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병정근(救病精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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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병환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하며 부처의 명호를 염송하는 불교의 기도 의식.

개설

구병정근(救病精勤)은 일반적인 약과 치료로 질병을 고치지 못할 때, 종교적인 힘에 의지하기 위해 온 정성을 다해 부처의 명호(名號)를 염송하며 기도하는 의식을 말한다. 고려시대에는 왕실에 환자가 생기면 소재도량[消災道場], 반야도량[般若道場], 마리지천도량[摩利支天道場], 약사도량[藥師道場], 연생경도량[延生經道場] 등을 열어 구병정근을 행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왕의 성향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구병정근이 시행되었다. 태조 연간에는 승려를 동원해 기도를 하고 승려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반승(飯僧) 의식을 행하였고, 태종대에는 약사정근(藥師精勤), 연명도량[延命道場], 수륙재(水陸齋), 구병정근 등을 주로 시행하였으며 도교의 초제(醮祭)를 베풀기도 하였다. 세종대에는 관음정근(觀音精勤), 나한재(羅漢齋), 수륙재, 보공재(報供齋) 등을 설행하였고, 문종 및 세조 연간에는 공작재(孔雀齋)를 행하기도 하였다.

종류와 설행

(1) 고대~고려시대

고대 사회는 무(巫)의 종교적인 체험을 기반으로 한 무교(巫敎) 사회였고, 무의 핵심적인 기능 가운데 하나가 구병(救病)이었다. 그에 따라 불교가 우리나라에 토착화하는 과정에서도 치병(治病)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일례로,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한 고구려 승려 아도(我道)는 성국공주(成國公主)의 병을 고쳐 준 것을 계기로 천경림(天鏡林)에 절을 짓고 불법을 펼 수 있었다고 전한다. 특히 신라하대부터 발전한 밀교는 질병 구제에 큰 관심을 가졌는데, 대승불교의 그 어떤 유파보다도 병을 구제하고 액난을 막는 데 적극적인 교리를 갖고 있었다. 천재지변을 없애고 복을 빌기 위한 밀교 의식인 소재도량은 『불설치성광대위덕소재길상다라니경』 또는 그 경전 안에 포함된 다라니를 염송함으로써 병을 고치려는 의식이었으며, 반야도량·마리지천도량 등 여타 도량도 각각 의지하는 경전이나 다라니를 3일 또는 5일간 독송하는 의식이었다. 약사도량은 『약사여래본원경』을 읽으며 각종 재액이 없어지기를 기도하는 법회 의식이었다.

약사여래는 일체 중생을 구원하려는 12가지 서원(誓願)으로 유명한데, 그 가운데 여섯 번째 원은 중생들의 몸이 성하지 않아 육근이 갖추어지지 않았거나 그 모습이 흉하고 어리석으며, 장님·귀머거리 등 온갖 병으로 괴로움을 겪더라도 약사여래의 이름을 들으면 온몸이 성하게 되고 모든 질병과 병고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발원이다. 그래서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은 지극한 마음으로 약사여래의 이름을 부르면 병이 낫는다고 믿어 왔다.

(2) 조선시대

조선 태종대에는 『연명지장경』을 외우며 수명장수를 비는 연수도량, 약사여래의 명호를 외우는 약사정근, 수륙재 등의 구병정근이 널리 행해졌다. 1408년(태종 8)에는 태조를 위한 약사정근에 승려 100명이 동원되었다(『태종실록』 8년 1월 28일). 또 1413년(태종 13)에는 태종비 원경왕후의 구병을 위해 약사정근과 동시에 21명의 경사(經師)가 동원된 구병정근이 설행되었다. 이때 태종과 세자를 비롯한 왕족들이 연비(燃臂) 의식에 동참하였으며, 승려들은 머리를 태우는 연정(燃頂) 의식을 행하였다(『태종실록』 13년 5월 6일).

세종대에는 구병정근으로 약사정근과 관음정근이 주로 설행되었다. 그 뒤 문종과 세조 연간에는 『불모대공작명왕화상단장의궤』에 근거해 공작재를 구병정근으로 설행하였다. 『불모대공작명왕경』에 따르면, 전쟁·굶주림·가뭄·질병 등 404가지 병환이 있는 모든 중생을 위해, 법식에 의거하여 경전을 전독하면 재난이 다 없어진다고 한다.

한편 조선전기에는 민간의 전염병 구제를 위해 구병정근 의식으로 국행수륙재를 개설하기도 하였다. 수륙재는 원래 제사를 지내 줄 후손이 없는 고혼(孤魂)들을 대상으로 하는 불교식 영혼 천도 의식이지만, 때때로 구병을 위한 의식으로 치러지기도 하였다. 문종 때는 경기도에서 구병을 목적으로 시행하였으며(『문종실록』 2년 3월 30일), 성종 때는 황해도에서 악질이 창궐하자 성불암에서 수륙재를 설행하였다(『성종실록』 2년 11월 8일). 그러나 국행 구병정근과 같은 불사(佛事)는 1474년(성종 5) 성종의 비 공혜왕후의 환후(患候)를 계기로 완전히 폐지되었다.

절차 및 내용

정근을 하거나 경전 또는 다라니를 외울 때는, 당일 진행하는 의식에 모시는 불보살의 명호를 염송하고 청한다. 다음으로 법회를 열게 된 연유를 아뢰는 소를 읽는다. 소청이 끝나면 자리에 앉는다. 그 뒤 공양 의식을 행한 뒤 풍송(諷誦) 의식을 거행하는데, 이때부터 다라니를 염송하거나 정근을 행한다. 정근이나 독경이 끝나면 병의 소멸을 비는 것으로 끝맺는다. 왕실에서 정근 의식이 베풀어지면 승려들을 초청해 불보살의 명호를 칭명하였는데, 조선 태조 때는 승려 50명을, 태종 때는 100명을 동원하여 정근하였다. 또 태종 때는 『약사경』을 읽는 경사(經師) 21명을 동원하였다(『태종실록』 13년 5월 6일).

참고문헌

  • 『삼국유사(三國遺事)』
  • 『고려사(高麗史)』
  • 『불설약사여래본원경(佛說藥師如來本願經)』,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脩大藏經) 14.
  • 『불모대공작명왕경(佛母大孔雀明王經)』,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脩大藏經) 19.
  • 김용조, 「조선전기의 국행기양불사연구」,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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