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주스님(禪周, 1938生, 비구니)
선주(禪周)스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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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명 | 선주(禪周) |
법호 | |
속명 | 이계순(李桂順) |
출생 | 1938.03.02. |
출가 | 1962년 |
입적 | |
사찰 | 내원사 금강암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용연리 291 |
특이사항 |
목차
정의
선주(禪周)스님은 양산 내원사에서 각진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여러 선원에서 수행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연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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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 울산 출생 |
1962 | 양산 내원사에서 각진(覺眞)스님을 은사로 출가 |
1963 |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東山)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
1963~1969 | 운문사 강원 졸업 |
1970 | 범어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
내원사 성불암에서 23년 주석 | |
김룡사, 석남사, 내원사 성불암, 대원사, 불영사, 육수암 등 안거 성만 | |
경주 금련선원 안거 성만 | |
2004 | 내원사 금강암 주석 |
문중 | 수정문중(水晶) |
수행지침 | 한 마음이 생기면 만법이 생기고, 한 마음이 사라지면 만법이 사라진다. |
생활신조 | 금생(今生)에 미명심(未明心)하면 적수(滴水)도 야난소(也難消)니라. |
수계제자(『한국비구니명감』) | 정욱(淨煜)·정민(淨珉)·정구(淨丘)·정효(淨傚) |
문중계보(『한국의 비구니문중』) | 태용(泰容, 6)→선진(善眞, 7)→월혜(月慧, 8)→각진(覺眞, 9)→선주(禪周, 10)→정욱(淨煜, 11), 정민(淨民, 11), 정구(淨丘, 11) |
활동 및 공헌
출가
선주(禪周)스님은 1938년 3월 2일 울산시 방어동 155번지에서 아버지 이부갑과 어머니 김말선 사이의 3남 3녀 중 맏딸로 태어났다. 본관은 진성이며, 이름은 이계순이다.
스님은 나이 25세 되던 해인 1962년 음력 7월 9일 내원사에서 각진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한 번 밖에 없는 인생을 투자할 가치 있는 곳을 찾다가 불가에 귀의한 것이 출가 동기이다.
스님은 이미 출가 전부터 불교와 인연이 깊었는데, 부산에서 처음 개설한 불교학생회에서 본격적으로 불교공부를 하였다. 그때 〈해동>이라는 불교지를 청년회에서 발행하였고, 입산 전부터 설봉스님의 법문을 수도 없이 들었으며, 최초로 나온 한글 번역 『불교성전』을 보고 불교 교리를 배웠다.
운문사 강원
선주스님은 1963년 3월 15일 범어사에서 동산화상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하고, 그해에 당시 5년 과정이었던 운문사 강원에 입학하였다.
강원시절을 돌아보면 많은 추억들이 있다. 입승 소임을 살고 있을 적에(초창기 때) 학인 스님들과 데모를 하여 사리암을 운문사 직영체제로 만들었고, 당시 대처승인 노 강사스님을 통도사로 모셔다드린 다음 동화사에서 33명의 학인이 데모를 하여 묘전스님을 주지로, 묘엄스님을 운문사 강사로 모신 일도 있었다. 당시 동화사에서 데모를 할 적에 동화사 주지스님이 선주스님을 보고 모략꾼이라고 할 정도로 스님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하면 끝까지 추진력 있게 밀고 나갔다.
운문사에서는 방학을 모르고 살 정도로 일이 많았다. 지금은 사정이 많이 변했지만 당시에는 밭 중간에 있는 돌밭에서 돌을 골라내고 그 외의 사중 일을 하느라고 방학 동안에도 쉴 틈이 없이 바쁘게 살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찾아서 한 일이었다. 운문사 강원 1회 때에는 여러 스님이 모여서 돌아가면서 일을 했다(강원은 범어사 2회로 들어감). 대부분의 학인들이 경을 배우기 위해 직접 강사스님을 찾아다니면서 공부를 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치문』을 보고 오는 스님들은 다른 곳에서 이미 경을 배우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운문사에서 『치문』부터 『화엄경』까지 모두 본 사람은 선주스님밖에 없을 만큼 스님은 모든 경을 열심히 공부하면서 또한 후배들을 가르쳤다.
주위에서는 스님을 부지런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스님 자신은 어지럽히는 것을 싫어하다 보니 부지런하고 깨끗해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겸손해 한다.
은사이신 각진스님
스님의 노스님은 월혜스님이시고, 은사스님은 각진스님인데 1982년에 입적하셨다. 은사스님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기만 하다. 은사스님은 스님과 함께 내원사 성불암의 본래 있던 집을 허물고 다시 지으면서 2km 정도의 산길을 하루에도 네다섯 번씩 오르내렸을 정도로 신심이 강하고 대중을 위하는 일이라면 몸을 사리지 않으셨다.
내원사 성불암을 지을 당시 마땅한 부지가 없어 고사목을 베어내고 그 자리에 집을 지어야 했다. 그때 주지스님이 임의대로 나무를 베었는데, 혹시 일이 커질까 염려한 은사스님은 자신이 다 베었다고 했다. 그 일로 재판소에 여러 번 불려 다닐 정도로 대중을 위해서는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수행
선주스님은 1969년에 강원을 졸업하고, 다음해에 범어사에서 석암화상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하였다. 졸업 후 내원사 성불암에서 23년간 머물며 김룡사에서 첫 철을 시작으로 석남사, 내원사 성불암, 대원사, 불영사, 육수암 등 제방 선원을 두루 다니면서 정진을 하고 있다.
‘한 마음이 생기면 만법이 생기고 한 마음이 사라지면 만법이 사라진다.’를 수행 지침으로 삼고 있는 선주스님은 2004년 현재 내원사 금강암에 주석하고 있으며, 결제 철에는 경주 금련선원에서 안거를 난다.
수계제자로는 정욱(淨煜)(전남 해남 덕성사)·정민(淨珉)·정구(淨丘)·정효(淨傚)스님 등이 있다.
참고 문헌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131~133.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252.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97, 403.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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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주(禪周)스님 | 본항목 | 선주스님(禪周, 1938~) | 禪周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선주스님(禪周,_1938生,_비구니) |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 항목2 | 관계 | 속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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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주스님(禪周) | 수정문중(水晶) | ~의 일원이다 | |
선주스님(禪周) | 각진스님(覺眞) | ~의 수계제자이다 | |
선주스님(禪周) | 양산 내원사 | ~에서 출가하다 | |
선주스님(禪周) | 동산스님(東山)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사미니계 |
선주스님(禪周) | 석암스님(昔巖)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비구니계 |
선주스님(禪周) | 내원사 성불암 | ~에서 주석하다 | |
선주스님(禪周) | 내원사 금강암 |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 주지(감원) |
선주스님(禪周) | 내원사 금강암 | ~을(를) 중창하다 | |
선주스님(禪周) | 안거 | ~을(를) 성만하다 | 문경 김룡사, 울주 석남사, 양산 내원사 성불암, 산청 대원사, 울진 불영사, 평창 월정사 육수암, 경주 금련선원 |
참고문헌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131~133.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252.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97, 402, 403.
- 부산시민등산아카데미 총동창회, 양산 내원사 금강암 전경 https://cafe.daum.net/Busanacademy/WUyz/153?q=내원사_금강암
- 송천님의 블로그, 내원사 8암자 순례 https://blog.naver.com/kbc0370/221463577854
지도
- 내원사 금강암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용연리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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