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암사(神巖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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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 국가에서 공인한 36사(寺) 가운데 하나로, 경기도 양주감악산에 있던 절.

개설

신암사(神巖寺)는 세종대 36사 정비 당시 선교양종의 교종 18개 사찰에 포함되었다. 창건 연혁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조선 태조대에 중창되었고 조선후기까지 사찰이 유지되었지만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변천

신암사의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조선초에 태조에 의해 매우 중시된 사찰이었다. 1400년(정종 2) 8월 태상왕이던 태조가 몰래 신암사에 행차하자 세자가 찾아가 환궁을 청하였고 태조는 신암사의 중창을 명하였다(『정종실록』 2년 8월 21일). 이어 10월에는 태조가 세자로 책봉되었다가 죽은 이방석(李芳碩) 등을 위해 신암사에서 큰 불사를 베풀었다(『정종실록』 2년 10월 15일). 태종 초까지도 태조는 덕수궁으로 이어하기 전까지 신암사에 자주 머물렀고 생일을 맞아 태종에게 명하여 신암사와 양주회암사(檜巖寺)의 토지를 돌려주게 하였다(『태종실록』 3년 10월 11일).

1424년(세종 6) 세종은 기존의 7개 종단을 선교 양종으로 나누고 각각 18개씩 36개 사찰만 공인하였는데, 이때 신암사는 교종 18사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신암사에는 원래 소유하던 토지 60결에 90결이 추가 지급되어 모두 150결을 확보하게 되었으며 거주하는 승려는 70명으로 정해졌다(『세종실록』 6년 4월 5일). 『세종실록』「지리지」 개성 항목에서 성의 정동쪽에 신암사가 위치하며 교종 소속으로 전지 150결을 내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후 신암사에 대한 기사는 보이지 않지만 1888년 일본군이 편찬한 『조선지지략(朝鮮地誌略)』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조선후기에도 존속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는 절터만 남아 있다.

참고문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조선지지략(朝鮮地誌略)』
  • 권상로, 『한국사찰전서』,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 이능화, 『조선불교통사』, 신문관, 1918.
  • 高橋亨, 『李朝佛敎』, 寶文館, 1929.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