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하명근(月下明根)

bigu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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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호·법명 : 월하명근(月下明根, 1915~2003)
  • 생애·업적

월하명근(月下明根) 또는 노천월하(老天月下) 스님은 1915년4월25일 충남 부여군에서 출생했으며, 1933년 7월 20일 18歲에 강원도 유점사에서 경암스님을 은사로 차성환 화상을 계사로 득도하신후 1940년 4월 8일 통도사에서 역시 차성환 화상으로부터 구족계를 수계한 뒤 오대산 방한암스님 회상에서 하안거를 성만하신 이래 50여 안거를 성취했다.
월하스님은 1915년 2월25일 충남 부여군 부여면 군수리에서 아버지 파평 윤공 수병과 어머니 전주 이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속명은 희중(喜重)이다. 1932년 금강산 유점사로 출가해 이듬해 차성환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법명은 명근(明根).
1938년 오대산 상원사에서 한암스님을 계사로 보살계와 비구계를 받아 지녔다. 1942년 통도사에서 구하(九河)스님의 전법제자가 돼 월하(月下)라는 법호를 받았다. 1944년 철원 심원사 불교전문강원 대교과를 졸업했다.
1950년 통도사에서 회당(晦堂)율사에게 사분율 강의를 들은 후 자장율사로부터 전래된 계맥(戒脈)을 전수했다. 이로부터 1980년까지 통도사 전계화상으로 후학을 길러냈다.
그후 통도사 선원을 비롯해 건봉사, 정혜사, 금강산 마하연에서 수선안거(修禪安居)를 마친 후 천성산 내원사 선원에서 용맹정진 중 큰 깨달음을 얻어 오도송을 읊었다.

오도송

    본명해월잠수중(本明解月潛水中)
    무생멸처견유무(無生滅處見有無)
    무심거래서동용(無心去來西童用)
    무일영처현시행(無一影處顯示行)

“본래 신령스런 달빛이 물속에 잠겨있다. 생사 없는 곳에 유무(有無)를 보아라. 마음을 비우고 오고 감을 자유롭게 하면 천국의 마음을 쓸 것이다. 그림자 없는 곳에서도 밝은 달은 항상 떠 있다.”

월하스님이 스승 구하스님에게 보낸 오도송을 보자, 스승은 제자의 오도송을 보고 크게 기뻐했다. 이후 월하스님은 1954년부터 일기 시작한 승단정화운동에 나섰다. 효봉 동산 청담 금오스님과 함께 비구승 대표로 일제에 의해 망가진 청정수행가풍의 회복에 앞장섰다. 1956년 통도사 주지로 취임해 벽안스님과 함께 정화의 후유증 극복에 힘을 다했다. 이로 인해 통도사는 여느 사찰과 다르게 비구·대처의 갈등을 원융정신으로 해소시켰다.
1958년 조계종 감찰원장, 1960년 중앙종회 의장을 역임하고 1970년 통도사 조실에 추대됐다. 1975년 동국학원 이사장을 거쳐 1978년 조계종 원로의원에 추대됐다. 1979년 조계종 총무원장도 역임했다. 1984년 통도사가 총림이 되자 영축총림 초대 방장에 추대됐다. 1994년 개혁회의 의장을 맡은 스님은 이해 조계종 제9대 종정에 추대됐다. 2003년 12월4일(음력 11월11일) 통도사 정변전에서 입적했다. 세수 89세, 법랍 71년.

임종게

    일물탈근진(一物脫根塵)
    두두현법신(頭頭顯法身)
    막론거여주(莫論去與住)
    처처진오가(處處盡吾家)

“한 물건이 이 육신을 벗어나니 두두물물이 법신을 나투네. 가고 머무름을 논하지 말라. 곳곳이 나의 집이니라.”
장례는 9일간의 종단장으로 모셨다.
2014년 문도회에서는 스님의 탄신 100주년을 맞아 스님의 일대기를 <영축산에 달 뜨거든>이란 이름으로 펴냈다.

※ 출처 : 불교신문(2017.04.10) ⑮ 노천당 월하대종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