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성타스님(性陀, 1934生, 비구니)"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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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타스님은 2023년 1월 6일 대구 부인사에서 세수90세, 법랍74년로 입적하였다. 1월 8일 영결식 때 푸른 하늘에 무지개가 뜨고 온 도량이 향내로 진동했다. 수계제자로는 [[탄형스님(呑炯, 1948生, 비구니)|탄형(呑炯)]]·종진(悰晋)·청호(靑昊)·종원(宗圓)·청원(靑圓) 스님 등이 있다. 스님의 임종게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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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타스님은 2023년 1월 6일 대구 부인사에서 세수90세, 법랍74세로 입적하였다. 1월 8일 영결식 때 푸른 하늘에 무지개가 뜨고 온 도량이 향내로 진동했다. 수계제자로는 [[탄형스님(呑炯, 1948生, 비구니)|탄형(呑炯)]]·종진(悰晋)·청호(靑昊)·종원(宗圓)·청원(靑圓) 스님 등이 있다. 스님의 임종게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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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11일 (수) 11:07 판



정의

성타(性陀)스님은 출가 11년째 되던 해에 소지공양(燒指供養)을 할 정도로 구도에 대한 열정이 높았으며, 선덕여왕의 원찰인 부인사 토지 환원 및 복원에 열정을 보여주신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934 대구 출생
1947 충북 법주사에서 경담(鏡潭)스님을 은사로 출가
1948 법주사에서 자운(慈雲)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58 해인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1959 김룡사에서 수선 안거 이래 25 하안거 성만
1974~1981 8년간 4, 5대 종회의원 역임
1982~1985 석남사 3년 결사
1984 경북 영천 영지사 주지
1984~1986 경상북도 비구니회 지부장
1986~2004 대구 부인사 주지
1993~1995 단일구족계단 비구니 증사(14, 15, 16, 특 1, 2회 존증아사리)
1996~1997 단일계단 수계산림 비구니 니갈마 아사리
2002~2004 법기문중 회장
2021 부인사 회주
2023.1.6. 대구 부인사에서 입적 (세수90세, 법랍74년)
문중 법기문중(法起)
수계제자 탄형(呑炯)·종진(悰晋)·청호(靑昊)·종원(宗圓)·청원(靑圓)

활동 및 공헌

출가

서현(西現) 성타(性陀)스님은 1934년 대구시 도학동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곡산이고, 이름은 연제한이다. 스님은 1947년 14세의 어린 나이에 충북 법주사에서 경담(鏡潭)스님을 은사로 출가했고, 그 후 법주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했다.

소지 공양

성타스님은 평생을 수행에만 몰두하겠다는 의지로 출가 11년째 되던 해에 오른손 검지와 중지 두 마디에 향유를 바르고 소지공양(燒指供養)을 했다. “소지공양을 올리면 육체로 인해 생기는 번뇌를 끊을 수 있고 수행에만 전념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도반 4명과 함께 연비를 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스님은 부처님 법만 보고 들으며 살아왔다. 그동안 '타 들어가는 손가락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고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스님은 그런 물음에 묵묵히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성타스님이 수행하던 시절은 6·25전쟁, 불교정화운동 등 불교계 안팎으로 변화가 많던 격동의 시대였다. 먹을 것이 없어서 매일 탁발로 끼니를 이어갔으며, 선방에 들어갈 때도 안거 동안 자신이 먹을 양식을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등 수행자로 살아가기가 힘든 시절이었다. 그러나 깨달음을 향한 마음만은 매우 간절하여 생활의 고단함을 이기고도 남았다.

성타스님이 태백산 각화사 인근 암자에서 토굴 생활을 할 때의 이야기이다. “그때는 매일 화두를 들었는데, 허리를 땅에 대지 않아도 정말로 피곤하지 않았어요. 가끔 밖에 나가려고 고무신에 발을 넣어보면 따뜻했지요. 그러면 다시 선방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어요. 환희심이 절로 났지요. 신이 나서 미친 듯이 화두 참구를 한 것 같아요.”

부인사 소유 토지 환원 불사

[선덕여왕 숭모재(2013년)] 사진출처: [사진]봉은불자 다음 카페https://cafe.daum.net/domunsrory/Y1ZK/171?q=%EC%84%A0%EB%8D%95%EC%97%AC%EC%99%95+%EC%88%AD%EB%AA%A8%EC%A0%9C&re=1

1986년 성타스님은 의현스님께 “경상남도에는 비구니 선방이 3개 밖에 없습니다. 저는 비구니 선방을 여는 것이 소원입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의현스님은 “삼년 결사를 마치면 나와서 동화사 말사를 둘러보고, 마음에 들면 때에 따라서 주겠다.” 라는 약속을 하셨다.

결사를 마친 스님은 마땅한 사찰을 찾아 나섰다. “나는 그때 차도 없이 버스를 타고 걸어 다녔는데, 자그마치 15군데를 돌아보았어요. 비구니 처소는 산중에 있으면서도 평탄하고 교통도 괜찮은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내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지금은 차가 들어오지만 그때는 참 힘들었어요.”

스님은 황무지나 다름없는 곳에 대가람을 세우는 불사를 시작했다. 우선 되찾을 수 있는 땅은 되찾고, 사야 할 땅은 따로 매입해야 했다. “처음 들어왔을 때 내 수중에 있는 거라고는 6~7만 원뿐이었는데, 불사를 다 해놓고 따져보니 50억이 넘게 들었어요. 나는 불사한다면서 구구하게 신도 집을 찾아다니지 않았어요. 처음부터 그렇게 원을 세웠고, 나는 스스로 그 약속을 지켰지요. 나는 지금까지 큰 신도가 없었어요. 불사 때문에 특별히 신도들한테 신경 쓴다는 게 왠지 내키지 않았던 거지요. 그래도 내가 복이 많고 덕이 많았으면 큰 신도들이 찾아왔을텐데, 다 내가 부족해서 20년 주지 생활하면서 이것밖에 하지 못한 것 같아요. 그 대신 지난 20 년간 나는 하루 사분 정근을 빠진 적이 없고, 한 시간도 늦은 적이 없어요. 덕도 부족하고 큰 신도도 없이 이만큼이라도 불사를 이룬 것은 모두 기도 덕분이라고 믿습니다.”

부인사의 잃어버린 땅을 되찾기란 매우 힘든 일이었다. 마을사람들이 사찰 부지를 포도밭 등으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되찾은 땅은 3,000평 정도이고, 새로 매입한 땅도 3,000평 가량 된다. 재판을 하지 않고 등기한 땅이 300평 정도였으며, 나머지는 모두 재판을 통해 되찾았다. 스님은 종교 용지로 2필지를 묶어 총 7,000평의 땅을 사찰부지로 등록했다.

부인사 선덕여왕 숭모재

매년 한국 역사상 최초의 여왕인 신라 27대 선덕여왕을 기리는 불교행사인 ‘부인사 선덕여왕 숭모재’가 매년 3월 보름에 부인사 경내 숭모전에서 개최되는데, 성타스님이 1987년 음력 3월15일을 시작으로 이 행사를 부활했다. 부인사는 7세기 중반 경 신라 27대 선덕여왕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설이 유력한 사찰로, 숭모전에서 매년 3월 보름 열리는 ‘숭모재(崇慕齋)’를 통해 신라 선덕여왕을 100여 년 동안 기려왔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신라왕에 제사를 올리는 유일한 행사로 민속학 관련 학자들로부터 민속학적 가치가 매우 높은 행사로 평가받고 있다.

성타스님의 오도송(悟道頌)

평생 정진만 해온 스님은 토굴 정진을 하던 어느 눈 내린 아침에 자연 풍경을 바라보다가 불쑥 오도송이 나왔다고 했다. 그러나 큰스님께 점검 받지 않아서 오도송이라고 할 수 없다고 강하게 부인하며, 오히려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말씀만 거듭했다.


         지난밤 검은 구름 달빛을 세우더니
         안개에 쌓인 나무 가지마다 눈꽃일세.
         토굴방 혼자 앉아 의구심 바로 보니
         고요한 이 내 마음 산천을 감싸더라.

입적과 임종게

성타스님은 2023년 1월 6일 대구 부인사에서 세수90세, 법랍74세로 입적하였다. 1월 8일 영결식 때 푸른 하늘에 무지개가 뜨고 온 도량이 향내로 진동했다. 수계제자로는 탄형(呑炯)·종진(悰晋)·청호(靑昊)·종원(宗圓)·청원(靑圓) 스님 등이 있다. 스님의 임종게는 다음과 같다.


         항아사 움켜쥐고 돌송곳 위에 놀며,
         삼천세계 뚫어보고 억겁을 파보아도,
         만법은 하나이고 내가 바로 주인공인데,
         헛되이 사라지는 흰 말총만 따라왔네.
         

대구 부인사

[부인사전경] 사진출처: 네이버블로그 https://blog.naver.com/goddragon1/222762528795
[성타스님 영결식에 나툰 무지개] 사진캡처: 전국비구니회, https://www.youtube.com/watch?v=t2g5j6R09zs

대구의 팔공산(八公山) 남쪽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부인사(符仁寺)는 이 지역의 대표적 명찰 가운데 하나이다. 행정구역상 소재지는 대구광역시 동구 신무동 355번지이며,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로 속해 있다.

창건 이후 고려 말까지의 부인사 연혁은 자세히 전하는 내용이 없다. 다만 고려 말의 여러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부인사는 오랫동안 거찰의 규모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신라와 고려시대에는 39개의 부속암자를 관장하였고 2천여 명의 승려가 머물며 수도하였다고 한다. 고려 현종 때부터 문종 때까지 도감(都監)을 설치하고 고려 초조대장경(初彫大藏經)을 판각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판각은 몽골의 칩입으로 대부분 소실되었고, 현존하는 1,715판도 일본 교토[京都] 난젠사[南禪寺]에 보관되어 있다. 몽골 칩입 이후 중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다시 불탔다.

지금 건물은 1930년대 초 비구니 허상득(許相得)이 원 위치에서 서북쪽으로 약 400m 거리에 있는 암자터에 중창한 것이다. 당우에는 석가모니불상과 아미타불상, 관세음보살상을 안치한 대웅전과 선덕묘, 2동의 요사채가 있다.

부인사 승도란(僧徒亂) : 무신집권에 대한 반란

고려 후기인 1203년(고려 신종 6) 무렵에 이르러 부인사에서는 큰 정치적 사건이 발생한다. 보통 "부인사 승도란(僧徒亂)"으로 부르는 사건인데, 이 사건은 부인사 승려들이 중심이 되어 최씨 무신정권에 반발한 반란이었다. 이미 1202년에도 운문사와 부인사·동화사 등의 승려들이 연합하여 경상북도 영천(永川)의 관아를 공격한 일이 있었다. 1203년의 부인사 승도란은 그 전 해에 있었던 영천 공격 사건과 연계되는 난이었다.

무신집권기에 지방 사원의 승려들이 반란을 일으킨 사례는 적지 않게 발견되는데, 부인사 승려들이 일으킨 이 난은 경상북도 청도 운문사(雲門寺)에서 발생한 난과 함께 규모가 컸던 승려란으로 평가된다. 이 시기 승려와 지방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반란 사건은 고려 후기 정치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며, 이에 대해서는 이미 일반 정치사 분야에서의 연구가 이루어진 바 있다. 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다음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52XXXX317499)

참고자료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성타(性陀)스님 본항목 성타스님(性陀, 1934~) 性陀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성타스님(性陀,_1934生,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속성
성타(性陀)스님 법기문중(法起) ~의 일원이다
성타(性陀)스님 경담(鏡潭)스님 ~의 수계제자이다
성타(性陀)스님 보은 법정사 ~에서 출가하다
성타(性陀)스님 자운(慈雲)스님 ~(으)로부터 계를 받다 사미니계, 비구니계
성타(性陀)스님 대구 부인사(신무동)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주지
성타(性陀)스님 대구 부인사(신무동) ~을(를) 중창하다
성타(性陀)스님 신라 선덕여왕 ~을(를) 수행(거행)하다 선덕여왕숭모제(연례행사)
성타(性陀)스님 안거 ~을(를) 성만하다 문경 김룡사
성타(性陀)스님 구족계단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비구니 증사(별소계단 14-16회, 특 1-2회 존증아사리, 갈마아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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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 부인사 : 대구광역시 동구 신무동 356-1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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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준스님(敬俊, 1933년생) 묘정스님(妙靜, 1949년생) 성관스님(性觀, 1940년생) 자광스님(慈光, 1936년생) 창수스님(昌守, 1842년생)
경훤스님(敬昍, 1946년생) 묘찬스님(妙璨, 1926년생) 성관스님(成觀, 1951년생) 자득스님(慈得, 1945년생) 창호스님(彰浩, 1889년생)
경희스님(慶喜, 1931년생) 묘희스님(妙喜, 1937년생) 성덕스님(盛德, 1942년생) 자민스님(慈珉, 1939년생) 천일스님(天日, 1912년생)
계수스님(桂修, 1946년생) 무구스님(無垢, 1959년생) 성륜스님(性輪, 1918년생) 자산스님(慈山, 1933년생) 청룡스님(靑龍, 1925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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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주스님(季珠, 1914년생) 문수스님(紋秀, 1939년생) 성문스님(性文, 1893년생) 자윤스님(慈允, 1928년생) 쾌유스님(快愈, 1907년생)
계환스님(戒環, 1953년생) 백졸스님(百拙, 1936년생) 성법스님(性法, 1929년생) 자은스님(慈恩, 1943년생) 탁연스님(卓然, 1949년생)
관월스님(觀月, 1904년생) 범조스님(梵早, 1941년생) 성수스님(性樹, 1948년생) 자현스님(慈賢, 1896년생) 탄형스님(呑炯, 1948년생)
관정스님(觀晶, 1937년생) 법공스님(法空, 1471년생) 성연스님(性蓮, 1920년생) 장일스님(長一, 1916년생) 태경스님(泰鏡, 1930년생)
관주스님(觀柱, 1922년생) 법공스님(法空, 1937년생) 성연스님(聖蓮, 1928년생) 재근스님(在根, 1940년생) 태구스님(泰具, 1920년생)
광옥스님(光玉, 1943년생) 법농스님(法農, 1962년생) 성우스님(惺牛, 1918년생) 재문스님(載文, 1943년생) 하경스님(荷景, 1937년생)
광우스님(光雨, 1926년생) 법능스님(法能, 1932년생) 성원스님(性源, 1918년생) 재현스님(在玄, 1946년생) 해성스님(海成, 1958년생)
광호스님(光毫, 1915년생) 법륜스님(法倫, 1948년생) 성월스님(性月, 1947년생) 재호스님(宰毫, 1938년생) 해운스님(海雲, 1920년생)
금룡스님(金龍, 1892년생) 법성스님(法性, 1914년생) 성일스님(性一, 1944년생) 재홍스님(在洪, 1931년생) 해주스님(海住, 1951년생)
긍탄스님(亘坦, 1885년생) 법성스님(法惺, 1938년생) 성주스님(性主, 1825년생) 적조스님(寂照, 1942년생) 행원스님(行願, 1927년생)
뇌묵스님(雷默, 1919년생) 법성스님(法性, 1940년생) 성주스님(性住, 1938년생) 정관스님(靜觀, 1945년생) 허경스님(虛鏡, 1440년생)
능인스님(能忍, 1944년생) 법용스님(法涌, 1936년생) 성주스님(性珠, 1946년생) 정덕스님(正德, 1933년생) 현각스님(玄覺, 1935년생)
능인스님(能仁, 1946년생) 법운스님(法雲, 1927년생) 성지스님(聖智, 1926년생) 정률스님(廷律, 1963년생) 현묵스님(炫默, 1932년생)
대각스님(大覺, 1914년생) 법운스님(法雲, 1937년생) 성진스님(性眞, 1896년생) 정명스님(淨明, 1940년생) 현성스님(賢星, 1945년생)
대영스님(大英, 1903년생) 법인스님(法印, 1930년생) 성총스님(聖叢, 1944년생) 정명스님(正明, 1954년생) 현수스님(賢秀, 1943년생)
대우스님(大愚, 1949년생) 법일스님(法一, 1904년생) 성타스님(性陀, 1934년생) 정목스님(正牧, 1960년생) 현정스님(玄定, 1948년생)
대은스님(大恩, 1852년생) 법전스님(法田, 1927년생) 성탄스님(性坦, 1911년생) 정묘스님(靜妙, 1941년생) 현진스님(玄眞, 1934년생)
대행스님(大行, 1927년생) 법전스님(法典, 1945년생) 성현스님(聖賢, 1927년생) 정성스님(定星, 1940년생) 현진스님(玄眞, 1937년생)
대현스님(大玄, 1916년생) 법종스님(法宗, 1945년생) 세등스님(世燈, 1926년생) 정수스님(貞守, 1939년생) 현찬스님(賢讚, 1934년생)
대현스님(大玄, 1957년생) 법진스님(法眞, 1942년생) 소림스님(昭林, 1937년생) 정수스님(淨洙, 1941년생) 현행스님(賢行, 1928년생)
덕수스님(德修, 1922년생) 법천스님(法泉, 1944년생) 수옥스님(守玉, 1902년생) 정심스님(定心, 1918년생) 혜경스님(慧鏡, 1924년생)
덕운스님(德雲, 1942년생) 법형스님(法衡, 1921년생) 수인스님(守仁, 1779년생) 정심스님(正心, 1925년생) 혜광스님(慧光, 1940년생)
도광스님(度光, 1952년생) 법홍스님(法弘, 1943년생) 수인스님(守仁, 1899년생) 정안스님(正眼, 1950년생) 혜근스님(慧根, 1935년생)
도문스님(道門, 1942년생) 법희스님(法喜, 1887년생) 수진스님(守珍, 1916년생) 정안스님(淨岸, 1951년생) 혜돈스님(慧頓, 1949년생)
도상스님(道常, 1937년생) 법희스님(法希, 1930년생) 수진스님(修眞, 1950년생) 정운스님(淨雲, 1954년생) 혜등스님(慧燈, 1946년생)
도성스님(道成, 1922년생) 법희스님(法熺, 1952년생) 수현스님(修賢, 1940년생) 정원스님(正圓, 1939년생) 혜명스님(慧明, 1917년생)
도연스님(道鍊, 1911년생) 보각스님(普覺, 1904년생) 수현스님(修賢, 1941년생) 정인스님(正忍, 1946년생) 혜문스님(慧門, 1930년생)
도원스님(道圓, 1904년생) 보각스님(寶覺, 1938년생) 수환스님(修還, 1950년생) 정일스님(淨日, 1934년생) 혜소스님(慧沼, 1931년생)
도준스님(道準, 1900년생) 보명스님(寶明, 1946년생) 순희스님(順姬, 1917년생) 정행스님(淨行, 1902년생) 혜안스님(慧眼, 1912년생)
도헌스님(度憲, 1939년생) 보명스님(寶明, 1954년생) 신전스님(信典, 1934년생) 정화스님(淨華, 1922년생) 혜안스님(慧眼, 1923년생)
도훈스님(道勳, 1933년생) 보문스님(普門, 1938년생) 연호스님(蓮湖, 1930년생) 정화스님(貞和, 1923년생) 혜옥스님(慧玉, 1901년생)
동근스님(東根, 1951년생) 보선스님(普善, 1946년생) 영수스님(暎修, 1941년생) 종수스님(宗秀, 1922년생) 혜운스님(慧雲, 1911년생)
동성스님(東城, 1913년생) 보영스님(普暎, 1937년생) 영운스님(靈雲, 1946년생) 종수스님(鍾修, 1922년생) 혜원스님(慧圓, 851년생)
동현스님(東玄, 1945년생) 보원스님(普願, 1944년생) 영원스님(盈圓, 1949년생) 종식스님(宗植, 1944년생) 혜은스님(慧隱, 1937년생)
동희스님(東熙, 1945년생) 보인스님(寶仁, 1924년생) 영춘스님(永春, 1894년생) 종실스님(宗實, 1951년생) 혜일스님(慧日, 1919년생)
만선스님(萬善, 1883년생) 보현스님(普賢, 1934년생) 예순스님(禮順, 1587년생) 지광스님(志光, 1934년생) 혜일스님(慧日, 1947년생)
만선스님(萬善, 1906년생) 보화스님(普和, 1933년생) 운달스님(雲達, 1942년생) 지명스님(智明, 1921년생) 혜전스님(慧田, 1929년생)
만선스님(萬善, 996년생) 본각스님(本覺, 1952년생) 원오스님(圓悟, 1933년생) 지문스님(志門, 1958년생) 혜종스님(慧宗, 1930년생)
만성스님(萬性, 1897년생) 본공스님(本空, 1907년생) 원표스님(圓表, 1951년생) 지성스님(志性, 1939년생) 혜주스님(慧珠, 1925년생)
명길스님(明吉, 1931년생)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년생) 월혜스님(月慧, 1895년생) 지순스님(芝順, 1913년생) 혜준스님(慧俊, 1935년생)
명륜스님(明倫, 1937년생) 불필스님(不必, 1937년생) 육년스님(六年, 1906년생) 지연스님(知衍, 1947년생) 혜춘스님(慧春, 1919년생)
명성스님(眀星, 1931년생) 상근스님(祥根, 1872년생) 육문스님(六文, 1946년생) 지오스님(智悟, 1955년생) 혜해스님(慧海, 1921년생)
명수스님(明洙, 1925년생) 상덕스님(常德, 1951년생) 윤호스님(輪浩, 1907년생) 지우스님(至牛, 1935년생) 회선스님(會善, 1926년생)
명심스님(明心, 1947년생) 상덕스님(常德, 1952년생) 은영스님(恩榮, 1910년생) 지원스님(知元, 1931년생) 효성스님(曉星, 1898년생)
명안스님(明岸, 1941년생) 상덕스님(尙悳, 1925년생) 응민스님(應旼, 1923년생) 지원스님(智圓, 1938년생) 효성스님(曉惺, 1927년생)
명오스님(明悟, 1916년생) 상락스님(常樂, 1928년생) 인성스님(仁成, 1901년생) 지원스님(智願, 1942년생) 효성스님(曉星, 1948년생)
명완스님(明完, 1937년생) 상륜스님(相侖, 1929년생) 인완스님(仁完, 1930년생) 지인스님(智因, 1937년생) 효천스님(曉天, 1941년생)
명주스님(明珠, 1904년생) 상원스님(相源, 1939년생) 인정스님(仁貞, 1899년생) 지행스님(智行, 1941년생) 효탄스님(曉呑, 1955년생)
명철스님(明哲, 1939년생) 상조스님(常照, 1951년생) 인허스님(印虛, 1911년생) 지향스님(智向, 1941년생) 희선스님(喜善, 1929년생)
묘각스님(妙覺, 1928년생) 상훈스님(常熏, 1944년생) 인홍스님(仁弘, 1908년생) 지현스님(智玄, 1916년생) 희원스님(喜圓, 1951년생)
묘각스님(妙覺, 1942년생) 서용스님(瑞庸, 1948년생) 인화스님(忍和, 1912년생) 지현스님(智賢, 1933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