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량사(道場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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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광진구 광장동아차산에 있었던 절.

개설

도량사(道場寺)는 창건 시기나 절의 구체적인 모습을 추정할 만한 기록이나 유물이 없다. 다만 조선전기에 명나라에서 환관을 지낸 정선(鄭善)의 백일재(百日齋)가 이 절에서 개설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중기 이후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내용 및 변천

창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출신의 명나라 환관(宦官)정선(鄭善)의 백일재(百日齋)가 개설되었다. 정선은 문종(文宗)이 세자로 있을 때 동궁에서 명나라에 갈 환관 후보자인 화자(火者)로 있다가 명나라에 들어가 환관이 되었다. 명나라 사신의 수행원으로 조선을 자주 내왕하였고, 환관의 최고직인 화자태감(火者太監)까지 올랐다. 1468년(세조 14) 사망하자 명 황제가 본국에 돌아가 장사를 치르게 하였다. 조선에서는 영구를 운구하는 과정에서 승정원에 특별히 명하여 아침·저녁으로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세조실록』 14년 2월 24일). 이 해 4월 8일 광주(廣州)에 묘를 마련하고 장사지냈다. 5월 5일 동생 정항(鄭恒)과 아들 정현(鄭賢)·정해(鄭海) 등이 불경을 외우며 백일재를 지냈다(『세조실록』 14년 5월 5일).

절이 위치한 아차산은 당시에는 용마산(龍馬山)·망우산(忘憂山) 등을 포함하여 모두 아차산이라고 불렀다. 왕실의 사냥터로 유명하였고, 세조는 산 아래에 이궁(離宮)을 둘 정도로 자주 찾아 사냥을 즐겼다(『세조실록』 4년 9월 26일). 정선의 백일재를 이곳에서 치른 것은 아마도 세조의 이러한 인연에서 비롯된 것이라 짐작된다. 이후 절에 관한 기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1530년(중종 25)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한 지리서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므로 그 전에 폐사된 것으로 추측된다.

참고문헌

  • 장희흥, 『조선시대 정치권력과 환관』, 경인문화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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