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성법스님(性法, 1929生, 비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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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성법(性法)스님은 본견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중화민국 임제종 삼장학위 취득 한 후 문화대학 동양철학과 졸업하고 일본 정토종 본진사 강원 3년 수료등 국제포교사로 세계불교도우의회, 한일 친선협회등 이사이며 망월사 복원 중창블사를 한 대한민구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929 경북 안동 출생
1953 월정사 지장암에서 본견(本堅)스님을 은사로 출가, 월정사에서 자운(慈雲)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55 범어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1958 경북 남장사 관음선원 중창
1966 건국대학교 문리과대학 동양철학과 수료
1967 중화민국 임제종 총본산 삼장학위 취득
1968 중화민국 문화대학 동양철학과 졸업, 경주 법장사 포교당 주지
1970 김천 관음사 주지
1971 일본 정토종 본진사(本眞寺) 강원 3년 수학
1972 조계종 국제포교사, 전세계평화국제회의 한국대표로 참가
1980~ 세계불교도우의회(世界佛敎徒友誼會; W.F.B) 한국연합지부 이사
1981~ 한일불교친선협회 이사
1985 중국 덕산사 비구니 총림에서 승위품(僧位品 받음
1988 망월사 경기도문화재 지정 (기념물 111호)
1992 망월사 복원 중창 불사
2000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종교사회복지' 박사학위 취득
2009 망월사 주지 사임 망월사 선원장 취임
문중 봉래(蓬萊)문중
수행지침 『법화경(法華經)』 독경(讀經)
생활신조 시간을 엄수한다.
저서 및 작품 『불설 사십이장경(四十二藏經)』 외 다수
상훈 조계종 포교대상(曹溪宗 布敎大賞)(1988)
특기 문화와 역사 연구
취미 독서
수계제자 현철(賢哲)·명안(明眼)·현각(玄覺)·정운(淨雲)·묘성(妙星)·정암(停岩)·현종(玄宗)·현원(玄圓)·현혜(玄慧)

활동 및 공헌

퇴계 이황선생의 15대 종녀

[망월사 대웅전]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p261
[망월사 전경]
사진촬영:김은희(2022년)
[망월사 사리탑]
사진촬영:김은희(2022년)

오산(五山) 성법(性法)스님은 성리학의 대가이며 문학에도 조예가 깊은 퇴계 이황 선생의 15대 종녀(宗女)로 1929년 4월 14일 경북 안동에서 아버지 이원직(李源稷)과 어머니 김무순(金戊順)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성이며, 이름은 이동영이다.

스님의 어머니에게 태기가 있을 무렵 증조부께서 꿈을 꾸셨다. 꿈 내용인 즉, 강원도 평창 최 씨네 집에서 이진사댁 손부한테 박 바가지에 곱게 싼 물건을 주기에 증조부가 받아서 스님의 어머니에게 주자 어머니가 받아 농 안에 넣었다. 나중에 열어 보니 붉은 띠로 묶은 실 꾸러미와 인삼 뿌리 같은 것이 두 개, 밤이 서너 개 들어 있었다. 이는 훗날 강원도 평창으로 출가할 스님의 인연을 미리 예시해 준 것 같다고 한다.

출가동기

어려서부터 영특함이 남달랐던 스님은 세 살 때부터 천자문 등을 익히며 한문 수업을 받고, 일제시대 때 여학교를 졸업하였다. 당시에는 여학교를 졸업하면 야전병원 간호부로 차출되기도 해서 스님은 전쟁터에 보내질까 걱정하였다. 그러던 중 한국전쟁까지 발발하자 무상함을 느낀 스님은 출가 득도할 발심을 품게 된다.

그 후 세수 25세 되던 1953년 3월 15일, 스님의 생일날 오대산 월정사 지장암에서 본견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55년 범어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 했다.

대만 유학

1966년 건국대학교 문리과대학 동양철학과를 수료하였다. 스님은 남다른 학구열로 불법 공부에 특별한 열정을 가지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였다.

그 예로 1961년 당시 우리나라와 교류가 드물었던 대만에 32세 여자의 몸으로 문공부에서 최초로 실시한 국비 유학생 선발 시험을 치른 후 허가를 받아 유학하는 기회를 얻었다.

스님이 유학을 결심하고 노력할 때만해도 주위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교육을 어느 정도 받았고, 부유한 집안 환경에서 어려운 줄 모르고 자라 낭비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중국으로 사치스런 생활을 하러 간다는 비판까지 받았다.

그렇지만 오직 한 곳을 바라보고 걸어가는 스님의 앞길을 그 어떤 장애도 막을 수는 없었다. 그저 담담히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주경야독하며 노숙과 다름없는 악처의 상황과 맞서 싸우며 수행을 거듭하여 무에서 유를 창출해냈다.


중화민국 동양철학과 졸업

그렇게 구도의 열정에 젖어 하루하루를 신심으로 보낸 스님은 1966년 38세에 중화민국 임제 총본산에서 천불대계(千佛大戒)를 수지하고, 그 이듬해 삼장학위(三藏學位)를 받았다. 세수 40세 되던 1968년 중화민국 문화대학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여전히 부족함을 느껴 1971년 43세 되던 해에 일본 정토종 본진사 비구니 강원에서 3년 동안 율문 연구를 수학하였다.

우리나라 율문은 체계적이지 못하여 모호함이 많은 것을 안타깝게 여겨 율문의 체계성 정립의 필요성을 선각(先覺)하고 율장을 공부해온 것이다. 그 선구자적인 자세를 잊지 않고 지금도 일 년에 한두 번씩 일본에 가서 대승기신론 등을 강의한다. 1972년 조계종에서 국제 포교사 자격을 취득 하고, 1981년 한일불교 친선협회 이사로 선임되었다.

WFB(세계불교도우의회) 한국대표로 참가

스님은 1981년 WFB(세계불교도우의회) 한국대표로 스리랑카 및 인도 국제회의 등에도 참가 하여 많은 활약을 하였다. 해외에 나가면 타국에 주재 중인 한국의 대사 부인들과 접촉할 기회가 많은데, 그들이 한복을 입지 않고 다른 나라의 옷을 입고 있으면 자국의 옷을 입어서 대사 부인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줄 것을 당부하기도 하였다.

인도 간디 수상으로부터 받은 부처님 천골 사리 망월사 안치

국제회의 등에 많이 참가하는 인연으로 인도의 간디 수상을 만난 일도 있다. 간디 수상은 스님을 보고 깊은 반가움을 표시하며, 자신은 힌두교인이므로 선대부터 모셔오던 부처님의 천골 사리를 스님에게 증정하겠다고 하셨다. 그리하여 스님은 간디 수상에게 증정 받은 부처님 사리를 지금의 망월사 사리탑에 모셨다.

그러나 지중하신 부처님의 사리를 모셔 와서 기존의 사리탑에 모셔 놓은 것을 내내 마음에 걸려하다가 모셔온 지 6년 만에 사리탑을 완성하여 스리랑카 대사 및 사부 대중이 모인 가운데 완공식을 가졌다.

조계종 포교대상 수상

그 뒤 수차례 대만을 왕래하며 삼장(삼장 법사)을 석 달 열흘에 걸쳐 공부하였고, 1985년 세수 57세 때에는 중국 덕산사 비구니 총림에서 '승위품(僧位品)'을 받았다(현청 대사로부터 금란가사 와 칠보 등을 받음). 이 승위품을 받으면 어느 나라에 가든지 존경의 대상이 된다고 한다. 귀국한 이후에도 국내 및 국제포교활동에 전념하는 한편 저술에 착수, 『대승기신론강화』,『선재동자 구법행각』,『화엄경요해』,『불보살의 본적』,『미래의 인생관』 등 20여종의 저서를 발간하고 불교문화대상과 1988년 조계종 포교대상을 수상했다.

망월사 불사

성법스님은 근래 고려 유적지인 남한산성을 타종교에서 매입하여 순교 성지라고 이름 붙여 놓고 학교 등을 건립하는 모습을 보며, 한 나라의 역사의 숨결이 스민 유적지를 편협한 종교관으로 묶어 그 명맥을 어지럽히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일이라고 일침을 가하였다.

스님은 또한 불사의 원력을 이룩하는 데도 막대한 노력을 쏟아 그 결실을 이뤄냈는데, 지금의 망월사(望月寺) 불사를 마무리하기까지 8년의 세월이 걸렸다.

당시 망월사는 황무지였다. 고려의 유적으로 병자호란 때 각수선사가 머문 곳이라는 기록 이외에 아무 것도 없던 곳이었다. 더구나 그 일대는 그린벨트 구역이라서 역사 환경 보존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개발이 묶여 있었기 때문에 쉽사리 불사를 시작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 없었던 스님은 3년간 '대방광불화엄경' 기도를 하며 숙원을 청했고, 기도가 끝난 후 현재의 불사를 이룩해 낼 수 있었다. 기도를 할 당시 방광을 하는 등 이적이 많았지만 외부에 알리지 않고 기도의 공덕을 기렸다.

저서

스님은 또한 당대의 선각자로서 많은 저서를 남겼다. 처녀작인 『선재동자 구법행각』을 비롯해서 『화엄경요해』 (1983). 『선재동자 구법행각』 (1983), 『불보살의 본적』 (1984)』. 『불교에서 본 미래의 인생관』 (1985). 『부처님 10대 제자』 (1986). 『목련존자와 청제부인』(1987). 『 대승기신론강화 』(1989). 『 불설42장경』 (1993). 『사천왕과 팔부신중의 연기』 (1993). 『십년설법포교집』 외 포교자료 다수 저술.

성법 스님은 일찍이 일본에서 정토종(淨土宗) 본진사(本眞寺) 비구니 강원에서 3년을 수학하고 대만 문화대학 동양철학과를 졸업, 삼장학위를 받아 한국으로 돌아와 포교현장을 돌아보고 난 직후 대만 유학시절 사제의 인연으로 가까웠던 고 양백의(楊白衣)박사가 엮은 『불・보살의 호적』을 한국의 불자들에게 소개한 적이 있었고 1984년에 한자본 『불・보살의 본적』을 발행한 바 있다.

특히 『화엄경』, 『선재동자 구법행각』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출간한 것으로, 지금은 여러 대학의 교수들이 이 책을 교재로 강의하는 등 소중한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스님은 앞으로 망월사(등록 시 명칭은 비구니 수도원임)와 중앙승가대학교가 인연을 맺어 중앙승가대학교 비구니 수도원을 이룩하고, 수행 정진의 환경에 변화를 일으키고자 하는 원대한 꿈을 갖고 있다. 그것은 그동안 스님이 해외를 두루 다녀본 결과 수행자의 사상 정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스님은 평생을 무에서 유를 창출하였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계획이다.

구순이 넘은 나이에도 비구니수도원 원장스님으로 주석하며 대중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펴고 있다.

후학들에게 ‘중이 되었으면 아집과 아만을 버리고 수행자의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당부하는 성법스님의 문하에는 현철(賢哲)·명안(明眼)·현각(玄覺)·정운(淨雲)·묘성(妙星)·정암(停岩)·현종(玄宗)·현원(玄圓)·현혜(玄慧)스님 등이 있다.


망월사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에 위치한 망월사는 장경사의 뒤쪽에 있는 9개 사찰 중 가장 오래 된 절이다.

이 사찰은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성을 정할 때 한양의 장의사를 허물고 그 불상과 금자 『화엄경』 한 벌, 금정 하나를 옮겨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옛 망월사는 일제에 의하여 모두 불에 타 소실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1990년부터 복원된 것이다. 경내에 대형 맷돌이 보존되어 있다.

성법스님이 처음 망월사에 자리잡은 것은 82년경. 고려 인조 때 적을 막기 위해 세웠던 사찰 중 하나인 망월사는 6·25 직후 일본에 의해 불타버려 흔적조차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 성법 스님은 호국승려들의 피땀과 눈물이 어린 망월사를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강한 사명감이 발동했다.

각계를 돌며 망월사 중건을 역설했다. 그로부터 4년, 성법은 1986년 불임종으로부터 망월사 옛 부지 4천평을 구입했다. 당시 이 부지는 이교도들이 기도원 신축을 위해 구입하려 했는데, 성법 스님이 나서 설득 끝에 이를 막아냈다. 그 후 망월사는 88년 경기도로부터 지방문화재 11호(유적지)로 지정받았고, 문화부로부터 전통사찰로 제정됐다. 망월사 중건을 위한 첫 삽은 89년 뜨게 됐다. 총 100억원이 소요되는 대역사를 여성 혼자 몸으로 떠받치게 되었다.

성법 스님은 같은 해 '남한지'에 의거, 동국대 문명대 교수에게 자문해 발굴 작업에 착수했다. 망월사 대웅전이 자리 잡았던 주춧돌을 비롯, 유물을 발굴한 성법 스님은 자료를 기초로 해서 망월사 복원 조감도를 작성했다.

그린벨트지역·산림보호구역 등 각종 법규로 인해 스님이 거주하는 요사채는 물론 법당까지 무허가로 고발과 철거를 수없이 당했다.

"봄·가을 1년에 두번 정도 뜯으러 왔습니다. 헐릴 때마다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성법 스님은 이에 굴하지 않고 각종 법규를 공부해 대응하면서 망월사 터를 복원하겠다는 의지를 잠시도 늦추지 않았다. 이런 스님의 원력이 뜻있는 불자에게 알려지면서 마침내 한진그룹 조중훈 회장이 14억원을 쾌척해왔고 복원공사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현재 망월사는 대웅보전과 극락보전이 고려양식으로 복원되어 조계종 비구니 수도원으로 등록, 운영되고 있으며 성법 스님이 인도 간디 총리로부터 직접 모셔온 부처님 진신사리를 안치한 13층 사리탑 등이 웅장하게 들어서 있다.

참고자료

시맨틱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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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법(性法)스님 본항목 성법스님(性法, 1929~) 性法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성법스님(性法,_1929生,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속성
성법스님(性法) 봉래문중(蓬萊) ~의 일원이다
성법스님(性法) 본견스님(本堅) ~의 수계제자이다
성법스님(性法) 월정사 남대지장암(기린선원) ~에서 출가하다
성법스님(性法) 자운스님(慈雲) ~(으)로부터 계를 받다 사미니계, 비구니계
성법스님(性法) 경기광주 망월사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주지(감원)
성법스님(性法) 경기광주 망월사 ~을(를) 중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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