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련교(靑蓮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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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때 성립한 민간 종교 결사 단체.

개설

청나라 때 등장하는 많은 민간 종교 결사 중 하나인 청련교(靑蓮敎)는 당시 다른 민간 종교 결사와 마찬가지로 무생노모(無生老母)를 최고신으로 숭배하는 나교(羅敎)에 큰 영향을 받았다. 청련교는 후에 일관도(一貫道)로 명칭이 바뀌었고 중일전쟁 시기에 세력을 확장하여 중국 주변의 여러 나라에도 전파되었다. 1948년 중국에 사회주의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금지되어 그 자취를 감추었다.

연원

청대 초중엽에 출연한 청련교(靑蓮敎)의 교리는 청대에 등장한 대부분의 민간 종교와 유사하게 16세기 초 명대(明代) 정덕(正德) 연간(1506~1521)에 성립한 나교(羅敎) 혹은 무위교(無爲敎)의 무생노모(無生老母) 신앙이 중심 교리를 이룬다. 이 신앙은 ‘진공가향(眞空家鄕) 무생노모(無生老母)’라는 팔자진언(八字眞言)으로 요약된다. 팔자진언은 나청(羅淸)이 창시한 나교의 무생노모 신앙에서 비롯된 민간 종교 결사의 비밀 문자로 일종의 신이고 주문이며 교도임을 확인하는 서약 때 사용하는 암호이고, 민간 종교 결사의 핵심적 패러다임이다.

나교에서 최고의 신으로 숭배되는 무생노모는 인간을 낳았고, 이 인간은 무생노모의 명령에 따라 지상 세계에 내려오지만 지상의 욕망에 현혹되어 영성을 잃고 윤회에 빠지게 된다. 무생노모는 인류의 고난을 보고 인간을 구제해 가향(家鄕)에 데려오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신불을 지상 세계에 내려 보내 인류의 구제를 맡겼다고 한다.

무생노모 신앙은 이처럼 본체론, 인류의 탄생, 강생, 고난, 구제를 포함하고 있다. 이 신앙은 미륵하생신앙과 결합한 삼기말겁(三期末劫) 사상을 기초로 하여 구제론을 편다. 삼기말겁의 내용은 과거의 연등불, 현재의 석가불, 미래의 미륵불이 존재하는데(三期三佛說), 현재의 말겁(末劫)에는 미륵불이 등장해 말겁의 재난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것이다. 무생노모에 의해 천지가 열리고 96억의 황태아녀(皇胎兒女)가 지상에 내려오지만 세속에 미혹되어 가향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된다. 이에 과거의 연등불이 주관해 2억을 구제하지만 큰 재난이 일어난다. 다음으로 현재의 석가불이 주관해 2억을 구제하지만 인심이 경박해 재난이 일어난다. 마지막으로 미래의 미륵불이 내려와 92억 황태아녀를 가향으로 돌아오게 한다고 한다.

이렇게 무생노모 신앙과 삼기삼불설은 우주적 시간론 속에서 재구성되고 있다. 이를 통해 무생노모에 의한 세계의 창조에서 중생 구제까지의 과정을 시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청련교의 세계관은 청대의 다른 민간 종교 결사의 세계관과 유사하게 무생노모 신앙, 말겁의 도래, 무생노모가 파견해 지상으로 내려오는 미륵불, 무생노모에 의한 구제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청련교에 관한 기사가 단 1건 등장하는데, 시헌서(時憲書) 재자관(齎咨官)으로 중국에 갔다 온 이광직(李光稷)이 비변사에 올린 내용 가운데, 청나라 조정이 교비(敎匪)를 아직까지 토벌하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광직은 교비를 설명하면서 교비란 백련교(白蓮敎)·홍련교(紅蓮敎)·청련교(靑蓮敎)의 호칭을 내세운 도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정조실록』 23년 11월 16일).

변천

청련교는 발전하는 과정에서 분열을 거쳐 청대 도광(道光) 연간(1821~1850)에는 일관도(一貫道)로 명칭이 바뀐다. 일관도를 연 15대 조사 왕각일(王覺一)은 동치(同治) 연간(1861~1874)에 산동과 하남 일대에서 말후일저교(末後一著敎)를 전수하고 도처에서 교도를 모았다. 말후일저교는 청련교 계통으로 함풍, 동치 연간에 호북 등지를 중심으로 성행하다가 화북 지방으로 들어온 민간 종교였다. 왕각일의 도통을 이어받은 16대 조사 유청허(劉淸虛)는 1886년(청 광서 12)에 『논어』에 나오는 "나의 도는 하나로 관통한다[一以貫之]"는 공자의 말을 바탕으로 일관도라는 명칭을 정식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관도는 1911년 신해혁명(辛亥革命) 이후 점차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17대 조사 노중일(路中一)이 죽고 18대 조사 장광벽이 교권을 장악한 시기에 크게 발전해 근대적인 민간 종교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일관도에서도 가장 중요한 신은 역시 무생노모였다. 우주를 이천(理天), 기천(氣天), 상천(象天)으로 구분하고, 이천은 무생노모가 거주하는 곳으로 일관도의 교도가 앞으로 돌아갈 곳으로 상정했다. 기천은 선불이 거주하는 곳이고, 상천은 현재의 인간이 거주하는 진토로서 사람들이 윤회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관도에 가입해 수련에 힘써 이천에 올라가야 한다고 선전했다.

일관도는 중일전쟁 기간(1937~1945) 중에 세력을 크게 확대하여 일본군과 왕정위(王精衛) 친일 국민정부의 비호 아래 그 조직이 산동과 북평, 천진 외에 1938년에는 동북, 1944년에는 화남, 1945년에는 사천으로 확대되었고, 그 세력은 중국을 넘어 국외로 전해졌다. 특히 대만에서 성행했고 동남아와 일본, 한국에까지 전파되었다. 일관도의 이러한 확장은 전쟁 상황이라는 외적인 요소 외에도 독특한 종교적 체재 때문이었다. 중일전쟁이 종결된 후 일관도는 중화도덕자선회의 이름으로 활동하였지만, 1948년 국공내전이 끝난 후에는 사회주의 중국에서 반혁명 집단으로 지목되어 금지되었다.

참고문헌

  • B. J. Ter Haar 지음, 송요후 옮김, 『중국역사상의 민간종교운동: 백련교의 실체와 박해』, 신서원, 2007.
  • 이은자, 『중국 민간종교 결사, 전통과 현대의 만남』, 책세상, 2005.
  • 김정기, 「청대 민간종교 조사 연구-일관도를 중심으로」, 『중국학논총』34, 한국중국문화학회,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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