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성원스님(性源, 1918生, 비구니)

biguni
이병두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11월 23일 (수) 15:11 판 (다른 비구니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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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성원(性源)스님은 백장청규의 '일일부작(一日不作) 일일불식(一日不食)'을 생활신조로 삼고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였으며, 기도정진으로 고난 질병을 극복하셨으며, 특히 국일암 보수와 중창불사로 가람을 정비하신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918 경남 마산 출생
1950 해인사 약수암에서 오전(悟田)스님을 은사로 출가
1951 인곡(麟谷) 창수(昌洙)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60 해인사 국일암 주지, 국일암 가람 보수와 중창 불사
1961 통도사에서 자운(慈雲)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1980 국일암 앞 요사채 불사
1983~1993 진주 월명암중창 불사
1984 국일암 삼성각 불사
1993 국일암 요사채 불사
1993~2004 국일암 주석
문중 청해(靑海)문중
수계제자 법경(法炅)·지행(智行)·도공(道空)·유찬·각명·진조(眞照)·지광(智光)·지은(智恩)·명운(明雲)·명국·명법

활동 및 공헌

출가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 뜨란출판사, 2007, pp. 128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 뜨란출판사, 2007, pp. 129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 뜨란출판사, 2007, pp. 130

성원(性源)스님은 1918년 12월 15일 경남 마산시 상남동에서 아버지 신평균의 1남 3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본관은 평산이고, 이름은 신말연이다. 마산 성주사에서 성철 큰스님의 법문을 듣고 감화를 받아 1950년 해인사 약수암으로 출가를 하였으며, 평생 큰스님을 부처님처럼 공경하고 공부의 의지처로 삼고 살아왔다.

수계

모든 출가 수행자가 그 신심과 수행력을 인정할 정도로 성원스님은 열심히 정진해왔다. 사제인 장일스님과 함께 남해 보리암 앞에서 장좌 100일 기도를 하며 힘을 얻기도 하였다.

스님은 6·25전쟁 전에 출가를 하였지만 계는 늦게 받았다고 한다. 출가 첫 날에는 도량 청소부터 말끔히 하였다. 워낙 알뜰하게 일을 잘하는 스님인지라 아침이면 불씨도 자신의 것을 쓰지 않고 남에게 빌려서 밥을 하였다. 오후에는 밭에 가서 나물을 뜯었고, 깜깜한 밤이 되면 산에 가서 도토리를 주웠다. 먹을 것이 변변찮고 어려운 그 시절에 도토리로 묵을 만들어 먹기 위해서였다. 어떤 때는 하도 배가 고파서 덜 익어서 파란 도토리를 갈아서 죽을 끓여 먹기도 했다.

스님은 요즘 사람들이 건강하지 못한 것은 신심이 없어서라고 생각한다. 옛날에는 비록 배는 고팠지만 지극한 신심으로 지금보다 건강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였기 때문이다. 성원스님은 1950년 이전에는 약수암에서 살았고, 정화 전에는 진주 가는 길목에 있는 월명암에서 대중을 모아 선방을 하기도 하였다.

스님은 1951년 34세에 인곡선사에게 사미니계를 수지하였고, 1961년 44세에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자운율사로부터 비구니계를 수지하였다. 옛날에는 큰 행사가 있을 때 계를 한꺼번에 수계하였는데, 그때 스님은 상좌와 함께 계를 받았다고 한다. 스님은 이 일을 두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하는데, '계를 받은 날이 상좌와 같으니 서로 도반인 셈' 이라는 것이다.

국일암과 진주 월명암 불사

처음 석남사에서 한 철을 나고, 진주 월명암에서는 대중들과 함께 하였다.

그 당시에는 정화된 곳이 석남사와 진주 월명암 두 군데 뿐이었다. 석남사 문중들과 같이 진주 월명암에서 정화 불사 하고 내려와서 살다가 영월스님이 국일암을 비워주어서 스님이 주지를 맡았다.

그런데 국일암은 도량이 세서 지내기가 몹시 힘들었다고 한다. 대중이 잘못 살면 팔다리가 부러지는 일도 발생하였는데, 아무나 살 수 있는 도량이 아니었던 것이다.

스님은 국일암 불사를 하며 여러 채의 건물을 지었고, 탁발을 해서 땅을 매입하여 진주 월명암을 새로 중건하였다. 탁발을 해서 불사를 하다 보니 힘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머리에 바람이 들어 겨울은 물론 한 여름에도 털모자를 쓰고 다니기도 했다.

성원스님은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에 나오는 ‘배슬(拜膝)이 여빙(如氷)이라도 무연화심(無戀火心)하며, 아장(餓腸)이 여절(如切)이라도 무구식염(無求食念)이니라.’ 라는 글귀를 염송하면서 무릎 연골이 다 닳을 정도로 기도 정진하였다.

10여 년에 걸쳐 어렵게 불사를 하고 국일암 상좌들이 합심하여 지은 진주 월명암을 성원스님은 공부하는 스님에게 내어 드렸다. 그 후 10년 만에 다시 진주 월명암으로 돌아와 보니 그 곳에서 공부하던 학인스님이 절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서 도량정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이에 스님은 마지막 불사로 생각하고, 산에 가서 나무에 살고 있는 벌레를 다 잡아낸 후에 목재로 사용했다. 다리가 아프고 몸도 성치 않았지만 진주 월명암을 위해 여름 내내 불사를 하였다.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 나날이었으나 부처님의 은혜를 갚기 위해 불사를 계속했다고 한다.

기도 정진으로 고난 극복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성원스님으로부터 진주 월명암을 넘겨받았던 스님이 자신의 임의대로 상가를 다른 사람에게 주는 일이 발생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예전에는 땅을 구두(口頭)로 사고팔았는데, 그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측량이 잘못된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법당 쪽과 산 쪽의 측량을 바로잡다 보니 자연히 일이 많아졌다. 이런 잘못된 일들을 바로 잡기 위해 성원스님은 국일암에서 진주 월명암으로 거처를 옮겼다.

스님은 한때 오대산에서 만공 큰스님을 모시고 공부를 하면서 하루하루 힘있게 살았다.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기면 단식을 하면서 장좌 기도를 하여 매듭을 하나씩 풀어나갔다.

스님은 “요즘 스님들은 장시간 기도를 못하지만 예전에는 보통 2~3시간씩 신심이 날 정도로 기도를 했었습니다. 기도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습니다.”하며 후인들에게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스님은 윤필암, 다솔사, 진주 월명암, 국일암, 정취암, 극락전 등 제방 선원에서 안거를 성만하였다. 상기가 올라 남해 보리암 밑에 가서 기도를 할 때는, 먹지도 않고 잠도 안 자며 수련정진(修練精進)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정진할 힘이 없으면 쉬었다 해야 하지만 스님은 아픈 몸을 무릅쓰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끝까지 해냈다.

백장청규의 '일일부작(一日不作) 일일불식(一日不食)'을 생활신조로 삼고 있는 스님은 게으른 수행자를 보면 호되게 꾸짖는 호랑이 스님이다. 스님의 신심과 정진의 힘은 뭇사람들이 감히 따라가기가 힘들 정도이다.

간혹 상좌들이 스님의 옷이 낡아 해드리면 '옷이 작으면 작은 대로 입고,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형편에 맞춰 살아야 한다.'고 하며 도리어 혼을 냈다. 스님의 생각은 항상 바르기 때문에 상좌들은 스님의 말씀이 곧 법이라고 생각한다. 상좌들뿐만 아니라 대중들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국일암 선방 개원

성원스님은 백년암 뒤에 있는 나무들을 잘라 허물어져가는 국일암을 손수 새로 짓고 요사채 불사도 하였다. 국일암 불사가 이루어지자 큰 방에 다 앉지 못할 정도로 많은 대중들이 모여들었다. 이에 스님은 해인사에서 가장 먼저 비구니 선방을 개원하여 대중옹호에 힘썼다. 대중을 사랑하는 마음은 불보살님의 자비와도 같아 항상 손수 탁발을 해서 대중을 옹호하였다. 또 공부를 하는 중에도 비구니 선방을 개원하겠다는 대원력(大願力)을 세워 기도를 하였다.

국일암은 승병대장 국일선사를 위해 인조대왕이 희사한 절로서 지금도 국일선사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성원스님이 부임하기 전에는 비구스님의 처소였는데, 수행하기 힘들 정도로 환경이 열악하였다.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모두 성원스님의 원력 덕분이다.

병고를 물리친 기도공덕

스님은 30대 중반에 병명도 모르는 병이 든 적이 있었다. 배가 많이 나와서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상태로 고생을 하였는데, 참다못해 병원에 갔더니 일본인 의사가 일본말로 '곧 죽을 것 같으니 먹을 것이나 잘 먹으세요.' 라고 말했다. 당시 의술로는 치료할 마땅한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스님은 '어떻게 승려가 병원에서 죽을 수 있겠는가.' 하며 법당에 가서 49일 동안 장좌불와 기도를 하였다. 기도를 하는 동안 아미타불 염송을 쉬지 않고 계속하였다.

49일째 되는 날 아침이었다. 비몽사몽간에 꿈을 꾸고 일어났는데 (신기하게도 대중 15명이 모두 똑같은 꿈을 꿨다.) 갑자기 배가 아파왔다. 화장실에 갔더니 콩비지 같은 것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암덩어리 같은 게 남김없이 쏟아져 나오는 듯했다. 그러고 나자 그동안 꼼짝도 못했던 몸이 가뿐해지면서 속이 시원해졌다.

성원스님은 49일 동안 장좌불와로 신심을 내고 기도한 공덕으로 병고가 쾌차되었다고 믿고, 부처님의 가피에 보답하기 위해 월명암을 중건하였다.

고령의 65세에 10여 년에 걸쳐 월명암 불사를 한 뒤에 국일암으로 온 스님은 지장전을 비롯하여 여러 불사를 회향하였다. 성원스님이 이렇듯 꾸준히 불사를 할 수 있는 것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행하는 아미타불 염송과 경전을 독송하는 데서 오는 힘, 그리고 젊은 시절부터 끊임없이 정진 해온 힘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큰스님 시봉

성원스님은 성철 큰스님을 부처님처럼 믿고 의지하며, '큰스님 말씀은 곧 법' 이라고 생각하고 그 뜻을 따랐다. 그리고 옷과 음식, 간(소금) 없는 빈대떡을 만들어 보내기도 하고, 상좌들이 곶감을 깎아놓으면 일 년치 곶감을 미리 챙겨놓기도 하였다.

솜씨 좋은 비구니스님들께 부탁하여 큰스님의 옷을 해드리고, 아이들 속옷부터 어른들 옷까지 모두 손수 장만하였다. 외출복을 제외하고 스님이 할 수 있는 한 대중들과 큰스님의 옷을 직접 해 드릴 정도로 정성을 다하였다. 상좌들의 말에 의하면, 평소 스님은 하루에 경전 한 권을 다 읽는다고 한다. 그리고 젊은 시절에는 참선을 주로 하였는데, 지금은 아미타불 염송을 중점적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스님을 시봉하는 일이 힘들지 않도록 자신의 일을 남한테 시키는 법이 없다.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수행자인 성원스님은 세수 아흔을 목전에 둔 고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직접 빨래를 하고 밭을 매고 공양도 손수 다 하며 상좌의 시봉을 받지 않고 있다.

성원스님은 2004년 세수 87세로 국일암에서 수행 정진 중이다. 수계제자로는 법경(法炅)·지행(智行)·도공(道空)·유찬·각명·진조(眞照)·지광(智光)·지은(智恩)·명운(明雲)·명국·명법스님 등이 있다.

해인사 국일암

[국일암 전경]사진출처:인터넷 블로그https://work-study.tistory.com/31

국일암의 창건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고 다만 중건한 기록만이 있는데 부휴대사의 문하인 벽암 각성대사가 이곳에서 오래 주석하면서 인조 15년 곧 서기 1637년에 중건하였다고 전한다.

벽암스님은 일찍이 글씨와 군법에 능통한 스님으로, 조선조 인조임금 때에 남한산성을 축성한 공적으로 인조임금으로부터 원조국일대선사라는 시호를 받았는데, 국일암이라는 이름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그 뒤에 정인스님이 해방 전후에 두차례에 걸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는 부휴스님, 고한스님, 벽암스님의 부도들이 모셔져 있다.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 뜨란출판사, 2007, pp. 126~132.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285.
  • 오마이뉴스, 사명당은 알면서 벽암 각성 스님은 왜 모를까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53748 (2012년)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성원(性源)스님 본항목 성원스님(性源, 1918~) 性源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성원스님(性源,_1918生,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속성
성원(性源)스님 청해문중(靑海) ~의 일원이다
성원(性源)스님 오전(悟田)스님 ~의 수계제자이다
성원(性源)스님 합천 해인사 약수암 ~에서 출가하다
성원(性源)스님 인곡(麟谷)스님 ~(으)로부터 계를 받다 사미니계
성원(性源)스님 자운(慈雲)스님 ~(으)로부터 계를 받다 비구니계
성원(性源)스님 합천 해인사 국일암 ~을(를) 중창하다
성원(性源)스님 진주 월명암 ~을(를) 중창하다
성원(性源)스님 합천 해인사 국일암 ~을(를) 중창하다
성원(性源)스님 안거 ~을(를) 성만하다 문경 대승사 윤필암, 진주 월명암, 합천 해인사 국일암, 산청 정취암, 사천 다솔사 등

지도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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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정스님(觀晶, 1937년생) 법공스님(法空, 1471년생) 성연스님(性蓮, 1920년생) 장일스님(長一, 1916년생) 태경스님(泰鏡, 1930년생)
관주스님(觀柱, 1922년생) 법공스님(法空, 1937년생) 성연스님(聖蓮, 1928년생) 재근스님(在根, 1940년생) 태구스님(泰具, 1920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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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인스님(能仁, 1946년생) 법운스님(法雲, 1927년생) 성지스님(聖智, 1926년생) 정률스님(廷律, 1963년생) 현묵스님(炫默, 1932년생)
대각스님(大覺, 1914년생) 법운스님(法雲, 1937년생) 성진스님(性眞, 1896년생) 정명스님(淨明, 1940년생) 현성스님(賢星, 1945년생)
대영스님(大英, 1903년생) 법인스님(法印, 1930년생) 성총스님(聖叢, 1944년생) 정명스님(正明, 1954년생) 현수스님(賢秀, 1943년생)
대우스님(大愚, 1949년생) 법일스님(法一, 1904년생) 성타스님(性陀, 1934년생) 정목스님(正牧, 1960년생) 현정스님(玄定, 1948년생)
대은스님(大恩, 1852년생) 법전스님(法田, 1927년생) 성탄스님(性坦, 1911년생) 정묘스님(靜妙, 1941년생) 현진스님(玄眞, 1934년생)
대행스님(大行, 1926년생) 법전스님(法典, 1945년생) 성현스님(聖賢, 1927년생) 정성스님(定星, 1940년생) 현진스님(玄眞, 1937년생)
대현스님(大玄, 1916년생) 법종스님(法宗, 1945년생) 세등스님(世燈, 1926년생) 정수스님(貞守, 1939년생) 현찬스님(賢讚, 1934년생)
대현스님(大玄, 1957년생) 법진스님(法眞, 1942년생) 소림스님(昭林, 1937년생) 정수스님(淨洙, 1941년생) 현행스님(賢行, 1928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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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운스님(德雲, 1942년생) 법형스님(法衡, 1921년생) 수인스님(守仁, 1779년생) 정심스님(正心, 1925년생) 혜광스님(慧光, 1940년생)
도광스님(度光, 1952년생) 법홍스님(法弘, 1943년생) 수인스님(守仁, 1899년생) 정안스님(正眼, 1950년생) 혜근스님(慧根, 1935년생)
도문스님(道門, 1942년생) 법희스님(法喜, 1887년생) 수진스님(守珍, 1916년생) 정안스님(淨岸, 1951년생) 혜돈스님(慧頓, 1949년생)
도상스님(道常, 1937년생) 법희스님(法希, 1930년생) 수진스님(修眞, 1950년생) 정운스님(淨雲, 1954년생) 혜등스님(慧燈, 1946년생)
도성스님(道成, 1922년생) 법희스님(法熺, 1952년생) 수현스님(修賢, 1940년생) 정원스님(正圓, 1939년생) 혜명스님(慧明, 1917년생)
도연스님(道鍊, 1911년생) 보각스님(普覺, 1904년생) 수현스님(修賢, 1941년생) 정인스님(正忍, 1946년생) 혜문스님(慧門, 1930년생)
도원스님(道圓, 1904년생) 보각스님(寶覺, 1938년생) 수환스님(修還, 1950년생) 정일스님(淨日, 1934년생) 혜소스님(慧沼, 1931년생)
도준스님(道準, 1900년생) 보명스님(寶明, 1946년생) 순희스님(順姬, 1917년생) 정행스님(淨行, 1902년생) 혜안스님(慧眼, 1912년생)
도헌스님(度憲, 1939년생) 보명스님(寶明, 1954년생) 신전스님(信典, 1934년생) 정화스님(淨華, 1922년생) 혜안스님(慧眼, 1923년생)
도훈스님(道勳, 1933년생) 보문스님(普門, 1938년생) 연호스님(蓮湖, 1930년생) 정화스님(貞和, 1923년생) 혜옥스님(慧玉, 1901년생)
동근스님(東根, 1951년생) 보선스님(普善, 1946년생) 영수스님(暎修, 1941년생) 종수스님(宗秀, 1922년생) 혜운스님(慧雲, 1911년생)
동성스님(東城, 1913년생) 보영스님(普暎, 1937년생) 영운스님(靈雲, 1946년생) 종수스님(鍾修, 1922년생) 혜원스님(慧圓, 851년생)
동현스님(東玄, 1945년생) 보원스님(普願, 1944년생) 영원스님(盈圓, 1949년생) 종식스님(宗植, 1944년생) 혜은스님(慧隱, 1937년생)
동희스님(東熙, 1945년생) 보인스님(寶仁, 1924년생) 영춘스님(永春, 1894년생) 종실스님(宗實, 1951년생) 혜일스님(慧日, 1919년생)
만선스님(萬善, 1883년생) 보현스님(普賢, 1934년생) 예순스님(禮順, 1587년생) 지광스님(志光, 1934년생) 혜일스님(慧日, 1947년생)
만선스님(萬善, 1906년생) 보화스님(普和, 1933년생) 운달스님(雲達, 1942년생) 지명스님(智明, 1921년생) 혜전스님(慧田, 1929년생)
만선스님(萬善, 996년생) 본각스님(本覺, 1952년생) 원오스님(圓悟, 1933년생) 지문스님(志門, 1958년생) 혜종스님(慧宗, 1930년생)
만성스님(萬性, 1897년생) 본공스님(本空, 1907년생) 원표스님(圓表, 1951년생) 지성스님(志性, 1939년생) 혜주스님(慧珠, 1925년생)
명길스님(明吉, 1931년생)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년생) 월혜스님(月慧, 1895년생) 지순스님(芝順, 1913년생) 혜준스님(慧俊, 1935년생)
명륜스님(明倫, 1937년생) 불필스님(不必, 1937년생) 육년스님(六年, 1906년생) 지연스님(知衍, 1947년생) 혜춘스님(慧春, 1919년생)
명성스님(眀星, 1931년생) 상근스님(祥根, 1872년생) 육문스님(六文, 1946년생) 지오스님(智悟, 1955년생) 혜해스님(慧海, 1921년생)
명수스님(明洙, 1925년생) 상덕스님(常德, 1951년생) 윤호스님(輪浩, 1907년생) 지우스님(至牛, 1935년생) 회선스님(會善, 1926년생)
명심스님(明心, 1947년생) 상덕스님(常德, 1952년생) 은영스님(恩榮, 1910년생) 지원스님(知元, 1931년생) 효성스님(曉星, 1898년생)
명안스님(明岸, 1941년생) 상덕스님(尙悳, 1925년생) 응민스님(應旼, 1923년생) 지원스님(智圓, 1938년생) 효성스님(曉惺, 1927년생)
명오스님(明悟, 1916년생) 상락스님(常樂, 1928년생) 인성스님(仁成, 1901년생) 지원스님(智願, 1942년생) 효성스님(曉星, 1948년생)
명완스님(明完, 1937년생) 상륜스님(相侖, 1929년생) 인완스님(仁完, 1930년생) 지인스님(智因, 1937년생) 효천스님(曉天, 1941년생)
명주스님(明珠, 1904년생) 상원스님(相源, 1939년생) 인정스님(仁貞, 1899년생) 지행스님(智行, 1941년생) 효탄스님(曉呑, 1955년생)
명철스님(明哲, 1939년생) 상조스님(常照, 1951년생) 인허스님(印虛, 1911년생) 지향스님(智向, 1941년생) 희선스님(喜善, 1929년생)
묘각스님(妙覺, 1928년생) 상훈스님(常熏, 1944년생) 인홍스님(仁弘, 1908년생) 지현스님(智玄, 1916년생) 희원스님(喜圓, 1951년생)
묘각스님(妙覺, 1942년생) 서용스님(瑞庸, 1948년생) 인화스님(忍和, 1912년생) 지현스님(智賢, 1933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