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장사(金藏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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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대 88개 자복사 가운데 하나로, 전라남도 장흥군용두산에 있었던 절.

개설

금장사(金藏寺)는 전라남도 장흥군에 있었던 절로 991년(고려 성종 10) 현탄(玄坦)이 창건했다. 1307년 왕사 정오(丁午)가 하산소(下山所)로 삼으며 크게 중창하고 1310년(고려 충선왕 2) 굉지가 낙성식을 거행하는 등 고려후기 개경의 국청사와 함께 대표적인 천태종 사찰이었다. 조선 태종 때 화엄종 소속의 자복사찰(資福寺刹)로 지정되었다. 이후 절 연혁은 전하지 않아 폐사된 시기도 알 수 없다. 현재 금장사지(金藏寺址)는 장흥군 부산면 금자리에 위치해 있다.

내용 및 변천

(1) 창건

고려초인 991년(고려 성종 10) 현탄(玄坦)이 창건하였다. 이산(李㦃)의 「용두산금장사금당주미륵삼존개금기(龍頭山金藏寺金堂主彌勒三尊改金記)」에 의하면 명진홍효(明眞弘曉) 대사 현탄이 금장사의 금당을 신축하고 미륵삼존불(彌勒三尊佛)을 봉안하였다고 했다. 창건된 이후 절의 연혁은 전하지 않고, 보조지눌(普照知訥)이 금장사의 미륵삼존불이 퇴색한 것을 보고 보수할 뜻을 세웠지만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1307년(고려 충렬왕 33) 묘련사(妙蓮寺)의 제4세 주법이었던 무외정오(無畏丁午)가 왕사(王師)에 책봉되어 하산소(下山所)로 삼으면서 천태종(天台宗)의 사찰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다. 정오는 금당을 개조하며 미륵삼존상의 개금(改金)에 착수하였고, 이어서 제자 굉지(宏之)가 절의 중창 불사를 지속하여 1310년(고려 충선왕 2) 2월에 낙성식을 가졌다. 굉지는 스승 정오로부터 백은(白銀) 16근과 자금(紫金) 5냥을 받아 삼존상의 개금을 마쳤다고 한다. 낙성식 때는 점안법회(點眼法會)를 거행하였고 백련결사가 이루어지던 탐진(耽津, 현 강진) 만덕사(萬德寺)의 승려들을 초빙하였다. 당시 고려의 천태종은 지방 사찰인 장흥의 금장사와 강진의 만덕사, 그리고 개경의 국청사(國淸寺)를 중심으로 교세를 크게 신장시켜 갔다.

(2) 조선시대

조선시대에 들어와 1407년(태종 7) 12월 전라도 장흥(長興) 금장사는 화엄종의 자복사찰(資福寺刹)로 지정되었다(『태종실록』 7년 12월 2일). 태종대에 조계종(曹溪宗), 총지종(摠持宗), 천태소자종(天台疏字宗), 천태법사종(天台法事宗), 화엄종(華嚴宗), 도문종(道門宗), 자은종(慈恩宗), 중도종(中道宗), 신인종(神印宗), 남산종(南山宗), 시흥종(始興宗) 등 11개(혹은 12개)의 종파가 조계종(曹溪宗), 천태종(天台宗), 화엄종(華嚴宗), 자은종(慈恩宗), 중신종(中神宗), 총남종(摠南宗), 시흥종(始興宗) 등 7개 종파로 정리되었는데, 장흥 금장사는 화엄종에 소속된 자복사찰이었다. 고려시대에 천태종의 중심 사찰이었던 금장사가 조선시대에 들어와 화엄종 사찰로 바뀐 것으로 볼 때, 절에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그 연유는 알 수 없다. 이후 절의 연혁은 전하지 않아 폐사된 시기도 알 수 없다.

(3) 현대

현재는 전라남도 장흥군 부산면 금자리에 폐사된 절터만이 전한다. 금장사지에 대한 특별한 발굴 조사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참고문헌

  • 『동문선(東文選)』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윤기엽, 「원간섭기 천태종사원의 흥성과 불교계 동향」, 『한국불교학』37,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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