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사(居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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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하지 않고 불교에 귀의한 남자, 혹은 불교를 믿는 남자 신도.

개설

거사(居士)는 원래 인도에서 불교를 믿는 남자 재산가(財産家)를 의미했으나 점차 그 의미가 확장되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 재가자를 통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전국을 떠돌면서 유랑 생활을 하는 무리를 거사라 부르기도 했다.

연원

거사는 산스크리트어 ‘그리하파티(gṛhapati)’에서 유래된 말로, 한자로는 가라월(迦羅越)로 음역하거나 장자(長子), 재가(在家), 가주(家主)로 의역한다. 인도에서는 재력 있는 자산가로 불교를 믿는 남자 신도를 가리켰으나, 점차 4부 대중 가운데 남자 신도인 우바새를 의미하게 되었고, 법명(法名) 뒤에 붙이는 경칭이 되었다. 대승불교가 발전하면서 거사는 정식으로 출가하지 않고 속가(俗家)에 머물면서 불교 수행에 정진하는 재가 수행자를 뜻하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거사가 재가(在家)의 다른 명칭으로 쓰였고, 처사(處士)와 같은 의미로 학덕이 높은 사람을 존칭하는 표현이기도 했다. 거사는 점차 남자만이 아닌 불교에 깊은 이해를 가지거나 혹은 재물을 많이 보시한 남녀 모두를 일컫는 용어로 확장되었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속가에 있으면서 불교에 귀의한 남자, 즉 우바새를 가리켰다. 더불어 학식과 도덕이 높으면서 벼슬하지 않은 사람을 지칭하거나 승려의 별호인 당호(堂號)나 법명 아래에 붙이는 칭호로도 쓰였다.

변천

조선시대에 거사는 반승반속(半僧半俗)의 성격을 갖고, 호적에서 빠진 채 군역과 부역 등의 신역(身役)을 지지 않으며, 걸식과 행상, 점술, 기도, 연극, 매춘 등으로 살아가면서 유랑하는 무리를 가리켰다. 남녀를 구분하여 남자를 거사, 여자를 사당(祠堂)이라고 했다. 이들은 전국에 흩어져 유랑 생활을 하였지만 대개 중앙의 행정이 적게 미치는 곳, 절이 있는 산 아래, 상업이 발달한 곳, 천민이 많이 사는 곳에 모여 살았다고 한다.

18세기 이후 승려에게 부과하는 국역이 강화되자 환속한 승려들이 거사 집단에 대거 투신하면서 그 무리가 급증하였고 각종 변란과 역모에 가담하는 등 심각한 사회 문제를 일으켰다(『정조실록』 10년 2월 22일). 거사 무리 중 일부는 유랑예인(流浪藝人)으로 집단화 하여 사당패, 남사당패 등으로 불리며 활동하는가 하면, 도적 집단의 일원이 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변주승, 「조선후기 유민 생존방식의 일면 –승려, 居士, 名火賊 집단을 중심으로-」, 『전주사학』9, 전주대역사문화연구소, 2004.
  • 전신재, 「居士考 –流浪藝人集團硏究序說-」, 『한국인의 생활의식과 민중예술』,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1983.
  • 최병헌, 「고려중기 이자현의 선과 거사불교의 성격」, 『김철준박사 화갑기념사학논총』, 지식산업사, 1983.
  • 홍법원 편집부, 『불교학대사전』, 홍법원,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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