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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style="text-align: center"| no !! style="text-align: center"| 분류 !! style="text-align: center" | 인물 !! style="text-align: center; width:13%"| 작성 학기 !! style="text-align: center; width:57%"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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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1 || 역사·고고·민속||[[신석호]]||🏆24-1우수사례 ||"해방 이후 시울시사편찬위원회 위원, 한국사연구회 회장 등을 역임한 학자,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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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2 ||역사·고고·민속 ||[[조의설]]||🏆24-2우수사례 || "한국 서양사학계의 기틀을 다진 인물로, 희랍사를 전공하였으며 여러 연구와 저술을 남기는 동시에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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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3 ||역사·고고·민속||[[홍이섭]]||🏆24-2우수사례||"학자, 역사학자. 홍이섭(1914~1974)은 해방 이후 한국 사학계의 대표적인 역사가로 역사학회단체 초대 회장과 학술원 회원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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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4 ||역사·고고·민속 || [[김재원]]||🏆24-2우수사례||"대한민국의 초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이자 고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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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5 ||역사·고고·민속||[[김원룡]]||🏆25-2우수사례||"대한민국의 고고학자이자 미술사학자. 서울대교수, 국립박물관장, 고고학연구회장, 문화재위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한국고고학개설` `한국고고학연구` `한국미술사` `한국고미술의 이해` 등 58권의 저서와 250편의 연구논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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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6 ||역사·고고·민속||[[송석하]]||🏆24-1우수사례 || "한국 민속 연구 및 인류학의 확립에 기여. 조선민속학회단체를 창립하였으며 서울대학 인류학과기관를 개설하고 국립민속박물관기관을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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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7 ||역사·고고·민속||[[궈모뤄]]||🏆24-1우수사례 || "중국 신문학 활동가, 역사학자, 고고학자, 정치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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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8 ||언어·국문학||[[김동욱]]||🏆24-2우수사례||"김동욱은 충남 홍성 출신의 국문학자이면서 서지학에도 정통했을 뿐만 아니라 고려·조선 가요, 판소리, 고전 소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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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9 ||언어·국문학||[[김수경]]||🏆25-2우수사례||"북한의 언어학자로, 북한 건국[8] 초기의 '언어학'과 '언어정책'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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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10 ||언어·국문학||[[이숭녕]]||🏆24-1우수사례 ||"대한민국의 국어학자. 경성제대 법문학부 조선어학과를 졸업한뒤 평양사범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8.15 광복과 함께 서울대학교기관에서 국어학을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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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11 ||언어·국문학||[[권덕규]]||🏆24-1우수사례 || "한국의 국어학자이자, 역사가. 시경(周時經)의 뒤를 잇는 몇 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 조선어학회의 역사적인 사업이라 할 수 있는 『조선어큰사전』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1932년 12월 「한글맞춤법통일안」의 원안을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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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12 ||언어·국문학||[[박팔양]]||🏆24-1우수사례 || "시인. 평론가. 신문기자.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당과 수령에 대한 높은 충실성을 지녔으며, 주로 전원을 칭송하는 자연시와 사회적 현실에 대한 관심을 노래한 경향시 등을 발표한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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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13 ||언어·국문학||[[안함광]]||🏆24-2우수사례||"카프문학 운동기에 있어 김기진, 임화, 김남천 등과 함께 왕성한 비평활동을 통해 프로문학 이론의 수립과 심화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한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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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14 ||소설·시·비평||[[조명희]]||🏆24-1우수사례 || "충북 진천군에서 태어난 소비에트 연방의 작가, 서른 살 늦깎이 문학 청년, 3·1운동에 가담한 일제강점기의 저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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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15 ||소설·시·비평||[[윤복진]]||🏆24-2우수사례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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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16 || 소설·시·비평||[[송영]]||🏆24-2우수사례||"북한의 극작가이자 소설가. 최초의 사회주의 예술단체 염군사(焰群社)를 조직하고 활동했으며 이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의 극작가, 소설가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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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17 ||소설·시·비평||[[박화성]]||🏆25-2우수사례||"대한민국의 소설가. 데뷔한 이래 장편 17편, 단편 62편, 중편 3편, 연작소설 2회분, 희곡 1편, 콩트 6편, 동화 1편, 두 권의 수필집과 평론 등을 제외하고도 모두 92편의 방대한 작품들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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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18 ||철학·사상|| [[신남철]]||🏆24-1우수사례 || "일제강점기 당시 사회주의 계열의 철학자로 활동하며 해방 이후 북한에서 김일성종합대학기관교수, 법제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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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19 ||철학·사상|| [[최재희]]||🏆24-2우수사례|| "한국의 철학자이자 교수. 칸트의 주요 저서인 실천 이성 비판과 순수 이성 비판을 번역하여 칸트 연구의 새 길을 열었다는 평을 받으며모든 철학적 탐구가 현실 및 실천의 문제로 귀착된다는 입장에서 휴머니즘 운동에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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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20 ||시각예술·공예||[[고희동]]||🏆25-2우수사례||"대한제국 시기부터 동양화를 공부한 동양화가이자 한국인 최초의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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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21 ||시각예술·공예||[[이종우]]||🏆24-2우수사례 || "대한민국 최초의 도불 화가. 한국작가로서는 최초로 약 3년간 파리에 유학하면서 한국 최초의 도불 화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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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22 ||시각예술·공예||[[박수근]]||🏆25-2우수사례|| "소박하고 일상적인 시민의 삶의 모습을 한국적인 서정성으로 표현한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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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23 ||시각예술·공예||[[김경승]]||25-2작성인물|| "조각가. 1933년 일본으로 가 가와바타화 학교에서 데생 훈련을 쌓고 다음 해 동경 미술 학교 조각과에 입학하고 1939년에 졸업하였다. 그 후에는 형 김인승과 함께 조선총독부가 조직한 어용 친일 단체로 당시 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과장인 계광순이 이사장을 맡은 조선미술가협회단체 간부를 지내기도 했다.김경승은 조각부의 평의원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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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24 ||건축·조형||[[김중업]]||🏆25-2우수사례||"한국을 대표하는 근·현대 건축가. 한국인 최초로 르 코르뷔지에 건축연구소에서 실무적 일을 하며 건축가로서 역량을 키웠다. 서양의 현대건축을 직접 체험한 그는 1956년 3월 귀국하여 시대를 앞선 건축물들을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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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25 ||건축·조형||[[박동진]]||🏆25-2우수사례||"한국의 대표적 1세대 건축가 중 한 명, 일제강점과 해방, 6.25전쟁 등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거쳤던 박동진의 건축은 근대와 전근대의 전환기적 성격이 특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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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26 ||공연예술·영화·음악||[[선우일선]]||🏆25-2우수사례||"선우일선은 한국의 가수이다. 일제강점기에 데뷔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교육인으로 활동했다. 데뷔곡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해 1936년 전후 가수로서 전성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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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27 ||공연예술·영화·음악||[[남인수]]||🏆25-2우수사례||"1936년 김상화가 쓴 시에 박시춘이 곡을 붙인 〈눈물의 해협〉을 시에론(Chieron Record)에서 발표하며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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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28 ||공연예술·영화·음악||[[김순남]]||🏆25-2우수사례||"일제강점기로부터 대한민국 건국 초기에 활동한 월북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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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29 ||공연예술·영화·음악||[[윤심덕]]||25-2작성인물|| 일제강점기 여성 성악가. 배우. 극작가 김우진과 함께 현해탄에서 동반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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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30 ||공연예술·영화·음악||[[김우진]]||25-2작성인물|| 일제강점기 「난파 」 · 「산돼지」 등의 작품을 낸 극작가. 연극이론가. 윤심덕과 함께 현해탄에서 동반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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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31 ||공연예술·영화·음악||[[장세정]]||25-2작성인물|| 해방 이후 「울어라 은방울」 · 「샌프란시스코」 · 「백팔염주」 등을 부른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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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32 ||공연예술·영화·음악||[[이철]]||25-2작성인물|| 일제강점기 오케이회사 사장, 조선악극단 사장 등을 역임한 경영인. 연예사업가 · 대중공연기획자 · 친일반민족행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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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33 ||공연예술·영화·음악||[[도금봉]]||25-2작성인물|| 해방 이후 「상록수」, 「또순이」, 「토지」 등에 출연한 배우. 영화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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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34 ||공연예술·영화·음악||[[현인]]||25-2작성인물|| 해방 이후 신라의 달밤」, 「비 내리는 고모령」, 「굳세어라 금순아」 등을 부른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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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35 ||공연예술·영화·음악||[[이애리수]]||25-2작성인물|| 일제강점기 「약혼한 처녀」 · 「화차생활」 · 「무언의 회오」 등에 출연한 배우이자 「황성의 적」, 「고요한 장안」 등을 부른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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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36 ||공연예술·영화·음악||[[전옥]]||25-2작성인물|| 일제강점기 「옥녀」, 「사랑을 찾아서」 등에 출연한 배우. 연극.영화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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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37 ||공연예술·영화·음악||[[심영]]||25-2작성인물|| 해방 이후 북한에서 「내고향」 · 「향토를 지키는 사람들」 · 「정찰병」 등에 출연한 배우. 연극.영화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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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38 ||공연예술·영화·음악||[[나운규]]||25-2작성인물|| 일제강점기 「아리랑」, 「풍운아」, 「벙어리 삼룡」 등의 작품에 관여한 영화인.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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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39 ||공연예술·영화·음악||[[윤봉춘]]||25-2작성인물|| 해방 이후 「윤봉길의사」, 「3, 1혁명기」, 「유관순」 등의 작품에 관여한 영화인. 영화감독,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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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40 ||공연예술·영화·음악||[[송만갑]]||25-2작성인물|| 일제강점기 조선성악연구회를 조직하여 제자양성에 힘쓴 판소리의 명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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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41 ||공연예술·영화·음악||[[이난영]]||25-2작성인물||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의 대표적인 가수. '목포의 눈물'로 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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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42 ||공연예술·영화·음악||[[김정구]]||25-2작성인물|| 일제강점기 「총각진정서」, 「왕서방 연서」, 「눈물 젖은 두만강」 등을 부른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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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43 ||공연예술·영화·음악||[[이시우]]||25-2작성인물|| 일제강점기 「눈물 젖은 두만강」 · 「눈물의 국경」 · 「타향의 술집」 등을 만든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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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44 ||공연예술·영화·음악||[[김화랑]]||25-2작성인물|| 일제강점기 「드메」 · 「수선화」 · 「집없는 천사」 등의 작품을 낸 작가. 시나리오작가 · 영화감독 · 방송작가 · 악극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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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45 ||패션·의복|| [[최경자]] ||25-2작성인물||"20세기 중·후반에 활동한 한국의 제1세대 패션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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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46 ||체육||[[민관식]]||25-2작성인물|| 해방 이후 대한체육회 회장,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체육인. 관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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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47 ||체육||[[서윤복]]||25-2작성인물|| 대한민국의 마라톤 선수이다. 1947년 4월 19일 제51회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출전해 24세의 나이로 2시간 25분 39초의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동양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우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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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48 ||체육||[[손기정]]||25-2작성인물|| 대한민국의 체육인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육상 선수로 활동했으며 주 종목은 마라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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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49 ||기초과학|| [[조광하]]||🏆24-2우수사례|| "조광하(趙廣河, 1906년 ~ 1967년)는 한국의 화학자이자, 교육자. 대한화학회 회장으로서 학회 육성발전에 크게 이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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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50 ||기초과학|| [[박철재]]||🏆25-2우수사례||"문교부단체 기술교육국장이자 원자력연구소단체 초대 연구소장 등을 역임하여 우리나라 과학기술교육을 위해 노력한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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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51 ||기초과학|| [[이태규]]||24-2작성인물||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초대학장, 유타대학 교수 등을 역임한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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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52 ||기초과학|| [[한만춘]]||24-2작성인물||해방 이후 『전기통론연습』, 『전산학개론』, 『자동제어시스템』 등을 저술한 과학자. 전기공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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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53 ||의학·수의학·치의학||[[나세진]]||🏆24-2우수사례 || "광복 후 갓 태어난 우리나라 의과대학에 처음으로 해부학 교육과 연구의 기틀을 마련하고 두 학회(해부학회, 체질인류학회)를 창립하여 오늘의 대학과 단체로 발전하도록 공헌한 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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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54 ||의학·수의학·치의학||[[장기려]]||🏆25-2우수사례 ||"장기려는 1959년 간암 환자의 간 대량절제술에 성공하여 간장외과 발전에 돌파구를 마련했고 간에 대한 많은 후속 연구로 수많은 간질환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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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55 ||의학·수의학·치의학||[[허영숙]]||25-2작성인물||"일제강점기 영혜의원과 허영숙산원을 개원한 의사이자 기자, 여성 운동가. 조선총독부 관할 의사시험에 합격한 첫 여성이자 국내 여성 개업의 1호이며 전공은 산부인과와 소아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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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56 ||의학·수의학·치의학|| [[박에스더]] ||25-2작성인물||"한국 최초의 미국 유학 여성이자 서양 의학 여의사로, 한국 여성들을 대상으로 의료활동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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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57 ||의학·수의학·치의학|| [[함석태]] ||25-2작성인물||"한국인 최초의 치과의사로 치과 의학의 문을 열어준 사람으로 한국 치의학의 개척자로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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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58 ||의학·수의학·치의학|| [[김두종]] ||24-2작성인물||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숙명여자대학교 총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한국의학사』, 『한국고인쇄기술사』 등을 저술한 의학자 · 서지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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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59 ||의학·수의학·치의학 & 언어|| [[지석영]] ||25-2작성인물||"의료인이자 국어학자이다. 영국인 제너의 종두법에 관심이 많아 수신사 수행원으로 일본에 가 종두기술과 두묘 제조법을 익히고 돌아와 한국에서 우두 실시가 자리잡는 데 전력을 다했다. 주시경과 더불어 한글 가로쓰기를 주창한 선구자이며, 한글로 한자를 해석한 『자전석요』를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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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60 ||생명과학||[[이민재]]||🏆24-2우수사례 || "해방 이후 『 식물생리학』, 『 약용식물학』, 『 일반식물학』 등을 저술한 학자, 식물학자, 서울대 식물학과를 이끌며 새로운 연구 전통을 확립했고, 이 과정에서 해양학과 미생물학이 독립적인 학문 분야로 분리 발전하는데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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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61 ||생명과학||[[석주명]]||25-2작성인물||"우리나라 나비연구의 기틀을 마련한 선구적인 생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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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62 ||생명과학|| [[홍순우]] ||25-2작성인물||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교수, 한국미생물학회 회장 등을 역임한 학자. 미생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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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63 ||생명과학||[[기용숙]]||24-2작성인물||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미생물학 교수를 역임한 미생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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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64 ||농학·육종·수의|| [[조백현]]||🏆25-2우수사례||"대한민국의 토양학자이자 농화학자이다. 일제 치하에서 유일한 한국인 교수로 활동하며 체계적인 농학연구 및 선진 농법을 개발하는 한편 과학적인 방법에 의한 식량 증진에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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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65 ||농학·육종·수의|| [[우장춘]] ||24-2작성인물||"한국의 농업학자. 일본 출생으로, 일본 농림성 농업시험장에서 육종연구에 힘쓰며 의미있는 논문들을 남겼다. 대한민국의 식량난을 해결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후학을 양성하여 한국의 농업과 육종학의 발전의 토대를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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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66 ||농학·육종·수의|| [[계응상]] ||24-2작성인물||일제강점기의 섬유공학자이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유전학자, 섬유공학자이다. 한평생을 누에연구에 바친 유전학자이며 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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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67 ||농학·육종·수의|| [[이영소]] ||24-2작성인물||해방 이후 부산여자중학교 교사, 서울대학교 교수 , 수의과대학장 등을 역이한 교육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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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68 ||법·행정·사회||[[황산덕]]||🏆24-2우수사례|| "성균관대학교기관 총장, 법무부기관 장관, 문교부기관 장관 등을 역임하였으며, 『법철학』, 『법학입문』, 『법철학강의』 등을 저술한 법학자이자, 교육자, 관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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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69 ||법·행정·사회||[[이한기]]||🏆25-2우수사례||"해방 이후 한국 국제법학 발전의 산 증인이자 감사원장, 국무총리 서리 등을 역임하기도 한 법학자·관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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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70 ||법·행정·사회|| [[김활란]]||🏆24-2우수사례|| "김활란은 일제강점기 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연합회 재단 이사장, 대한기독교교육자협회 회장 등을 역임한 개신교인. 교육자이며 친일반민족행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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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71 ||법·행정·사회||[[이유필]]||🏆25-2우수사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1885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나 경성전수학교를 졸업한 후 평생을 독립운동에 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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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72 ||법·행정·사회||[[최금봉]]||🏆25-2우수사례||"일제강점기 항일독립운동가이자 해방 후 대한부인회 총본부 부회장, 국민회 안동군지부 부녀회장, 대한기독교여자절제회 회장, YMCA 할머니회 초대회장 등을 역임한 사회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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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73 ||법·행정·사회|| [[김용한]]||🏆25-2우수사례||"해방 이후 물가정책국장, 과학기술처 차관 등을 역임한 관료. 차관 재직 중 과학기술처의 예산편성 및 확보에 특히 심혈을 기울였으나 1983년 버마 아웅산폭발테러사건사건 때 순국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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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74 ||법·행정·사회|| [[성좌경]]||24-2작성인물||과학기술처장관, 고분자학회장 등을 역임하며 과학기술진흥에 힘쓴 과학자 · 관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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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75 ||경영·경제|| [[유일한]] ||25-2작성인물||"독립운동가이자 공익 사업의 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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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76 ||경영·경제|| [[이병철]] ||25-2작성인물||"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三星商會)기관를 설립, 1941년 주식회사로 개편, 청과류와 어물 등을 중국에 수출하였다. 불모의 한국경제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발전해 오는데 선도적 역할을 해 옴과 동시에 문화, 예술, 교육, 언론 등 사회 각 분야의 발전에도 큰 업적과 교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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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77 ||경영·경제|| [[신태환]] ||24-2작성인물||서울대학교 총장, 한국경제학회 초대회장, 부흥부장관 등을 역임하였으며, 『경제학과 경제정책의 제문제』, 『대학과 국가』 등을 저술한 경제학자 · 교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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