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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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에 전국의 승군을 통솔한 직책.

개설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은 임진왜란을 계기로 생겨났다. 전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휴정(休靜)을 팔도십육종선교도총섭(八道十六宗禪敎都摠攝)으로 임명하고, 전국의 승군(僧軍)을 지휘해 왜적의 침입을 막게 하였다. 팔도십육종(八道十六宗)이란 도총섭 휘하에 각 도마다 2명씩 총 16명의 총섭을 둔 까닭에 붙은 명칭이다.

휴정의 뒤를 이어 팔도도총섭이 된 승려는 유정(惟政)·각성(覺性)·성능(聖能)·처능(處能) 등이었다. 유정은 임진왜란 당시에 스승 휴정의 격문을 받고 의승병을 모아 순안으로 가 휴정과 합류하였다. 그곳에서 의승도대장(義僧都大將)이 되었으며, 의승병 2,000명을 이끌고 평양성을 탈환하는 등 용맹을 떨쳤다. 또 네 차례에 걸쳐 적진으로 가서 회담을 하였으며, 전국의 여러 성을 쌓고 방비하는 등의 활약을 하였다. 각성과 성능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 각각 북한산성과 남한산성을 쌓고 방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와 같이 팔도도총섭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외적을 물리치거나 축성 작업을 시행할 필요가 있을 때 조정에서 임명하였다.

담당 직무

1624년(인조 2)에는 각성을 팔도도총섭으로 임명하고, 전국의 승군을 불러 모아 남한산성을 축성하도록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이때 승군의 제도가 크게 갖추어졌다고 하는데(『정조실록』 3년 8월 3일), 이는 임진왜란 와중에 필요에 따라 마련된 승군 제도가 남한산성을 쌓기 시작하면서 조직적으로 정비되었다는 의미이다. 또한 산성 내 승군의 편제 및 주둔지의 설치와 정비 역시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남한산성을 쌓을 때는 전라도·경상도·충청도 등 삼남 지방과 영동 지방의 승려가 동원되었다. 성을 쌓는 작업을 마친 뒤에는 개원사(開元寺) 등 7개 사찰을 창건하였으며, 망월사(望月寺)·옥정사(玉井寺)를 포함한 9개 사찰을 주둔지로 삼아 각각 화약과 무기를 비치하도록 하였다. 산성 내의 승군은 승군총섭 1명, 승중군(僧中軍) 1명, 교련관(敎鍊官) 1명, 초관(哨官) 3명, 산성에 거주하는 승려 138명, 그리고 전국에서 동원된 승려 356명으로 편제하였다. 이 가운데 총섭은 팔도도총섭이 남한산성의 승군대장을 겸하였다. 특히 팔도도총섭은 함경도와 평안도를 제외한 6개의 도에서 동원된 승려를 통해서 그 소속 사찰에까지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북한산성 역시 승군을 동원하여 쌓았는데, 공사를 담당한 승려 성능이 팔도도총섭으로서 북한산성의 승군대장을 겸하였다. 그 역시 스승이자 남한산성의 총섭이었던 각성과 함께 전국의 사찰과 승려를 장악하였다.

한편 팔도도총섭이었던 성능은 30년 동안 도총섭의 소임을 맡아보다가 제자인 서윤(瑞胤)에게 직위를 인계하고 화엄사로 돌아갔다. 각성 역시 그의 문인(門人)인 회은(悔隱)에게 그 소임을 물려주었다. 이와 같이 초기에는 스승이 제자에게 물려주는 형식이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산성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승려들에게 인계되는 방식으로 변해 갔다.

참고문헌

  • 『남한지(南漢誌)』
  • 『북한지(北漢誌)』
  • 『여지도서(輿地圖書)』
  • 이능화, 『조선불교통사』, 신문관, 1918.
  • 김갑주, 「남북한산성 의승방번전의 종합적 고찰」, 『불교학보』25,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1988.
  • 김영태, 「조선시대의 승장에 대하여」, 『불교어문논집』2, 불교어문학회, 1997.
  • 여은경, 「조선후기 산성의 승군총섭」, 『대구사학』32, 대구사학회, 1987.
  • 이재창, 「조선조 사회에 있어서의 불교교단」, 『한국사학』7,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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