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갑사(道岬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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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대 88개 자복사 가운데 하나로, 전라남도 영암군월출산에 있는 절.

개설

도갑사(道岬寺)는 880년(신라 헌강왕 6) 도선(道詵) 국사(國師)가 문수사(文殊寺)의 절터에 창건했다고 전한다. 조선 태종 때 조계종의 자복사찰(資福寺刹)로 지정되었고, 세조 때 수미(守眉)왕사(王師)가 국왕의 후원을 받아 크게 중창했다. 조선후기에도 여러 차례 중수를 하며 대사찰의 면모를 유지하였지만,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며 사세가 기울어졌다. 1981년부터 많은 전각을 신축하면서 옛 가람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내용 및 변천

(1) 창건

원래 도갑사는 문수사(文殊寺)라는 절이 있었던 곳인데, 영암에서 태어난 도선 국사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었고, 그가 만년에 문수사 절터에 돌아와 도갑사를 세웠다고 한다. 도갑사의 창건 설화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도선의 어머니 최씨가 빨래를 하다가 물 위에 떠내려 오는 참외를 먹고 도선을 잉태하여 낳았으나 아이를 숲속에 버렸다. 그런데 비둘기들이 날아와 아이를 날개로 감싸고 먹이를 물어다 먹여 길렀다. 최씨 여인은 이것을 이상히 여겨 도선을 문수사 주지에 맡겨 기르도록 했다. 이후 도선이 장성하여 중국에 가서 풍수지리를 익혀 왔고 신라에 귀국한 후 행주(行舟) 형국임을 알고 배의 수미를 진압하기 위해서 절을 짓고 탑을 설립하게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성장한 문수사 절터에 도갑사를 창건했다는 것이다.

고려시대의 도갑사에 대한 연혁은 자료 유실로 알려진 것이 없다.

(2) 조선전기

조선시대에 들어와 1407년(태종 7) 12월 영암 도갑사가 조계종의 자복사찰로 지정되었다(『태종실록』 7년 12월 2일). 당시 조선시대의 불교 종파는 이전 11개(혹은 12개)에서 조계종(曹溪宗), 천태종(天台宗), 화엄종(華嚴宗), 자은종(慈恩宗), 중신종(中神宗), 총남종(摠南宗), 시흥종(始興宗) 등 7개 종파로 정리되었던 것인데, 영암 도갑사는 조계종에 소속된 자복사찰이었다. 도갑사가 신라말에 창건된 이후 고려시대에는 알려진 내용이 없지만, 조선초까지도 지방의 명찰(名刹)이었음을 알 수 있다.

1456년(세조 2) 수미(守眉)가 황폐화된 절을 크게 중창하였다. 수미는 영암 출신의 고승으로, 13세에 도갑사에서 출가하여 63세에 입적했다. 세조로부터 각별한 존경을 받아 왕사(王師)에 책봉되었고 묘각(妙覺)이라는 호를 받았다. 도갑사의 중창도 세조의 시주를 받아 이루어진 불사였다(『세조실록』 10년 4월 13일). 당시 도갑사는 왕실의 지원을 받아 966칸에 달하는 당우와 전각이 세워지고, 부속 암자도 상동암, 하동암, 남암, 서부도암, 동부도암, 미륵암, 비전암, 봉선암, 대적암, 상견암, 중견암, 하견암 등 12개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3) 조선후기

광해군 때 전각이 중수되었고 이 무렵 상주 대중이 730명에 이르는 대사찰이었다고 한다. 1665년(효종 6) 『법화경』 목판본을 간행하였고, 1667년(숙종 3)에 절 입구에 당간지주를 세웠으며, 1682년(숙종 8)에 대형 석조(石槽)를 만들었다. 지금도 대웅전 뒤 1,000여 평의 빈터에는 주춧돌이 선명하게 남아 있고, 앞뜰의 석조는 크기가 5미터에 달해 당시 도갑사의 사세를 전해 주고 있다. 1776년(영조 2)에 다시 절을 중수했다. 18세기에 연담유일(蓮潭有一)이 도갑사에 머물며 불교사전인 『석전류해(釋典類解)』를 편찬하였다.

(4) 근현대

19세기 이후 도갑사의 연혁은 알려진 것이 없고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많은 문화재가 소실되며 사세(寺勢)도 기울어졌다. 더욱이 1977년에 발생한 대화재로 명부전과 해탈문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어 절의 옛 모습을 찾기 어려워졌다. 1981년 대웅보전의 복원을 시작으로 국사전, 명부전 등을 새로 지으면서 차츰 옛 가람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문화재

영암도갑사해탈문(靈巖道岬寺解脫門, 국보 제50호)은 앞면 3칸, 옆면 2칸 크기로 절의 입구에 있다. 도갑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1473년(성종 4)에 건립된 것으로 밝혀졌다.

도갑사5층석탑(道岬寺五層石塔, 보물 제1433호)은 고려 때 조성된 것으로 조각의 형태가 복잡하지 않고 선이 매우 단조로운 것이 특징이다. 영암도갑사석조여래좌상(靈巖道岬寺石造如來坐像, 보물 제89호)은 고려시대의 석불로, 높이 3미터에 이르는 항마촉지인을 한 불상이다. 영암도갑사목조문수·보현동자상(靈巖道岬寺木造文殊·普賢童子像, 보물 제1134호)은 해탈문 안에 있는 목조 동자상으로 해탈문과 함께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영암도갑사도선수미비(靈巖道岬寺道詵守眉碑, 보물 제1395호)는 창건주인 도선 국사와 중창자인 수미 왕사를 추모하는 비로, 1653년(효종 4)에 건립되었다. 특이하게 하나의 비에 두 승려의 사실을 함께 수록하였는데, 3인의 찬자가 도선과 수미에 대한 내용을 거듭 기록하였다. 또한 비 건립에 18년이 소요된 사실도 적혀 있다.

이외에도 도선국사진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76호), 수미왕사진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77호), 수미왕사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52호) 등이 있다.

참고문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권상로, 『한국사찰전서』,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