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설(輪廻說)

sillokwiki
Silman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8년 1월 30일 (화) 13:46 판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이동: 둘러보기, 검색



깨달음을 얻지 못한 중생이 업력(業力)에 의해 내생(來生)에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다는 설.

개설

근대 이전 동아시아에서는 윤회설(輪廻說)이 불교 고유의 사상이라고 믿었으나, 사실 윤회설은 고대 인도에서 비롯되었다. 고대 인도인들은 모든 생명은 현생의 업력에 의해 내생에 새로운 생명을 받는다고 믿었는데, 이러한 윤회설은 이후 인도에서 발생한 모든 종교와 철학의 밑바탕이 되었다. 불교도 예외가 아니어서, 많은 경전에서 윤회의 과보(果報)에 대해 설하고 있다. 다만 불교의 기본 교설은 무아설(無我說)이므로, 윤회의 주체를 인정하는 힌두교나 자이나교와는 차이가 있다. 불교에서는 윤회의 주체를 인정하지 않으며, 업력에 의해 받은 과보의 실존을 깨달으면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내용 및 특징

윤회(輪回)는 산스크리트어 ‘삼사라(saṃsāra)’를 번역한 말이다. 삼사라는 ‘함께’라는 의미를 지닌 ‘삼(saṃ)’과 ‘달리다, 빨리 움직이다, 흐르다, 건너다’라는 뜻을 지닌 ‘사라(sāra)’의 합성어이다. 따라서 삼사라는 ‘함께 흐르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중생이 미망의 세계에 태어나 죽고 다시 태어나고 하는 것이 마치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것과 같다는 의미에서 윤회라고 번역하였다.

윤회란 육체가 없어진 다음에도 불멸의 영혼은 존속하여 인간계를 포함한 몇몇 세계에 태어나고 다시 죽는다는 말이다. 어떤 세계에 태어나는가 하는 문제는 생전에 행한 행위의 선악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현재의 모습은 전생의 업이 빚은 결과이므로 지금은 고칠 수 없다. 그러나 현생에서 노력하여 착한 업을 쌓으면 내생에서는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선한 행위는 그에 합당한 공덕을 낳고, 공덕은 마치 저축과 같이 하나하나 축적되어 사후의 운명을 결정하는 자료가 된다. 결국 내생의 안락을 바란다면 현생에서 많은 공덕을 쌓아야 하는 것이다.

고대 인도에서는 모든 생명은 윤회하며, 현생에서 지은 업(業)에 따라 내생이 결정된다고 여겼다. 모든 생명은 한 세계에서 정해진 기간이 지나면 또 다른 세계에 그가 쌓은 업을 그대로 가지고 오게 된다. 이 업력(業力)이 새로운 생의 조건을 결정짓는다. 즉 영혼이 다시 태어날 세계와 종족을 비롯해, 사회적 계급, 성(姓), 영혼이 취하게 될 모습 등은 모두 업력에 의해 결정된다. 이 업력이 끝나면 윤회 또한 끝이 나고 해탈을 얻게 된다.

윤회설은 인도에서 발생한 거의 모든 종교와 철학의 밑바탕이 되었다. 다만 각 종교와 철학에서 내세우는 윤회 이론 사이에는 얼마간의 차이가 있다. 윤회설을 각자의 주된 사상이나 교리의 근본 원칙에 맞추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힌두교와 자이나교는 윤회하는 주체로서 ‘아트만(ātman)’이나 ‘지바(jīva)’를 인정한다. 아트만은 ‘아(我)’로 번역하고, 지바는 ‘영혼’으로 번역한다.

불교에서는 윤회설을 수용하여 전생과 내생을 설명한다. 어떤 바라문이 중생이 모두 사람으로 태어났음에도 지위가 높고 낮으며 얼굴이 예쁘고 추하며 재물이 많고 적은 등의 차이가 생긴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 석가모니는 전생에 지은 업 때문이라 대답하였다. 그런데 불교는 고정적이고 실체적인 ‘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아설에 바탕을 두고 있으므로, 힌두교나 자이나교에서 말하는 윤회의 주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에 따라 ‘업이 윤회하는 주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일, 즉 무아설과 윤회설의 모순을 해결하는 일이 커다란 과제로 대두하였다.

석가모니는 사람이 죽은 뒤에 어떤 존재가 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답을 유보하였다. 이를 ‘무기(無記)’라 하는데,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확실한 대답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같은 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석가모니는 대답 대신, 현재의 조건 속에서 열심히 수행하며 선한 업을 쌓으라고 이야기하였다. 즉 "세계는 업에 의해 성립하고 사람들도 업에 의해 생존하며, 생존하는 것은 업에 의해 속박된다. 그러므로 현명한 사람은 있는 그대로를 관찰하기 때문에 인간과 인간이 상호 연관되어 있는 연기(緣起)를 보며 그 행위의 과보를 본다."고 설명하였다.

석가모니의 이러한 태도는 불교의 실천적이고도 실존적인 성격을 잘 나타내 준다. 다시 말해서, 불교 윤회관은 전생의 업에 의해 현생에 이러저러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식의 물리적인 윤회관이 아니다. 지금 여기에 있는 자신을 실존적으로 바라보면, 자신이 무명에 덮여 있으며 번뇌에 싸여 고통을 당하고 있는 실체라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실존이 어떤 신이나 악마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지은 업 때문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결국 현재의 자신은 전생의 자기 행위가 낳은 결과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되므로, 여기서 인간은 ‘업의 상속자’로서의 자기를 보게 된다. 따라서 불교의 윤회설은 행위의 중요성에 비중을 둔 업관(業觀)이자, 실존적으로 승화된 윤회설이라 할 수 있다.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이래 사람들은 윤회설이 불교 고유의 사상이라고 믿었다. 또 윤회설은 생소한 사상이었으므로 불교의 윤회설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특히 윤회의 주체인 ‘신(神)’이 멸하는지 여부에 대한 논쟁, 즉 신멸불멸(神滅不滅) 논쟁이 일어났는데, 초기에는 출가 수행자조차 윤회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윤회의 주체인 신이 불멸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은 윤회설이 어리석은 백성을 현혹하는 사설(邪說)이라며 강하게 비판하였다. 1476년(성종 7)에 예문관 부제학손비장 등은 상소를 올려, "석씨(釋氏)의 무리들이 그 간교함을 꾸며서 인연·인과응보의 설(說)을 백성들을 현혹하고 세상을 어지럽히는 도구도 삼고 있으니, 중하(中下)의 수준은 윤회설에 얽매이고, 용렬하고 어리석은 세속에서는 화복(禍福)을 두려워하여 미혹되어 헤어나지 못하므로, 세상에 고질(痼疾)이 되고 있다."며 불교를 배척할 것을 청하였다(『성종실록』 7년 8월 24일).

참고문헌

  • 『중아함경(中阿含經)』44,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脩大藏經) 1.
  • 계환, 『홍명집』, 동국역경원, 2008.
  • 윤호진, 『무아윤회문제의 연구』, 민족사, 1992.
  • 정승석, 『윤회의 자아와 무아』, 장경각, 1999.
  • 中村元·奈良康明·佐藤良純 [共]著, 김지견 역, 『불타의 세계』, 시공사, 2005.
불교(佛敎) 표제어
불교개념

가유왕(迦維王) · 감로(甘露) · 견성성불(見性成佛) · 금강륜(金剛輪) · 금강수(金剛樹) · 금강지(金剛地) · 담무갈보살(曇無竭普薩) · 도솔천(兜率天) · 미타국(彌陁國) · 범천(梵天) · 복전(福田) · 사라쌍수(沙羅雙樹) · 사리분신(舍利分身) · 사장(社長) · 사중(四衆) · 석가(釋迦) · 수타미(須陀味) · 아승지(阿僧祗) · 억불(抑佛) · 우화(雨花) · 윤회설(輪廻說) · 제석(帝釋) · 좌선(坐禪) · 직지인심(直指人心) · 진언(眞言) · 참선(參禪) · 팔정도(八正道) · 해탈문(解脫門) · 화장(華藏)

불교공간

강경당(講經堂) · 계단(戒壇) · 내불당(內佛堂) · 내원당(內願堂) · 대장경판당(大藏經板堂) · 미륵당(彌勒堂) · 법연(法筵) · 봉선전(奉先殿) · 비보사찰(裨補寺刹) · 사리전(舍利殿) · 수륙사(水陸社) · 안일원(安逸院) · 어실각(御室閣) · 어필각(御筆閣) · 원당(願堂) · 원당촌(願堂村) · 인수궁(仁壽宮) · 재궁(齋宮) · 절수사찰(折受寺刹) · 정업원(淨業院) ·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 · 총림(叢林) · 판교원(板橋院) · 향상회관(向上會館)

불교문헌

경률론소(經律論疏) · 대선첩문(大選帖文) · 대장경(大藏經) · 시경도목(試經都目) · 참학입선첩(參學入選帖) · 패엽경(貝葉經)

불교물품

가사(袈裟) · 괘번(掛幡) · 괘불(掛佛) · 두루(兜樓) · 발우(鉢盂) · 번당(幡幢) · 범패(梵唄) · 법기(法器) · 보살봉(菩薩棒) · 부도(浮圖) · 불유(佛油) · 불자(拂子) · 불탱(佛幀) · 삼보인(三寶印) · 신당퇴미(神堂退米) · 요발(鐃鈸) · 의발(衣鉢) · 장삼(長衫) · 축원패(祝願牌) · 하등(河燈)

불교의식

경찬회(慶讚會) · 경행(經行) · 구병정근(救病精勤) · 금경법석(金經法席) · 기신재(忌晨齋) · 기양법석(祈禳法席) · 기우보공재(祈雨報供齋) · 나한재(羅漢齋) · 다비(茶毗) · 대상재(大祥齋) · 무차대회(無遮大會) · 문수법회(文殊法會) · 반승(飯僧) · 방생연(放生宴) · 백고좌법석(百高座法席) · 백재(百齋) · 법화법석(法華法席) · 북방흑룡기우제(北方黑龍祈雨祭) · 불공(佛供) · 불재(佛齋) · 사대연성법석(四大緣成法席) · 삼성재(三聖齋) · 소상재(小祥齋) · 소재법석(消災法席) · 수륙재(水陸齋) · 승재(僧齋) · 십이인연법석(十二因緣法席) · 안거작법(安居作法) · 안거회(安居會) · 약사정근(藥師精勤) · 연등회(燃燈會) · 연비(燃臂) · 연수도량(延壽道場) · 연종환원(年終還願) · 우란분재(盂蘭盆齋) · 장경도량(藏經道場) · 전경법석(轉經法席) · 점등(點燈) · 점안법회(點眼法會) · 정근기도(精勤祈禱) · 진언법석(眞言法席) · 초재(初齋) · 초혼(招魂) · 추천재(追薦齋) · 축수재(祝壽齋) · 칠칠재(七七齋) · 팔관회(八關會) · 하안거(夏安居) · 화엄법석(華嚴法席)

불교법제

거승위전(居僧位田) · 계율(戒律) · 교서관(校書館) · 교종도회소(敎宗都會所) · 금승절목(禁僧節目) · 내원당완호지법(內願堂完護之法) · 도첩제(度牒制) · 모연(募緣) · 법손노비(法孫奴婢) · 부녀상사금지(婦女上寺禁止) · 보살계(菩薩戒) · 사사노비(寺社奴婢) · 사사전(寺社田) · 사위전(寺位田) · 삼십육사(三十六寺) · 선과(禪科) · 선과첩(禪科帖) · 선시(選試) · 선종도회소(禪宗都會所) · 성중승인금제조(城中僧人禁制條) · 수륙전(水陸田) · 승록사(僧錄司) · 승역(僧役) · 승인추핵조(僧人推劾條) · 승인호패법(僧人號牌法) · 승직(僧職) · 시납전(施納田) · 염불향도(念佛香徒) · 의승방번전(義僧防番錢) · 정전(丁錢) · 향도(香徒)

종파

교종(敎宗) · 남산종(南山宗) · 도문종(道門宗) · 마하연(摩訶衍) · 백련교(白蓮敎) · 법사종(法事宗) · 선교양종(禪敎兩宗) · 선종(禪宗) · 소자종(疏字宗) · 시흥종(始興宗) · 신인종(神印宗) · 오교양종(五敎兩宗) · 자은종(慈恩宗) · 조계종(曹溪宗) · 중도종(中道宗) · 중신종(中神宗) · 천태종(天台宗) · 청련교(靑蓮敎) · 총남종(摠南宗) · 총지종(摠持宗) · 화엄종(華嚴宗)

사찰

가림사(嘉林寺) · 가지사(迦智寺) · 각림사(覺林寺) · 감로사(甘露寺) · 강서사(江西寺) · 개경사(開慶寺) · 개암사(開庵寺) · 개태사(開泰寺) · 건봉사(乾鳳寺) · 건성사(乾聖寺) · 견암사(見岩寺) · 경복사(景福寺) · 경천사(敬天寺) · 계룡사(鷄龍寺) · 계봉사(鷄鳳寺) · 공림사(公林寺) · 관음굴(觀音窟) · 관음사(觀音寺) · 광덕사(廣德寺) · 광명사(廣明寺) · 광암사(光巖寺) · 광흥사(廣興寺) · 국분사(國分寺) · 귀주사(歸州寺) · 금사사(金沙寺) · 금장사(金藏寺) · 기림사(祇林寺) · 길상사(吉祥寺) · 낙산사(洛山寺) · 내제석원(內帝釋院) · 능침사(陵寢寺) · 단속사(斷俗寺) · 대자암(大慈庵) · 덕천사(德泉寺) · 도갑사(道岬寺) · 도량사(道場寺) · 동학사(東鶴寺) · 동화사(桐華寺) · 만덕사(萬德寺) · 만연사(萬淵寺) · 만의사(萬義寺) · 명통사(明通寺) · 무량사(無量寺) · 무위사(無爲寺) · 문수사(文殊寺) · 미륵사(彌勒寺) · 백련사(白蓮寺) · 백암사(白巖寺) · 백운사(白雲寺) · 범굴사(梵窟寺) · 법주사(法住寺) · 법천사(法泉寺) · 법화사(法華寺) · 보광사(普光寺) · 보련사(寶蓮寺) · 보현사(普賢寺) · 복세암(福世菴) · 복천사(福泉寺) · 봉덕사(奉德寺) · 봉선사(奉先寺) · 봉원사(奉元寺) · 봉은사(奉恩寺) · 봉정사(鳳停寺) · 북신사(北神寺) · 사나사(舍那寺) · 삼화사(三和寺) · 상원사(上院寺) · 서봉사(瑞峰寺) · 석남사(石南寺) · 석왕사(釋王寺) · 선운사(禪雲寺) · 선원사(禪源寺) · 성불사(成佛寺) · 성주사(聖住寺) · 소요사(逍遙寺) · 송광사(松廣寺) · 송림사(松林寺) · 수종사(水鐘寺) · 순천사(順天寺) · 숭효사(崇孝寺) · 승가사(僧伽寺) · 신광사(新光寺) · 신륵사(神勒寺) · 신암사(神巖寺) · 신혈사(神穴寺) · 심원사(深源寺) · 쌍봉사(雙峰寺) · 쌍봉사(雙鳳寺) · 안국사(安國寺) · 안암사(安巖寺) · 안양사(安養寺) · 앙암사(仰庵寺) · 억정사(億正寺) · 연경사(衍慶寺) · 연굴사(演窟寺) · 연복사(演福寺) · 영국사(寧國寺) · 영명사(永明寺) · 영통사(靈通寺) · 오봉사(五峰寺) · 왕륜사(王輪寺) · 용문사(龍門寺) · 용주사(龍珠寺) · 용천사(龍泉寺) · 운부사(雲浮寺) · 원각사(圓覺寺) · 월광사(月光寺) · 월암사(月巖寺) · 월영사(月影寺) · 월정사(月精寺) · 유점사(楡岾寺) · 은해사(銀海寺) · 인각사(麟角寺) · 인왕사(仁王寺) · 자복사(資福寺) · 자운사(慈雲寺) · 자혜사(慈惠寺) · 장곡사(長谷寺) · 장안사(長安寺) · 장의사(藏義寺) · 적산사(積山寺) · 전등사(傳燈寺) · 정곡사(亭谷寺) · 정수사(淨水寺) · 정양사(正陽寺) · 정인사(正因寺) · 정토사(淨土寺) · 조포사(造泡寺) · 중흥사(重興寺) · 지천사(支天寺) · 진관사(津寬寺) · 창성사(彰聖寺) · 천왕사(天王寺) · 청계사(淸溪寺) · 청룡사(靑龍寺) · 태안사(胎安寺) · 토당사(土堂寺) · 통도사(通度寺) · 패엽사(貝葉寺) · 표훈사(表訓寺) · 학림사(鶴林寺) · 해인사(海印寺) · 향림사(香林寺) · 현성사(賢聖寺) · 화엄사(華嚴寺) · 화장사(華藏寺) · 회강사(會剛寺) · 회암사(檜巖寺) · 효의사(曉義寺) · 흥교사(興敎寺) · 흥국사(興國寺) · 흥덕사(興德寺) · 흥룡사(興龍寺) · 흥복사(興福寺) · 흥천사(興天寺)

승려(僧侶)

감역승(監役僧) · 강주승(講主僧) · 거사(居士) · 국사(國師) · 내원당감주(內願堂監主) · 노승(奴僧) · 대사(大師) · 대선(大選) · 대선사(大禪師) · 대신승(代身僧) · 대처승(帶妻僧) · 도승(度僧) · 도승통(都僧統) · 도총섭(都摠攝) · 매골승(埋骨僧) · 모화승(募化僧) · 무도첩승(無度牒僧) · 밀원(密員) · 방장(方丈) · 번승(番僧) · 법사(法師) · 보살계제자(菩薩戒弟子) · 부역승(赴役僧) · 북한승장(北漢僧將) · 분수승(焚修僧) · 비구니(比丘尼) · 사경승(寫經僧) · 사리(闍梨) · 사미(沙彌) · 사승(使僧) · 산성승(山城僧) · 산성총섭(山城總攝) · 선사(禪師) · 승장(僧匠) · 승통(僧統) · 안거승(安居僧) · 역자승(驛子僧) · 연화승(緣化僧) · 왕사(王師) · 용면(龍眠) · 원주승(院主僧) · 율사(律師) · 의승장(義僧將) · 입선(入選) · 작두승(作頭僧) · 작법승(作法僧) · 장교승(將校僧) · 주지승(住持僧) · 죽반승(粥飯僧) · 중덕(中德) · 증명법사(證明法師) · 지음승(持音僧) · 차비승(差備僧) · 참학승(參學僧) · 총섭(摠攝) · 출신승(出身僧) · 판교종사(判敎宗師) · 판선종사(判禪宗師) ·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 · 향화승(香火僧) · 호승(胡僧) · 화주승(化主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