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경주스님(敬柱, 1935生, 비구니)

bigu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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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주(敬柱)스님은 광주광역시 신광사의 도량 불사와 지역사회 포교에 전념하신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935 전남 완도 출생
1951 광주 신광사에서 혜운(慧雲)스님을 은사로 출가, 광주 신광사에서 전강(田岡)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56 경주 분황사 주석
1957 순천 선암사 주석
1959 공주 동학사 강원 졸업, 서울 옥수동 미타사 칠성각(칠성암) 8년간 주석
1965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1967 예산 수덕사 견성암, 문경 대승사 윤필암 하안거 성만
1969 양산 내원사 총무 소임 (4년간)
1971 양산 포교당 주석
1972 부산 범어사 대성암, 울진 불영사, 서울 승가사 입승[1] (9년간)
1973 양산 내원사, 부산 범어사 대성암 선원 중창 불사
1980 청도 운문사 총무 소임, 대성암, 진주 대원사, 양산 내원사, 대구 동화사 안거 성만
1988 광주 신광사 주석 (9년간)
1991 광주 신광사 이전 불사
2019 현재 신광사(두암동) 회주
문중 삼현(三賢)문중
수행지침 걸망지고 다니다가 가면 된다.
상훈 범어사 대성암 선원 중창 불사 총무원장 배송원 감사패(1979)외 다수
수계제자(『한국비구니명감』) 일명·동욱·동화·동찬·동언
문중계보(『한국의 비구니문중』) 지종(智鍾, 6)→성학(性學, 7)→정행(淨行, 8)혜운(慧雲, 9)경주(敬柱, 10)→동현(東鉉, 11), 동욱(瞳郁, 11), 동언(東彦, 11), 동화(東和, 11), 동찬(東澯, 11)

활동 및 공헌

출가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 뜨란출판사, 2007, pp. 150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 뜨란출판사, 2007, pp. 151

인재 양성의 원력 보살인 경주(敬柱)스님은 1935년 9월 9일 전남 완도군 소안면 진산리에서 아버지 최수오와 어머니 정연애 사이의 2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본관은 초계이며, 이름은 최기림이다.

스님은 아홉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형제자매들과 함께 어렵게 살았다. 그러던 중 1951년 2월 3일 17세의 나이에 신광사에서 혜운스님을 은사로 불법을 만나 출가하였다. 그해 2월13일에 전강화상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하였고, 수계 당시 일타 큰스님의 법문을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아 선방에서 공부를 하겠다는 원력을 세웠다.

수행과 가람수호

스님은 정화 전 대구 동화사 부도암에서 성문 노스님과 정행 노스님을 2년간 모시고 살았는데, 정화 후 큰절 동화사에 비구니 총림이 최초로 이루어져서 그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동화사에서는 80여 명의 대중이 1년 정도 함께 공부를 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당시의 종정 설석우 스님이 오셔서 동화사를 내놓고 일부는 경주 분황사로, 일부는 태백산 홍제사로, 일부는 선암사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이때 스님은 경주 분황사로 갔다가 그 이듬해 선암사로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의 생활도 그리 길지 않았다. 선암사가 해산되는 바람에 동학사로 가게 된 것이다. 그때 동학사에는 경봉 노스님이 강사를 맡고, 묘엄스님이 중강[2] 을 맡고 있었다. 스님의 나이 25세인 1959년 경봉 노스님 밑에서 대교를 보고, 이후 8년 동안 서울 옥수동 미타사 칠성각(칠성암)에 머물다가 33세에 이르러 수덕사 견성암에서 하안거를 났다.

그 후 스님은 1969년 내원사에서 4년간 총무 소임을 살고 선방 불사에 동참하였다. 그리고 양산 포교당에서 2년가량을 보내고, 범어사 대성암과 불영사에서 입승 소임을 보면서 수행 정진에 박차를 가하는 9년간의 황금기를 가졌다.

1980년 운문사 총무로 있을 때 경주스님은 백여 마지기(경상도 논은 마지기 당 300평)의 논 문서를 찾았으며, 산불 피해 복구 작업으로 운문사 주위에 잣나무를 심었다. 이후 대성암, 진주 대원사, 내원사, 동화사 등에서 여러 해에 걸친 안거를 성만하였다.

경주스님은 지난 1988년 세수 54세에 현재의 광주 신광사에 와서 9년 동안 신심을 다해 도량 불사에 전념하였다.

수행자의 으뜸은 마음공부 하는 것이라며 늘 선방을 가까이 한 스님은 지금도 여일한 정진을 하고 있다. 경주스님은 2019년 현재 광주 신광사 회주[3] 소임을 하고 있다.

스님의 수계제자로는 일명·동욱·동화·동찬·동언스님 등이 있다.

광주 신광사

[신광사 대웅전] 사진출처: 여행은 행복이다.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ohmark/220968402768

신광사는 광주 북구 두암동에 위치한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말사이다. 1933년 광주시내에 거주하는 최동열 모친 김청제월 보살님의 시주금으로 당시 대본산 선암사 광주시 서방 포교당으로 창건하였다. 절은 본래 광주시 동구 지산동 495번지 조선대학교 교내에 있었으며 1991년 1월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절은 1944년 10월 20일에 주지 비구니 안혜운 스님이 인수 보호중 법당이 협소하여 1964년 4월에 법당과 선방을 중창하였다. 1974년 8월에 요사채가 고가(古家)로서 헐고, 다시 요사와 강당을 중창하여 현재에 이르렀으며, 그 뒤 경주(敬柱) 스님이 절 살림을 맡아 오던 중 1992년 대웅전에 3불과 4보살상을 봉안하고 요사와 삼성각 등을 불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찰은 호남의 명산인 무등산 줄기 산하호서 광주 시가지를 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으며 선남선녀 여러 불자들이 국태민안과 무운장구를 빌며 부처님의 진리를 탐구하는 선원으로써 유명한 사찰이라 할 수 있다.

대웅전(大雄殿)은 잘 정돈된 기단 위에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로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화려한 다포식(多包式)의 건물이다. 창호는 빗살창과 꽃창살이 어울어져 짜여져 있다. 중심의 어칸은 4분합의 문을 달았는데, 중앙을 꽃창살로 꾸몄고 그 옆칸은 3분합, 양 끝 협칸은 2분합의 문을 달아 비율을 맞추었다. 내부의 바닥은 마루를 깔았고, 천정은 우물반자로 마감하여 꾸몄다. 안에는 석가모니를 주불로 약사와 아미타 삼존불과, 문수, 보현, 관음, 지장보살 상을 모셨다. 후불탱, 감로탱, 신중탱, 지장탱, 증명탱 등의 여러 폭의 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지장탱화는 1900년대 중기의 작품이고, 나머지 불화는 1995년에 조성하였다.

삼성각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안에는 독성상과 독성탱화, 산신탱화, 칠성탱화등이 봉안되어 있는데 모두 1965년에 조성하였다.

참고자료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경주(敬柱)스님 본항목 경주스님(敬柱, 1935~) 敬柱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경주스님(敬柱,_1935生,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속성
경주스님(敬柱) 삼현문중(三賢) ~의 일원이다
경주스님(敬柱) 혜운스님(慧雲) ~의 수계제자이다
경주스님(敬柱) 광주 신광사 ~에서 출가하다
경주스님(敬柱) 전강스님(田岡) ~(으)로부터 계를 받다 사미니계
경주스님(敬柱) 석암스님(昔巖) ~(으)로부터 계를 받다 비구니계
경주스님(敬柱) 광주 신광사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주지(감원)
경주스님(敬柱) 광주 신광사 ~을(를) 중창하다
경주스님(敬柱) 안거 ~을(를) 성만하다 수덕사 견성암, 문경 대승사 윤필암, 대성암, 진주 대원사, 양산 내원사, 동화사

지도

  • 신광사 : 광주광역시 북구 두암동 193



다른 비구니 스님

지식관계망




주석

  1. 사찰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소임
  2. 강주를 보좌하는 소임
  3. 법회를 주관하는 법사, 하나의 모임을 이끌러 가는 큰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