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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23일 (수) 15:37 판
원오(圓悟)스님 | |
---|---|
법명 | 원오(圓悟) |
법호 | |
속명 | 김복순(金福順) |
출생 | 1933.02.06. |
출가 | 1958년 |
입적 | |
사찰 | 정법사 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동 209 |
특이사항 |
목차
정의
원오(圓悟)스님은 길상스님을 은사로 석남사에서 출가하였으며 부단한 수행을 하였으며 진주 정법사를 창건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연도 | 내용 |
---|---|
1933 | 경북 영주 출생 |
1958 | 석남사에서 길상(吉祥)스님을 은사로 출가 |
1960 | 통도사에서 자운(慈雲)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
1961 | 통도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
1962 | 지리산 삼불주에서 8년, 문수암에서 8년 정진 |
1979 | 진주 정법사 창건 |
1981 | 정법사 법당 단청 불사 |
1985 | 요사채 불사 |
2000 | 경주 금선선원에서 정진 |
2004 | 해인사 자비원 주석 |
문중 | 법기(法起)문중 |
수행지침 | 천하에 마음이 둘이 아니니 우주의 주지를 살라. |
생활신조 | 하루라도 빨리 불법에 들어와서 공부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
수계제자 | 정명(正明) · 현수(玄修) ·정진(正眞) · 정관(正觀) · 정각(正覺) · 현도(玄道) |
활동 및 공헌
출가
원오(圓悟)스님은 1933년 2월 6일 경북 영주에서 아버지 김선주(불명佛名)와 어머니 양무주(법명法名) 사이의 2남 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이며, 이름은 김복순이다.
스님의 어머니는 1956년 55세 때 해인사 국일암 문중으로 출가하셨다. 스님은 나이 26세 되던 1958년 2월 경북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가지산 석남사에서 길상(吉祥)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1960년 28세에 통도사에서 자운화상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하고, 그 이듬해에 통도사에서 자운화상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하였다.
수행
스님은 6·25전쟁을 겪은 후 출가를 한 탓인지 당시 세속에 대한 미련이 전혀 없었다. 출가한 후 행자 시절 공양주[1]를 3년 살고 삭발을 하였으며, 당시 석남사 스님들이 그러하였듯이 화두는 조계종 전 종정이셨던성철 큰스님께 받았다.
석남사 대웅전 불사 때에는 자갈과 모래 나르기, 기와 나르고 잇기, 나무하기 등 울력[2]이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흩어져 있던 부도를 모아서 축대를 쌓느라고 손가락을 다치기도 했다. 노동과 수행을 동시에 몸소 행하였으니 이는 백장청규의 '일일부작(一日不作) 일일불식(一日不食)'의 정신을 실천하였던 것이다. 스님은 엄동설한에 다친 손가락으로 소임을 살기 어려워 석남사를 나와 오대산에 계신 뇌묵스님을 찾아 정진하였다.
스님이 30세 되던 1962년 지리산에 계신 운영스님을 찾아가 도를 통하지 않으면 안 나가겠다는 결심으로 삼불주에서 8년, 문수암(혜암스님 토굴)에서 스님보다 먼저 출가한 어머니 무주스님, 속가의 동생이지만 역시 스님인 묘각스님과 함께 9년을 공부하며 지리산에서 만 16년을 공부하였다.
이렇게 공부하는 동안 3시간을 걸어나와서 보리쌀, 쌀 등을 탁발해서 끼니를 때우며 살았고, 옷은 '다후다'라는 천으로 만들었는데 한 번 해서 입으면 워낙 질겨서 10년을 넘게 입었다고 한다.
성철 큰스님께서 정해준 12가지 청규와 생식
성철 큰스님께서 정해준 12가지 청규를 수행의 기본으로 삼아 정진을 하며 30세이던 1962년부터 1972년까지 10년 동안 생식을 하였다. 그 12가지 청규는 다음과 같다.
1. 목불주잠상지의(目不注簪裳之儀) 눈으로 여인들의 치장한 모습을 보지 않는다.
2. 이불경진속지담(耳不傾塵俗之談) 귀로 불필요한 세상사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3. 수불제전폐지보(手不提錢鄕之寶) 손으로 견물생심 금은빛 돈 등을 잡지 않는다.
4. 기불접견백지루(肌不接絹弟之繼) 몸에다 명주비단 화려한 옷감을 대지 않는다.
5. 신불근단가지시(身不近檀家之施) 스스로 신도들의 청정한 시주를 받지 않는다.
6. 영불과니사지원(影不過尼寺之垣) 자신의 발걸음을 비구니 사찰에 스쳐가지 않는다.
7. 비불후신훈지채(鼻不與辛幸之矣) 코로 맵고 독한 오신채 냄새를 맡지 않는다.
8. 치불설생영지육(不醫齧生靈之肉) 입으로 형제자매 중생의 살점을 씹지 않는다.
9. 심불계시비지단(心不緊是非之端) 마음에 오매불망 중생의 시비를 두지 않는다.
10. 의불전역순지기(意不轉道順之機) 자신의 세운 뜻이 역순의 경계에 동요하지 않는다.
11. 예불간동녀지족(禮不揀童女之足) 예로써 남녀의 차별을 간택하지 않는다.
12. 설불롱타인지구(話不弄他人之咎) 혀로써 장난삼아 타인의 허물을 희롱하지 않는다.
생식은 쌀, 콩, 산뽕잎 가루만 먹었고, 눕지 않기 위하여 1년간 장삼을 입고 장좌불와하였다. 33세 되던 1965년에 공부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스님은 45세까지도 돈을 전혀 몰랐으며, 평소에 고생을 낙으로 삼으면 두려울 것이 없다는 신조로 생활하였다.
진주 정법사 창건
그 뒤 문수암을 나와 1979년에 무너져가는 진주 정법사 불사를 하였다. 1980년에 법당을 짓고, 1981년에 단청을, 1985년 53세 때 요사채를 완공하였다.
불사를 마치고 제자에게 주지를 물려준 스님은 경주시 충효동에 위치한 비구니 선방인 금선선원에서 손수 공양을 지으며 납자의 본분사를 찾았다. 원오스님은 하루의 일과를 정해놓고 스스로를 경책하고 있는데, 새벽 3시 30분부터 4시까지 예불을 올리고, 4시부터 5시까지 입선을 한다. 그리고 아침 8시부터 10시까지,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입선을 하고 있다. 스님은 좌선 도중 여러 번에 걸쳐 신묘한 경험을 하였다. 지리산에서는 옆쪽의 상봉이 정면으로 보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동네 아는 분의 집이 보인 적도 있었으며, 달밤에 산모퉁이에 사람이 보이면 잠시 후 실제 오는 등 경계가 있었다고 한다.
원오스님은 공부하는 수행인의 자세를 소나무를 자르는 것에 비교하는데, 줄기를 아무리 잘라도 밑동을 자르지 않으면 소용이 없듯이 밑동을 자르고 뿌리를 캐어서 모든 번뇌 망상의 뿌리를 다 태워 버려야만 우주의 진리를 다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공부가 어렵다는 생각을 비우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 천하에 마음이 둘이 아니니 우주의 주지를 살아야 합니다. 또 마음의 세계는 언어도, 문자도 끊어진지라 용맹한 마음으로 공부하면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이 지혜가 한량이 없습니다. 얼음이 크다고 늦게 녹는 것이 아닙니다. 응달의 작은 얼음이 양달의 큰 얼음보다 늦게 녹을 수도 있습니다.”
스님은 보시 정신과 젊은 수행자를 키우려는 자비 정신이 남다르다. 중앙승가대학교가 대원학사에 비구니수행관을 지을 때 화주하러 온 스님에게 두 말도 묻지 않고 은행에 데려가서 수행관 한 평 불사비를 찾아서 건네기도 하였다.
'하루라도 빨리 불법에 들어와서 공부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라고 결연하게 말하는 원오스님은 2004년 해인사 자비원에 주석하며 수행 정진 중이다.
수계제자로는 정명(正明) · 현수(玄修) ·정진(正眞) · 정관(正觀) · 정각(正覺) · 현도(玄道) 스님 등이 있다. (속가 어머니는 무주스님, 동생은 묘각스님)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p. 570~575.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342.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66, 367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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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오(圓悟)스님 | 본항목 | 원오스님(圓悟, 1934~) | 圓悟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원오스님(圓悟,_1933生,_비구니)) |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 항목2 | 관계 | 속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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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오(圓悟)스님 | 법기문중(法起) | ~의 일원이다 | |
원오(圓悟)스님 | 길상(吉祥)스님 | ~의 수계제자이다 | |
원오(圓悟)스님 | 울주 석남사 | ~에서 출가하다 | |
원오(圓悟)스님 | 자운(慈雲)스님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사미니계, 비구니계 |
원오(圓悟)스님 | 진주 정법사 |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 주지 |
원오(圓悟)스님 | 진주 정법사 | ~을(를) 창건하다 |
지도
- 정법사 : 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동 209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