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자은스님(慈恩, 1943生, 비구니)"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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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품법화경의 제25품. 관음이 중생의 고난을 구제하고 널리 교화(敎化)하는 일을 설파하였음. 1만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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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세 되던 해인 1981년 견성암에서 동안거를 나는데, 그때 스님의 나이가 너무 어려 보였는지 어른 스님들이 다각(茶角)<ref>대중스님들을 위해 차(녹차)를 책임지는 스님.</ref>을 맡도록 하였다.
 
39세 되던 해인 1981년 견성암에서 동안거를 나는데, 그때 스님의 나이가 너무 어려 보였는지 어른 스님들이 다각(茶角)<ref>대중스님들을 위해 차(녹차)를 책임지는 스님.</ref>을 맡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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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방 선원에서 안거===
 
<br/>1982년 지장암에서 하안거를 성만한 후, 다시 동화사 양진암에서 동안거와 하안거를, 유가사 수도암에서는 3년 결사를 들어갔는데 한 철 후에 파하는 바람에 다시 불영사, 음성 미타사, 지장암, 대성암 등 제방 선방에서 안거를 하였다.
 
<br/>1982년 지장암에서 하안거를 성만한 후, 다시 동화사 양진암에서 동안거와 하안거를, 유가사 수도암에서는 3년 결사를 들어갔는데 한 철 후에 파하는 바람에 다시 불영사, 음성 미타사, 지장암, 대성암 등 제방 선방에서 안거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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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사로 오다===
 
1986년 스님이 44세 되던 해, 현재의 용담사를 500만 원에 구입하여 들어왔다. 처음 스님이 왔을 때 50명 정도 찾아오던 신도들이 1년 뒤에는 3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스님은 그 후 법당 13평, 요사 9평 1채와 8평 1채가 있던 것을 10년 뒤 불사를 새로 하여 1995년 요사채 50평을 완공하고, 1998년 법당 31평을 완공하여 9월 20일 점안식을 할 수 있었다.
 
1986년 스님이 44세 되던 해, 현재의 용담사를 500만 원에 구입하여 들어왔다. 처음 스님이 왔을 때 50명 정도 찾아오던 신도들이 1년 뒤에는 3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스님은 그 후 법당 13평, 요사 9평 1채와 8평 1채가 있던 것을 10년 뒤 불사를 새로 하여 1995년 요사채 50평을 완공하고, 1998년 법당 31평을 완공하여 9월 20일 점안식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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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천수기도를 계속 하고 있는데 만 3년이 되자 하루에 일천 독을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스님은 천수기도를 계속 하고 있는데 만 3년이 되자 하루에 일천 독을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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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음력 4월 23일 스님은 용담사에서 세수 62세, 법랍 42세로 세연을 접었다. 스님의 수계제자로는 성륜(性輪)·일지(日智)스님이 있다.
 
2004년 음력 4월 23일 스님은 용담사에서 세수 62세, 법랍 42세로 세연을 접었다. 스님의 수계제자로는 성륜(性輪)·일지(日智)스님이 있다.

2022년 11월 7일 (월) 06:18 판



정의

대웅(大雄) 자은(慈恩)스님은 흐트러짐 없는 철저한 수행 생활을 했고, 양산 용담사 주지로 요사채, 대웅전 불사를 완공한 대한민국의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1943 경남 양산 출생
1963 범어사 대성암에서 무착(無着)스님을 은사로 출가
1964 해인사에서 자운(慈雲)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74 범어사에서 동산(東山)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운문사 강원 사집과 수료
1978 견성암에서 안거 성만
1980 범어사 대성암에서 안거 성만
1981 불영사에서 안거 성만
1982 지장암에서 하안거 성만,
동화사 양진암, 유가사 수도암, 음성 미타사, 지장암, 대성암, 해인사 약수암 등 안거 성만 (제방 선원에서 16년 간 안거 성만)
1986 용담사 주지 취임
1995 요사채 50평 불사 완공
1997 대웅전 31평 불사 완공, 점안식 봉행
1997~2000 천수기도 일일 천독(千讀) 3년간 기도 회향
2004 2004.4.23. 용담사에서 입적(세수 62세, 법랍 42세)
문 중 계민문중(戒珉)
수행지침 생활을 철저히 지키자.
수계제자 성륜(性輪)·일지(日智)

활동 및 공헌

[철웅 큰스님과 함께]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p200
[만공 큰스님 필기 노트 설법집]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p201
[뒷줄 오른쪽 자은스님]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p202
[오른쪽에서 두 번째 자은스님]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p203

출생

대웅(大雄) 자은(慈恩)스님은 1943년 4월 3일 경남 양산시 하북면에서 아버지 김원주와 어머니 정계순 사이에서 2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이며, 이름은 김경자이다.

출가동기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나쁜 습관에 물이 든다며 밖에 못 나가게 하여 주로 집에서 지냈는데, 그 때문인지 책을 좋아하여 늘 책과 함께 살았다. 이때 친척이신 철웅 큰스님이 보관하고 있던 만공 큰스님의 필기 공책 설법집을 읽기도 하였다.
스님이 출가를 결심하게 된 것은 철웅 큰스님의 권유도 있었지만, 어느 날 친구가 빌려 준 사명대사 책을 읽고 난 뒤였다. 그러나 집에서 출가를 만류하는 바람에 단식을 하는 등 1년에 걸쳐 부모님을 설득하여 21세 되던 해인 1963년 대성암에서 무착스님을 은사로 출가하기에 이른다. 출가 당시 스님의 어머니께서 대중 공양을 위해 1년치 양식을 가지고 오셔서 쌀 한 가마니와 찰밥 공양을 하였다.
스님이 출가하기 1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다음 해 스님마저 출가하자 스님의 어머니는 경봉, 우룡스님 밑에서 참선을 하며 살아갔다.

수학과 수행

1964년 스님의 나이 22세 되던 해, 해인사에서 자운화상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하고, 32세 되던 해인 1974년 범어사에서 동산화상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하였다.
스님이 출가한 직후 범어사 대성암에는 54명 정도의 사부대중이 정진 중이었다. 행자 때 자원하여 공양주를 혼자서 맡았는데, 대중이 많아 쌀 한 가마니를 3일 만에 먹었다.

또한 산철에는 만성스님을 뵈러 오는 스님들이 많아 하루에 여섯 번씩 밥을 해야만 했다. 밥을 할 때마다 불을 때서 해야 하므로 번거롭기 그지없었지만 힘들다는 생각조차 없이 객스님들에게 공양을 지어 올렸다. 그렇게 힘들게 1년 동안 공양주를 살고 나서 일주일을 앓아누웠다. 은사스님께서는 그런 스님에게 “행자 때 복을 지어서 평생을 산다. 너는 잘하고 있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스님이 소임을 살면서 여기저기 잔심부름으로 불려 다니자 은사스님께서 공부가 우선이고, 소임이 있다면 나중의 일이라며 공부에 좀 더 전념할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해주셨다.
공양주를 살고 난 스님은 돌림 소임을 살면서 큰 방에서 1년간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하루에 2 시간 씩만 자면서 출가 전에 배우던 『초발심자경문』을 끝까지 배우고 염불과 참선 등을 공부하려고 많은 애를 썼다. 또 이 기간 동안 입방선을 빠져 본 적이 없었다.
잠을 안 자고 공부하는 스님이 안쓰러웠는지 한번은 은사스님께서 스님을 큰방으로 불러 놓고 대중 공사를 붙여 “조그만 아이도 저렇게 공부하려고 애를 쓴다.”며 대중을 경책하신 일도 있다.

보문품[1] 1만 독

그러나 너무 무리하게 공부를 하는 바람에 스님은 상기가 올라 10년을 고생하였다. 은사스님께서 석남사의 행자들이 상기가 올랐을 때 보문품을 읽으며 고쳤다고 비책을 일러주셨지만, 스님은 은사스님 말씀을 그대로 실행하지 않아 꾸중을 듣기도 했다.
서울 보문사에서 노스님을 2년간 시봉하면서 『치문』을 배우고 아침저녁으로는 기도 끝에 선불장에서 세등(世燈)스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공부를 하였다. 그 뒤 운문사 강원에서 3개월가량 사집을 공부하는 동안 당시 강원에 유행중인 옴이 전염될까 걱정이 되어 강원을 나와 은사스님 밑에서 노스님을 시봉하였다.
그러나 스님의 몸이 워낙 약해서 휴양차 상용스님이 계신 영주로 가서 16년 동안 선방에 안거를 하러 다녔다. 상용스님께서 스님을 보자마자 “아직 죽지 않고 살았네!” 라고 말했을 정도로 허약하고 영양실조에 걸려 있었다. 밥을 한 술 먹으면 물을 열 술 마셔야 했고, 시력이 떨어져 사물이 뿌옇게 보일 지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은사스님께서 오셔서 신심이 없다고 꾸중하시자 처음에는 10번씩 보문품을 독송하다가 나중에는 30독, 50독, 100독으로 차츰 독송하는 횟수가 늘었고, 3년이 되던 해는 1만 독을 하게 됐다. 하루에 1만 독을 끝내는 날에는 얼굴이 새까맣게 변했다.

그러던 어느 날은 햇볕이 느껴져서 감탄하듯 말했다. “스님, 스님, 오늘은 햇볕이 나네요!”

그러자 은사스님께서 툭 한 말씀하셨다. “매일 햇볕이다.”

기도 중 스님의 몸에서 엉클어 진 수세미가 수없이 나왔으며, 어느 날 꿈에는 상용스님이 가사 장삼을 수하시고 스님의 몸을 태우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왜 저를 태웁니까?” 하고 물으니까 상용스님은 “너는 태워야 한다.”라고 하시면서 스님을 계속 태웠는데 몸이 다 탄 뒤 짧은 막대기 하나만 남아서 빨갛게 달구어져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그 막대기마저 타버렸어야 하는데 업이 덜 녹아서 타다 만 것 같다고 스님은 말한다.

그 이후로 차츰 병세가 호전되어 37세 되던 1979년에는 ‘비실비실’이라는 별명을 들으면서 대성암에서 철을 났지만, 아무래도 완치가 되지 않은 병 때문에 중간에 나오게 되었다.
그 뒤 철웅 큰스님 밑에서 공부를 하면서 병세가 많이 호전되어 파계사 성전에서 하안거를 성만하였다. 그리고 1980년 스님의 나이 38세 되던 해 해인사 약수암에서 안거 중일 때, 배우 김지미 주연의 영화 ‘비구니’ 제작 반대운동으로 엄청난 인파가 몰리는 바람에 밀리는 군중에 깔려 다리를 다치는 불상사를 겪기도 하였다.

39세 되던 해인 1981년 견성암에서 동안거를 나는데, 그때 스님의 나이가 너무 어려 보였는지 어른 스님들이 다각(茶角)[2]을 맡도록 하였다.

제방 선원에서 안거


1982년 지장암에서 하안거를 성만한 후, 다시 동화사 양진암에서 동안거와 하안거를, 유가사 수도암에서는 3년 결사를 들어갔는데 한 철 후에 파하는 바람에 다시 불영사, 음성 미타사, 지장암, 대성암 등 제방 선방에서 안거를 하였다.

용담사로 오다

1986년 스님이 44세 되던 해, 현재의 용담사를 500만 원에 구입하여 들어왔다. 처음 스님이 왔을 때 50명 정도 찾아오던 신도들이 1년 뒤에는 3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스님은 그 후 법당 13평, 요사 9평 1채와 8평 1채가 있던 것을 10년 뒤 불사를 새로 하여 1995년 요사채 50평을 완공하고, 1998년 법당 31평을 완공하여 9월 20일 점안식을 할 수 있었다.
원래 용담사는 탑곡사라는 절이 있던 터로서 주변 마을 사람들이 탑골이라 불렀던 곳이다. 스님은 구로 관음포교원의 일면스님 법문 테이프에서 ‘천수다라니를 하루에 일천 독讀을 하면 이루지 못할 소원이 없다.’는 법문을 듣고 법당 터를 닦으면서 기도를 시작하였다.

스님은 천수기도를 계속 하고 있는데 만 3년이 되자 하루에 일천 독을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입적

2004년 음력 4월 23일 스님은 용담사에서 세수 62세, 법랍 42세로 세연을 접었다. 스님의 수계제자로는 성륜(性輪)·일지(日智)스님이 있다.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 뜨란출판사, 2007, pp.198~203.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390.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자은(慈恩)스님 본항목 비구니 자은스님(慈恩, 1943~2004) 慈恩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자은스님(慈恩,_1943生,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속성
자은(慈恩)스님 계민문중(戒珉) ~의 일원이다
자은(慈恩)스님 무착(無着)스님 ~의 수계제자이다
자은(慈恩)스님 부산 범어사 대성암(청룡동) ~에서 출가하다
자은(慈恩)스님 자운(慈雲)스님 ~(으)로부터 계를 받다 사미니계
자은(慈恩)스님 동산(東山)스님 ~(으)로부터 계를 받다 비구니계
자은(慈恩)스님 양산 용담사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주지
자은(慈恩)스님 양산 용담사 ~을(를) 정비하다
자은(慈恩)스님 안거 ~을(를) 성만하다 부산 범어사 대성암(청룡동), 울진 불영사, 평창 월정사 지장암, 대구 동화사 양진암(도학동), 유가사 수도암, 음성 미타사, 평창 월정사 지장암, 부산 범어사 대성암(청룡동), 합천 해인사 약수암 등

지도

  • 용담사 : 경상남도 양산시 용당동 133-2



주석

  1. 법화경의 제25품. 관음이 중생의 고난을 구제하고 널리 교화(敎化)하는 일을 설파하였음.
  2. 대중스님들을 위해 차(녹차)를 책임지는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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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주스님(觀柱, 1922년생) 법공스님(法空, 1937년생) 성연스님(聖蓮, 1928년생) 재근스님(在根, 1940년생) 태구스님(泰具, 1920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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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호스님(光毫, 1915년생) 법륜스님(法倫, 1948년생) 성월스님(性月, 1947년생) 재호스님(宰毫, 1938년생) 해운스님(海雲, 1920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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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인스님(能仁, 1946년생) 법운스님(法雲, 1927년생) 성지스님(聖智, 1926년생) 정률스님(廷律, 1963년생) 현묵스님(炫默, 1932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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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스님(大英, 1903년생) 법인스님(法印, 1930년생) 성총스님(聖叢, 1944년생) 정명스님(正明, 1954년생) 현수스님(賢秀, 1943년생)
대우스님(大愚, 1949년생) 법일스님(法一, 1904년생) 성타스님(性陀, 1934년생) 정목스님(正牧, 1960년생) 현정스님(玄定, 1948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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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현스님(大玄, 1957년생) 법진스님(法眞, 1942년생) 소림스님(昭林, 1937년생) 정수스님(淨洙, 1941년생) 현행스님(賢行, 1928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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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운스님(德雲, 1942년생) 법형스님(法衡, 1921년생) 수인스님(守仁, 1779년생) 정심스님(正心, 1925년생) 혜광스님(慧光, 1940년생)
도광스님(度光, 1952년생) 법홍스님(法弘, 1943년생) 수인스님(守仁, 1899년생) 정안스님(正眼, 1950년생) 혜근스님(慧根, 1935년생)
도문스님(道門, 1942년생) 법희스님(法喜, 1887년생) 수진스님(守珍, 1916년생) 정안스님(淨岸, 1951년생) 혜돈스님(慧頓, 1949년생)
도상스님(道常, 1937년생) 법희스님(法希, 1930년생) 수진스님(修眞, 1950년생) 정운스님(淨雲, 1954년생) 혜등스님(慧燈, 1946년생)
도성스님(道成, 1922년생) 법희스님(法熺, 1952년생) 수현스님(修賢, 1940년생) 정원스님(正圓, 1939년생) 혜명스님(慧明, 1917년생)
도연스님(道鍊, 1911년생) 보각스님(普覺, 1904년생) 수현스님(修賢, 1941년생) 정인스님(正忍, 1946년생) 혜문스님(慧門, 1930년생)
도원스님(道圓, 1904년생) 보각스님(寶覺, 1938년생) 수환스님(修還, 1950년생) 정일스님(淨日, 1934년생) 혜소스님(慧沼, 1931년생)
도준스님(道準, 1900년생) 보명스님(寶明, 1946년생) 순희스님(順姬, 1917년생) 정행스님(淨行, 1902년생) 혜안스님(慧眼, 1912년생)
도헌스님(度憲, 1939년생) 보명스님(寶明, 1954년생) 신전스님(信典, 1934년생) 정화스님(淨華, 1922년생) 혜안스님(慧眼, 1923년생)
도훈스님(道勳, 1933년생) 보문스님(普門, 1938년생) 연호스님(蓮湖, 1930년생) 정화스님(貞和, 1923년생) 혜옥스님(慧玉, 1901년생)
동근스님(東根, 1951년생) 보선스님(普善, 1946년생) 영수스님(暎修, 1941년생) 종수스님(宗秀, 1922년생) 혜운스님(慧雲, 1911년생)
동성스님(東城, 1913년생) 보영스님(普暎, 1937년생) 영운스님(靈雲, 1946년생) 종수스님(鍾修, 1922년생) 혜원스님(慧圓, 851년생)
동현스님(東玄, 1945년생) 보원스님(普願, 1944년생) 영원스님(盈圓, 1949년생) 종식스님(宗植, 1944년생) 혜은스님(慧隱, 1937년생)
동희스님(東熙, 1945년생) 보인스님(寶仁, 1924년생) 영춘스님(永春, 1894년생) 종실스님(宗實, 1951년생) 혜일스님(慧日, 1919년생)
만선스님(萬善, 1883년생) 보현스님(普賢, 1934년생) 예순스님(禮順, 1587년생) 지광스님(志光, 1934년생) 혜일스님(慧日, 1947년생)
만선스님(萬善, 1906년생) 보화스님(普和, 1933년생) 운달스님(雲達, 1942년생) 지명스님(智明, 1921년생) 혜전스님(慧田, 1929년생)
만선스님(萬善, 996년생) 본각스님(本覺, 1952년생) 원오스님(圓悟, 1933년생) 지문스님(志門, 1958년생) 혜종스님(慧宗, 1930년생)
만성스님(萬性, 1897년생) 본공스님(本空, 1907년생) 원표스님(圓表, 1951년생) 지성스님(志性, 1939년생) 혜주스님(慧珠, 1925년생)
명길스님(明吉, 1931년생)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년생) 월혜스님(月慧, 1895년생) 지순스님(芝順, 1913년생) 혜준스님(慧俊, 1935년생)
명륜스님(明倫, 1937년생) 불필스님(不必, 1937년생) 육년스님(六年, 1906년생) 지연스님(知衍, 1947년생) 혜춘스님(慧春, 1919년생)
명성스님(眀星, 1931년생) 상근스님(祥根, 1872년생) 육문스님(六文, 1946년생) 지오스님(智悟, 1955년생) 혜해스님(慧海, 1921년생)
명수스님(明洙, 1925년생) 상덕스님(常德, 1951년생) 윤호스님(輪浩, 1907년생) 지우스님(至牛, 1935년생) 회선스님(會善, 1926년생)
명심스님(明心, 1947년생) 상덕스님(常德, 1952년생) 은영스님(恩榮, 1910년생) 지원스님(知元, 1931년생) 효성스님(曉星, 1898년생)
명안스님(明岸, 1941년생) 상덕스님(尙悳, 1925년생) 응민스님(應旼, 1923년생) 지원스님(智圓, 1938년생) 효성스님(曉惺, 1927년생)
명오스님(明悟, 1916년생) 상락스님(常樂, 1928년생) 인성스님(仁成, 1901년생) 지원스님(智願, 1942년생) 효성스님(曉星, 1948년생)
명완스님(明完, 1937년생) 상륜스님(相侖, 1929년생) 인완스님(仁完, 1930년생) 지인스님(智因, 1937년생) 효천스님(曉天, 1941년생)
명주스님(明珠, 1904년생) 상원스님(相源, 1939년생) 인정스님(仁貞, 1899년생) 지행스님(智行, 1941년생) 효탄스님(曉呑, 1955년생)
명철스님(明哲, 1939년생) 상조스님(常照, 1951년생) 인허스님(印虛, 1911년생) 지향스님(智向, 1941년생) 희선스님(喜善, 1929년생)
묘각스님(妙覺, 1928년생) 상훈스님(常熏, 1944년생) 인홍스님(仁弘, 1908년생) 지현스님(智玄, 1916년생) 희원스님(喜圓, 1951년생)
묘각스님(妙覺, 1942년생) 서용스님(瑞庸, 1948년생) 인화스님(忍和, 1912년생) 지현스님(智賢, 1933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