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사(白雲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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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대 88개 자복사 가운데 하나로,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성동리백운산에 있는 절.

개설

신라말에 도선(道詵) 국사(國師)가 창건하고 내원사(內院寺)라 하였다. 고려 때의 연혁은 알 수 없지만, 조선 태종 때 천태종의 자복사찰(資福寺刹)로 지정된 지방의 명찰(名刹)이었다. 18세기 정조 때 중건하여 백운사(白雲寺)라 하였다. 일제 때 중수하고 흑룡사(黑龍寺)라 하였고, 다시 지금의 흥룡사(興龍寺)로 이름을 바꾸었다. 1950년 6·25전쟁 전까지는 큰 규모의 큰 절이었지만 전쟁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고, 1980년대 이후 백운당, 대웅전 등을 건립하였다.

내용 및 변천

(1) 창건

신라말 도선 국사가 절터를 정할 때 나무로 세 마리의 새를 만들어서 공중에 날려 보냈더니 그 중 한 마리가 백운산(白雲山)에 앉아서 그 자리에 절을 창건했다고 하는 설화가 전해진다.

(2) 조선시대

태조 때 무학자초(無學自超)가 절을 중건하였다. 1407년(태종 7) 12월, 영평(永平, 현 경기도 포천) 백운사가 천태종의 자복사찰로 지정되었다(『태종실록』 7년 12월 2일). 이때 이미 백운사로도 불렸던 것이다. 당시 조선시대의 불교 종파는 이전의 11개(혹은 12개)에서 조계종(曹溪宗), 천태종(天台宗), 화엄종(華嚴宗), 자은종(慈恩宗), 중신종(中神宗), 총남종(摠南宗), 시흥종(始興宗) 등 7개 종파로 정리되었던 것인데, 영평 백운사는 천태종에 소속된 자복사찰이었다. 자복사찰은 나라의 안녕과 고을의 복을 빌기 위해 지정한 사찰이었다.

1636년(인조 14) 무영(無影)이 중창했고, 다음해인 1637년(인조 15) 무영의 제자 지혜(智惠)가 옛 터에 선원을 짓고 상선암(上禪庵)이라고 하였다. 1648년(인조 26) 청암(淸巖)이 50여 칸 규모의 보문암(普門庵)을 지었다. 1786년(정조 10) 태천(泰天)이 절을 중건하고 산 이름을 따서 다시 옛 이름인 백운사라고 하였다.

(3) 근현대

일제강점기인 1922년 설하(渫河)가 대웅전을 중수하고 흑룡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다시 지금의 흥룡사로 바꾸었다. 1950년 6·25전쟁 전에는 대웅전을 비롯한 법당 4동과 요사채가 여럿 있는 대규모 절이었으나 전란으로 대부분 소실되었다. 1957년에 관음전을 세우고 1982년에 백운당, 1987년에는 대웅전을 세웠다.

문화재

흥룡사청암부도(興龍寺淸巖浮屠, 경기도 포천시 향토유적 제35호)는 청암대사의 사리를 안치한 부도로 대석, 탑신석, 옥개석 세 부분만 남아 있다. 조선시대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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