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민(戒珉)문중

bigu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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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민문중은 『계민문중계보』에서 초조로 추앙하고 있는 계민(戒珉)의 출가 전 신분을 조선 제16대 인조(재위년도 1623~1649)의 옹주로 적고 있다. 병자호란 때 은해사로 피난해 있다가 난이 평정된 이후에도 환궁하지 않고 남아 있으면서 백운암(또는 백흥암)을 짓고 수행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계민문중계보󰡕에 따르면 옹주는 백운암을 짓고 촌음을 아껴 수행하며 밤이면 열반경을 독송하다가‘제행무상 시생멸법 생멸멸이 적멸위락(諸行無常 是生滅法 生滅滅已 寂滅爲樂)’이란 구절에서 크게 느낀 바, 만화(萬化)화상에게 삭발수계하니 법명을 계민(戒珉)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사실(史實)에 따르면 인조는 7남1녀를 두고 있는데 1녀는 귀인(貴人) 조씨(趙氏) 사이의 효명옹주(孝明翁主)이다. 옹주는 결혼도 하고 궁궐에 살면서 불상을 모시고 기도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문중성립과 관련해서는 광복이후 비구니로서는 최초로 교구본사(동화사) 주지를 역임한 문중 제11대손 성문(性文)이 살아생전 계보발간의 뜻을 세우고 입적하자, 후학들이 유지를 계승해 박차를 가한 인연에 의거한다. 후학들은 1991년 3월 4일 1차 문도회의를 개최해 계민문도회를 결성하고, 2003년 12월 30일 󰡔계민문중계보󰡕를 발행하면서 그 세계를 시방에 드러냈다. 『계민문중계보』에 따른 계보를 살펴보면 부처님 재세 시 최초의 여성출가자로서 비구니교단의 시작을 의미하는 마하빠자빠띠를 제1대로 추앙하고 실질적인 문중초조인 계민을 제2대로 적시하고 있다.

문중계보는 계민 이하 승운(承雲, 3)-학천(學天, 4)-보련(普蓮, 5)-복증(福增, 6)까지 단일문손으로 내려오다가 제7대손에서 정공(定空)⋅우영⋅원공(圓空)계통으로 갈라졌으며, 대체로 정공의 법손들이 문도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근⋅현대기로 들어오면서 문중성립의 전기를 제공하고 문도결집을 일궈낸 대표적인 인물은 대체로 제11대손인 성문⋅금룡⋅성월⋅혜옥⋅명주⋅영명 등을 중심으로 그들의 법을 계승한 제12대손 수한⋅태호⋅태희⋅광우⋅태경(이상 성문제자)⋅일조⋅영춘⋅해운⋅도정⋅형을(이상 금룡제자)⋅복석⋅정인⋅지형(이상 성월제자)⋅정헌⋅인완⋅정봉(이상혜옥제자)⋅혜명⋅혜일⋅혜월⋅혜진(이상 명주제자)⋅혜안(영명제자) 등을 비롯해제14대손인법일과 그의 문손들이다. 특히 금룡의 맏상좌이자 보문종의 제5,6대 종정을 역임한 일조(1910~1990), 성문의 상좌이자 금룡의 건당제자로서 조계종 전국비구니회장 재임 당시인 2003년 서울 강남 수서에 전국비구니회관 법룡사를 개관한 전국비구니회 제6대 회장 광우(1926~현재)스님, 영명스님의 제자로서 보문종 제4,5,6대 총무원장과 제7,8,9,10대 종정을 역임한 혜안(1912~2005)스님, 명주스님의 제자로서 보문종 제7,8,9대 총무원장을 지내고 제11,12대 종정직을 수행한 혜일스님, 일제강점기 광우스님과 함께 남장사 비구니 전문강원에서 동문수학했던 벽안(1925~1995) 스님 등 문중 제12대손을 비롯해 지리산 대원사를 일신한 제14대손 법일(1904~1991)스님과 법일스님의 제자인 성우⋅행돈⋅행석⋅진홍 스님 등은 모두 계민문중 소속의 대표적 인물이다.

(출처: 하춘생(2013), 『한국의 비구니문중』, 해조음, pp131~14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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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하춘생(2013), 『한국의 비구니문중』, 해조음, p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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