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정인스님(正忍, 1946生, 비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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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정인(正忍)스님은 아주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올곧은 수행과 포교의 길을 걸으신 분으로, 대한민국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946 경남 합천 출생
1949 법혜암에서 성춘(惺春)스님을 은사로 출가
1955 법혜암에서 석정(石鼎)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61 진주 삼선암 창건
1964 범어사에서 동산(東山)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1965 진주 삼선암 주지 취임
1965~1971 운문사 강원 8회 졸업
1978~2000 진주 삼선암 주지
2003 진주 삼선암 대웅전 불사
2021 현재 진주 삼선암 회주
문중 계민(戒珉)문중
수계제자(『한국비구니명감』) 해조·청현
문중계보(『한국의 비구니문중』) 경원(敬圓, 9)→문오(文悟, 10)→도여(道如, 11)→성춘(惺春, 12)→정인(正忍, 13)→혜조(慧照, 14), 청현(靑峴, 14)

활동 및 공헌

출가

정인(正忍)스님은 1946년 8월 20일 경남 합천군 상가면 일부리에서 아버지 구점용과 어머니 밀양 박씨 사이의 1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본관은 창녕이며, 이름은 구선향이다. 스님은 3세 때 어머니의 등에 업혀 법혜암에 온 뒤 은사스님인 성춘(惺春)스님의 지극한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나이 5세 때 은사스님을 따라 의곡사로 와서 10세까지 살았고, 다시 은사스님과 함께 상가면 봉두사로 옮겨 15세까지 살았다.
1955년 법혜암에서 석정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한 스님은 1961년 은사스님이 진주에 삼선암을 창건하면서 다시 한 번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1964년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했다.

수학

정인스님은 1965년 청도 운문사에 입학하여 1971년 운문사 강원 8회 졸업생이 되었다. 묘엄스님께 『초발심자경문』, 『치문』, 사집까지 배웠고, 사교부터 대교까지는 명성스님께 배웠다.
요즘은 『초발심자경문』을 본사에서 배우고 강원에 입학하지만 당시에는 강원에 입학하여 1년 6개월 동안 배웠다고 한다.

수행

2009년 고려동종문화제
정인스님(가운데), 혜조스님(왼쪽), 청현스님(오른쪽)

스님은 강원시절 비록 배고프고 힘든 생활이었지만 도반들과 함께한 재미있는 추억이 많다. 스님들은 야경을 돌면서 절 아래 마을의 사과밭에서 서리 아닌 서리를 한 적도 있고, 배가 너무 고파서 꽁꽁 언 보리밥 뭉치를 몰래 가져다가 오백나한전 뒤에 숨어서 먹기도 했다. 도반스님들과 보리밥을 한 주먹 정도씩 먹고는 없어진 표가 나서 들킬까봐 다음날 내내 걱정하고 눈치를 봐야만 했다. 그러나 아무 반찬 없는 얼음 박힌 꽁보리밥을 달달 떨면서도 무척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그때는 모든 반찬이 고춧잎이었다. 고춧잎 김치, 고춧잎 된장국, 고춧잎 찌개 등 겨우내 고춧잎만 먹었다. 고춧가루가 들어간 반찬을 먹어보는 것이 소원일 정도로 자주 먹었다. 그래서 스님은 지금도 고춧잎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명성스님은 학인들이 경을 많이 읽기보다 참선하는 것을 좋아하셨다. 법당이든 어디든 자리를 잡고 앉아 참선을 하는 학인을 보면 흡족해하셨다. 스님네 반은 유난히 동진출가한 사람이 많았다. 두 명만 제외하고 모두가 동진출가를 한 스님 들이었다. 당시는 절에서 스님들을 일반 학교에 보내지 못하던 때여서 대부분의 스님들은 초등학교만 졸업한 상태였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명성스님은 강의를 할 때 많이 힘들어하셨다. 자신들의 실력이 다른 반에 비해 모자라다는 생각에 스님네반 학인들은 더욱 분발을 했고, 졸업 때
“강주스님, 저희들 대학 가고 대학원까지 가서 사각모 쓰고 스님을 찾아뵙겠습니다.” 말하고 강원을 나섰다고 한다. 실제로 많은 스님들이 일반학교로 진학을 했는데,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스님은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학교를 다녀야 했다. 이 일로 어른스님들께 걱정을 듣기도 했다. 정인스님은 강원을 졸업한 뒤 삼선암에서 은사스님을 모시고 살았다. 은사스님은 1977년 음력 4월 7일에 입적하셨고, 1년 뒤 삼선암은 도시계획에 의해 현재의 자리로 이전했다. 이전 당시 은사스님이 창건하신 법당을 그대로 옮겨왔으며, 2003년에는 대웅전 불사를 원만히 회향했다.

진주 삼선암의 유래

1947년경 권보살님이라는 분이 진주시 상봉동 대롱 골에 토굴을 마련하였다. 1949년경 권보살님은 대롱 골에 있던 토굴을 정리하여 진주시 상봉서동 878번지로 이전 확장하면서, 해인사 삼선암에 주석하고 계시던 문오 큰스님과 상좌인 진노스님, 도여스님을 모시면서 사찰명을 삼선암으로 칭하게 되었다. 문오큰스님은 이곳에서 수행정진하시다가 1953년경 열반에 드셨다.

1953년경 문오큰스님이 열반에 드신 후, 도여스님의 상좌이자 문오큰스님의 손상좌인 성춘스님이 주지로 오면서, 성춘스님의 속가 큰 조카인 당시 진주대륙공업사 회장이셨던 박종길거사가 권보살님으로부터 삼선암을 매입해서 고모되는 성춘스님의 수행도량으로 제공하고 본인도 작은 집한칸을 지어 때때로 머물곤 하였다.
후에 박종길거사님이 병환이 깊어지자, 1966년경 성춘스님의 친여동생 박또처례(천화대)보살님이 매입하였고, 몇 년후 1972년 7월 16일 대한불교조계종 21교구본사 송광사 말사로 종단등록을 하였다.
또한 같은 해 1972년 2월 12일 소장중이던 삼선암 고려동종이 시도유형문화재 제55호(진주시)로 지정등록 되었다.
1977년경 진주시 상봉서동 878번지 삼선암이 진주도시계획구역에 들어가면서, 토지보상을 받아 1979년경 경남진주시 상봉서동 820-3번지 현재 위치로, 제대로 사세를 갖추지 못한 채 급하게 이전하였다가, 1996년 중창불사로 대웅전을 건립하였으면, 2005년에 요사체 한동을 추가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진주 삼선암 동종(晋州 三仙庵 銅鍾)은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 삼선암에 있는 고려시대의 동종이다. 2010년 12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698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삼선암 대웅전에 봉안된 이 작품은 원래 1951년 진양군(晉陽郡, 지금의 진주시) 수곡면 사곡리 삭실 마을에서 한 농부가 사지를 개간하다가 발견한 것으로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이다.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 뜨란출판사, 2007, pp. 88~90.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439.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350.
  • 다음카페, https://cafe.daum.net/SeoulTemple/DKqc/96 (연꽃들 바람이 되어)

시멘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정인(正忍)스님 본항목 정인스님(正忍, 1951~2014) 正忍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정인스님(正忍,_1946生,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속성
정인스님(正忍) 계민문중(戒珉) ~의 일원이다
정인스님(正忍) 성춘스님(惺春) ~의 수계제자이다
정인스님(正忍) 진주 법혜암 ~에서 출가하다
정인스님(正忍) 석정스님(石鼎) ~(으)로부터 계를 받다 사미니계
정인스님(正忍) 동산스님(東山) ~(으)로부터 계를 받다 비구니계
정인스님(正忍) 진주 삼선암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주지(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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