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일조스님(日照, 1910生, 비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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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조(日照)스님은 대한불교보문종의 제 5·6대 종정을 지낸 대한민국의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910 경북 청도 출생
1921 운문사에서 금룡(金龍)스님을 은사로 출가
1927 통도사에서 해담(海曇)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32 통도사에서 해담(海曇)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1936 운문사 강원 졸업
1947 정릉 대원사 주지 취임
1954 서울 옥천암 주지 취임
1971 재단법인 대한불교보문원 이사
1981 재단법인 대한불교보문원 이사장
1986~1990 대한불교보문종 5, 6대 종정 역임
1990. 2. 11 보문사에서 입적 (세수 81세, 법납 70세)
문중 계민문중(戒珉)
수행지침 청렴
수계제자 무착(無着)・대인(大仁)・영득(永得)・인화(仁化)・성제・신원(信爰)( 『한국의 비구니 문중』에는 무착(無着)・대인(大仁)・도종(道宗)・인화(仁化)・혜선(慧鮮)・신원(信爰))

활동 및 공헌

출가

[일조스님]
사진 출처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상권. 뜨란출판사, 2007, p. 206

청호당(靑浩堂) 일조(日照)스님은 1910년 7월 4일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에서 아버지 천시원 거사와 어머니 엄우영 보살의 4남 5녀 중 3녀로 태어났다. 본관은 영양이며, 속명은 천구순이다. (일조스님은 혜안스님과 속가 자매인데 혜안스님 편에서는 어머니의 이름이 ‘엄우연’으로 나온다.)

가족 가운데 여섯 명이 출가했을 정도로 불연이 깊은 집안에 태어난 스님은 1921년 12세의 나이에 금룡스님을 은사로 청도 운문사로 입산하였다.

교육과 수행

스님은 1927년 4월 양산 통도사에서 서해담 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하였고, 그로부터 5년 뒤인 1932년 4월 역시 양산 통도사에서 서해담 스님을 계사로 모시고 비구니 구족계를 품수하였다.

또한 스님은 1936년부터 청도 운문사 강원에서 정금광(금룡)스님을 강사로 사집[1]과 사교과[2], 대교과[3]를 모두 마치고 1947년 정릉 대원사 주지로 취임하였다. 3년간 주지소임을 마친 스님은 수행에만 전념하다가 다시 1954년 서대문에 소재한 옥천암의 주지 소임을 맡아 10여년을 봉직하였다. 정화운동 당시에는 조계종에도 왕래를 하였는데 정화를 이끌고 있던 일부 비구스님이 비구니스님을 무시하는 현실을 개탄하였다.

보문종을 개창

한편 은영스님이 조계종과 태고종을 가까이 하지 않고 보문사에만 머물며 절을 지켜 내기 위해 고심하는 모습을 보고 현실을 탓하고만 있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에 스님은 두 손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혜안스님 등과 함께 힘을 모아 보문원을 세우자, 이후 비구니 종도들이 속속 보문종으로 등록하였다. 이는 한국 비구니사에 한 획을 그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당시 보문사에는 묵담스님을 비롯한 태고종 스님들이 드나들었다. 그런데 보문사가 태고종에 등록을 하지 않고 보문종을 세우자 상대적으로 소원한 관계였던 조계종 측에서는 환영의 뜻을 비쳤으나, 가까운 관계라고 생각하던 태고종 측에서는 당연히 섭섭하게 여겼다. 스님은 1971년 재단법인 대한불교 보문원이 설립되자 이사로 취임하여 재단 운영에 큰 힘을 보태다가 1981년 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보문종 제 5대 종정으로 추대

5년간 재단을 이끌며 튼튼한 반석 위에 올려놓은 스님은 1986년 대한불교 보문종 제5대 종정으로 추대되어 종도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스님은 평소 성격이 급했지만 뒤끝이 없고 단순한 듯 담백하였다. 평생을 조석 예불과 기도로 일관해 오면서 늘 청빈한 삶을 고집하였고, 인연 따라 온 20명이 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늘 다독여주었으며, 신심껏 부지런히 살기를 가르쳤다. 언제나 편안하고 자비로운 모습으로 불법을 전하셨기에 재가불자들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스님을 뵙고 상담을 자주 했으며, 많은 이들에게 마치 자식이 부모를 따르는 것처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의지처가 되어 주었다.

입적

1990년 2월 11일 보문사에서 저녁 공양 후에 잠시 휴식을 취하고 10시 경 일어나서 화장실에 다녀온 뒤 대중을 운집하라고 하였다. 이에 대중이 모이자 한마디 말없이 조용히 원적(圓寂)에 들었다. 스님의 세수 81세, 법랍 70세였다.

수계제자로 무착(無着)·대인(大仁)·영득(永得)·인화(仁化)·성제·신원(信爰)스님 등이 있다.(『한국의 비구니 문중』에는 무착(無着)・대인(大仁)・도종(道宗)・인화(仁化)・혜선(慧鮮)・신원(信爰))

보문사

[보문사 대웅전]
사진출처 : 티스토리 https://gotemplestay.tistory.com/484
[보문사 석굴암]
사진출처 : 티스토리 https://gotemplestay.tistory.com/484

대한불교 보문종의 총본산이다. 1115년(예종 10)에 담진(曇眞)이 비구니의 수련장으로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조그만 암자로, 근처 미타사에 탑이 있었으므로 탑골 승방이라 하였다. 그 뒤 1692년(숙종 18)에 대웅전을 개축하는 등 수차례 중수를 하였으며, 1945년부터 비구니 은영(恩榮)스님이 주지로 취임하면서 절을 크게 중창하였다.

원래는 조계종 산하의 소속 사찰이었으나 1972년 독립하여 보문종을 창종하고 보문종의 본산이 되었는데, 현재 그 규모 면에서 굴지의 거찰(巨刹)이 되었다.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극락전·석굴암·호지문·선불장(選佛場)·보광전(普光殿)·산령각(山靈閣)·석굴암노전(石窟庵爐殿)·삼성각(三聖閣)·별당·요사채, 한의원 및 특별양로원이 있는 시자원(施慈園) 등이 있다. 그후 도시개발 과정에서 시자원은 없어졌다. 2021년 선불장은 철거되었다.

석굴암은 은영스님이 그 분야의 권위자를 모아 준공위원회를 구성하여 조각과 설계를 하였고, 공사비만 1억을 들여 1972년 부처님 오신 날에 착공하였으며 3년 6개월의 역사 끝에 점안식을 가졌다. 경주 석굴암과 똑같은 규모로 만들었으나, 구성면에서 볼 때 경주 석굴암은 정면이 1문인 데 비하여 이곳은 3문이며, 실내 벽을 이중으로 만들고 실내 천장으로 공기가 유통되게 하였다. 단지, 경주 석굴암의 전실에 있는 팔부신중상(八部神衆像)을 이곳에서는 생략하고 있다.

특기할 만한 오래된 문화재는 없으나 석굴암 앞의 높은 단 위에 세워진 팔각구층석탑은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月精寺)의 팔각구층석탑을 그대로 재현한 것으로, 탑 안에는 인도에서 가져온 석가여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다. 이 절은 세계 유일의 비구니 스님들만으로 구성된 보문종의 총본산으로서 150명이 넘는 비구니 스님들이 수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수도의 분위기가 특히 엄숙한 도량으로 알려져 왔다.

참고자료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일조(日照)스님 본항목 일조스님(日照, 1910~1990) 日照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일조스님(日照,_1910生,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속성
일조스님(日照) 계민문중(戒珉) ~의 일원이다
일조스님(日照) 금룡스님(金龍) ~의 수계제자이다
일조스님(日照) 청도 운문사 ~에서 출가하다
일조스님(日照) 해담스님(海曇) ~(으)로부터 계를 받다 사미니계, 비구니계
일조스님(日照) 서울 대원사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주지(감원)
일조스님(日照) 서울 옥천암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주지(감원)
일조스님(日照) 대한불교보문원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이사장
일조스님(日照) 대한불교보문종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종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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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주석

  1. 선종에서 중시하는 것으로, 불교를 학습하는 데에 기본이 되는 네 가지 책. 곧 《서장(書狀)》, 《도서(都書)》, 《선요(禪要)》, 《절요(節要)》를 이른다.
  2. 여러 설이 있으나 보통 능엄경, 기신론, 금강경, 원각경의 4과목을 강원에서는 4교라고 한다.
  3. 강원에서 〈화엄경〉과 선에 대한 주요문헌을 공부하는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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