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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스님(聖智, 1926生, 비구니)"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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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보살 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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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부터 가난했던 한 여인이 20대에 혼자되어, 정승집 방아를 찧어주고 남은 싸래기를 얻어 와서 밥을 해 먹으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정승 부인이 쌀 한 말을 곱게 찧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을 보고 가난한 여인은 '정승 부인같이 복 많은 사람도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데, 이제부터 나도 올려야겠다.'고 다짐하였다. 가난한 여인은 다음날부터 방아를 찧고 나온 싸래기에서 온톨만 골라 따로 모아두었다. 그렇게 모은 쌀은 어느 덧 한 되가 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가난했던 한 여인이 20대에 혼자되어, 정승집 방아를 찧어주고 남은 싸래기를 얻어 와서 밥을 해 먹으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정승 부인이 쌀 한 말을 곱게 찧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을 보고 가난한 여인은 '정승 부인같이 복 많은 사람도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데, 이제부터 나도 올려야겠다.'고 다짐하였다. 가난한 여인은 다음날부터 방아를 찧고 나온 싸래기에서 온톨만 골라 따로 모아두었다. 그렇게 모은 쌀은 어느 덧 한 되가 되었다.  
하루는 저녁 무렵에 한 도승이 찾아와 가난한 여인의 집에서 하룻밤 묵고 가기를 청하였다. 흔쾌히 승낙한 여인은 부처님께 올리려던 공양을 스님께 지어 올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동안 모아 두었던 쌀 한 되 중 반 되를 씻어서 정성껏 밥을 지어 스님께 공양을 올렸다. 스님은 반찬도 없는 밥을 맛있게 드시고 하룻밤을 묵어갔다. 여인은 그때 '내가 박복해서 스님 한 분 제대로 모시지 못하니 이를 어쩌나.' 하고 한탄하며, 주무시는 스님의 머리맡에 앉아 합장을 하고 밤을 꼬박 새웠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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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저녁 무렵에 한 도승이 찾아와 가난한 여인의 집에서 하룻밤 묵고 가기를 청하였다. 흔쾌히 승낙한 여인은 부처님께 올리려던 공양을 스님께 지어 올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동안 모아 두었던 쌀 한 되 중 반 되를 씻어서 정성껏 밥을 지어 스님께 공양을 올렸다. 스님은 반찬도 없는 밥을 맛있게 드시고 하룻밤을 묵어갔다. 여인은 그때 '내가 박복해서 스님 한 분 제대로 모시지 못하니 이를 어쩌나.' 하고 한탄하며, 주무시는 스님의 머리맡에 앉아 합장을 하고 밤을 꼬박 새웠다.  
 
다음날 아침 가난한 여인은 남아있는 반 되의 쌀을 씻어서 스님께 아침공양을 지어드렸다. 공양을 다 드신 스님은 다시 길을 떠났는데, 가다가 되돌아 와서는 “저절로 부처님 되어 왕의 모친 되옵소서.” 라는 염불을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다음날부터 가난한 여인은 스님이 가르쳐준 염불을 열심히 하였다. 이 염불 소리를 듣고 동네 사람들을 비롯하여 심지어는 아이들까지도 ‘무슨 소리를 하느냐.’며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였다.
 
다음날 아침 가난한 여인은 남아있는 반 되의 쌀을 씻어서 스님께 아침공양을 지어드렸다. 공양을 다 드신 스님은 다시 길을 떠났는데, 가다가 되돌아 와서는 “저절로 부처님 되어 왕의 모친 되옵소서.” 라는 염불을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다음날부터 가난한 여인은 스님이 가르쳐준 염불을 열심히 하였다. 이 염불 소리를 듣고 동네 사람들을 비롯하여 심지어는 아이들까지도 ‘무슨 소리를 하느냐.’며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였다.
 
한편 그 나라의 왕자가 몹시 위중한 병에 걸려 온갖 좋은 약을 다 써도 별 차도가 없는 탓에 왕궁은 온통 시름에 젖어 있었다. 의원은 '천하에 없는 꽃을 먹으면 낫는다.'는 처방을 내렸고, 온 나라의 정승들이 그 꽃을 찾아 백방으로 돌아다녔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가난한 여인이 자고 일어나보니 부뚜막 돌 위에 큰 작약 8송이가 활짝 피어 있는 것이 아닌가? 가난한 여인은 깜짝 놀라 얼른 꽃을 덮어 놓고 정승 집으로 방아를 찧으러 갔다. 정승 집에서는 세상에 없는 꽃에 대한 이야기로 야단법석이었다.
 
한편 그 나라의 왕자가 몹시 위중한 병에 걸려 온갖 좋은 약을 다 써도 별 차도가 없는 탓에 왕궁은 온통 시름에 젖어 있었다. 의원은 '천하에 없는 꽃을 먹으면 낫는다.'는 처방을 내렸고, 온 나라의 정승들이 그 꽃을 찾아 백방으로 돌아다녔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가난한 여인이 자고 일어나보니 부뚜막 돌 위에 큰 작약 8송이가 활짝 피어 있는 것이 아닌가? 가난한 여인은 깜짝 놀라 얼른 꽃을 덮어 놓고 정승 집으로 방아를 찧으러 갔다. 정승 집에서는 세상에 없는 꽃에 대한 이야기로 야단법석이었다.

2022년 11월 22일 (화) 22:38 판



정의

용천 성지(聖智)스님은 출가 수행 중에 기이한 행적을 많이 보여주셨으며, 대중포교에 크게 기여하신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926 경남 진양 출생
1950 청도 운문사에서 호명스님을 은사로 출가
해인사에서 동산(東山)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해인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일광 원효대에서 17년간 공양주 소임
1968 경남 용안사 주지 취임
용안사 중창 불사
2000 교도소 법회 등 포교와 후진 양성
2004 현재 용안사 주지
생활신조 인과를 알아야 하고 한을 가지면 안 되며, 화를 내지 말고 어려운 사람을 도우라.
수계제자 법인·법륜·법수·법안

활동 및 공헌

출가

용천 성지(聖智)스님은 1926년 10월 3일 경남 진양군 미천면 안강리에서 아버지 윤윤선과 어머니 서희분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파평이며, 속명은 윤판림이다.

스님은 1950년 청도 운문사로 출가하여 행자 생활을 7~8년간 하였다.

성지(聖智)스님의 기적

스님이 6·25전쟁 이후 원효대에서 기도할 때의 일이다. 부산 소림사에서 보살들과 함께 일광에 나가 탁발을 한 후 사찰로 돌아오려고 기차역으로 갔다. 그때 스님의 수중에는 기차요금이 100원 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떤 처사님이 역에서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데, 아이가 배가 고프다며 우는 것이었다. 너무나 보기가 딱해 스님은 먹을 것을 사주라며 전 재산 100원을 선뜻 건네주었다.
처사는 스님에게 연신 고마워하며,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았다. 그는 시청에서 과장으로 재직 중인 사람인데, 바람난 아내가 집을 나가 찾아다니는 중이었다. 스님은 처사의 안타까운 사연을 다 들어주었지만, 정작 차비가 없어 소림사까지 걸어가야 할 형편이었다. 그런데 어떤 아가씨가 다가오더니 스님을 소림사까지 태워주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전쟁 직후라 당시 기차역 앞에는 전쟁고아를 비롯해 생활이 어려운 어른들이 많았다. 스님은 소림사에서 기도를 하면서 2,000원이 생기면 2,000원을 전부 그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리고 다시 소림사로 돌아와 기도를 하면 신기하게도 이번에는 4,000원이 생겼다. 스님은 그 모든 것을 부처님의 가피로 생각하고 더욱 열심히 정진하였다.
당시 부산 다대포 고아원은 어른 400명, 어린이 800명을 수용하고 있었다. 스님은 보살 다섯 명과 함께 2년 동안 기도와 탁발을 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쌀 한 말씩을 나눠주고 다녔다.

문수보살 친견

용안사

39세 되던 해, 스님은 양산 통도사로 가는 길에 옷과 피부가 온통 새까맣고 버드나무 비녀를 찌른 어느 할머니를 만났다. 지리산에 살고 있는 할머니는 군 입대를 한 아들을 논산 훈련소에서 만나고 난 뒤 만행을 하는 중이었다. 스님은 할머니와 함께 신평 입구에서 통도사 입구까지 불법을 얘기하며 걸어가게 되었다. 길을 걷는 동안 할머니는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태어날 때부터 가난했던 한 여인이 20대에 혼자되어, 정승집 방아를 찧어주고 남은 싸래기를 얻어 와서 밥을 해 먹으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정승 부인이 쌀 한 말을 곱게 찧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을 보고 가난한 여인은 '정승 부인같이 복 많은 사람도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데, 이제부터 나도 올려야겠다.'고 다짐하였다. 가난한 여인은 다음날부터 방아를 찧고 나온 싸래기에서 온톨만 골라 따로 모아두었다. 그렇게 모은 쌀은 어느 덧 한 되가 되었다.
하루는 저녁 무렵에 한 도승이 찾아와 가난한 여인의 집에서 하룻밤 묵고 가기를 청하였다. 흔쾌히 승낙한 여인은 부처님께 올리려던 공양을 스님께 지어 올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동안 모아 두었던 쌀 한 되 중 반 되를 씻어서 정성껏 밥을 지어 스님께 공양을 올렸다. 스님은 반찬도 없는 밥을 맛있게 드시고 하룻밤을 묵어갔다. 여인은 그때 '내가 박복해서 스님 한 분 제대로 모시지 못하니 이를 어쩌나.' 하고 한탄하며, 주무시는 스님의 머리맡에 앉아 합장을 하고 밤을 꼬박 새웠다.
다음날 아침 가난한 여인은 남아있는 반 되의 쌀을 씻어서 스님께 아침공양을 지어드렸다. 공양을 다 드신 스님은 다시 길을 떠났는데, 가다가 되돌아 와서는 “저절로 부처님 되어 왕의 모친 되옵소서.” 라는 염불을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다음날부터 가난한 여인은 스님이 가르쳐준 염불을 열심히 하였다. 이 염불 소리를 듣고 동네 사람들을 비롯하여 심지어는 아이들까지도 ‘무슨 소리를 하느냐.’며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였다.
한편 그 나라의 왕자가 몹시 위중한 병에 걸려 온갖 좋은 약을 다 써도 별 차도가 없는 탓에 왕궁은 온통 시름에 젖어 있었다. 의원은 '천하에 없는 꽃을 먹으면 낫는다.'는 처방을 내렸고, 온 나라의 정승들이 그 꽃을 찾아 백방으로 돌아다녔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가난한 여인이 자고 일어나보니 부뚜막 돌 위에 큰 작약 8송이가 활짝 피어 있는 것이 아닌가? 가난한 여인은 깜짝 놀라 얼른 꽃을 덮어 놓고 정승 집으로 방아를 찧으러 갔다. 정승 집에서는 세상에 없는 꽃에 대한 이야기로 야단법석이었다.
이에 여인이 “저희 집에 간밤에 꽃이 피었습니다.”하고 말하였지만, 미친 사람 취급을 하고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런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승이 가난한 여인의 집 부엌으로 가보니 여인의 말처럼 서광이 비치는 꽃이 피어 있는 게 아닌가.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정승이 꽃을 꺾으려고 하였으나 꽃은 꺾이지 않았다. 이에 가난한 여인이 다가가 꽃을 꺾으니 향기가 진동을 하면서 꽃이 꺾이는 것이었다. 꽃을 든 정승은 마치 나는 듯 궁으로 들어가 왕자에게 먹였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왕자의 병이 깨끗이 나았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양산 통도사 일주문 앞에서 끝이 났다. 마지막으로 할머니는 “보살이 오늘 부처님을 친견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스님이 극락암 경봉 큰스님께 그 일을 말씀드리니 “성지야, 네가 문수보살을 친견했구나.” 하는 것이었다.

포교활동

남해 보리암에서 천일 관음기도를 하던 중 한 시간 동안 방광을 한 적이 있는 성지스님은 43세 되던 해인 1968년 경남 울주군 온산면 삼평리 1263번지에 위치한 용안사로 오게 되었다. 그리고 1984년 울산시 남구 신정동에 용안사 포교원을 개원하여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개원 당시 300여 명이었던 신도는 1990년에 이르자 3,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용안사 포교원은 개원 당시 정당 회의실, 예식장 등을 빌려 유랑법회를 보기도 했다. 그러나 더 이상 타종교에 신도를 빼앗길 수 없다고 생각한 스님이 적극적으로 포교를 하여, 지금은 울산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포교원이 되었다. 처음 개원했을 때에는 보살들이 대부분이었으나 지금은 거사는 물론 어린이, 청소년들의 참여와 활동도 많아졌다.
신도층이 다양해진 만큼 포교의 내용도 다양해져서 음악, 붓글씨, 도자기 등 예술 활동을 통한 포교를 펼쳤다. 용안사 합창단인 연화합창단은 불교방송 주최 찬불가 합창제에서 은상을 수상하여 그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인과(因果)를 알아야 하며, 한을 가지면 안 되고, 화를 내지 말고, 어려운 사람을 도우라.'고 강조하는 성지스님은 한 달에 한 번 교도소 자원봉사를 나가고 있으며, 부모가 없어서 생활이 어려운 아이들 6명을 길렀다.

수계제자

성지스님은 2004년 현재 용안사 주지로 수행 정진 중이며, 수계제자로는 법인·법륜·법수·법안스님 등이 있다.

참고문헌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 뜨란출판사, 2007, pp. 133~136.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292.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성지(聖智)스님 본항목 성지스님(聖智, 1951~2014) 聖智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성지스님(聖智,_1926生,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속성
성지(聖智)스님 호명스님 ~의 수계제자이다
성지(聖智)스님 청도 운문사 ~에서 출가하다
성지(聖智)스님 동산(東山)스님 ~(으)로부터 계를 받다 사미니계, 비구니계
성지(聖智)스님 울주 용안사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주지
성지(聖智)스님 울주 용안사 ~을(를) 중창하다

지도

  • 용안사 :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 삼평리 1259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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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주스님(觀柱, 1922년생) 법공스님(法空, 1937년생) 성연스님(聖蓮, 1928년생) 재근스님(在根, 1940년생) 태구스님(泰具, 1920년생)
광옥스님(光玉, 1943년생) 법농스님(法農, 1962년생) 성우스님(惺牛, 1918년생) 재문스님(載文, 1943년생) 하경스님(荷景, 1937년생)
광우스님(光雨, 1926년생) 법능스님(法能, 1932년생) 성원스님(性源, 1918년생) 재현스님(在玄, 1946년생) 해성스님(海成, 1958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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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인스님(能仁, 1946년생) 법운스님(法雲, 1927년생) 성지스님(聖智, 1926년생) 정률스님(廷律, 1963년생) 현묵스님(炫默, 1932년생)
대각스님(大覺, 1914년생) 법운스님(法雲, 1937년생) 성진스님(性眞, 1896년생) 정명스님(淨明, 1940년생) 현성스님(賢星, 1945년생)
대영스님(大英, 1903년생) 법인스님(法印, 1930년생) 성총스님(聖叢, 1944년생) 정명스님(正明, 1954년생) 현수스님(賢秀, 1943년생)
대우스님(大愚, 1949년생) 법일스님(法一, 1904년생) 성타스님(性陀, 1934년생) 정목스님(正牧, 1960년생) 현정스님(玄定, 1948년생)
대은스님(大恩, 1852년생) 법전스님(法田, 1927년생) 성탄스님(性坦, 1911년생) 정묘스님(靜妙, 1941년생) 현진스님(玄眞, 1934년생)
대행스님(大行, 1926년생) 법전스님(法典, 1945년생) 성현스님(聖賢, 1927년생) 정성스님(定星, 1940년생) 현진스님(玄眞, 1937년생)
대현스님(大玄, 1916년생) 법종스님(法宗, 1945년생) 세등스님(世燈, 1926년생) 정수스님(貞守, 1939년생) 현찬스님(賢讚, 1934년생)
대현스님(大玄, 1957년생) 법진스님(法眞, 1942년생) 소림스님(昭林, 1937년생) 정수스님(淨洙, 1941년생) 현행스님(賢行, 1928년생)
덕수스님(德修, 1922년생) 법천스님(法泉, 1944년생) 수옥스님(守玉, 1902년생) 정심스님(定心, 1918년생) 혜경스님(慧鏡, 1924년생)
덕운스님(德雲, 1942년생) 법형스님(法衡, 1921년생) 수인스님(守仁, 1779년생) 정심스님(正心, 1925년생) 혜광스님(慧光, 1940년생)
도광스님(度光, 1952년생) 법홍스님(法弘, 1943년생) 수인스님(守仁, 1899년생) 정안스님(正眼, 1950년생) 혜근스님(慧根, 1935년생)
도문스님(道門, 1942년생) 법희스님(法喜, 1887년생) 수진스님(守珍, 1916년생) 정안스님(淨岸, 1951년생) 혜돈스님(慧頓, 1949년생)
도상스님(道常, 1937년생) 법희스님(法希, 1930년생) 수진스님(修眞, 1950년생) 정운스님(淨雲, 1954년생) 혜등스님(慧燈, 1946년생)
도성스님(道成, 1922년생) 법희스님(法熺, 1952년생) 수현스님(修賢, 1940년생) 정원스님(正圓, 1939년생) 혜명스님(慧明, 1917년생)
도연스님(道鍊, 1911년생) 보각스님(普覺, 1904년생) 수현스님(修賢, 1941년생) 정인스님(正忍, 1946년생) 혜문스님(慧門, 1930년생)
도원스님(道圓, 1904년생) 보각스님(寶覺, 1938년생) 수환스님(修還, 1950년생) 정일스님(淨日, 1934년생) 혜소스님(慧沼, 1931년생)
도준스님(道準, 1900년생) 보명스님(寶明, 1946년생) 순희스님(順姬, 1917년생) 정행스님(淨行, 1902년생) 혜안스님(慧眼, 1912년생)
도헌스님(度憲, 1939년생) 보명스님(寶明, 1954년생) 신전스님(信典, 1934년생) 정화스님(淨華, 1922년생) 혜안스님(慧眼, 1923년생)
도훈스님(道勳, 1933년생) 보문스님(普門, 1938년생) 연호스님(蓮湖, 1930년생) 정화스님(貞和, 1923년생) 혜옥스님(慧玉, 1901년생)
동근스님(東根, 1951년생) 보선스님(普善, 1946년생) 영수스님(暎修, 1941년생) 종수스님(宗秀, 1922년생) 혜운스님(慧雲, 1911년생)
동성스님(東城, 1913년생) 보영스님(普暎, 1937년생) 영운스님(靈雲, 1946년생) 종수스님(鍾修, 1922년생) 혜원스님(慧圓, 851년생)
동현스님(東玄, 1945년생) 보원스님(普願, 1944년생) 영원스님(盈圓, 1949년생) 종식스님(宗植, 1944년생) 혜은스님(慧隱, 1937년생)
동희스님(東熙, 1945년생) 보인스님(寶仁, 1924년생) 영춘스님(永春, 1894년생) 종실스님(宗實, 1951년생) 혜일스님(慧日, 1919년생)
만선스님(萬善, 1883년생) 보현스님(普賢, 1934년생) 예순스님(禮順, 1587년생) 지광스님(志光, 1934년생) 혜일스님(慧日, 1947년생)
만선스님(萬善, 1906년생) 보화스님(普和, 1933년생) 운달스님(雲達, 1942년생) 지명스님(智明, 1921년생) 혜전스님(慧田, 1929년생)
만선스님(萬善, 996년생) 본각스님(本覺, 1952년생) 원오스님(圓悟, 1933년생) 지문스님(志門, 1958년생) 혜종스님(慧宗, 1930년생)
만성스님(萬性, 1897년생) 본공스님(本空, 1907년생) 원표스님(圓表, 1951년생) 지성스님(志性, 1939년생) 혜주스님(慧珠, 1925년생)
명길스님(明吉, 1931년생)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년생) 월혜스님(月慧, 1895년생) 지순스님(芝順, 1913년생) 혜준스님(慧俊, 1935년생)
명륜스님(明倫, 1937년생) 불필스님(不必, 1937년생) 육년스님(六年, 1906년생) 지연스님(知衍, 1947년생) 혜춘스님(慧春, 1919년생)
명성스님(眀星, 1931년생) 상근스님(祥根, 1872년생) 육문스님(六文, 1946년생) 지오스님(智悟, 1955년생) 혜해스님(慧海, 1921년생)
명수스님(明洙, 1925년생) 상덕스님(常德, 1951년생) 윤호스님(輪浩, 1907년생) 지우스님(至牛, 1935년생) 회선스님(會善, 1926년생)
명심스님(明心, 1947년생) 상덕스님(常德, 1952년생) 은영스님(恩榮, 1910년생) 지원스님(知元, 1931년생) 효성스님(曉星, 1898년생)
명안스님(明岸, 1941년생) 상덕스님(尙悳, 1925년생) 응민스님(應旼, 1923년생) 지원스님(智圓, 1938년생) 효성스님(曉惺, 1927년생)
명오스님(明悟, 1916년생) 상락스님(常樂, 1928년생) 인성스님(仁成, 1901년생) 지원스님(智願, 1942년생) 효성스님(曉星, 1948년생)
명완스님(明完, 1937년생) 상륜스님(相侖, 1929년생) 인완스님(仁完, 1930년생) 지인스님(智因, 1937년생) 효천스님(曉天, 1941년생)
명주스님(明珠, 1904년생) 상원스님(相源, 1939년생) 인정스님(仁貞, 1899년생) 지행스님(智行, 1941년생) 효탄스님(曉呑, 1955년생)
명철스님(明哲, 1939년생) 상조스님(常照, 1951년생) 인허스님(印虛, 1911년생) 지향스님(智向, 1941년생) 희선스님(喜善, 1929년생)
묘각스님(妙覺, 1928년생) 상훈스님(常熏, 1944년생) 인홍스님(仁弘, 1908년생) 지현스님(智玄, 1916년생) 희원스님(喜圓, 1951년생)
묘각스님(妙覺, 1942년생) 서용스님(瑞庸, 1948년생) 인화스님(忍和, 1912년생) 지현스님(智賢, 1933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