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태구스님(泰具, 1920生, 비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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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태구(泰具)스님은 청도 운문사와 부산 반야사 주지를 엮임 하면서도 일상생활 자체가 수행인 대덕스님으로 후학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으며 부산지역 금련회 회장을 맡아 포교 활동의 활성화와 승가 화합에 기여한 대한민국의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920 경북 청도 출생
1930 운문사 청신암에서 지인(智仁)스님을 은사로 출가
1933 해담(海曇)스님을 계사로 운문사 청신암에서 사미니계 수지
1941~1949 운문사 강원 졸업
1943 동화사 부도암 동안거 성만
1946 해인사에서 효봉(曉峰)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1949~1963 동화사 부도암 시작으로 15년간 범어사 대성암 등 제방 하안거 성만
1963 부산 반야사 주지 취임
1970~1975 운문사 주지 역임
1975 부산 반야사 주지 재역임, 반야사 부설 반야유치원 개설
1984~1990 단일 구족계단 비구니 증사(별소계단 4・5・7・8・9・10・11・13회 존증아사리)
1986 전국비구니회 운영위원장 및 부산지역 비구니모임 금련회 회장
1992~1999 금련선원에서 정진
2006 입적(세수 87세, 법랍 75세)
문중 청해(靑海)문중
수계제자 영우(英佑)・송벽(松碧)・성모(性模)・성관(性觀)・보경(保慶)・동엽(東曄)

활동 및 공헌

출가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상, 뜨란출판사 2007년 p291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상, 뜨란출판사 2007년 p292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상, 뜨란출판사 2007년 p293
[반야사 대웅전] 사진출처: 부산역사문화대저전http://busan.grandculture.net/Contents?local=busan&dataType=0403&contents_id=GC042P06799

선화당(禪和堂) 태구(泰具)스님은 1920년 1월 20일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동에서 부친 이영권(李永權)과 모친 기계 유씨 대자화(斗伊)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이며, 이름은 이옥선이다. 1930년 3월 문명국민학교에 입학하던 바로 그해 마을에서 살면 명이 짧다는 부친의 말씀을 듣고 태구스님은 11살의 어린 나이로 청신암에 입산하였다. 당시 스님은 마을에 홀로 계실 어머니를 생각하여 출가를 거절했지만 아버지의 완강한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 태구스님은 1930년 11월 26일, 청도 운문사에서 이모스님이신 지인(智仁)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이때 청신암에는 30여명의 스님들이 살고 있었는데 대부분 스님과 같은 또래의 동무들이 많아 속가에 대해 생각할 겨를 없이 그 속에 자연히 묻혀 살게 되셨다.

수학과 수행

1933년 1월 15일 운문사 청신암에서 당시 통도사에 주석하시던 율사 서해담 화상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하고, 1941년 운문사 불교 전문 강원에 입학하였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43년 동화사 부도암에서 동안거를 성만하고, 1946년 해인사 효봉화상을 계사로 비구니계와 보살계를 수지하였다.

태구스님은 승려로서의 자질을 연마하고 대중생활을 익히시며 경전공부에 몰두하여 어느 정도 이력을 마치고 1949년에 강원을 졸업하였다. 스님은 간경공부를 마치자 사교입선의 가르침을 따라서 1949년 동화사 부도암의 하안거를 시작으로 범어사 대성암등 제방을 두루 유력하면서 묵묵히 정진수행 하는 참선납자로 15여 년간 공부에 전념하였다.

부산 반야사와 운문사 주지로 역임

그러던 중 6·25전쟁으로 인하여 부산에 주석하게 되고, 뜻한 바가 있어 1963년에 <부산불교단체>에 등록하고 부산 반야사 주지에 취임하였다. 누구에게도 드러나지 않게 그저 조용히 수행하며 안으로는 자신의 자성을 밝히고 밖으로는 조금씩 주위를 밝혀 교화수행에 전념하던 스님의 덕(德)은 마치 향기가 소리도 없이 사람에게 가 닿듯이 대중스님들에게 자연히 알려져서 1970년부터 1975년까지 운문사 주지를 역임하였다. 운문사 주지에 취임한 스님은 평소에 수행의 방편으로 삼았던 청정한 지계행과 인욕행으로 어려운 운문사 살림을 알뜰하게 꾸려갔다. 당시 절 밑 동네에 운문사 논이 상당수 있었다. 스님은 그 곳에 보리를 비롯한 콩이며 채전 밭 등을 직접 일구어 가꾸고 타작하여 찧어 양식에 쓰는 등 어려운 시기에 힘든 일을 묵묵히 하며 4년을 농사와 대중 심부름을 하며 살았다. 바쁘고 힘든 주지 소임을 사시면서도 조석예불에 빠지지 않고 반드시 참석하는 등 신심이 매우 견고한 실천행으로 모든 학인스님들의 귀감이 되었다. 겉으로는 매우 엄격하고 딱딱하신 것 같지만 안으로는 바다보다도 넓고 깊은 후덕함으로 대중스님들을 포근히 감쌌고 공심이 매우 높으셔서 사중 물건을 철저히 아끼심은 물론이며 개인적인 시주물 까지도 사중에 필요한 것이면 내놓아서 살림에 보탬이 되게 하였다. 스님은 어려운 스님들이나 사람을 보면 가진 것을 서슴없이 내어 주시는 무소유의 성품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굳은 신심으로 잠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일을 해 온 스님은 무언의 행으로 주지 소임을 살다가 임기가 만료된 1975년 1월 운문사 주지를 사임하였다.

부산 반야사 주지에 재 취임

곧바로 1975년 2월 반야사 주지에 재임하시면서 재가불자와 일반인의 포교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일반인을 위한 일반법회 및 학생법회와 청년법회를 열어서 멀리 있는 이들을 보다 쉽게 불법을 듣고 배울 수 있게 하였다. 또한 미래의 기둥이며 자라나는 새싹인 어린이에게 일찍부터 불심을 심어주기 위하여 반야사 부설 <반야유치원>을 개설하여 불연의 기회가 닿도록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부산 금련회 회장 역임

또한 스님은 부산지역 비구니 스님들의 모임인 금련회의 회장을 역임하면서 금강과 같은 신심과 정진으로 포교활동의 활성화와 승가의 화합을 모색하였다. 스님은 현재 금련회 고문으로서 많은 도움과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1986년에는 전국 비구니회 운영위원장을 역임한 스님은 고령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1992년부터 1999년 10월 초까지 금련선원에서 정진에 매진하시는 등 후학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부산 반야사에서 주석해온 비구니 선화당 태구스님이 2006년8월29일 오전11시 세수 87세, 법랍 75세로 입적했다. 태구스님은 노년에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늘 염주를 가지고 다니면서 관세음보살 주력을 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금강경을 독송한다. 스님의 수계 제자로 영우(英佑)·송벽(松碧)·성모(性模)·성관(性觀)·보경(保慶)·동엽(東曄)스님 등이 있다.

참고자료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태구(泰具)스님 본항목 태구스님(泰具, 1920~2006) 泰具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태구스님(泰具,_1920生,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속성
태구스님(泰具) 청해문중(靑海) ~의 일원이다
태구스님(泰具) 지인스님(智仁) ~의 수계제자이다
태구스님(泰具) 운문사 청신암 ~에서 출가하다
태구스님(泰具) 해담스님(海曇) ~(으)로부터 계를 받다 사미니계
태구스님(泰具) 효봉스님(曉峰) ~(으)로부터 계를 받다 비구니계
태구스님(泰具) 부산 반야사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주지(감원)
태구스님(泰具) 청도 운문사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주지(감원)
태구스님(泰具) 계단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구족계단 비구니 증사(별소계단 4-5회, 7-11회, 13회 존증아사리)
태구스님(泰具) 안거 ~을(를) 성만하다 대구 동화사 부도암(도학동), 부산 범어사 대성암(청룡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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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 반야사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 1383-1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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