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경판당(大藏經板堂)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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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대장경판당 |
한글표제 | 대장경판당 |
한자표제 | 大藏經板堂 |
동의어 | 대장전(大藏殿), 장경각(藏經閣), 법보전(法寶殿), 판당(板堂) |
관련어 | 해인사(海印寺), 초조대장경(初造大藏經),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 경판(經板), 선원사(禪源寺), 용문사(龍門寺), 통도사(通度寺), 대장도감(大藏都監), 분사대장도감(分司大藏都監), 지천사(支天寺) |
분야 | 문화/종교/불교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고려 |
집필자 | 윤기엽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대장경판당(大藏經板堂)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태조실록』 7년 5월 12일, 『세조실록』 3년 6월 26일 |
대장경 경판(經板)을 수장하여 보관하는 건물로, 대장전 또는 장경각, 법보전(法寶殿)이라고도 칭함.
개설
국내의 대장경판당(大藏經板堂)으로는 해인사의 고려대장경(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판당이 가장 대표적이고, 용문사의 대장전(大藏殿), 통도사의 장경각(藏經閣) 등도 대장경을 보관하던 곳이었다. 현존하는 고려대장경은 불력(佛力)으로 몽고의 침입을 막고자 13세기 중엽 최씨 정권의 강화 천도기에 판각되었다. 이것이 강화의 선원사(禪源寺)에 옮겨졌고, 조선 시대에는 태조 때 해인사(海印寺)로 옮겨져 해인사 경내의 대장경판당에 보관되었다. 해인사의 대장경판당은 그 탁월한 과학적 설계 때문에 현재까지도 경판을 손상 없이 보존할 수 있었고, 국보 제52호로 지정되었다.
내용 및 특징
고려 시대에는 대장경이 2차례에 걸쳐 간행되었는데 첫 번째의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은 거란의 침입을 불력으로 물리치고자 1011년(고려 현종 2)에 작업을 시작해 1087년(고려 선종 4)에 완성하였다. 이 경판은 대구 부인사(符仁寺)에 수장, 보관되었지만 1232년(고려 고종 19) 몽고군의 침입으로 소실되었다. 몽고군에 의해 초조대장경이 소실되자 다시 불력으로 몽고의 침입을 격퇴하고자 1236년(고려 고종 23)에 대장경 판각을 시작해 1251년에 완성한 것이 바로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이다. 이 경판은 강화의 대장도감(大藏都監)과 남해의 분사대장도감(分司大藏都監)에서 각각 판각하여 처음 강화 도성 서문(西門) 밖의 대장경판당에 보관되었다가 강화의 선원사로 옮겨졌다. 이것이 1398년(태조 7) 5월에 한양의 지천사(支天寺)를 거쳐(『태조실록』 7년 5월 12일), 합천해인사에 옮겨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변천
(1) 해인사 대장경판당
팔만대장경판을 수백년간 보호하고 있는 해인사 대장경판당의 창건 연도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대장경이 해인사에 옮겨진 것이 1398년(태조 7)임을 감안하면, 이즈음에 대장경판당도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대장경판당은 세조대와 성종대에 두 차례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하였다. 세조는 1457년(세조 3) 해인사에서 대장경 50벌을 인출(印出)하게 했는데(『세조실록』 3년 6월 26일), 이때 대장경판당이 협소하고 누추하다는 보고를 받은 세조는 경상도감사에게 명해 판당을 40여 칸으로 증축하게 했다. 1481년(성종 12) 또다시 대장경판당이 기울고 쇠락했다는 소식을 들은 정희왕후는 학조(學祖)에게 명하여 판당의 중창 공사를 주관하도록 하였다. 1491년(성종 22) 조위(曺偉)가 지은 「해인사중수기(海印寺重修記)」에 따르면 1488년(성종 19) 등곡당(燈谷堂) 학조 대사가 왕실의 후원으로 대장경판당을 증·개축하여 30칸의 대장경 경각을 중건한 뒤 보안당이라 했다고 한다. 또 1622년(광해군 14)에 수다라장을, 1624년(인조 2)에는 법보전을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대장경판이 보관되어 있는 해인사 대장경판당은 해인사의 현존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대장경판당의 건물 배치는 정면 15칸이 되는 대규모의 건물을 남북으로 배치하여 남쪽의 것을 수다라장, 북쪽의 것을 법보전이라고 한다. 수다라장은 부처님이 설하신 경을 총괄해 일컫는 말이고, 법보전은 대장전의 다른 뜻으로 대장경을 봉안하는 사찰의 전각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동쪽과 서쪽에 위치한 작은 규모의 건물을 각각 동사간전, 서사간전이라고 한다. 고려대장경판은 바로 수다라장과 법보전에 보관되어 있고, 동서사간전에는 고려각판이 보관되어 있다.
해인사의 대장경판당이 수백년 동안 경판을 손상 없이 오래 보관할 수 있었던 것은 건물 전체가 통풍과 방습, 적정한 실내 온도 유지를 위해 매우 과학적인 방법에 의해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수다라장의 창의 경우 앞 벽의 남향 창은 아래쪽 창이 위쪽 창의 4배가 되고, 뒷벽의 북향 창은 위쪽 창이 아래쪽 창보다 1.5배 정도 크다. 법보전도 다르지 않은데, 이렇게 크기가 서로 다른 창이 공기의 순환을 도와 온도와 습도를 조절해 준다. 또한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숯과 소금, 횟가루, 모래, 찰흙 등을 섞은 흙으로 지반을 다졌다. 이로 인해 습기나 해충으로부터 경판의 변형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해인사 대장경판당은 국보 제52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소장 문화재로는 대장경판 81,258판(국보 제32호), 고려각판 2,725판(국보 제206호), 고려각판 110판(보물 제734호)이 있다.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2) 용문사 대장전, 통도사 장경각
예천 용문사의 대장전은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의 일부를 보관하기 위해 1173년(고려 명종 3)에 지어졌고, 현종 때 중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대장전의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내부의 중앙에 삼존불이 있고, 불단(佛壇)의 앞쪽 좌우에 각각 회전식 윤장대(輪藏臺)가 있다.
양산 통도사의 장경각은 건축된 시기가 알려져 있지 않고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1칸으로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현재 『능엄경』, 『기신론』, 『금강경오가해』, 『조당집』 등 15종의 경판이 보관되어 있다.
참고문헌
- 이능화, 『조선불교통사』, 신문관, 1918.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