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정안스님(正眼, 1950生, 비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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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정안(正眼)스님은 혜춘(慧春)스님을 은사로 출가해서 충난 당진 보덕사를 중창하고 포교에 전념한 대한민국의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950 경북 영주 출생
1968 영주여자고등학교 졸업
1969 석남사에서 혜춘(慧春)스님을 은사로 출가
1969 자운(慈雲)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75 고암(古庵)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운문사 강원 졸업
1975~1981 해인사 보현암, 내원사 등에서 6안거 성만
1976~1980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졸업
1982 충남 당진 보덕사 주지
1993~1995 동국대학교 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이수
1999~2000 해인사 보현암 도감
2004 충남 당진 보덕사 주지
문중 청해문중(靑海)
수행지침 삼일수심(三日修心)은 천재보(千載寶)요,
백년탐물(百年貪物)은 일조진(一朝塵)이니라.
생활신조 자비보시(慈悲布施)
수계제자(『한국비구니명감』) 반공(半空)·선종(禪宗)·법수(法水)
문중계보(『한국의 비구니문중』) 정은(正恩, 5)→재희(在喜, 6)→창호(彰浩, 7)혜춘(慧春, 8)정안(正眼, 9)→반공(半空, 10), 선종(禪宗, 10), 법수(法水, 10), 명선(明禪, 10)

활동 및 공헌

출가 계기

[운문사 오백전(1975.12.20)]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432
[보덕사 경내]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433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434
[정안스님]
사진출처: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pressbeom/222555210391

정안스님은 1950년 10월 5일 경북 영주시 하망동에서 아버지 김영석과 어머니 김옥희 사이에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이며, 속명은 김은숙이다. 1968년 영주여고를 졸업한 스님은 토굴에서 기도 중이던 석남사 도감 묘경스님의 권유로 그해 겨울 합천 해인사에서 열린 가사불사에 동참 하였다. 그리고 성철 큰스님을 친견하고 해인사 법당에서 삼천배를 한 후 크게 환희심을 느꼈다. 당시 가사불사에는 묘전, 법희, 혜근, 혜주스님 등 여러 비구니스님들이 동참하셨는데, 그 인연으로 스님은 1969년 봄 석남사에서 혜춘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운문사강원, 동국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선원을 돌며 수행하다

스님은 1969년 가을 자운화상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하고 1971년 운문사 강원에 입학하여 1975년 대교를 마치고 강원을 졸업한 후 고암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받았다. 그 후 은사 혜춘스님이 창건한 해인사 보현암에서 1년 동안 불사에 동참했다. 1976년부터 1980년까지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다니면서 내원사, 보현암 등 제방 선원에서 정진하였다. 스님은 포교와 불사로 바쁜 중에도 공부를 계속하여 1995년 동국대학교 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석사를 이수하였다.

보덕사 주지로서 사찰 면모를 일신하고 외국인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을 위해 음악회를 열다

스님은 1982년 충남 당진군 보덕사 주지를 맡아 폐사나 다름없던 사찰의 중창을 발원하여 국유지였던 뒷산 2,700평 매입을 시작으로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며 대웅전, 종각, 일주문, 요사채 등을 차례로 건립하여 2003년 불사를 마쳤다.

해인사 보현암 도감과 전국비구니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다

스님은 포교와 불사로 바쁜 가운데서도 스님은 1995년 동국대학교 대학원 사회복지학과를 이수하였다. 1999년 해인사 보현암 도감과 전국비구니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출가자, 재가자를 막론하고 어려운 이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종단 내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모든 복지사업과 불사 등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지역사회에서는 당진경찰서 경승실장을 역임하면서 2004년 당진경찰 불자회를 창립했고 2008년부터는 외국인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을 초대하여 매년 ‘호수음악회’를 열고 있다.

2004년 보덕사에서 정진 중인 스님의 수계제자로는 반공(半空)·선종(禪宗)·법수(法水)스님 등이 있다.

충남 당진 보덕사

보덕사는 충남 당진군 석문면 삼화리 보덕포 해안 절벽에 위치하고 있는 사찰로써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676년(숙종 2년)에 혜행스님이 중수하였다. 1982년, 합천 해인사 보현암에서 정진하던 정안스님이 보덕사에 와서 신심 있는 단월들의 모연으로 1986년에 대웅전을 중창하였고, 1988년 종각을 완성하고 범종을 안치하였다. 1992년 일주문을 건립, 2002년에 기울어져 가는 요사채를 헐고 2003년에 향적당 심검당, 무위당을 준공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음은 혜행스님의 비문에서 옮긴 글이다.

1672년(현종 13년) 7월, 호남 영광인인 스님이 바다를 따라 흥남에서 보덕포까지 오는 동안 서호의 산수가 아름답고 불만한 곳도 많았지만 이곳 보덕포야말로 그 중에서 가장 빼어난 곳이었다. 이곳에는 이미 불상이 한 분 모셔져 있었으니 그 영험 또한 비길 없어 기도 드리는 사람이 모두 소원을 성취하니 신기하고 기이한 일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부처님이 모셔진 의지처가 불과 3~4척(1m정도)인데 형식이며 단주(段柱)는 겨우 한 척 (30cm) 정도로 암벽이 가설되어 있는데 붕괴의 염려가 있어 드나드는 신도들이 매우 위험하였다. 또한 그만 노사는 많은 비바람에 시달려 앞으로 10년을 버티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나는 이러한 광경을 보고 지나칠 수 없어 모연을 만들어 신도들의 시주를 청하였으며 석공으로 하여금 언덕을 깍아 계단을 만들고 집을 축조하였다 그 결과 이제는 10여 명이 들어가도 떨어질 위험이 없게 되었다. 신도들의 공덕과 석공의 힘이 아니었으면 오늘날 이처럼 부처님을 모시고 기도, 수행 정진하는 전당을 이룰 수 있었을까! 이 사실의 전말과 시한 사람들과 석공의 이름을 돌에 새겨서 오래도록 전하고자 한다. (1676년 8월 7일, 화주승 혜행)

원래 이곳 보덕포는 바다물이 내륙으로 깊이 들어와 있고 수심이 깊은 천혜의 양항으로 육로 교통이 미비하던 예전에는 인천을 비롯하여 오도항, 한진, 부리포 등의 항구와 내륙의 여러 지방을 연결하는 해상 교통의 요지였다. 이러한 지리적 여건으로 보덕포는 매우 흥성하였고 보덕사에는 이들 출영객을 중심으로 먼 길의 평안함을 기원하는 불도들의 발길이 끊임 매가 없었다. 하지만 1987년 8월부터 시작된 석문지구 간척지 개발사업에 의하여 1991년 11월 13일 석문 방조제가 완성됨에 따라 바닷물이 끊기고 광활한 농경지로 바뀌어 예전의 흔적은 서서히 없어져 가고 있다. 그러나 오도와 송산면이 바라보이는 탁트인 전망과 해돋이 광경, 석양에 물든 광활한 광야에 펼쳐져 나가는 보덕사의 범종소리들은 이곳에서만 느낄 수 하는 길이 아닐 수 없다.

  • 출처: 보덕사 안내문

참고자료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정안(正眼)스님 본항목 정안스님(正眼, 1950~) 正眼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정안스님(正眼,_1950生,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속성
정안스님(正眼) 청해문중(靑海) ~의 일원이다
정안스님(正眼) 혜춘스님(慧春) ~의 수계제자이다
정안스님(正眼) 울산울주 석남사 ~에서 출가하다
정안스님(正眼) 자운스님(慈雲) ~(으)로부터 계를 받다 사미니계
정안스님(正眼) 고암스님(古庵) ~(으)로부터 계를 받다 비구니계
정안스님(正眼) 당진 보덕사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주지(감원)
정안스님(正眼) 당진 보덕사 ~을(를) 중창하다
정안스님(正眼) 해인사 보현암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주지(감원)
정안스님(正眼) 안거 ~을(를) 성만하다 합천 해인사 보현암, 양산 내원사 등

지도

  • 보덕사 :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삼화리 2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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