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의사(曉義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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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의 후궁 숙원김씨의 원당으로, 부산 동래금정산에 있던 절.

개설

효의사(曉義寺)는 부산 동래(東萊)금정산(金井山)에 있던 절이다. 태조이성계의 후궁이었던 숙원김씨(淑媛金氏)의 명복을 빌기 위한 원찰(願刹)이었다. 명종대에는 이 절의 주지가 왕의 신임을 믿고 지역에 폐단을 일으켜, 지방 수령들이 조사하여 처벌한 바 있다.

내용 및 특징

효의사는 의상 대사가 금정산의 계명봉(鷄鳴峯) 서쪽 고개에서 절터를 찾던 중 한 밤중에 난데없이 닭이 울었으므로 그곳에 절을 지었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수록된 것으로 보아 조선전기까지만 해도 범어사와 함께 금정산에 있었다.

조선시대 명종대에는 이 절의 주지가 불법으로 세금을 거두는 물의를 일으켜 처벌을 받은 일이 있었다. 예컨대 1553년(명종 8) 사간원에서 효의사의 주지인 원감(圓鑑)의 비행을 고발하는 상소가 올라왔다. 원감이라는 승려가 범굴사(梵窟寺)의 수행승을 관리 감독하는 지음(持音)의 소임을 맡고 있을 때, 왕이 효의사는 김숙원(金淑媛)의 원찰(願刹)인데 원감이 그 절의 주지로 적임자라고 하면서 특별히 효의사의 주지로 임명하였다. 김숙원의 본명은 김귀비(金貴非)이며, 숙원은 왕의 후궁에게 내린 작호(爵號)로 종4품 내명부(內命婦)의 위호(位號)이다. 원감은 자신에 대한 왕의 신임을 이용하여 공공연히 지역의 수령이나 역참(驛站)을 관장하던 찰방(察訪)이 있는 곳에 가서 세금이나 물품 따위를 내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이에 사간원에서는 왕의 신임을 사칭하여 폐단을 일으킨 죄를 끝까지 조사하여 죄를 주게 하라고 아뢰었다.

변천

효의사는 명종대까지 기록에 명확히 보이지만, 임진왜란 이후인 조선후기에는 『영남읍지(嶺南邑誌)』나 『여지도서(輿地圖書)』와 같은 지리지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폐사(廢寺)된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영남읍지(嶺南邑誌)』
  • 『여지도서(輿地圖書)』
  • 권상로, 『한국사찰전서』,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 이능화, 『조선불교통사』, 신문관, 1918.
  • 이정, 『한국불교사찰사전』, 불교시대사, 1996.
  • 한우근, 『유교정치와 불교』, 일조각,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