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림사(嘉林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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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대 88개 자복사의 하나로, 경상북도 구미시에 있었던 절.

개설

가림사(嘉林寺)는 경상북도 구미시에 있었던 절로, 그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태종 때 나라의 안녕과 고을의 복을 비는 자복사찰(資福寺刹)로 지정되었고, 세종 때에는 폐사된 가림사의 재목과 기와를 해체하여 다른 건물을 수리하는 데 사용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내용 및 변천

(1) 창건

가림사(嘉林寺)를 가림사(加林寺)라고도 하는데 절의 창건주와 창건 시기, 연혁 등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단편적인 기록을 볼 때, 조선 개국 전에 창건되었던 것은 분명하며, 최소한 고려말에는 비교적 이름난 지방 사찰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2) 태종대

조선시대에 들어와 1407년(태종 7) 인동(仁同, 현 경상북도 구미시) 가림사(嘉林寺)가 조계종(曹溪宗)의 자복사찰로 지정되었다(『태종실록』 7년 12월 2일). 당시 조선시대의 불교 종파는 이전의 11개(혹은 12개)에서 조계종(曹溪宗), 천태종(天台宗), 화엄종(華嚴宗), 자은종(慈恩宗), 중신종(中神宗), 총남종(摠南宗), 시흥종(始興宗) 등 7개 종파로 정리되었는데, 인동 가림사는 조계종에 소속된 자복사찰이었다. 조선초기에 가림사가 지방의 명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3) 세종대

기림사가 자복사찰로 지정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429년(세종 11) 경상도감사는 인동현감으로부터, "고을에 가림사(加林寺)라는 절이 있는데 오랫동안 폐사되어 살고 있는 승려도 없으므로 그 절에 있는 재목과 기와를 가져다가 창고와 향교를 수리하는 데 쓰고자 한다."(『세종실록』 11년 8월 10일)는 요구를 접하게 되었다. 이에 경상도감사는 이 보고를 그대로 조정에 올렸고, 조정에서는 인동현감의 요구를 그대로 수락하였다. 인동의 가림사는 태종대 초반에 자복사찰로 지정되어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은 사찰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연유인지 모르지만 폐사되었다. 폐사되어 방치된 건물은 세종 때 해체되어 인동 지역 관공 건물의 자재로 이용되면서 이후로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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