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재근스님(在根, 1940生, 비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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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청공(淸空) 재근(在很)스님은 은사스님을 극진히 모셨으며, 수행정진과 대중포교에 크게 기여하신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통도사 보타암 카페
연도 내용 연도 내용
1940 경남 밀양 출생 1941 음력 4월 4일, 출생
1950 경남 보타암에서 영춘(永春)스님을 은사로 출가 1949 12월 1일, 통도사에서 출가(은사: 신오당 영춘스님)
1955 통도사에서 월하(月下)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57 1월 15일, 사미니계를 수지
통도사에서 묘엄(妙嚴)스님으로부터 『초발심자경문』 및 『서장』 수학
1968 통도사에서 일타(日陀)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1969 4월 7일, 구족계(비구니계)를 수지(계사: 월하스님)
1990 보타암 법당, 요사채 중창 불사 1993 10월, 보타암의 법당과 요사채, 후원채 등을 중수
2004 현재 보타암 주석
법호 청공(淸空) 청호(淸湖)
문 중 계민(戒珉)문중
수행지침 사대불해설법청법(四大不解說法聽法) 허공불해설법청법(虛空不解說法聽法)
지여목전역력고명(只汝目前歷歷孤明) 물형단자시해설법(勿形段者始解說法)
청법소위물형단자(聽法所謂勿刑段者)
시제불지법인역시여본래심(是諸佛之法印亦是汝本來心)이니라.
수계제자(『한국비구니명감』) 성혜(性慧)·혜륜(慧輪)·혜묵(慧默)·성정(性淨)·성범(性汎)·법준(法準)·혜원(慧沅)·성수(性首)
문중계보(『한국의 비구니문중』) 장홍(壯弘, 9)→선덕(善德, 10)→금룡(金龍, 11)영춘(永春, 12)재근(在根, 13)→성혜(性慧, 14), 혜륜(慧輪, 14), 혜묵(慧黙, 14), 성정(性淨, 14), 법준(法準, 14), 혜원(慧沅, 14), 성수(性首, 14), 성범(性汎, 14)

활동 및 공헌

출가 및 수학

청공(淸空) 재근(在根)스님은 1940년 5월 11일 경남 밀양시 산내면 송백리에서 아버지 김경우와 어머니 박진주 사이의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관은 김녕이며, 이름은 김순동이다. 스님의 어머니는 밀양 산내면에 있는 석골사의 화주보살로 계실 정도로 신심이 돈독한 재가불자이셨다.
스님이 국민학교 3학년 때 민족의 비극인 6·25전쟁이 일어났고, 어머니는 당신이 돌아가시면 나이 어린 스님이 친척집에 맡겨져 눈치를 받으며 클 것을 염려하였다. 그리하여 부처님 전에서 불법을 배우면서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딸을 보타암에 데려다주었고,스님이 11세 되던 해인 1950년 보타암에서 영춘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그 후 5년간 절집의 법도를 몸에 익히며 생활한 후 1955년 통도사에서 월하 큰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하였다. 당시 운허스님께서는 통도사에 머물면서 강을 하셨고, 묘엄스님은 3년 동안 보타암에서 지내며 운허스님께 글을 배우러 다니는 중이셨다. 재근스님은 통도사에서 『초발심자경문』을 배우고, 묘엄스님께 서장까지 배우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후 1968년 세수 29세에 통도사에서 일타 큰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하였다.

은사 영춘(永春)스님 시봉

글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컸던 재근스님은 보타암에서 글공부를 하던 스님들이 하나둘씩 떠나가자 함께 따라가고 싶은 조급함이 들었다. 그러나 연세가 높으신 은사스님께서 공양주도 없이 혼자 계실 것을 생각하니 차마 그대로 떠날 수가 없었다. 평소 효행심이 깊었던 스님은 '그저 한 세상 태어나지 않은 셈치고 산다.' 는 마음으로 은사스님을 시봉하며 보타암에서 지냈다.

재근스님

그래도 공부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강원에 가고 싶은 생각은 수시로 일었고 그 때마다 마음이 일렁거렸다. 평소 어려운 일이 생기면 경봉스님께 가르침을 받아온 스님은 마음속의 갈등을 품고 또다시 큰스님을 찾아가 강원에 가고 싶은 마음을 털어놓았다. 스님은 ‘은사스님을 시봉하기로 작정을 했으면 그것에 성을 다하는 것도 수행의 한 방법이다.’라는 큰스님의 말씀에 그간의 혼란을 다잡을 수 있었다. 이후로 재근스님은 은사스님을 더욱 극진히 모셨고, 1992년 은사스님이 세수 98세로 입적하시던 그날까지 정성을 다해 시봉을 하였다.  

수행정진과 포교

스님은 보타암에서 신심을 다해 기도를 하면서 수행 정진의 올곧은 길을 걸었다. 어려운 일을 만나도 모든 정성을 다해 기도를 하면 곧 마음과 길이 열려 막힘이 없었으며, 한번 발원한 일은 반드시 성취되었고, 가피를 받아 병도 치유하였다. 한번은 오랜 고질병이던 관절염이 악화되어 고통이 극심해지자 관음기도를 시작했는데, 꿈에 관세음보살님이 오셔서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셨다. 그 후 관절염의 통증이 씻은 듯이 나았다. 당시 보타암은 통도사의 농막으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재근스님이 불사를 시작하여 1990년 법당과 요사채를 중창하였다.
현재 보타암에 머물며 통도사의 자비원과 경주 대자원, 울산의 양로원 등을 비롯하여 군 법당에도 다니고 있는 스님은 매년 거르지 않고 전법포교를 펼치고 있다. 그래서 휴가를 나온 군인들이 스님을 찾아와 '불법을 만나게 해줘서 감사하다.' 는 인사를 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스님은 더더욱 군인 포교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한다.
보타암은 10여 년 전부터 양력 초하루 법회를 하고 있다. 통도사와 그 외의 많은 암자가 같은 날 법회를 하면서 야기되는 복잡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스님은 스스로를 경책하고 용맹정진 하도록 격려하는 수행지침을 갖고 있다. 이는 스님이 40세 되던 해 경봉 큰스님께 받은 『임제록(臨濟錄)』 법문[아래 게시글 참조]의 한 구절이다.


      사대가 법을 들을 줄 알고, 법을 설할 줄 알지 못하며
      허공이 법을 들을 줄 알고, 법을 설할 줄 알지 못하며
      자못 눈앞에 역력히 나타나는 형단 없는 자가
      법을 들을 줄 알고 법을 설할 줄 아나니
      이 너의 본래 면목이며, 모든 부처님의 본래심이니라.

스님은 대중에게 '중노릇을 할 때에는 신심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신심 있게 사는 것'이란 수행과 생활을 둘로 나누어 보지 않으며 언제나 한결같은 것이라고 말씀한다.
“요즘 스님들이 포교와 간경 등으로 바쁘게 보내는 줄은 알지만 그 바쁜 가운데 신심을 잊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옛날 스님들께서는 기도하고 예불하고 정진하는 것에 어김이 없었고 시간을 잘 지키며 살아가셨는데, 이것이 신심을 이루는 근간이며 진정한 스님들의 생활이 아닐까요?”

수계제자

청공 재근스님의 수계제자로는 성혜(性慧)·혜륜(慧輪)·혜묵(慧默)·성정(性淨)·성범(性汎)·법준(法準)·혜원(慧沅)·성수(性首)스님 등이 있다.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 뜨란출판사, 2007, pp. 137~141.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397.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p. 341, 343.
  • 다음카페 "보타암"에 의하면, 생애관련하여 1년씩 차이가 있다.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재근(在根)스님 본항목 재근스님(在根, 1940~ ) 在根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재근스님(在根,_1940生,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속성
재근스님(在根) 계민문중(戒珉) ~의 일원이다
재근스님(在根) 영춘스님(永春) ~의 수계제자이다
재근스님(在根) 통도사 보타암(동운암) ~에서 출가하다
재근스님(在根) 월하스님(月下) ~(으)로부터 계를 받다 사미니계
재근스님(在根) 일타스님(日陀) ~(으)로부터 계를 받다 비구니계
재근스님(在根) 통도사 보타암(동운암)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주지(감원)
재근스님(在根) 통도사 보타암(동운암) ~을(를) 중창하다
재근스님(在根) 통도사 보타암(동운암) ~에서 주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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