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 20년쯤 되던 해 소림사 회주 금광스님이 비구니도 법맥이 있어야 한다며 스님을 법상좌로 맞아 비구니 법맥을 잇도록 하였다. 이때 「태허(太虛)」라는 법호를 받았는데 금광스님은 전법게(傳法偈)와 함께 “걸림이 없는 허공으로 원융무애한 근본자리에서 법맥을 이으라고 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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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 20년쯤 되던 해 부산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819326&cid=55777&categoryId=56123 소림사] 회주 [[금룡스님(金龍, 1892生, 비구니) 금광스님(금룡스님)]이 비구니도 법맥이 있어야 한다며 스님을 법상좌로 맞아 비구니 법맥을 잇도록 하였다. 이때 「태허(太虛)」라는 법호를 받았는데 금광스님은 전법게(傳法偈)와 함께 “걸림이 없는 허공으로 원융무애한 근본자리에서 법맥을 이으라고 명하였다.
광우(光雨)스님은 비구니 교육과 비구니 역량 결집, 불교계 여성의 대사회적 실천에 앞장선 대한민국의 비구니로 전국비구니회 전신인 '우담바라회' 창립, 서울시립 목동청소년 회관 관장, 조계종 종책자문 위원, 전국비구니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대한민국 최초 비구니명사로 품서되었다.
광우스님은 1926년 경북 군위에서 아버지 이혜봉과 어머니 김화순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우연히 시험공부를 하러 경상북도 상주군 남장사에에 갔다가 참선하는 스님의 모습이 신기하여 “스님 왜 그렇게 앉아 계십니까?”하고 질문하였다. 그러자 스님은 “지금 묻고 있는 그 놈이 무엇이냐?”라고 되묻자 꽉 막혀버렸다. 그러자 스님은 “내가 지금 바로 그걸 찾고 있는 중이다.”라고 답변하는 것이었다. 그 후 생에 대한 큰 질문을 갖고 속가 부친이기도 한 혜봉선사께 참선의 요지에 대한 말씀을 듣고는 환희심 일어 발심출가하게 되었다.
교육
1938년(15세) 직지사에서 성문스님을 은사로 출가득도, 상주 남장사 관음강원에서 비구니 수옥스님께 대교과를 마치고 혜봉선사 밑에서 다년간 법화경, 선문염송을 배우다가 포교와 교육에 뜻을 품고 동국대 불교학과로 진학하여 비구니로서 첫 학사가 되었다.
비구니 금광스님의 법상좌
출가 20년쯤 되던 해 부산 소림사 회주 [[금룡스님(金龍, 1892生, 비구니) 금광스님(금룡스님)]이 비구니도 법맥이 있어야 한다며 스님을 법상좌로 맞아 비구니 법맥을 잇도록 하였다. 이때 「태허(太虛)」라는 법호를 받았는데 금광스님은 전법게(傳法偈)와 함께 “걸림이 없는 허공으로 원융무애한 근본자리에서 법맥을 이으라고 명하였다.
일제강점기 사찰 창건, 한국 전쟁 후 포교 매진
1942년에 경북 선산 도계에 비구니로서 문수사를 창건했으며, 문수사 주석 7년 동안 유생들이 다수였던 해당 지역의 많은 선비들을 불교에 귀의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주로 자기 수행에 집중했으나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피난길에 스쳐지나간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접하면서 이 세대와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는 불교 포교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동국대 재학 당시 사찰에서 정기 법회를 여는 경우가 거의 없어 타종교에 비해 대중의 접근성이 낮다는 자각 하고 1958년부터 ‘아무라도 믿을 수 있는 불교, 아무라도 행할 수 있는 불교, 아무라도 전할 수 있는 불교’ 라는 기치를 내걸고 곧바로 일요법회와 어린이법회, 학생법회, 청년법회(일반법회)를 개설하였다. 1961년에는 최초의 사찰포교 월간지 「신행불교」를 발행, 90년대 중반부터 계간지로 전환하였다. 또한 장학회 조직, 성북구 독거노인을 보살폈다. 1975년 정각사 장학회를 설립하였으며 청소년 교화연합회 심사분과위원장을 맡았고 1989년부터 1995년까지 7년 동안 서울 시립 목동청소년회관 관장을 역임한 바 있다.
전국 비구니회의 최초 조직인 “우담바라회” 창립에 산파역을 수행하고 여성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는 시대인 만큼 여성들을 계도하는데 장점을 가진 비구니스님들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을 자각하고 2대와 3대 회장 재임 시절 비구니스님들의 역량을 결집하는 구심점이 될 전국비구니회관을 강남구 수서동에 건립하였다.
표창
청소년지도 육성공로로 1992년 대통령 표창을 받은 바 있으며 불교진흥과 불교학술의 발전을 위해 ‘뇌허 학술상’을 제정, 14명의 수상자를 배출하였다.
한편, 생명나눔실천회의 이사등 교내에 두루 공헌해 온 지대한 공로가 인정되어 1998년 스리랑카 사르보다야가 제정한 의국 성직자 5명에게 주어지는 공로상 “싸싸나 키르띠스리 명예상을 수상한 바 있다. 2007년 우리나라 최초로 비구의 대종사에 해당하는 명사(明師)로 추대되었다.
저서
『묘법연화경』 편역과 『신행법요집』 편역이 있다.
입적
광우스님은 2019년 7월 18일 입적(법랍 80세, 세수 95세)하였으며, 수계제자로는 정업(正業)·정유·정현(正現)·정목(正牧)·정묘·정도 스님 등이 있다
참고자료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상. 뜨란출판사, 2007, pp. 431~4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