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정성스님(定星, 1940生, 비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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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효광(曉光) 정성(定星)스님은 지극정성한 기도의 힘으로 병고의 극복과 원만한 불사 성취를 보여주신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940 충남 홍성 출생
1955 법인(法忍)스님을 은사로 출가, 고봉(高峰)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55~1961 보문사 강원 사교과 수료
1961~1963 용인 화운사 강원 졸업
1964~1970 영취사[1] 주지 취임
1969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1971~1980 대성사 총무 역임
1981~2000 대성사 주지 취임
1995~2000 전국비구니회 호법부장, 총무부장 역임
1998~2003 수계산림 갈마위원
2002 대한불교 조계종 13대 중앙종회의원
2022 대성사 주석
문중 계민(戒珉)문중
수행지침 평등성중(平等性中) 무피차(無彼此)
수계제자(『한국비구니명감』) 묘희(妙喜)·진성(眞性)·지덕(智德)·지호(智虎)·호경(浩炅)·성욱(煋煜)
문중계보(『한국의 비구니문중』) 지부(志赴, 11)→주화(周和, 12)→문성(文成, 13)→법인(法忍, 14)→정성(定星, 15)→묘희(妙喜, 16), 진성(眞性, 16)

활동 및 공헌

출가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 뜨란출판사, 2007, pp. 382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 뜨란출판사, 2007, pp. 384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 뜨란출판사, 2007, pp. 386
[대성사 전경] 사진촬영:김은희 2022년
[대성사 대웅전] 사진촬영:김은희 2022년

효광(曉光) 정성(定星)스님은 1940년 1월 10일 충남 홍성군 은하면 장곡리에서 아버지 윤병갑과 어머니 전용예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파평이며, 이름은 윤순기이다. 스님은 10세 때부터 '여자는 왜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가?'를 늘 생각하였다. 그러던 차에 친척의 49재를 지내러 수덕사에 가게 되었다. 스님은 그곳에서 난생 처음 비구니 스님들을 보고 너무나 가슴이 두근거려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스님은 발심하여 1955년 11월 6일 서울 보문동의 탑골승방에서 법인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이때 '주린 창자가 끊어질지라도 밥을 구하는 생각이 없어야 도를 이룬다.' 라는 글귀를 읽게 되었다. 사회에서는 16년을 살아도 이런 좋은 글귀를 보지 못했는데, 부처님은 대체 어떤 분이시기에 이런 좋은 말씀을 남기셨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때로는 밤을 새우며 공부를 하고, 행여 다른 스님들이 도량석을 할까봐 목탁을 끌어안고 잠을 자기도 하였다.

기도로 성취한 병고 극복

정성스님은 행자 생활을 마친 후 보문강원에서 내전을 공부했다. 그러나 출가 이후 너무 무리한 나머지 건강이 나빠져 남에게 업혀서 강원 생활을 했다. 그러다 은사스님이 화운사로 가게 되면서 스님도 화운사 강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러나 한번 나빠지기 시작한 건강은 점점 더 안 좋아졌고, 어느 날 아침 예불을 모시기 위해 일어나려는데 몸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결국 다른 사람의 등에 업혀 한의원을 다니면서 겨우 몸을 추슬렀지만, 6개월 후 건강이 다시 악화되어 강원 생활을 지속할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대성사로 간 스님에게 수덕사의 혜암 큰스님께서 지장기도를 100일 동안 하라고 하셨다. 당시 스님의 건강상태로는 절조차 하기 힘들어서 하는 수 없이 앉아서 기도를 하였다. 기도를 시작한 지 50일 쯤 지났을 때 스님은 고통을 참기가 너무나도 힘들어 '부처님을 사랑하고 좋아해서 입산했는데 이것도 복이라면 다시 태어나 동자로 부처님 앞에 와서 공부를 한없이 하게하여 주시옵소서.'하며 단명 기도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였는데, '너는 침만 맞으면 낫는다.' 하면서 전신에 침을 놓아주시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 깨어 보니 온 몸이 딱딱해지는 듯하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나아졌다.

때로는 공청이 들리기도 했는데, 너는 저기 가서 약을 먹고 오너라.' 하는 소리에 약을 먹었으나 다 받아먹을 수 없었다. 결국 업병이었던지 스님은 서른일곱 살까지 병을 앓았다.

기도로 성취한 대웅전 불사

그 뒤 은사스님이 미국 LA에 대성사 포교원을 설립하여 떠나시게 되면서 스님이 은사스님 뒤를 이어 대성사 주지에 취임하였다. 이후 불사를 하려 했으나 여러 가지로 법에 저촉이 되어 난항을 거듭하였다. 이에 스님은 설법전을 지은 뒤 봉정암과 홍련암에서 철야 3일 기도를 드리는데, 기도가피의 전조인지 관음조가 나타나 3일 동안 스님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강화 보문사 마애불 앞에서 3일 동안 철야기도를 하고 돌아왔는데, 법당의 삼존불께서 서로 좁다고 밀고 계시는 꿈을 꾸었다.

이후 정성스님은 설계사무소에 40평의 건축을 의뢰했고, 20일 만에 허가가 나왔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사암연합회 소속 사찰들은 다들 깜짝 놀랐다. 그러나 막상 허가를 받아놓고 보니 불사금이 문제였다. 고심 끝에 스님은 법당에서 기도를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다라니기도를 병행했다.

그러자 이번에도 기도의 가피로 대웅전 불사를 아무런 장애 없이 마칠 수 있었고, 마침내 4년 만에 봉불식을 거행하게 되었다. 또한 스님은 아이들을 위해서 각별히 법당 내부에 신경을 썼다.

정성스님은 부모님의 손을 잡고 법당에 들어간 아이들이 탱화를 보고 무서워하며 우는 모습에 항상 가슴이 아팠다. 스님은 불교의 미래를 위해서는 누구보다 아이들이 부처님과 친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님은 모두가 좋아하는 부처님, 부처님만 보면 환희심이 나서 저절로 공경의 마음이 드는 부처님을 모시고 싶은 원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신경을 썼던 것이다.

또한 스님은 의식에도 관심이 있었다. 복장에서부터 봉불식에 이르기까지 요즈음 간소화 되어 가는 의식을 되살리기 위해 전통의식을 그대로 거행하자 동참한 많은 스님들이 거대하고 아름답고 화려하고 장엄한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전국비구니회관 법룡사 건립에 힘을 보태다

이 모든 것을 부처님의 가피로 여기는 스님은 전국비구니회 총무부장 시절 비구니회 사무실을 일주일에 한 번씩 나갔다.

2003년에는 전국비구니회관 법룡사를 완공하는 데 무언(無言)으로 역할을 담당하였다. 정성스님은 전국비구니회의 소임을 보고 비구니 종회의원으로 활약하는 것에 대해 “아무 능력이 없는 제가 마당을 빌고 뜰을 빌어서 안방까지 들어간 격입니다.”라고 말하며 겸허하게 웃었다. 스님은 후학들에게 '대부분의 세간인들이 대학원까지 공부하는 상황에서 수행자는 더욱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정성스님은 1995년 갈마위원으로 위촉되었고, 전국비구니회 호법부장을 역임하였으며, 2004년 전국비구니회 총무부장으역임하였고 2022년 대성사에 주석하고 있다.

스님의 수계제자로는 묘희(妙喜)·진성(眞性)·지덕(智德)·지호(智虎)·호경(浩炅)·성욱(煋煜)스님 등이 있다.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 뜨란출판사, 2007, pp. 381~386.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423.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p. 349, 352.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정성(定星)스님 본항목 정성스님(定星, 1940~) 定星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정성스님(定星,_1940生,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속성
정성스님(定星) 계민문중(戒珉) ~의 일원이다
정성스님(定星) 법인스님(法忍) ~의 수계제자이다
정성스님(定星) 보문동 보문사 ~에서 출가하다
정성스님(定星) 고봉스님(高峰) ~(으)로부터 계를 받다 사미니계
정성스님(定星) 석암스님(昔巖) ~(으)로부터 계를 받다 비구니계
정성스님(定星) 서울 영취사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주지(감원)
정성스님(定星) 서울 대성사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주지(감원)

지도

  • 대성사 :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동 9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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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관계망




주석

  1. 영취사(靈鷲寺, 또는 영축사)는 영추사라고도 불리나 잘못된 이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