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오스님(明悟, 1916生, 비구니)"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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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지침|| 파거불행(破車不行) 노인불수(老人不修) 구무다언(口無多言) 신불경동(身不輕動) | |수행지침|| 파거불행(破車不行) 노인불수(老人不修) 구무다언(口無多言) 신불경동(身不輕動) |
2023년 2월 25일 (토) 09:31 판
명오(明悟)스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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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명 | 명오(明悟) |
법호 | 월암(月巖) |
속명 | 백옥선(白玉仙) |
출생 | 1916.02.25. |
출가 | 1927년 |
입적 | 1997.11.26. (세수82세, 법랍71세) |
사찰 | 보문동 보문사 서울특별시 성북구 보문동3가 168 |
특이사항 |
목차
정의
명오(明悟)스님은 긍탄스님을 은사로 보문사로 출가하여 현재의 보문사가 있기까지 보문종 설립과 보문사 중창에 힘을 쓴 대한민국의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연도 | 내용 |
---|---|
1916 | 경기도 양주 출생 |
1927 | 보문사에서 긍탄(亘坦)스님을 은사로 출가 |
1935 | 망월사에서 용성(龍城)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
1938 | 보문강원 사집과 수학 |
1941 | 보문강원 사교과 수학 |
1944 | 보문사에서 용성(龍城)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
1947 | 보문강원 대교과 졸업 |
1971 | 재단법인 대한불교 보문원 이사 취임 |
1984 | 의정부 명덕사 창건 |
1986 | 재단법인 대한불교 보문원 이사장 취임 |
1990 | 대한불교 보문종 원로원장 취임 |
1997. 11. 26. | 입적 (세수 82세, 법납 71세) |
문중 | 긍탄문중 |
수행지침 | 파거불행(破車不行) 노인불수(老人不修) 구무다언(口無多言) 신불경동(身不輕動) |
생활신조 | 근면, 검약, 성실 |
수계제자 | 순형(順馨)・법민(法旼) |
활동 및 공헌
출가
월암당(月巖堂) 명오(明悟)스님은 1916년 2월 25일 경기도 양주군 백석면 홍죽리에서 아버지 백봉식 처사와 어머니 성간난 보살 사이의 1남 4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본관은 수원이며, 이름은 백옥선이다. 스님은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며 단정하며 수려한 외모까지 갖추어 입궁(入宮)의 기회를 가지게 되었는데, 입궁 하자마자 울음을 그치지 않고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바람에 할 수 없이 궁에서 나오게 되었다.
1927년 12세 되던 해 보문사 주지스님인 긍탄스님과의 기연(機緣)으로 보문사로 입산 출가하여 긍탄스님의 제자가 되었다. 당시 긍탄스님께서는 매우 둥그렇고 큰 보름달이 환한 빛을 뿜으며 스님에게로 다가오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 직후 명오스님이 긍탄스님을 은사로 출가하게 된 것인데, 두 스님의 인연이 매우 특별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나중에 긍탄스님과 각별한 사이인 이종욱 박사에게서 ‘월암(月巖)’이라는 호(號)를 헌사(獻辭) 받는다. 긍탄스님께서는 명오스님의 수행의 폭을 넓히기 위해 늘 자신의 만행 길에 동행시여 금강산을 비롯한 전국 각지를 두루 참방케 하였다.
스님은 1935년 의정부 망월사에서, 기미년 독립선언문을 선포한 33인 가운데 불교계 대표이셨던 백용성 큰스님으로부터 사미니계를 수지하였다.
교육과 수행
출가 후 은사을 시봉하면서 보문사 중창불사에 진력하던 스님은 1939년에는 보문사 강원에서 정영명 강주스님의 지도 아래 사집과를, 1941년 정금광 강주스님으로부터 사교과를 졸업하였다. 그리고 1944년 보문사에서 백용성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하였다.
일찍이 출가하여 젊은 시절부터 염불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명오스님은 1947년 보문강원에서 대교과를 이수하고 나서도 초발심의 자세로 돌아가 늘 발심수행장을 외우며 실천수행에 힘썼다.
보문사 중창 노력
보문사는 고려 16대 예종왕 10년(1115년) 담진국사(曇眞國師)에 의해 창건되어 비구니스님들의 수행처로 그 면목을 이어오고 있는 사찰이다. 전문 강원을 설립하여 서울 시내에 주석하는 비구니스님들의 경전을 공부하는 요람이 되었으며, 선불장의 건립으로 선원까지 개원하여 명실상부한 비구니 종찰로서 200여명이 넘는 대중이 상주하기도 했다. 1972년에는 뒷산의 암벽을 뚫어 경주 석굴암과 똑같은 석굴암을 만들어 서울시민들을 위한 편안한 수행의 요람처로 조성하였다.
1988년에는 보문사가 800여년의 유구한 역사의 수행처인 전통사찰로 등록되었으며 1996년에는 대웅전 영산회상 후불탱화와 신중탱화, 묘승전의 지장탱화가 서울시 지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대웅전이 퇴락하여 쓰러질 듯 볼품이 없었던 보문사가 수많은 고비를 극복하며 오늘의 대찰로 거듭나기까지는 명오스님의 근검절약과 염불 수행정진이 큰 힘이 되었다. 명오스님은 1971년 재단법인 대한불교 보문원이 설립, 인가되자 이사로 취임한 후 의정부 용현동의 전답을 발전기금으로 희사하여 재단의 기틀을 튼튼히 만들어 놓았다.
명덕사 창건과 후학들을 위한 노력
1984년에는 의정부 용현동에 명덕사를 창건하였고, 1987년에 후학의 교육을 위해 장학금 제도를 만드는 등 종단의 기틀과 도제양성에 힘썼다.
백장스님의 ‘일일부작(一日不作)이면 일일불식(一日不食)’이라는 철칙으로 삼고, 삼보정재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항상 근검절약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스님은 철저한 수행 가운데서도 틈틈이 고사성어를 익혀서 스님 특유의 재담과 유머로 후학들에게 웃음과 여유를 잃지 않는 가르침을 주었다.
또한, 자비심의 발환으로 아동들의 보육에 힘쓰시어 30여 명이 넘는 불제자를 배출하였고, 도제양성(度弟養成)의 높은 뜻을 세워 교육기금으로 장학금을 기탁하였다.
재단법인 보문원의 이사장으로 취임
1986년에는 재단법인 보문원의 이사장으로 취임하였고, 1990년 보문종 원로원장으로 추대되어 종단의 기틀을 굳건히 다졌다. 입적 후 후학들을 위한 수행도량이나 수련원의 목적으로 전답을 남겼는데, 이는 명오스님이 보문원의 이사장으로 취임하여 종단의 발전과 도제양성에 얼마나 주력하였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명오스님은 ‘늘 육근(六根)이 청정해야 맑은 수행이 이루어진다.’며 젊은 시절의 수행을 강조하였고, 후학들의 교육에 유달리 힘을 썼다.
입적
1997년 11월 26일 세수 82세, 법랍 71세로 보문사에서 입적하였다. 명오스님은 평생 보문사를 떠나지 않았던 원로 중의 원로였다. 수계 제자로는 순형(順馨)・법민(法旼)스님과 손상좌 인태(仁太)스님 등이 있다.
보문사
홈페이지: http://www.bomunsa.or.kr/
대한불교보문종의 총본산이다. 1115년(예종 10)에 담진(曇眞)이 비구니의 수련장으로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조그만 암자로, 탑골에 있었으므로 탑골 승방이라 하였다. 그 뒤 1692년(숙종 18)에 대웅전을 개축하는 등 수차례 중수를 하였으며, 1945년부터 비구니 은영(恩榮)이 주지로 취임하면서 절을 크게 중창하였다.
원래는 조계종 산하의 소속 사찰이었으나 1972년 독립하여 보문종을 창종하고 보문종의 본산이 되었는데, 현재 그 규모면에서 굴지의 거찰(巨刹)이 되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극락전·석굴암·호지문·선불장(選佛場)·보광전(普光殿)·산령각(山靈閣)·석굴암노전(石窟庵爐殿)·삼성각(三聖閣)·별당·요사채, 한의원 및 특별양로원이 있는 시자원(施慈園)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석굴암은 은영이 그 분야의 권위자를 모아 준공위원회를 구성하여 조각과 설계를 하였고, 공사비만 1억을 들여 1972년 부처님 오신 날에 착공하였으며 3년 6개월의 역사 끝에 점안식을 가졌다. 경주 석굴암과 똑같은 규모로 만들었으나, 구성면에서 볼 때 경주 석굴암은 정면이 1문인 데 비하여 이곳은 3문이며, 실내 벽을 이중으로 만들고 실내 천장으로 공기가 유통되게 하였다. 단지, 경주 석굴암의 전실에 있는 팔부신중상(八部神衆像)을 이곳에서는 생략하고 있다.
특기할 만한 오래된 문화재는 없으나 석굴암 앞의 높은 단 위에 세워진 팔각구층석탑은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月精寺)의 팔각구층석탑을 그대로 재현한 것으로, 탑 안에는 인도에서 가져온 석가여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다. 이 절은 세계 유일의 비구니들만으로 구성된 보문종의 총본산으로서 언제나 150명이 넘는 비구니들이 수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수도의 분위기가 특히 엄숙한 도량이다.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상권. 뜨란출판사, 2007, pp. 258~261.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118.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258.
- 불교신문, 세계 유일 비구니 종단 역사가 고스란히 기록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42446
- 법보신문, 보문종 명오 종사 입적 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5074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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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오(明悟)스님 | 본항목 | 명오스님(明悟, 1916~1997) | 明悟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명오스님(明悟,_1916生,_비구니) |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 항목2 | 관계 | 속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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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오(明悟)스님 | 보문종문중(普門宗) | ~의 일원이다 | |
명오(明悟)스님 | 긍탄(亘坦)스님 | ~의 수계제자이다 | |
명오(明悟)스님 | 서울 보문사(보문동3가) | ~에서 출가하다 | |
명오(明悟)스님 | 용성(龍城)스님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사미니계, 비구니계 |
명오(明悟)스님 | 서울 보문사(보문동3가) | ~을(를) 중창하다 | |
명오(明悟)스님 | 의정부 명덕사 | ~을(를) 창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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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 보문동 보문사 : 서울특별시 성북구 보문동3가 168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