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업원(淨業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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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조선시대에 왕실 여성들이 출가하여 수도하던 사찰.

개설

정업원(淨業院)은 고려 때부터 왕실 여인들이 출가하여 수도(修道)했던 절이다. 왕이 세상을 떠났거나 왕위 찬탈 등으로 인해 궁궐 밖으로 나가야 했던 왕비나 후궁들이 정업원에서 기도하면서 생활하였다. 조선의 정업원은 창덕궁 후원 뒤편에 있었으며, 명종대에는 인수궁 내에 설치된 불당을 정업원이라 부르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수차례에 걸쳐 정업원이 폐지되었다가 복설되었다. 정업원은 창덕궁 인근의 특정 사찰을 지칭하는 이름이었을 뿐만 아니라 왕실 출신의 비구니들이 머무는 사찰을 통칭하는 용어로도 사용되었다.

연원

정업원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사』에 나타나는 1164년(고려 의종 18) 고려의종이 정업원에 행차한 기사이다. 이로 볼 때 정업원이라는 사찰은 의종대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 왕조가 몽고의 침입으로 인해 강화도로 천도한 후인 1252년(고려 고종 38)에는 문신 박훤(朴暄)의 집을 정업원으로 삼아 성 안에 있던 비구니들을 살게 하였고, 이후 다시 개경으로 환도한 1270년(의종 24) 이후에는 도성 내에 정업원을 설치하였다. 고려말에는 비구니 묘장(妙藏)이 한때 정업원의 주지로 있었으며, 고려말부터 조선초에는 공민왕의 후비인 혜비(惠妃) 이씨가 정업원의 주지를 맡았다.

변천

고려의 정업원 전통은 조선으로 그대로 이어졌다. 1408년(태종 8) 2월 3일에 주지로 있던 공민왕의 후비 혜비가 죽자 소도군(昭悼君)방석의 처인 심씨가 주지가 되었다(『태종실록』 8년 2월 3일). 이후 정종의 비인 정안왕후의 언니 김씨가 주지를 맡았고, 이후에도 정업원 주지는 대부분 왕실 비빈이나 그 친인척들이 역임하였다.

조선전기에 정업원을 폐지시키자는 논의가 계속 제기됨에 따라 정업원은 수차례 폐지되고 중창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태종 때부터 유생들에 의해 정업원을 폐지하자는 논의가 일어났는데, 태종은 이를 번번이 거부했다. 하지만 1448년(세종 30) 세종대에 이르러 내불당(內佛堂) 건립을 앞두고 정업원이 혁파되었다. 당시 세종의 내불당 건립에 대한 관료들의 반발이 매우 거세지자, 세종은 정업원 혁파를 허락하고(『세종실록』 30년 11월 28일) 대신 내불당 건립 계획을 강행했다.

정업원은 1457년(세조 3) 세조에 의해 다시 설치되었다. 세조는 즉위 3년째인 1457년 9월 정업원을 세워 여승이 된 과부와 외로운 여자들을 구제하려 한다는 내용의 전지를 내리고 정업원을 부활시켰다(『세조실록』 3년 9월 8일). 이때 세조는 정업원 건립 비용으로 노비 30구와 전지 100결을 내렸고(『세조실록』 3년 9월 16일), 이듬해 4월 노비 70구를 추가로 하사하였다(『세조실록』 4년 4월 9일). 또 5월부터 정업원 공사가 시작되자 경상도에서 내는 공포가(貢布價)를 주어 공사 비용으로 충당케 하였다(『세조실록』 5년 5월 29일). 정업원이 완공되자 세조는 정희왕후와 함께 사리분신을 참관하기 위해 정업원으로 두 차례 행차하면서 200구의 노비를 지급하였다. 이때 세워진 정업원은 응봉 아래 창덕궁 뒤편에 위치해 있었다.

예종은 1468년(예종 즉위) 호조에 명하여 매달 멥쌀[粳米] 7석을 정업원에 주게 하였다(『예종실록』 즉위년 11월 15일). 1469년(예종 1)에는 난신(亂臣)으로 몰린 남이(南怡)의 재산을 몰수하여 정업원에 주도록 하였으며(『예종실록』 1년 1월 21일), 한성부에 전교하여 한양에 거주하는 정업원 소속 노비에게는 잡역을 모두 면제하라고 하였다(『예종실록』 1년 9월 4일). 이와 같은 왕실의 비호로 1480년(성종 11)에는 정업원의 노비가 180여 명에까지 다다랐다.

이처럼 세조대에 설치된 정업원은 세조와 정희왕후, 인수대비 등 호불 성향의 왕과 비빈들의 비호를 받으며 상당한 규모의 사찰로 존립하였다. 하지만 성종대에 사림들의 정계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정업원은 유학자 관료들의 비판 대상이 되었다. 성종대에는 정업원에 대한 폐해를 지적한 상소들이 특히 자주 올라왔는데 1486년(성종 17년) 대사헌박건(朴楗) 등이 상소하기를 "정업원이 궁궐 담벼락 바로 곁에 있어 범패(梵唄) 소리가 궁중에까지 들리는데 기울거나 무너졌다면 헐어 없애는 것이 맞건만 오히려 중수(重修)를 해서 사치한다."(『성종실록』 17년 12월 11일)고 지적했다. 또 1489년(성종 20)에는 인수대비가 정업원으로 보낸 불상을 유생 이벽 등이 가져다 태우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성종실록』 20년 5월 11일).

이처럼 성종대 유학자들의 표적이 되었던 정업원은 연산군대에 폐사되기에 이른다. 1504년(연산군 10) 7월 29일 연산군은 정업원과 안암사(安庵寺)의 여승들을 국가에서 몰수한 한치형(韓致亨)의 집으로 옮기라고 명하면서 정업원을 철폐하였다. 이로써 세조가 중창한 정업원은 명맥이 끊어졌다.

중종은 1506년(중종 1) 선비들을 정업원에서 사가독서하게 하였다. 그 후 정업원은 독서당(讀書堂)으로 사용되다가, 독서당을 두모포(頭毛浦, 현 서울 성동구 옥수동)로 옮긴 1517년(중종 12) 이후에는 빈 절로 남게 되었다. 중종은 정업원을 다시 세우고자 했지만 유생들의 반대에 부딪쳐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공식적인 정업원은 폐사된 상태였지만 왕실 비구니원으로서의 정업원은 계속 유지되고 있었다. 『중종실록』에는 "폐주(연산군)의 후궁이던 곽씨가 정업원 주지로 있다."(『중종실록』 17년 3월 3일)는 기사가 나온다. 이 기사를 통해 정업원이라는 이름의 왕실 비구니원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때의 정업원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3) 명종대의 정업원

연산군대에 철폐된 정업원은 명종 즉위 직후인 문정왕후 섭정기에 다시 중창되었다. 명종은 1546년(명종 1) 선왕의 후궁을 위해 정업원을 수리하여 인수궁(仁壽宮)에 속하게 하라는 전교를 내렸다(『명종실록』 1년 7월 26일). 이때부터 정업원이 인수궁의 부속 불당 역할을 하게 되면서, 이 절은 정업원, 인수궁, 인수원 등의 이름으로 혼용돼 불렸다. 『선조실록』에는 "문정왕후 때 다시 세워 처음에는 이름을 인수궁이라 하였다가 그 뒤에 정업원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다(『선조실록』 7년 5월 20일).

문정왕후의 지원 하에 복설된 정업원은 다시 왕실 비구니원으로 기능하게 되었고, 광해군대까지 유지되었다. 1568년(선조 1) 성균관 유생, 사헌부, 홍문관 등이 10여 차례 상소하여 정업원을 혁파할 것을 청했으나 선조는 윤허하지 않았다. 임진왜란 발발 당시 정업원이 속해 있던 인수궁은 불에 타 전소되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정업원이라는 이름의 절은 계속 유지되었다. 1623년(광해군 15) 정업원에서 불공을 드리고 있던 상궁김개시(金介屎)를 벤 기록이 등장하는 것으로 볼 때(『광해군일기(중초본)』 15년 3월 13일), 광해군 때까지 정업원이 창덕궁 인근에 위치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기사를 마지막으로 정업원에 대한 기록은 더 이상 실록에 나오지 않는다.

1623년 이후 정업원 기사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정업원과 왕실의 관계가 점차 소원해졌기 때문이다. 현종대에 이르러 도성 내 비구니원이 폐사될 당시에도 인수원과 자수원의 이름만 거명될 뿐 정업원은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이로 볼 때 인수궁의 부속 사찰이었던 정업원이 조선후기에는 주로 인수원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던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영조대에도 정업원 관련 기사가 실록에 등장하는데, 이때의 정업원은 창덕궁 뒤편의 비구니원이 아니라 동대문 밖에 위치한 청룡사를 지칭하고 있다. 영조는 단종비 정순왕후를 기리는 사업의 일환으로 정업원(淨業院)의 옛터에 누각(樓閣)을 세우고 비석을 세우도록 명하고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 다섯 자를 써서 내렸다(『영조실록』 47년 8월 28일). 이때 정업원구기가 세워진 곳은 동대문 밖 연미동에 위치한 청룡사 후원이었다. 정순왕후가 출가했을 당시 청룡사를 정업원이라 부른 기록은 전무하다. 그럼에도 영조와 조정 대신들은 청룡사를 정업원이라 지칭하고 비석 명칭을 정업원구기라 지은 것은, 정업원이 왕실 비구니사찰을 통칭하는 용어 내지 ‘왕비가 출가한 사찰’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정업원구기가 세워진 후 영조는 직접 청룡사를 방문하여 비각(碑閣)을 봉심(奉審)하고, 비각 앞에서 사배례(四拜禮)를 행했다. 또한 영조는 친필로 ‘동망봉(東望峰)’ 세 글자를 써서 청룡사와 마주하고 있는 봉우리 바위에 새기도록 명했다(『영조실록』 47년 9월 6일).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탁효정, 「조선시대 왕실원당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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