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지문스님(志門, 1958生, 비구니)

bigu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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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지문(志門)스님은 종현(宗賢)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보훈법당 상임법사를 역임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958 충북 진천 출생
1979 남양주 견성암에서 종현(宗賢)스님을 은사로 출가
1980 해인사에서 일타(日陀)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85 평택 명법사에서 수행 정진
1987 검정고시로 중학교 졸업
1988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
1992 범어사에서 석주(昔珠)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1993 삼선승가대학교 졸업, 3개월간 불교 간병인교육 수료
1993~1994 수도통합병원, 한국보훈병원 등에서 봉사 활동
1994~1998 중앙승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졸업
1994~2004 한국보훈병원 보훈법당 상임법사
1999 대전보훈병원 보훈법당 상임법사
2004 한국보훈병원 및 대전보훈병원 보훈법당 상임법사
문중 청해문중(靑海)
수행지침 중생과 더불어 수행하자.
생활신조 늘 부처님 법에 맞추어 살자. 계율이 첫째이다.

활동 및 공헌

출가

[국가유공자 환우 및 직원 수계법회(1995. 6)]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 573
[부처님 오신 날 환자 위문]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 574
[환우 병실 방문 기도]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 574
법당 삼존불 탱화 점안식 (1999. 1. 4)]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 575
[자비 도량 참법 3년 결사 기념 (2003.4.1.)]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 576
[직원 불자 불국사 성지 순례]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 577
[한국보훈병원 보훈법당]
사진출처:다음블로그https://blog.daum.net/dongpa48/15859016

지문(志門)스님은 1958년 11월 2일 충북 진천에서 아버지 박종선(朴鍾璇)과 어머니 신천호(申千浩) 사이의 2남 5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본관은 순천이며, 이름은 박화순이다. 평택여자중학교를 졸업한 스님은 경기도 평택에 있는 명법사 학생회를 다니던 중에 화정스님을 뵙고 발심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1979년 7월 19일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송능리 산3번지에 위치한 견성암에서 종현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1980년 4월 15일 해인사에서 일타 큰스님을 모시고 사미니계를 받은 스님은 견성암에서 행자 생활을 보낸 뒤 4년간 명법사에서 수행 정진하였다.

수학

1985년 명법사에서 가사 불사를 회향한 후 학원을 다니며 공부하여 1987~1988년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모두 마쳤다. 그런 다음 부전[1]을 살면서 어렵게 삼선승가대학에 입학하여 묘순 강사스님을 모시고 부처님의 일대시교를 배운 뒤 1993년에 졸업하였다.

간병인 교육을 받고 병원에 위문방문을 시작하다

평소 봉사 활동에 관심이 많았던 스님은 그 무렵 BBS 불교방송에서 간병인 교육을 실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전문적이며 체계적인 지식 습득을 위해 석진오 스님에게 3개월 동안 지도를 받았다. 간병인 교육을 마친 후 스님은 1993년 10월부터 수도통합병원과 한국보훈병원 등을 다니며 환자들을 위한 쾌유 기도는 물론이고 불서를 보급하고 병실마다 위문 방문을 다니며 봉사 활동을 계속하였다.

그 당시 보훈병원의 환자들은 기독교와 천주교 봉사자들은 많이 보았지만 불교 봉사자는 처음이라며 거리감을 두기도 하였다. 하지만 스님을 비롯하여 불교 자원봉사자들의 한결같은 봉사 활동에 점점 친숙해져 나중에는 오히려 위문 방문을 은근히 기다리게 되었다.

스님은 한국보훈병원에서의 봉사 활동을 지속해나가는 한편 공부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1994년 중앙승가대학교에 입학한 뒤 4년 동안 보훈병원에서 개운사까지 통학하며 열의를 쏟았다.

한국보훈병원에 보훈법당 건립

보훈법당이 설립되기까지는 힘겹고 복잡한 과정과 절차를 거쳐야 했다. 한국보훈병원 원장과의 면담을 요청하여 보훈법당 건립을 촉구하는 상이용사를 비롯한 환자 및 가족들의 뜻을 전하고 서명 날인을 받으며 첫걸음을 떼기 시작하였다.

공부와 봉사 활동을 병행하며 바쁜 생활을 보내는 가운데서도 스님은 한국보훈병원에서 당시 총무원장 스님이신 탄성스님을 모시고 위문 법회 행사를 개최하기도 했다. 제1부 법회에 이어서 진행된 제2부 행사에서는 불자 연예인 초청 위문 공연을 펼쳐 환자들과 가족은 물론 병원 임직원들까지 모처럼 즐겁고 흥겨운 시간을 함께하였다.

한국보훈병원은 국가를 위해 몸을 바친 유공자들과 그 가족의 건강한 삶을 위해 진료와 의학적, 정신적 재활을 도모하고자 설립된 것으로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소속의 공공 의료기관이다. 원래 보훈처 직속기관으로 있다가 국가 유공자들이 만든 보훈복지공단으로 소속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4년 당시 서울을 비롯하여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전국에 보훈병원이 있었으며, 법당은 서울, 대구, 부산, 대전 보훈병원 내에 갖춰져 있었다.

기독교에서는 일찍이 1987년부터 100평의 단독 건물을 지어 교회로 사용하였고, 천주교에서는 1992년에 주차장을 없애고 그 자리에 150평 규모의 성당을 지어 종교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불교계는 사정이 열악하였다. 1992년 10월에 설립된 불교 간병인협회에서 매주 금요일 환자와 가족을 위해 봉사를 계속했지만 법회를 열만한 마땅한 공간이 없어 활동에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그런 가운데 보훈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지문스님이 1994년 2월 병원 원장과의 면담을 통해 병원 내의 법당 건립을 요청하는 한편 상이용사를 비롯한 환자와 가족 등 84명에게 2차 서명 날인을 받은 것이다.

1994년 6월 17일 탄성스님을 모시고 위문 법회를 개최한 후에는 10평 정도의 환자 면담용 법사실을 일차적으로 제공하고 2~3년 뒤에 60~70평 규모의 법당을 마련해 주겠다는 약속을 병원 측으로부터 어렵사리 받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한 달 쯤 지나 7월 22일 협소하나마 10평 정도의 법당을 개원하여 정진스님을 비롯하여 덕신·진오·정문스님 등이 지도법사를 맡았고, 상임법사로는 지문스님이 내정되었다. 보훈법당은 가운데에 아미타불을 모셨고, 그 좌우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협시보살로 모셨다. 이는 죽음이 임박한 사람들이 큰 고통을 겪지 않고 아미타불의 극락세계로 가기를 발원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리고 지옥에 가는 중생을 아미타불이 계신 극락으로 인도해달라는 뜻에서 지장보살을 협시보살로 모신 것이다.

현재 보훈법당에서는 스님을 비롯하여 조계사 청년회 및 간병인 교육을 받은 분들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이들은 매주 금요일마다 병원을 찾아와 도서를 대여해주고, 병실을 방문하여 기도를 드리면서 환자를 위로하고 있다.

보훈병원 내 불자회

또한 보훈병원 안에서는 50여 명의 회원들이 모여 불자회를 운영하고 있다. 초대 회장 권영부, 제2대 회장 임희택에 이어, 현재 제3대 회장을 김택선 의사가 맡아 활동 중이다. 그런데 기독교에 비해 불교계 의료진이 워낙 적은 실정이라서 안타깝다고 한다. 지문스님은 목요일에는 낮 12시부터 1시까지 직원 법회를 열고, 토요일에는 낮 1시부터 2시 30분까지 환자 법회를 열고 있다. 그리고 해마다 연중 위문 행사를 300~400만원을 들여서 1월 1일과 설날, 사월 초파일, 칠월 백중날을 맞아 개최하기도 한다. 인등기도, 연등기도 등 부처님 조성 때의 비용은 총무원에서 얼마간 지원을 받았고 나머지는 입적하신 정진 비구스님이 1993~1996년까지 도와주셨다. 그리고 진오스님도 600만원이나 지원해주었다. 이밖에도 2~3년 동안 능인선원에서 1년에 쌀 2가마니, 봉은사에서 2~3회 정도 쌀을 지원해주었다.

현재는 행사에 들어가는 경비를 대부분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는데, 간간히 49재를 지내고 난 뒤의 시주물과 매달 5,000원씩 내는 인등비, 환자, 유가족, 직원 등의 보시금으로 어렵게 꾸려가고 있다. 법회나 행사가 없는 평소에는 오랫동안 병원에서 생활하는 장기 환자들을 위해 스님이 직접 비빔밥을 만들어서 따뜻한 불심을 전한다. 수술을 앞둔 환자나 그의 가족들은 대기하는 동안 초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기도할 때가 많다. 기도를 드리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스님이 법당을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누구나 언제든지 보훈법당에 와서 마음의 위안과 용기를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스님은 노력하고 있다.

2004년까지 11년째 활동하고 있는 스님의 공식 직함은 한국보훈병원 대한불교 조계종 보훈법당 상임법사이며, 병원 내에서는 관리자의 자격으로 위촉 직원에 해당되어 매월 60만원의 보시금이 나온다. 보훈법당의 전기요금을 비롯한 제반 공과금은 병원 측에서 부담하고 있고, 총 69평 중에서 법당과 사무실로 52평을 사용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침실과 욕실이 달린 방과 창고, 부엌 그리고 ‘보리차(菩提茶)’라는 이름의 다실로 쓰고 있다.

스님이 보훈병원에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바로 환자들이 법당에서 위안을 얻는 모습을 볼 때라고 한다. 한번은 73세에 뇌졸중으로 입원한 어느 환자분이 일주일에 한 번씩 보훈법당에 와서 기도를 올리곤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아가야, 울지 마라. 내가 낫게 해주마.” 하는 어떤 음성과 함께 큰 손이 그의 머리를 감싸시기에 누구냐고 물었더니, “내가 방장이니라.” 하고 대답하는 꿈을 꾸게 되었다. 그런데 그 꿈을 꾸고 난 뒤 물리치료를 받은 다음 놀랍게도 걸어서 나가셨다. 그리고 퇴원한 후 지금까지 매달 보훈법당을 방문하신다고 한다.

종종 횡포를 부려 병원의 골칫거리였던 두 환자가 법당이 생기고 난 뒤부터 언행을 조심하는 일도 있었다. 또 3년 동안 병원생활을 하면서 신심을 기르는 한편 도장 파는 기술을 익혀 퇴원 후 김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관절이 아픈 환자가 보훈법당에서 무료로 대여하는 책을 100여 권이나 읽은 뒤 용기를 갖고 열쇠 깎는 일을 하며 충실하게 생활하는 사람도 있다.

스님은 불제자로서 삼보정재를 쓰고 사는 한 불법에 합당한 일을 하여야 하며, 시주 은혜가 무서운 줄을 알고 자신의 근기를 파악해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회향하고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훈법당 등 필요한 곳에 종단 차원의 지원이 미치지 않아 매우 아쉬운 가운데서도 스님은 환자들과 그 가족들의 고통을 덜어주며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전심을 기울이고 있다.

2004년 지문스님은 한국보훈병원 보훈법당 상임법사로 활동하며 수행 정진 중이다.

참고자료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지문(志門)스님 본항목 지문스님(志門, 1958~) 志門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지문스님(志門,_1958生,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속성
지문스님(志門) 청해문중(靑海) ~의 일원이다
지문스님(志門) 종현스님(宗賢) ~의 수계제자이다
지문스님(志門) 남양주 견성암 ~에서 출가하다
지문스님(志門) 일타스님(日陀) ~(으)로부터 계를 받다 사미니계
지문스님(志門) 석주스님(昔珠) ~(으)로부터 계를 받다 비구니계
지문스님(志門) 중앙보훈병원 ~을(를) 건립하다 병원법당
지문스님(志門) 중앙보훈병원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포교법사
지문스님(志門) 대전보훈병원 ~을(를) 건립하다 병원법당
지문스님(志門) 대전보훈병원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포교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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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 중앙보훈병원 보훈법당 : 서울특별시 강동구 둔촌동 6-2



주석

  1. 불전(佛殿)을 돌보고 각종 의식(儀式)을 담당하는 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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