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법진스님(法眞, 1942生, 비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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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법진(法眞)스님은 계전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운주사를 중창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942 대전 출생
1959 신광사에서 계전(戒田)스님을 은사로 출가.
1960 신광사에서 고암(古庵)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65 동학사 강원 사교 수료
1971 법주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1973 대성암 동안거 성만
1974 해인사 삼선암 하안거 성만, 범어사 대성암, 내원사, 흥국사 안거 성만
1978 운주사 주지 취임 (10년 지장기도 입제)
1983 불사 부지 확보(만평사기 운동), 운주사 발굴 작업(사적지 지정)
1987 지장기도 회향(도량 불사 시작)
1990 대웅전 부처님 봉불식, 대웅전 낙성식
1992 요사채, 지장전 낙성식
1994 지장보살, 천불 봉안 복장식 종각 완공
1996 무위당, 원륭당, 일주문 완공
2000 운주사 주석
문중 삼현(三賢)문중
생활신조 신심, 정진
상훈 내무부장관상
수계제자(『한국비구니명감』) 지공(志共)·도우(渡愚)·인성(仁晟)·운공(雲空)·선봉(先唪)·형진(亨眞)·도성(渡性)·현인(玄忍)·지현(志炫)·호경(浩鏡)·선오(禪悟)
문중계보(『한국의 비구니문중』) 유한(宥漢, 6)→지명(智明, 7)→성화(性華, 8)→계전(戒田, 9)법진(法禛, 10)→지공(智空, 11), 운공(雲空, 11), 인성(仁晟, 11), 선봉(先唪, 11), 형진(亨眞, 11), 도우(渡愚, 11), 도성(渡性, 11), 현인(玄忍, 11), 지현(志炫, 11), 호경(浩鏡, 11), 선오(禪悟, 11)

활동 및 공헌

출가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 611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 612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 613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 613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 614

운주사의 도량신이라 일컫는 백운(白雲) 법진(法眞)스님은 1942년 6월 13일에 대전시 중구 선화3동 155번지에서 아버지 이맹범과 어머니 정쌍봉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함평이며, 이름은 이순자이다.

스님은 세수 18세 되던 해인 1959년 11월 광주 신광사에서 계전스님을 은사로 출가하고, 다음 해 2월 8일 광주 신광사에서 고암화상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하였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1971년 충북 법주사에서 석암화상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계하였다.

수학과 수행

1962년 21세 되던 해에 동학사 강원에 입학한 스님은 1965년 사교과를 수료하고 건강이 좋지 않아 더 이상 공부를 지속할 수가 없었다. 1970년부터 1977년에 이르는 동안 해인사 삼선암에서 3년 동안의 안거를 시작으로 http://busan.grandculture.net/Contents?local=busan&dataType=01&contents_id=GC04205699 범어사 대성암]과 내원사에서도 안거를 성만하였다. 그 후에는 운주사에 상주하면서 불사에 전념하였다.

운주사에 주석하다

스님이 운주사에 가기 전 지장기도를 할 때의 일이다. 하루는 스님의 꿈에 운주사 가는 길이 훤히 보이면서 30여 마리의 소가 빈 수레를 끌고 운주사로 터덜거리며 가는 것이었다.

스님은 노스님께 간밤의 꿈 이야기를 말씀드렸더니 “네가 운주사에 가면 지장기도를 많이 해야 되겠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소는 예로부터 조상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던지라 스님은 지장기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운주사에 들어갔다. 스님의 나이 36세 되던 해인 1977년에 지장기도를 시작하여 1987년까지 100일씩 무려 10년 동안 기도를 드렸다. 지장기도를 회향하고 나니 불사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고 이후 스님의 마음이 바빠졌다.

지장기도를 시작한 지 1년 뒤 세수 37세 때 운주사 주지로 취임한 법진스님은 기도를 하기 전에는 도량이 허물어져가도 불사를 하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기도 회향을 하고 나니 마음이 급해졌다고 한다.

그때부터 설계를 하고 도청에서 중앙에 올리는 인허가 문제까지 막힘없이 한 달 이내에 모든 일이 순조롭게 착착 진행이 되었다. 스님은 꺾이지 않는 신심과 굽힐 줄 모르는 정진력, 일의 두서를 잡아 추려내는 기민함으로 불사를 이끌어갔다.

1981년 스님의 세수 40세 되던 해에 운주사 천불천탑 주변부지 매입을 시작하여 땅 한 평 사기 운동을 벌인 결과 협곡 전체에 만여 평의 대지를 확보하였다. 그러나 땅을 사들이는 일은 생각보 다 훨씬 힘이 들었다. 스님은 화주보살과 함께 화주를 다니며 불사에 전력을 다했다.

1984년부터 1989년에 이르는 동안 전남대학교 박물관과 합동으로 4차례의 발굴 조사를 실시한 뒤 1987년 10월 인법당을 헐고 본격적으로 대웅전 중창 불사를 시작하였다. 그 다음 해부터 운주사가 전국에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관광버스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줄지어 들어왔다. 불사를 하게 되니 신장님이 사람들을 모아준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끊임없이 관광객이 밀려 왔다.

지금의 모든 불사는 그때의 관광객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기도 중에 땅 3만 평을 사서 천불천탑을 재현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만인 동참으로 화주를 받았다. 그렇지만 2만 2천 평 밖에 살 수가 없었다. 스님은 이에 대원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스님의 세수 49세 되던 해인 1990년 5월 29일 대웅전 부처님 봉불식과 대웅전 낙성식을 거행한 것을 시 작으로 51세 되던 해인 1992년 요사채와 지장전의 낙성식을 거행하였다. 이후 1994년 지장보살 천불 봉안 복장식을 거행하고, 1994년 종각을 완공하였으며, 1996년에는 무위당, 원륭당, 일주문을 완공하였다.

스님의 수계제자로는 지공(志共)·도우(渡愚)·인성(仁晟)·운공(雲空)·선봉(先唪)·형진(亨眞)·도성(渡性)·현인(玄忍)·지현(志炫)·호경(浩鏡)·선오(禪悟) 등이 있다.

화순 운주사

[운주사 전경] 사진출처: 템플스테이, https://www.templestay.com/temple_info.asp?t_id=unjusa0660

천불산 다탑봉 운주사는 천불천탑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 불교의 깊은 혼이 서린 운주사는 우리나라의 여느 사찰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불사를 한 불가사의한 신비 를 간직하고 있다.

1481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 '운주사 재천불산 사지좌우산척 석불석탑 각일천 우유석실 이석불 상배이좌(雲住寺 在天佛山 寺之左右山脊 石佛石塔 各一千 又有石室 二石佛 相背以坐)”라는 기록이 있다. 이는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으며 절 좌우 산에 석불 석탑이 각 일천 기씩 있고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 있다.'는 내용으로 석불 석탑 일천 기가 실존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조선 인조 10년(1632년)에 발간된 『능주읍지』 에는 '운주사 재현남이십오리천불산좌우산협석불석탑 일천 우유석실 이석불 상배이좌(雲住寺 在縣南二十五里千佛山左右山峽石佛石塔 一千 又有石室 二石佛 相背而座)' 라는 기록이 있는데, 그 뜻은 '운주사는 현의 남쪽 이십오 리에 있으며 천불산 좌우 산 협곡에 석불 석탑이 일천씩 있고 석실에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맞대고 앉아 있다.'는 내용이다. 이 기록은 일천 기씩의 석불 석탑이 있었던게 분명하고 그 말미에 금폐(今廢)라는 추기가 있어 정유재란으로 인해 소실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 후 조사한 기록을 보면 석탑 22기, 석불 213기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석탑 17기, 석불 80여 기만 남아있다. 오랜 역사 속에서 끝없이 유실되며 뼈아픈 세월을 살아온 것이다. 1984년부터 1991년까지 전남대학교 박물관에서 네 차례의 발굴 조사와 두 차례의 학술조사를 하였으나 창건 시대와 창건 세력, 조성 배경에 대한 구체적인 확증을 밝혀내지 못하여 운주사 천불천탑은 여전히 불가사의한 유적으로 남아있다.

운주사 불상들은 천불산 각 골짜기 바위너설 야지에 비로자나 부처님(부처님의 빛, 광명)을 주불로 하여 여러 기가 집단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크기도 각각 다르고 얼굴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홀쭉한 얼굴형에 선만으로 단순하게 처리된 눈과 입, 기다란 코, 단순한 법의 자락이 인상적이다. 민간에서는 할아버지 부처, 할머니 부처, 남편 부처, 아내 부처, 아들 부처, 딸 부처, 아기 부처라고 불러오기도 했는데, 마치 우리 이웃들의 얼굴을 표현한 듯 소박하고 친근하다. 이러한 불상 배치와 불상 제작 기법은 다른 곳에서는 그 유형을 찾아 볼 수 없는 운주사 불상만이 갖는 특별한 가치로 평가받는다.

참고자료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법진(法眞)스님 본항목 법진스님(法眞, 1942~) 法眞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법진스님(法眞,_1942生,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속성
법진스님(法眞) 삼현문중(三賢) ~의 일원이다
법진스님(法眞) 계전스님(戒田) ~의 수계제자이다
법진스님(法眞) 광주 신광사 ~에서 출가하다
법진스님(法眞) 고암스님(古庵) ~(으)로부터 계를 받다 사미니계
법진스님(法眞) 석암스님(昔巖) ~(으)로부터 계를 받다 비구니계
법진스님(法眞) 화순 운주사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주지(감원)
법진스님(法眞) 화순 운주사 ~을(를) 중창하다
법진스님(法眞) 안거 ~을(를) 성만하다 부산 범어사 대성암(청룡동), 합천 해인사 삼선암, 양산 내원사, 흥국사

지도

  • 운주사 :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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