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법희스님(法熺, 1952生, 비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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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휴(大休) 법희(法熺)스님은 은사 지환스님을 모시고 불퇴전으로 정진하며 대중의 심부름꾼으로 흥천사 주지를 역임한 대한민국의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952 충남 청양 출생
1964 전주 금암국민학교 졸업, 군산 흥천사에서 지환(智環)스님을 은사로 출가
1965 전주 정혜사에서 묵담(默潭)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74 운문사 강원 졸업
1975~1976 양산여자중학교 2년 편입 및 졸업
1976~1978 명성여고 졸업
1980 해인사 삼선암, 내원사, 대성암 안거 성만
1983 범어사에서 자운(慈雲)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오대산 육수암, 견성암 등에서 안거 성만
1985~1989 약수암 3년 결사 후 진주 월명암, 경주 흥륜사, 경주 금련선원 안거 성만
2001 군산 흥천사 주지
2022 흥천사 주지
문중 계민문중(戒珉)
수행지침 불퇴전으로 정진하라.
수계제자 선오(禪悟)

활동 및 공헌

출생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214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215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216
[법희스님]
사진출처: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kookjinchang/40123112808
[법희스님과 은사이신 지환스님]
사진출처: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kookjinchang/40123112808
[흥천사]
사진출처: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kookjinchang/40123112808

대휴(大休) 법희(法熺)스님은 1952년 9월 7일 충남 청양군 정산면 대방리에서 아버지 최승식과 어머니 송춘화 사이의 2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이며, 이름은 최영숙이다.

출가동기

어린 아이였을 때 스님의 집안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형편이 어려워졌다. 그 당시 호남석유회사를 운영하던 고모님은 전주 정혜사 명주 노스님묵담 노스님을 부처님처럼 생각하셨다. 그리고 당신 조카인 영숙을 스님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이런 일들이 인연이 되었던지 스님은 전주 금암국민학교를 졸업하던 1964년에 졸업장을 들고 고모와 함께 기차를 타고 군산 흥천사로 향하게 되었다.

군산 흥천사에는 명주 노스님의 셋째 상좌인 혜월 노스님의 맏상좌 지환(智環)스님(은사스님)께서 강원생활을 마치고 한창 군산지역 포교를 하고 계셨다.

그곳에서 1년 가량 행자 생활을 하고 1964년 4월 전주 정혜사에서 지환스님을 은사로 삭발하고, 전주 정혜사 완산선원에서 보살계를 수지하였다.

수학 및 수행

1965년 묵담 노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계하고, 1983년 자운스님을 계사로 범어사에서 단일계단 제3기로 비구니계를 수계하였다.

정혜사에서 사교를 마치고 1973년 운문사에서 『화엄경』을 공부한 뒤 1974년 강원을 졸업하였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1975년 양산여자중학교 2학년에 편입하여 다음 해 졸업하고, 같은 재단의 고등학교에 다니던 중 서울 명성여고로 전학하여 1978년에 졸업하였다.

명주 상노스님

상노스님[1]이신 명주 노스님(당시 부산 소림사 금룡(金龍) 노스님과 친형제)에 대해서는, 당신의 상좌들(혜명·혜일·혜월·혜진스님)한테는 굉장히 엄하게 대하면서 증손주 상좌들한테는 한없이 자비하게 대하셨다고 기억한다.

어느 날 노스님의 상좌들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있고 상노스님은 손 씻으시라고 세숫대야에 담아온 물을 집어 던지시며 혼을 내고 계셨다. 그러나 증손주 상좌들을 보시더니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깜박깜박 눈짓을 하시며 싱긋 웃어 보이기까지 하셨다.

스님은 상노스님이 평소에 항상 『화엄경』을 독송하고 정진하시는 모습이 너무 멋져 보였다. 마을 어귀를 지날 때면 천진불에게 말 한마디라도 부처님과 인연을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코흘리개 꼬마들한테 사탕 사먹으라고 1원씩 주면서 ‘나무불’을 가르치셨다.

혜월 노스님

스님의 나이 18~19세로 한창 때, 지금도 계시는 혜월 노스님(법희스님의 노스님, 지한스님의 은사)과 얽힌 일화가 있다.

스님은 지순스님과 같이 바깥세상이 궁금한데다가 시내구경도 하고 싶고 영화도 보며 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나머지 『능엄경』을 배우다가 살짝 동방아[2]를 숨겨 나와 처음으로 시내를 돌아다니고 영화도 한 편 보고 들어왔다. 그러나 즐거움도 잠시 뿐, 천왕문 밖에서 법희스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싸리비를 들고 계신 노스님의 모습이었다. 혜월 노스님은 이들을 보자마자 싸리비를 들고 쫓아오시고 놀란 법희스님은 도량 안을 몇 바퀴나 돌다가 뒤를 돌아보니 다리가 편찮으신데도 불구하고 노스님은 끝까지 쫓아오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상노스님(명주스님)이 계시는 무애당 채에서 도망 다니기를 멈추고는 맞을 준비를 하고 그 자리에 잠자코 서 있는데 막상 때리지 못하시는 노스님을 뵙고는, 철부지 제자들을 바르게 가르치고자 하시는 스승의 엄한 자비를 깨달았다고 한다.

또 한 번은 나중에 안 일이지만, 스님이 대학 입학시험을 볼 때 노스님(혜월)께서는 부처님께 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셨다고 한다. 이렇듯 옛날 어른 스님들은 밖에 나가면 큰 일 나는 줄 아셨고, 지금까지도 커피를 마시면 탈이 날까봐 입에 대지도 않는 분들이 더러 계신다.

법희스님의 상좌스님은 2004년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었다. 스님은 많이 배우라고 권하며, 또 상좌스님 자신이 배우기를 원하여 적극 지지해주고 있다.

불퇴전으로 정진하라

법희스님은 정직함을 강조하며 불법佛法에 어긋나지 않게 생활하려고 노력하며 정진하고 있다. 해인사 삼선암에서 정행 노스님을 모시고 첫 번째 안거를 성만하였고 내원사, 오대산 육수암, 범어사 대성암 등 제방 선방에서 안거를 성만하였다. 그 뒤 해인사 약수암에서 3년 결사 이후 진주 월명암, 경주 흥륜사, 법주사 수정암을 거쳐 1992년부터는 경주 금련선원에서 수선 안거를 가졌다.

법희스님은 은사이신 지환스님을 제일 존경한다고 한다. ‘끊임없이 정진하라’. ‘열심히 살아라’란 지환스님의 말씀을 항상 가슴에 새기고 선객으로서 부처님의 마음을 찾아 오늘도 수행 중이라고 한다.

대중의 심부름꾼으로 흥천사 주지 소임 맡다

1964년에 이곳 흥천사에 왔다. 58년간 흥천사에 적을 두고 구도의 길을 걸어온 법희스님은 흥천사가 보문종소속이 되기 전부터 부처님의 초발심부터 배우기 시작해 1974년에 청도 운문사를 졸업했다

은사스님이신 지환스님의 후임으로 2001년 흥천사주지의 소임을 맡고 있는 법희 스님은 스스로를 ‘대중의 심부름꾼’이라 말한다.

지역민을 위한 봉사로 불심 전하는 포교 활동 활발

“2007년 시작한 경로 잔치에 작년에는 2000명이 넘는 분들이 오셨어요” 군산역에서 보살님들과 함께 무료급식을 10년간 해 왔고, 일요일에는 독거노인 150여 명이 흥천사를 찾아온다고 한다. 경로잔치를 10년이상 해오고 있는 흥천사는 지역의 노인뿐만 아니라 청소년을 대상으로 백일장을 개최하여 초등학생과 중학생 등 300여 명이 백일장을 치르기 위해 흥천사에서 모여들었다. 원광대국문과 교수님이 당일 시제발표를 하고 아이들이 글을 쓰는데 “어린 아이들은 법당에 배를 깔고 글을 쓰더라구요. 그 모습이 얼마나 천진난만하고 귀엽든지 바라보는 내내 흐뭇하고 지금 생각해봐도 그 모습이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출처: 네이버 블로그, ‘흥천사 법희스님’(2011년) https://blog.naver.com/kookjinchang/40123112808)

법희스님은 2022년 군산 흥천사 주지 소임을 보고 있으며, 수계제자로는 선오(禪悟)스님이 있다.

군산 흥천사

1905년 군산에서 포교를 시작한 하라 모쿠쇼(原黙松)는 1907년 대농장주 미야자키(宮崎)로부터 토지를 기증받아 당우를 건립하고, 1924년 일련종 안국사(安國寺)로 개칭한다
1931년 10월에는 지금의 월명공원 입구 흥천사 자리에 본당을 신축했다. 지금도 흥천사 뒷마당에는 '南無妙法蓮華經'(남무묘법연화경)이 음각된 자연석이 세워져 있다
뒷면에 '소화 8년 10월'이라 새겨놓아 1933년에 제작된 비석임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안국사는 지금의 월명공원 수시탑 부근의 '금비라 신사'(金比羅 神社)와 대사산 중턱의 '군산 신사'(群山 神社) 중간 지점에 있었다
일본의 국조 신을 모신 신사와 이웃하고 있어서 그런지 절집 이름도 국가(일본)의 편안을 기원하는 뜻의 '安國'을 썼다.
또한, 황군 성전에 도살장으로 끌려가듯 동원된 조선 젊은이들을 환송하던 신사광장이 코앞에 있었으며 그곳은 일본 천황 이름을 딴 명치통(중앙로 1가)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안국사는 1948년 9월 대한민국 귀속재산으로 군산시에서 관리하며 충의사(忠義祠)로 개칭하고 한국전쟁 때 희생된 군산 출신 국군장병과 전몰군경 위패 570위를 모셨다
1958년 지금의 회주 지환 스님이 인수하여 비구니들이 정진 수행하는 사찰이 됐다.


참고자료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법희(法熺)스님 본항목 법희스님(法熺, 1952~) 法熺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법희스님(法熺,_1952生,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속성
법희스님(法熺) 계민문중(戒珉) ~의 일원이다
법희스님(法熺) 지환스님(智環) ~의 수계제자이다
법희스님(法熺) 군산 흥천사 ~에서 출가하다
법희스님(法熺) 묵담스님(黙潭) ~(으)로부터 계를 받다 사미니계
법희스님(法熺) 자운스님(慈雲) ~(으)로부터 계를 받다 비구니계
법희스님(法熺) 군산 흥천사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주지(감원)
법희스님(法熺) 안거 ~을(를) 성만하다 합천 해인사 삼선암, 양산 내원사, 부산 범어사 대성암(청룡동), 평창 월정사 육수암, 예산 수덕사 견성암, 합천 해인사 약수암, 진주 월명암, 경주 흥륜사, 경주 금련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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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 흥천사 : 전라북도 군산시 금동 2-17



주석

  1. 은사스님의 할머니 스님
  2. 승복의 겉옷, 두루마기보다는 기장이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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