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정묘스님(靜妙, 1941生, 비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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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정묘(靜妙)스님은 운문사에서 지광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마산 도솔암을 창건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941 출생
1947 어머니의 출가로 절에서 자람, 대구 서부국민학교 졸업
1956 경북 운문사에서 지광(智光)스님을 은사로 출가
1957 운문사에서 혜령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58 문경 김룡사에서 안거 성만
1962 운문사 강원 기신론 수료, 개심사에서 원각경, 금강경, 선가귀감 등 수료
1967 내원사 하안거 성만
1968 범어사에서 자운(慈雲)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내원사 안거 성만
1971 해인사 삼선암, 내원사, 상무주암 안거 성만, 부도암에서 100일 기도 및 내원암 정진
1976 경남 도솔암 주지 취임
1976~1977 개금불사, 전기공사, 법당(20평) 중수불사, 수각불사, 요사채(35평), 부엌방 불사(20평)
1979~1982 토지 매입(210평), 선방불사, 법당 신축 상량식 등 가람 불사
1982~1996 부처님 봉안식 및 식당 완공
2004 도솔암 정진 중
문중 삼현(三賢)문중
수행지침 태어나는 곳마다 불법 있는 곳에 수행 정진해서 부처님 되는 게 소원이다.
생활신조 시주 은혜가 무서운 줄 알고 청정하게 생활하며, 밤낮으로 자신을 살펴라.
수계제자 벽상(碧常)・지우(智牛)・지밀(至蜜)

활동 및 공헌

출가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 455
[1963. 5. 26 운문사에서]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 456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 457

정묘(靜妙)스님은 1941년 6월 27일 아버지 김무준과 어머니 함봉해(咸鳳海)(법명 봉혜(奉慧)) 사이의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본관은 선산이며, 이름은 김미자이다. 어머니가 동화사 염불암으로 출가해서 하루 만에 삭발하셨기 때문에 스님은 대구 서부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15세에 절에 와서 16세 되던 해인 1956년 1월 16일 경북 청도군 운문사에서 지광(智光)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당시 운문사는 부산 소림사 금룡 노스님께서 주지를 살고 계셨는데, 스님은 대구 시내에만 살아서 시골을 전혀 몰랐었다. 때문에 출가하러 운문사로 들어가는 길에 아이들이 흰색 윗옷에 검은 바지를 입고 지게 지고 나무하러 산으로 가는 것을 보고 마치 옛날로 돌아가는 길인 듯 착각을 했다. 그래서 운문사에 가면 옛날이야기에 등장하는 도사가 있고, 도사님께 공부를 배울 수 있겠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사미니 스님들을 보고는 극락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교육과 수행

출가한 뒤, 염불을 잘하여 사리암에서 부전을 살았으며 17세 되던 해인 1957년 운문사에서 오혜령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하였다. 다음 해에 황달병을 앓아 문경 김룡사로 가게 되었다.

정묘스님은 김룡사에서 부전을 지내면서 월내 묘관음사에 계시는 향곡 큰스님께 탄 화두로 참선을 하였다. 당시 김룡사의 주지스님은 진오(眞悟)스님이셨다. 22세 되던 해인 1962년 다시 경을 배우기 위해 운문사로 갔지만, 학비가 없어서 1년간 공양주를 살면서 공부를 하였다.

운문사는 정화중 이었다. 오혜령 스님은 강사로 계셨는데, 운문사에서 기신론까지 배우고 다시 개심사에서 『원각경』, 『금강경』, 『선가귀감』 등을 배웠다.

당시 개심사에서는 혜봉 강사스님을 모시고 40여명의 학인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스님은 개심사에서도 역시 학비가 없어서 1년간 공양주를 살아야만 했다.

스님은 1967년 내원사에서 하안거를 성만하였으며, 1968년 3월 범어사에서 보살계를 수지하고, 자운(慈雲)화상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하였다. 같은 해에 청암사에 머물면서 오후 불식에 삼칠일 지장 기도를 하며 하루 이천배 기도를 하였다.

그 뒤 정묘스님은 내원사 노전에서 기도를 하는데 ‘하늘을 덮고도 남는 복이 있어야 스님이 된다.’는 말에 복을 짓기 위해 3일 동안 하루에 한끼씩 먹고 기도를 하였다.

정묘스님은 동화사 내원암에서 장일 노스님이 계실 때 안거를 성만하였으며, 1971년 31세 때 해인사 삼선암에서 성문 노스님이 계실 때 안거를 성만하였다. 그리고 다시 양산 내원사를 거쳐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하안거를 났다.

전라도를 일주하는 만행길에 장티푸스에 걸려 고생하던 스님은 부도암에서 100일 지장기도를 한 뒤 병이 나았다. 그 뒤 “복이 없어 그런 가보다.”하며 오후 불식하며 정진을 열심히 하였다.

도솔암으로 오다

37세 되던 1976년 정묘스님은 마산시 자산동에 위치한 도솔암으로 왔다. 도솔암에서 가장 먼저 스님이 한 일은 당시 개인 사찰로 등록되어 있던 도솔암을 범어사 말사로 등록한 일이었다.

스님이 왔을 당시 도솔암 주변은 그린벨트로 묶여 있었다. 그러나 옛날 산신각 위 토담집이 낡아 말썽이 많았는데 수해로 다 쓸려가서 새로 불사를 하게 되었다. 그 뒤 스님은 인부들과 같이 선방 기와를 잇는 등 도솔암 중창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1976년 3월 개금불사를 시작으로, 1977년 전기공사(4월), 법당 중수불사(20평, 9월), 수각 불사(10월), 요사채(35평 10월), 부엌 방불사(20평, 10월)를 하였다. 다음 해인 1978년에는 전화 불사, 도량 축대 확장 공사, 토지 매입 불사(400평)을 하였고, 1979년부터 1980년까지 210평 토지 매입을 시작으로 선방, 해우소 불사를 거듭하였다.

1982년 법당 신축 상량식을 거행하고, 1985년 2월 26일에는 불상 봉안식을 거행하였다. 그 뒤 1996년부터 2년여에 걸쳐 현재의 식당을 완공하였다.

도솔암 선방에서 처음으로 안거를 난 스님들은 경주 흥륜사 혜해 노스님, 묘법 노스님, 묘법 노스님, 도만스님 등 이다. 2004년 정묘스님은 도솔암에서 스님의 동생이 되시는 탄형스님과 같이 수행 정진 중이다.

수계제자로는 벽상(碧常)·지우(智牛)·지밀(至密)스님이 있다.


마산 도솔암

[마산 도솔암 전경] 사진출처:네이버 블로그https://blog.naver.com/doggy3dogg/221815482333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자산동 무학산 기슭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소속의 사찰이다.

1955년 3월에 무학산 자락 현재의 위치에서 창건된 비구니 사찰이다. 도솔암의 주지는 정묘(靜妙)이며, 신도 수는 약 500명이다. 1980년 대웅전이 중창되었고 대웅전 앞의 3층 석탑이 조성되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보림선원(菩林禪院)과 향적당(香積堂)이 있고 대웅전 뒤에는 산신각(山神閣), 대웅전 앞에는 3층 석탑과 석등이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다.

참고자료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정묘(靜妙)스님 본항목 정묘스님(靜妙, 1941~) 靜妙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정묘스님(靜妙,_1941生,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속성
정묘스님(靜妙) 삼현문중(三賢) ~의 일원이다
정묘스님(靜妙) 지광스님(智光) ~의 수계제자이다
정묘스님(靜妙) 청도 운문사 ~에서 출가하다
정묘스님(靜妙) 혜령스님 ~(으)로부터 계를 받다 사미니계
정묘스님(靜妙) 자운스님(慈雲) ~(으)로부터 계를 받다 비구니계
정묘스님(靜妙) 창원 도솔암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주지(감원)
정묘스님(靜妙) 창원 도솔암 ~을(를) 창건하다
정묘스님(靜妙) 안거 ~을(를) 성만하다 문경 김룡사, 합천 해인사 삼선암, 양산 내원사, 함양 상무주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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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 도솔암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자산동 산62-6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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