 수륙재의 제도가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조선후기에 몇 차례의 중수를 거쳐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조선전기의 위상을 회복하지는 못하고 있다.

참고문헌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동문선(東文選)』
  • 권상로, 『한국사찰전서』,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 이능화, 『조선불교통사』, 신문관, 1918.
  • 탁효정, 「조선시대 왕실원당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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