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구

North Korea Humanities

👩🏻‍🏫본 문서는 서울대학교 " 24-1 미디어위키를 활용한 역사 데이터 편찬" 수강생이 작성했습니다.


인물(Person) 목록으로 이동하기



김현구(金炫耉)
김현구.jpg
출처 : 강진일보 2015년 9월 3일자 기사
 
한글명 김현구 한자명 金炫耉 영문명 Kim Hyeon Gu 가나명 이칭 현구(玄鳩) [1]
성별 남성 생년 1903 또는 1904년 몰년 1950년 출신지 전라남도 강진 전공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현대시인. 1904년[2] 11월 30일 전라남도 강진군에서 태어나 강진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배재고등보통학교, 일본에서 수학한 적이 있다. 1930년 10월에 발간된 「시문학」2호에 4편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그 뒤 「문예월간」과 「문학」등을 통해 1934년 4월까지 8편의 시를 발표했다. 작품을 매우 아껴 쓴 시인이며, 그 내용의 경향이 서정성을 기반으로 하여 자연과 인생에서 느낀 감정을 부드러운 가락에 담고 있는 탓에 시문학파 시인으로 언급되고 있다. 생전 시집의 여러 번 출판 시도 하였으나 모두 무산되었으며 타계 이후 1970년에 총 82편의 유고(遺稿)들을 모은 「현구 시집(玄鳩詩集)」이 비매품으로 출간되었다.


생애


출생 및 어린시절

김현구는 1904년 11월 30일 강진군 강진읍 서성리 179번지에서 아버지 김노식과 어머니 김광자 사이 5남 4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3][4] 현구는 보통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강진의 관서제에서 이웃집에 살던 영랑(金永郞)인물과 강진의 관서제(금서당기관, 영랑 생가 뒤에 현존)에서 한문을 배웠다. 그리고 1911년 강진공립보통학교기관[5]에 입학했으나 1학년을 마치고 중퇴한 뒤 재입학하여 1918년 졸업했다.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한 현구는 1920년 배제학당에 학적을 두었으나 이내 1921년 중퇴 후 일본으로 건너가 학업을 계속하지만 그 기간이 길지 않았다. 현구가 일본에서 무슨 학교를 다녔으며, 어떤 학문을 전공했는지에 대한 정보는 알려진게 없다.


등단 및 거듭한 출판 시도

현구의 시에 대한 관심은 배재학당 재학 시절부터 있었으며 1920년 경 약 4개월간 '靑丘'라는 문학 모임을 결성하여 활동했다고 한다.[6] 김현구의 공식적인 등단은 「시문학」2호(1930. 5)[7]에 ‘님이여 강물이 몹시도 퍼렇습니다’를 비롯한 4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그 후 현구는 「시문학」3호(1931. 10)에 ‘황혼’ 등 4편, 「문예월간」창간호(1931. 11)에 ‘풀 우에 누어’, 「문학」창간호(1933.12)에 ‘내 마음 사는 곧’, 「문학」2호(1934. 2)에 ‘길’, 「문학」’3호(1934. 4)에 ‘산비둘기 같은’ 등 총 12편의 시를 발표하며 활발한 시단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문학」의 종간과 함께 현구의 공식적인 시단활동은 종결되었다. 이후 그는 시단과 인연을 끊고 향리에 묻혀 자족적으로 시를 쓰다가 1935년 시문학사에서 「정지용 시집」, 「영랑시집」에 이어 「현구 시집」을 출간하려 했으나 박용철인물의 와병으로 무산되었다. 그 후 1941년 시집 제목을 「무상(無常)」으로 정하고 광명출판인쇄공사에 재출판을 시도했으나 출판사측과의 마찰로 역시 무산되었다. 뒤이어 1949년 공보처 출판국장으로 있던 영랑에게 시집 발간을 의뢰하였으나, 6.25전쟁으로 또다시 좌절되었다. 타계 이후 1970년에 장남 김원배(元培) 등에 의해 「현구시집」이 비매품으로 출간되었다. [8][9]


타계

절친인 영랑이 서울에서 죽은지 나흘 후인 1950년 10월 3일에 강진읍사무소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던 김현구 시인은 6.25의 참화로 향년 46세에 죽음을 맞이하였다.





연구


현구시집

현구 시집은 타계 전 1950년 객지에 있는 장남 김원배에게 친필 사본으로 하여 원고를 보내준 것을 바탕으로 1970년 발간되었다. 현구의 유고 시집은 그가 쓴 작품 총 82편이 6부로 나누어 기록되어있으며 그 중 12편은 「시문학」을 비롯한 문예지에 발표한 것들이며, 나머지 70편은 유고이다. 현구가 생전 장남 김원배에게 보낸 현구시집의 원제는 「무상(無常)」이라고 밝힌 바가 있다.[10] 원래 김현구의 시집은 유고시집이 나오기 전 세 번의 간행 시도가 있었으나 시도에서 그쳤다. 김현구는 시문학파 중 하나로 거론되며 서민적이며 자신의 작품 속에 낙화정, 서문, 신학산 등 강진의 구체적 지명과 풍물을 끌어들이는 등 감각성이 뛰어난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라도 강진 토속 방언을 적절히 활용했으며, 음악성과 감각성이 돋보이는 운율을 시 속에 담아냄으로써 현대 서정시의 발전에 기여했다. [11]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김현구 Institution: 강진공립보통학교 A graduates B
Person: 김현구 Person: 김원배 A hasSon B
Book: 현구시집 Person: 김현구 A creator B
Person: 김현구 Group: 시문학파 A isMemberOf B



Timeline


Timeline Google Spreadsheet

Network Graph






참고자원







주석


  1. 호(號)이며 작품 중 「검정 비둘기」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2. 자료마다 1903년과 1904년이 혼재되어 적혀있다. 해당 문서에서는 1904년으로 기재한다.
  3. 김봉군, 「시문학파와 김현구의 시」, 『성심어문논집』13, 1990, 33-44쪽
  4. 김선태, 『김현구 시 연구』, 국학 자료원, 1997, 41-54쪽
  5. 현재는 강진중앙초교로 교명 변경되었다.
  6. 김선태, 『김현구 시 연구』, 국학 자료원, 1997, 41-54쪽
  7. 시문학 2호
  8. 김선태, 『김현구 시 연구』, 국학 자료원, 1997, 41-54쪽
  9. 허형만·김선태, 「김현구 시집의 문제점과 원본 확정」. 한국시학연구,(4), 2001, 329-353.
  10. 허형만·김선태, 「김현구 시집의 문제점과 원본 확정」. 한국시학연구,(4), 2001, 329-353.
  11. 김선기, 「강진 시문학 공간의 문화콘텐츠화 연구 -김영랑 ․ 김현구의 시를 중심으로」, 전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