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기(法起)문중

bigu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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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기문중은 금강산 신계사 법기암 출신 문도의 결집에서 유래한다. 초조 대원(大願)스님, 2대 충휴스님, 3대 처금(處金)⋅창섬(昌暹)스님과 그 이후의 후계법손들이 금강산에서 각고의 선수행을 했던 데에 뿌리를 두고 있다.

법기문중이 초조로 모시고 있는 대원스님은 문중본찰 중 하나인 서울 옥수동 미타사 연혁에 도 등장한다. 1827년(순조27)에 쓰인 󰡔종남산미타사무량수전초창기(終南山彌陀寺無量壽殿草創記)󰡕와 1943년 안진호(安震湖)가 편찬한 󰡔종남산미타사약지(終南山彌陀寺略誌)󰡕를 참고하고, 문중계보상의 세계를 역산으로 계산해 보면 대원스님은 대략 18세기 후반기에서 19세기 전반기 인물이다.

법기문중은 1972년 석남사 인홍(仁弘, 9)스님과 회룡사 도준(道準, 9)스님 등 문중의 뜻있는 문도들이 주축이 되어 문중회의를 열고 문중계보를 정리하기로 한 것이 오늘날 법기문중 성립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문도들은 당시 종가에서 전해 내려온 연원과 각 종손들이 간직해오던 문중관련 자료들을 모아 서로 맞춰 근(根)과 지(枝)를 찾아본 결과 그동안 미처 몰랐던 근원(近遠)간의 선후배⋅도반들이 같은 문중이며 경향각지 대소사찰로 번성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고 새삼 놀랐다고 한다.

법기문중은 첫 문중회의를 개최한 지 12년만인 1984년 12월 20일 마침내 󰡔비구니법기문중계보󰡕를 발행하였다. 10년 후인 1994년 9월 20일 문중계보 증보판을 발행하고, 2008년 9월 15일 3차 개정증보판을 발행하여 1,2차 간행 당시 수록하지 못했던 문도들을 등재했다.

『법기문중계보』(1994)에서는 “요즘 사문들 간에 스승의 은혜와 고마움도, 제자의 대견함과 자랑스러움도, 문중의 화목과 단합도 점차 시들어간다”고 안타까워하면서 “우리 문중만이라도 옛날 인연 맺을 때의 마음을 되살려 서로가 도모하고 격려하고”, “문중의 후예들로 하여금 선과 계율을 위주로 한 사상을 잇고 가일층 정진하여 한국 비구니계의 주축이 될 수 있는 현인이 많이 배출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법기문중은 제3대 항렬의 사형인 처금과 사제인 창섬 대에 이르러 계통-계열의 분파를 이루면서 번성하기 시작했다. 대전 보문산 복전암⋅서울 숭인동 청룡사⋅경남 울산 석남사⋅서울 옥수동 미타사(금수암) 등 4개 계열로 나뉘어 세계를 잇고 있다. 처금은 청룡사⋅석남사⋅미타사(금수암) 계열의 선조사이고, 창섬은 복전암 계열의 선조사이다. (출처: 하춘생(2013), 『한국의 비구니문중』, 해조음, pp147~17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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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하춘생(2013), 『한국의 비구니문중』, 해조음, p 171) 법기문중_지도.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