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정명스님(正明, 1954生, 비구니)

bigu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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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정명(正明)스님은 불교 꽃꽂이와 불교 지화장엄 발전에 기여한 대한민국의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951 경북 문경 출생
1971 서울 금강사에서 태경스님(泰鏡)을 은사로 출가
1972 혜정(慧淨)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74 동학사승가대학 사교과 수료
1980 대한불교 조계종 서울 홍제동 백련암 주지
1984 삼선승가대학 대교과 졸업
부산 범어사에서 비구니계 수지
청소년교화연합회 여름불교학교 지도자 강습회 및 청소년지도자 연수회 수료
1985 숙진회 꽃꽂이 1급 사범과 수료
1986~1996 전국비구니회 기획국장, 사회국장
1987 수조화 아트플라워 과정 수료, 조화기능사보 국가자격증 취득
용산경찰서 경승 위촉
1988 동양꽃꽂이 1급 과정 수료
1989 대한불교 조계종 비구니꽃꽂이회 창립
1990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수료
1991 마하 만다라회 결성, 칠경화 마하만다라회 지도법사
1999 한국국제꽃기예개발협회(KIFAD)에 연화플라워연구회를 회장으로 등록
2000 새천년 연꽃등 개발, 특허
2001 중앙승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졸업
2004 제8차 세계여성불자대회 꽃꽂이 부분 참가
2011 불교지화장엄전승회 창립
2021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박사
2022 서울 응암동 법성사 주지
불교지화장엄전승회 회장
사)한국전통지화보존회 이사장
문중 계민문중(戒珉)
생활신조 창조, 근면, 성실
저서 및 작품 불교꽃꽂이 자료집 『연꽃으로 피어나라』(1993),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박사논문 〈韓國 紙花 莊嚴의 特徵과 傳承에 대한 연구〉(2021)
수계제자(『한국비구니명감』) 동현(東顯)
문중계보(『한국의 비구니문중』) 장홍(壯弘, 9)→보찬(普讚, 10)→성문(性文, 11)태경(泰鏡, 12)정명(正明, 13)

활동 및 공헌

[정명스님]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424.
[정명스님]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427.
[봉축행사]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426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429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430
[정명스님]
사진출처:주간불교 http://www.bulgyonews.co.kr/news/36767

유년기와 출가 인연

정명(正明)스님은 1954년 5월 20일 경북 문경군 문경읍 평천리에서 아버지 심소진과 어머니 채경남 의 2남 3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났다. 본관은 청송이며, 속명은 심갑식이다. 스님이 초등학교 4학년 되던 해 18년 동안 천주교 신자로 지내던 어머니가 건강이 나빠지면서 불교로 개종했고, 문경 성불암 창건 때 온 가족이 읍내에서 20 리도 넘는 길을 오가며 건축 자재를 나르는 등 불사를 도왔다.

문경 성불암의 혜륭스님과의 인연

그 인연으로 스님은 성불암의 혜륭 비구니 큰스님께 이런저런 재미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즐거운 마음에 성불암에 자주 왕래했다. 성불암에서 큰스님을 그림자처럼 졸졸 따라다니면서 참선, 기도, 울력 등을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열심히 따라했다. 당시 혜륭 큰스님은 철저한 계행과 정진으로 천일기도 동안 한 번도 문밖 출입을 하지 않고 지내셨다. 그런 큰스님을 따라 스님은 새벽 2시 반에 일어나 새벽 예불, 참선, 4분정근, 『법화경』 독송을 21일 동안 하면서 매일 염불주력을 3천 독씩하였다.

스님에게는 큰스님의 언행 하나하나가 큰 가르침이었고, 또 날마다 들려주시는 법문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큰스님과 함께 기도하고 참선하면서 부처님 법에 대한 신심이 점점 깊어졌다. 힘들면 집에 돌아왔지만 며칠 지나면 다시 절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이렇게 3년간 수행 정진하는 모습을 지켜보시며 큰스님은 출가를 권하셨지만 그럴 때마다 ‘수행이 너무 힘들어서 저는 못해요.’라며 물러섰다. 그러자 큰스님은 ‘그래, 네가 무슨 복에 중이 되겠느냐. 유발상좌나 해라.’ 하며 불교 의식을 가르쳐주고 『법화경』을 설해주셨다. 그리고 하루에 10만 독의 염불 주력을 하라고 일러주기도 하였다.

스님이 그 공덕으로 천일기도를 회향하고 집에 돌아와 서울에 사는 언니네 집에 다니러 갔을 때의 일이다. 밤이 깊어 잠자리에 누었는데 절집의 종소리며 목탁소리, 스님들의 독경소리, 산사의 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 들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아 꼬박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날 언니에게 근처에 있는 절을 물어 찾아갔다. 그곳이 금강사라는 절이었고, 나이 16세 되던 해인 1969년 가을 태경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교육

스님은 출가한 다음 해에 혜정화상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하였고, 그해 음력 4월 15일 동학사 강원에 입학하였다. 1974년 사교과를 수료한 후 서울 법성사에서 은사스님을 모시고 공부를 계속하였다. 스님은 뭔가를 창작하는 게 좋아서 꽃꽂이를 배우기도 하였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후 스님은 좀 더 폭넓은 경험을 하고 싶은 마음에 은사스님으로부터 독립하였다.

1984년 나이 31세 되던 해 홍제동에 백련암을 창건하면서 삼선승가대학교의 대교과를 졸업하였다.

포교

이후 5년간 포교에 전념하다가 1989년 음성 미타사에서 결제를 하였다. 스님은 1984년 부산 범어사 단일계단에서 비구니계를 수계하였으며, 1988년에는 홍법회, 연화합창단 등을 맡아 법회의 활성화를 위해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매주 신도를 위한 교리 강좌를 열어 『천수경』, 『반야심경』, 『금강경』, 『지장경』, 『법화경』 등을 강의하였다. 1984년 7월 11일에는 청소년교화연합회 여름 불교학교 지도자 강습회를 수료하였고, 1984년 8월 15일에는 청소년교화연합회 청소년 지도자 연수회를 수료하였다.


불교 특색의 꽃꽂이를 개척하다

[1580년 조선시대 감로탱화의 지화장엄 부분 재현 모습]
사진출처: 전통지화보존회

정명스님은 소녀시절에도 꽃을 유난히 좋아했다. 어릴 때 기억이지만 꽃만 보면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고 한다. 유난히 꽃을 좋아했던 스님은 1984년 5월 25일 제9회 숙진회 꽃 작품 전시회 출품을 시작으로 1987년 3월 30일 수조화 아트플라워 과정을 수료하였다. 같은 해 7월 21일 용산경찰서의 경승으로 위촉받은 스님은 조화기능사보 국가자격증을 취득하였고 8월에서 10월까지 일본의 불교를 시찰하였다. 이어 1988년 ’불교연화꽃꽂이회‘를 창립하면서 처음으로 작품전을 열었다. 이후에도 계속 꽃꽂이 활동에 주력하며 아트플라워 국가기능사보 자격증을 취득하였고 본격적으로 불교꽃꽂이 연구를 하게 되었다.

스님은 1988년 5월 12일부터 13일까지 리베라 호텔 백제홀에서 부처님 오신 날 봉축 겸 88올림픽 축하 불교꽃잔치를 가졌다. 이곳에서 스님은 연화 꽃꽂이회의 부회장으로 모임을 발족하였다. 이에 앞서 4월 15일에는 꽃의 날 행사를 가든 호텔에서 열어 출품작으로 아트플라워 목단 꽃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같은 해 9월 한국불교 비구니 꽃꽂이회를 창립하였는데, 지연, 상덕, 보명, 정명스님 등이 임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로부터 한 달 후인 10월 20일 스님은 숙진회에서 시행하는 동양 꽃꽂이 1급 과정을 수료하였다. 1991년 3월에는 마하만다라회를 결성하여 꽃꽂이회의 사회봉사 활동으로 불교 칠경화 헌화의식 및 예식장의 연꽃길 장식을 하였다. 스님은 지도법사로서 60여 명의 회원들과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마다 결혼식장을 찾아다니며 불교의 화혼 예식을 보급하기 위해 꽃봉사를 다녔다. 1992년 불교회관 1층에서 연화플라워회연구회 창립전을 ‘자유, 해탈, 열반의 장 ― 연꽃으로 피어나라’는 주제로 부처님의 탄생부터 열반까지의 일대기를 연꽃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그런 한편 함경북도 민속예술보존회의 제3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염불삼매놀이)에서 연출을 맡아 특별상을 받기도 하였다. 1991년 7월 22일에는 재단법인 국제문화협회의 연수교육인 데몬스트레이션 (화혼 예식 발표) 특별 과정을 밟으며 꽃꽂이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리고 네덜란드와 프랑스, 스위스에서 꽃꽂이 연수 교육을 수료하였다. 같은 해 10월 플라워 디자인 1급 사범 과정을 마친 스님은 호주에서도 꽃꽂이 연수 교육을 받았다.

1993년 불교 꽃꽂이 자료집 『연꽃으로 피어나라』의 출판기념 법회를 동숭아트센터에서 가졌다. 이때 만다라를 꽃으로 장식한 초파일 봉축 엽서와 성도재일 엽서, 생일 엽서, 결혼 엽서를 발매하였으며, 사방 2미터 크기의 연꽃을 만들어 동대문운동장 가운데 일곱 송이 백연을 놓고 사방 30미터를 연꽃으로 만다라 그림을 펼쳐 보이기도 하였다.

1995년에는 MBC 문화체육관에서 개최한 만등만화 공양대법회에 등 공양과 꽃 공양을 올리고, 육법 공양을 의식화하였다. 공양하는 사람들의 의상도 만들고 불교의 시대별 꽃 공양을 시현하여 부처님 공덕을 찬탄하자 모든 대중들이 환희심을 냈다고 한다. 그 후 불교의 크고 작은 행사에서 육법 공양 의식이 활발히 펼쳐지게 되었다.

같은 해 10월 BTN 불교TV 개국 전 시험 방송 때부터 스튜디오 장식은 물론 BTN 불교TV 방송국 곳곳에 꽃꽂이 봉사를 하였다. 스님은 권혜공, 이재인 불자와 같이 매주 월요일 새벽 4시면 꽃시장에 직접 가서 꽃을 사다가 방송국에 있는 14개의 수반을 모두 채웠다. 불교TV ‘정명스님의 향기 있는 꽃꽂이’ 프로그램을 매주 1회씩 2년 이상 진행하였다.

특히 1997년 장충체육관에서 개최된 제2회 만등만화 공양대법회 행사는 부처님 오신 날 봉축 행사의 일부로 불교 공양을 고증하여 전 과정을 재연하였으며, 공양을 올리는 동안 전통적인 범패와 육법공양 게송을 한글로 재해석하고 국악 반주로 현대화를 시도하였다. 같은 해 성도재일 봉축 행사 때는 작은 꽃병에 오색 꽃을 다발로 만들어 불자들이 한 명씩 차례로 부처님께 올렸고, 행사 후에는 꽃을 한 송이씩 포장하여 지하철과 거리로 나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하고 함께 경축하였다.

스님의 서원

과로로 병이 나자 스님은 목숨이 다할 때까지 날마다 연꽃 한 송이와 향을 부처님께 올리고 기도하겠다는 서원을 세웠으며, 1997년부터 손으로 직접 일일이 염색하고 정성껏 인두질하여 연꽃 지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한 송이를 완성하는 데 2시간이나 걸리고 300번 이상 손길이 닿는 일이다.

꽃과 함께 숨 쉬며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스님은 인연 있는 분들을 위하여 백일 동안 부처님 전에 연꽃을 한 송이씩 올리고 축원하였고, 백일기도 회향 날에는 그 연꽃을 전기스탠드로 개조하여 축원과 함께 선물로 나눠주었다. 그런가 하면 전국 사찰을 직접 방문하여 각 사찰 주지스님의 뜻에 맞도록 연꽃등과 연꽃으로 법당 곳곳을 장엄해드리기도 하였다.

1999년 2월에는 연꽃등, 연꽃 차걸이, 연꽃 스탠드, 법당 연꽃, 보리수나무 등으로 불단 장엄용 작품을 제작하였다. 그리고 그해 7월 사단법인 한국국제꽃기예개발협회(KIFAD)에 연화플라워를 회장으로 등록하였고, 2000년에는 ‘새천년 연꽃등’을 개발하여 특허를 받기도 하였다.

1999년 연화정사를 서울 은평구 진관외동으로 이전한 스님은 꽃꽂이 활동으로 바쁘게 지내면서도 자신을 끊임없이 탁마해나갔다. 그리고 1997년 44세 되던 해 중앙승가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하여 2001년 졸업하였다.

스님은 그동안 많은 상을 받았는데, 1993년 한국불교 꽃꽂이회에서 공로패를 비롯하여 불교TV의 감사패, 재단법인 국제문화협회의 공로상, 한국불교 비구니꽃꽂이회의 공로패, 대한민국 아카데미 특별공로상 등을 수상하였다.

그동안 스님은 1988년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 여직원에게 법보신문 문화원에서 꽃꽂이 강의를 시작으로 조계사 문화강좌, 석왕사 불교방송국 불자들에게 꽃꽂이 강좌, 그리고 서울시립 은평노인복지회관에서는 불교반 교리 강좌를 열었다.

이와 같이 왕성한 활동을 펼쳐온 스님은 한국불교 꽃꽂이회 회장, 전국비구니회 서울지회 은평구 서기 및 기획국장, 사회국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

2004년 6월 27일부터 7월 5일까지 세계여성불자협회가 주관하고 대한불교 조계종 전국비구니회가 주최한 제8차 세계여성불자대회에서도 아름다운 꽃장엄으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대회가 더욱 빛나도록 하는 데 정성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한편 스님은 매주 수요일 서울 강남구 수서동의 전국비구니회관에서 생화 꽃꽂이 강의를 진행하였다.

사단법인 전통지화보존회를 이끌다

1986년부터 2005년까지 전주 천고사의 보운스님에게 수륙재 및 초파일 관불에 필요한 각조 지화장엄을 전수받았다.

2016년에는 현존하는 조선의 최고 오래된 1580년 감로탱화(甘露幁畵)의 지화장엄 부분을 그대로 재현하여 감로탱화 재현전과 불교지화장엄전승회 회원 공모전을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1층 로비와 봉은사에서 열었으며, 5년간 연구 끝에 오래 돼도 변하거나 바래지 않는 연꽃과, 연꽃등을 개발했다. 그 후 지화 관련 연구를 통하여 동국대학교에서 <韓國佛敎 紙花莊嚴에 관한 硏究>(2016)로 석사학위를,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에서 <韓國 紙花 莊嚴의 特徵과 傳承에 대한 연구>(2021)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21년 4월부터 후진양성을 위해 ‘온라인 줌'을 개설해 초급 1년, 중급 1년, 고급1년 3년을 교육 받으면 ‘지화장패’를 수여한다. 2022년 불교지화장엄전승회 회장, 사)한국전통지화보존회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수계제자로는 동현(東顯)스님이 있다.

참고자료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정명(正明)스님 본항목 정명스님(正明, 1954~) 正明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정명스님(正明,_1954生,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속성
정명스님(正明) 계민문중(戒珉) ~의 일원이다
정명스님(正明) 태경스님(泰鏡) ~의 수계제자이다
정명스님(正明) 서울 금강암 ~에서 출가하다
정명스님(正明) 혜정스님(慧淨) ~(으)로부터 계를 받다 사미니계
정명스님(正明) 동학사 강원(승가대학) ~에서 수학하다
정명스님(正明) 삼선포교원(삼선불학승가대학원) ~에서 수학하다 대교과
정명스님(正明) 중앙승가대학교 ~을(를) 졸업하다 사회복지학과
정명스님(正明)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을(를) 졸업하다
정명스님(正明) 서울 백련암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주지(감원)
정명스님(正明) 서울 법성사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주지(감원)
정명스님(正明) 가평 연화세계 ~을(를) 창건하다
정명스님(正明) 가평 연화세계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주지(감원)
정명스님(正明) 대한불교조계종 비구니꽃꽂이회 ~을(를) 건립하다
정명스님(正明) 전국비구니회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기회국장, 사회국장
정명스님(正明) 마하만다라회 ~을(를) 건립하다
정명스님(正明) 불교지화장엄전승회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회장
정명스님(正明) 한국전통지화보존회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이사장
정명스님(正明) 연화플라워연구회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회장
정명스님(正明) 한국국제꽃기예개발협회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회장
정명스님(正明) 제8차세계여성불자대회 ~에 기여하다 꽃꽂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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