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재(佛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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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종교 의식인 재 의식을 통칭하는 말.

개설

불재(佛齋)는 불교의 재(齋)를 통칭하는 대명사이다. 재에는 우주 공간을 외롭게 떠도는 영혼을 천도하기 위해 공양을 베푸는 수륙재를 비롯하여 기신일에 절에 가서 부처에 공양을 올리고 승려들에게 재를 올리는 기신재, 새로 죽은 영혼의 천도를 위해 행해지는 칠칠재, 생전에 스스로 미리 닦는 예수재 등이 있다.

연원 및 변천

재는 불교에서 행하는 종교 의식을 통칭하는 말로, 재의 어원은 범어 ‘upavasatha’에서 비롯되었다. 원래는 승려들에게 식사를 올리는 행위를 의미하는 말이었으나 점차 부처에게 공양을 올리고 법회를 설행하는 것 등을 통칭하는 말로 변화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공불재승(供佛齋僧)’, ‘반불재승(飯佛齋僧)’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 가운데 두 글자를 취해 ‘불재’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공불재승이나 반불재승은 부처에게 공양을 올리고 승려에게 재를 올리는 행위를 표현한 것일 뿐 그 자체를 불재라고 할 수는 없다.

수륙재로서의 불재는 조선 건국 초기부터 왕씨의 천도를 위해 개성의 관음굴·거제의 견암사·동해의 삼화사 등에서 거행되기 시작하였고(『태조실록』 4년 2월 24일), 이어 왕실의 선왕·선후의 천도를 위해 국가에 의해 빈번히 행해졌다. 그렇지만 수륙재로 봉행되던 왕실의 기신재가 폐지됨으로써 국가 주관의 수륙재는 모습을 감추게 되어 민간 주도의 수륙재만 남게 되었다[『종종실록』 11년 6월 2일 7번째기사].

국행수륙재의 재주(齋主)는 국왕이므로 국행수륙재를 위해서는 국왕의 사신이 향과 법회를 개최하는 연유를 밝히는 소(疏)와 축문을 가지고 수륙재가 열리는 사찰에 파견되었다. 사신이 국왕을 대신하여 소와 축문을 읽었지만 연산군 때에는 기신재 축문을 승려에게 읽게 하였다(『연산군일기』 11년 3월 20일).

중종 때에 이르러서는 유생들의 강력한 반대로 국가에서 주관하는 각종 불교 행사 및 도교 행사가 대부분 폐지되었다.

이후 민간에서는 재의 규모에 따라 영산재와 수륙재로 분기돼 설행되었다. 영산재와 수륙재는 현재도 전승되고 있는데, 그 형태는 조선시대에 비해 축약되고 분화되었다. 특히 불전에 시주할 물건을 올리는 ‘불공(佛供)’과 음식을 올리며 법문을 외우는 ‘시식(施食)’이라는 상·하단의 의식으로 변화돼 설행되고 있다.

절차 및 내용

『연산군일기』에 언급되고 있는 불재는 수륙재이다. 수륙재의 절차와 내용은 15세기 말의 수륙재 의식문인 『진언권공(眞言勸供)』의 「작법절차(作法節次)」와 「삼단시식문(三壇施食文)」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우선 불·법·승 삼보를 모시는 상단은 남면하고, 좌우에는 제천의 호법신중과 제산의 역대 조사 등을 청해 모시는 중단이 설치된다. 그리고 영혼을 위한 하단은 상단과 마주하는 형태로 설치된다. 상단의 불보살과 중단의 여러 천신들은 긴 천으로 만든 깃발인 번에 그 위계를 써서 걸고, 중위의 위계와 모든 진언도 함께 써서 건다.

먼저 경전을 독송하는 작법절차를 행해 특정 경전을 염송하는 법석을 여는데, 법석에 채택되는 경전으로는 『묘법연화경』, 『지장보살본원경』, 『자비도량참법』, 『미타도량참법』, 『법화예참법』, 『화엄예참법』 등이 있다. 『법화경』을 중심으로 행해지는 작법절차를 영산의식(靈山儀式)이라고 하며 주로 오전에 마친다. 이어 식당작법으로 승려에게 공양이 행해지고[齋僧], 일반 수륙재 의식에서는 널리 일체 대중을 청해[無遮大會] 재(음식)를 베푼다.

점심 이후에 영가(靈駕)에게 음식을 베푸는 제사인 수륙 의식이 행해진다(『중종실록』 3년 10월 13일). 먼저 관세음보살의 천수심주 ‘옴 아로 사바하’를 3편 염송하여 법회 도량을 청정히 하고 보리심을 발원한다. 이때 삼귀의를 하는데, ‘제자들이 부처에게 귀의하며, 법(法)에 귀의하며, 승(僧)에 귀의하겠다’는 다짐을 발원하고 깨달음을 얻겠다는 마음을 밝히는 발보리심진언[發菩提心眞言]을 외운다. 이어 삼보를 불러 청하는데, 불부와 연화부와 금강부를 소청(召請)해 이를 증명(證明)해줄 것과 공양(供養)에 임해주실 것을 청하는 청사를 한다. 청한 이들을 자리에 모셔 앉히고, 상단에 공양물을 올리되 먼저 차를 한 잔 올리고 뒤에 공양의식을 행한다. 이어 중단에 여러 천신을 청하는데 요령을 울려 청하는 게송과 진언이 활용되며, 진언과 청하는 말로 청해 모신 이들에게 자리를 권하고 중단에 차를 올린다. 이어 하위의 영가를 청하게 되는데, 하단은 남쪽 벽에 대왕 왕후 선가(仙駕)가 앉고 법계 망혼(亡魂)이 앉는다. 당일 영가를 먼저 청해 앉게 하고, 이어 모인 영가와 법계 망혼들을 청하여 공양을 받고 깨달음을 이루기를 원하는데 이때 영가들은 반드시 부처의 위력과 신통에 의지해야만 법회에 참석할 수 있다.

다음에는 지옥의 영가를 청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옥을 깨 없애는 의식을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체는 마음이 만들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경전인 대방광불화엄경을 3번 염송하고 지옥을 깨는 파지옥진언, 악취의 길을 없애는 멸악취진언, 맺힌 원한을 푸는 해원결진언 등의 진언이 염송된다. 지옥을 깨었으므로 비로소 지옥의 영가를 청하게 된다. 이때는 지옥의 하리제모와 초면귀왕을 먼저 청하는데, 이들은 지옥 영가의 인도자 역할과 증명의 역할을 수행한다. 청한 영가들은 상위의 성인들에게 예를 올리게 하고 자리에 앉게 된다.

상·중·하의 자리에 당일 공양을 권하거나 음식을 베풀 존재들이 모두 모이고 나면 상단의 부처에 공양하는 불공과 중단의 제천(諸天)에 공양을 하고, 하단에 영가에게 음식을 베푸는 순서로 진행된다. 상단의 부처와 중단의 제천을 위한 공양에는 변식진언과 운심공양진언이 쓰인다. 하지만 하단의 영가들을 위해서는 다소 복잡한 과정을 겪는다. 먼저 부처님의 명호를 들려주는 칭양성호(稱揚聖號)를 한다. 성인의 이름을 듣게 되면 영혼들은 심적이나 물적으로 정화가 이뤄지게 된다. 이어 불교의 삼귀의계와 오계를 주는 수계 의식이 진행된다. 이렇게 하고 나서야 비로소 고혼들은 음식을 받을 수 있게 되지만 다시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의 다라니로 영가의 정화를 거친다. 이어 사다라니 진언 등으로 제수의 변식을 거친 후 영가들은 음식을 공양 받을 수 있게 된다. 이후 다시 영가가 지은 업장을 참회하고 불자들이 지녀야 할 네 가지의 큰 서원인 사홍서원을 발원하게 하여 원을 성취하도록 인도한다. 그리고 십이인연법과 진언을 설명해 제법의 실상을 깨닫게 한다. 또 육바라밀의 보살행을 일러주며, 관행게송을 들려주어 제행의 무상을 깨치게 한다. 이어 반야심경과 왕생정토주를 염송하여 초청한 영가들이 극락세계에 왕생하도록 하고 보회향진언을 하여 마친다. 이렇게 하여 일체의 공양 행위가 끝나게 되며, 상단과 중단과 하단에 초청한 성현과 영혼들을 본래 자리로 돌려보내는 봉송 의식을 하며 재 의식은 끝나게 된다.

이 같은 작법절차와 삼단시식은 간략한 수륙재 의례라고 할 수 있는데, 본격적인 수륙재 의식은 현재의 영산재와 같은 작법절차 의식으로 행해진다. 하지만 수륙재를 봉행하는 재물(齋物)의 대·중·소의 규모에 따라 ‘지반문작법절차’나 ‘중례문작법절차’, ‘소례결수작법절차’로 행해지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진언권공(眞言勸供)』
  • 『영산대회작법절차(靈山大會作法節次)』
  • 김용조, 『조선전기의 국행기양불사연구』, 동국대학교대학원, 1990.
  • 안진호, 『석문의범』, 법륜사, 1935.
  • 심효섭, 「조선전기 기신재의 설행과 의례」, 『불교학보』40 ,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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