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극

North Korea Humanities

👩🏻‍🏫본 문서는 서울대학교 "24-2 미디어위키를 활용한 역사 데이터 편찬" 수강생(곽아랑(KNU2024))이 작성했습니다.




박승극(朴勝極)
박승극.jpg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글명 박승극 한자명 朴勝極 영문명 가나명 이칭
성별 생년 1909년 몰년 출신지 경기도 수원 전공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1]을 결성하여 지주나 공장주에 조직적으로 맞서는 농민과 노동자의 삶에 관심이 많았다. 계급문학[2]운동에 참가하고「농민」(『조선지광』, 1929.6)·「재출발」(『비판』, 1931.7∼8)·「그 여자」(『신인문학』, 1935.8)·「색등 밑에서」(『신인문학』, 1935.10)·「항간사」(『신인문학』, 1935.12)·「화초」(『신조선』, 1935.12)·「추야장」(『신인문학』, 1936.1)·「풍경」(『신조선』, 1936.1)·「백골」(『비판』, 1936.9) 등의 소설을 지었으나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과정을 전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평단에서 활동하며 비평가로서 굳은 입지를 다진 인물이다.[3]


생애


일본 대학 입학과 퇴학

1928년 배재고등보통학교기관를 수료한 후 일본의 동경으로 건너가 일본 대학에 입학하였으나 사상 문제로 중퇴하였다.[4] “대학에 가서 배워보니 별것 아니고 우리 앞에는 해야 할 일이 잔뜩 쌓여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5] 퇴학 후 귀국하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단체에 가맹하는 한편, 수원 평택 지방에서 청년운동과 농민운동에 관계하여 3년여의 감옥 생활을 하였다.[6] 박승극은 중학 4년 때부터 프로문학 운동에 가담하였으며 이 운동의 확대 연장선상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전개하였고 이 때문에 대학을 중퇴했을 정도의 사상성을 지닌 인물이다.[7]


문학활동의 시작

1929년 소설 「농민」서적을 발표하면서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프로 문화운동에 대한 감상」이라는 평문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평론활동을 전개한다. 1930년대 중반에는 ‘서화(鼠火)’와 ‘물’ 을 둘러싼 논쟁과 창작방법논쟁[8]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비평가로서의 입지를 굳힌다.[9] 해방 후의 문학비평 가운데 「농민문학의 신과업(新課業)」서적은 토지개혁 등 농촌개혁을 주제로 하고 있는 점이 특색을 이룬다.[10]


농민문학관

박승극은 농민운동에 참여하며 얻은 산체험과 경력을 바탕으로 그의 문학에 생생한 사실성을 더할 수 있었다.[11] 박승극은 조선문제의 해결은 토지문제의 해결에 있다고 보았으며 나아가‘농민문학가동맹'과 같은 독립된 농민문학단체를 결성할 것을 제안하면서, 농민문학을 서울 한 복판에서 할 것이 아니라 ‘농촌으로! 농민 속으로!’ 들어가서 할 것을 강조하였다.[12] 바로 이러한 농민문학관을 실천한 작품으로 단편소설 「떡」과 중편소설 「밥」이 있다.[13]


소설세계

박승극의 소설은 주로 식민지 자본주의라는 현실적 상황으로 인해 신음하던 노동자와 농민의 삶을 제재로 하고 있다.[14] 지주나 공장주에 조직적으로 맞서는 노동자 농민의 투쟁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는 점에서 당시 카프의 창작 경향과는 구분되는 점이 있기는 하나, 자신만의 고유한 소설세계를 만들어내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15] 박승극의 문학사적 의미는 소설보다는 비평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박승극 비평의 핵심적인 개념은 리얼리즘을 통한 전형성의 창조이다.[16] 그는 리얼리즘의 길로 창작기술 문제에 대한 관심의 제고와 당대 경향문학의 특성을 이루던 낭만주의적 경향으로부터의 탈피를 제시하였는 바, 이러한 박승극의 비평체계는 한국문학비평사의 리얼리즘론 형성과 발전에 큰 의미를 지닌다.[17]


우리사회에서 금기시된 인물

해방 이후 남북 분단의 혼란 속에서 월북하였으며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최고인민위원회 대의원으로 선출된 것을 비롯하여 문화선전성 문학예술부장, 국립출판사기관 사장을 역임하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고향인 수원으로 내려와 수원시 인민위원장응로 활동하였으나 인민군의 퇴각과 함께 다시 북으로 향하였다.[18] 이후 북에서 문인활동을 전개하다 1980년대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있다.[19]





연구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1928년, 박승극은 사회주의 문인단체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기관에 가입하였다. 박승극의 본격적인 사회운동의 시작점이다. 1929년 잡지 조선지광에 단편소설 「농민」서적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장하였다. 박승극의 첫 작품 「농민」서적은 일제 하에 수탈받는 농민의 고통스러운 삶을 그려낸 작품이다. 그러나 그는 카프 중앙본부의 활동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를 갖고 있었다.[20] 그는 현장 활동을 중시한 작가였으며 실천적으로 사상을 선택한 인물이었다.[21] "오늘날 문학청년이나, 소위 신인이나 또는 중견 대가란 사람들이 저널리즘에 오르고자, 또는 올라서 ‘허세의 문단’을 형성하는 것을 보면 딱하기 그지없습니다.[22] 나는 뼈없는 문학 분장(粉裝)의 소설을 쓰고 있는 그들을 볼 때 증오를 느끼는 한편, 또한 아무 것도 쓰지 못하는 나를 돌아보면 말할 수 없이 슬픕니다.[23] 서울의 문학 분위기나, 일반 문학층의 동향은 참으로 놀랄 만큼 심합니다. 시대적 박력이란 이다지도 무서운 것일까요?" -「시대와 문학에 대하여」 부분, 『다여록』[24]


흙의 문학

박승극은 자신의 정체성을 배재고보 학생이나 유학생이라는 신분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고향인 보신강습소에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는 판단도 있다.[25] 보신강습소는 당시 지역사회의 교육 부흥운동에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낙후된 지역 사회의 교육운동에 박승극 또한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26] 고향 정문리에 사재를 들여 신흥학당(新興學堂)을 세운 박승극은 빈농층 자녀들을 교육했다.[27] 그는 보신강습소를 졸업한 소년들을 내세워 조선소년동맹 양감면 지부 간판을 신흥학당에 내걸고 소년동맹에 참여한 소년들은 머슴살이를 하는 청소년이나 부모를 도와 낮에는 들일을 하는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일도 담당하게 했다.[28] 빈농층 자녀들을 교육하는 교육운동과 함께 중점을 둔 박승극의 운동은 농민운동, 즉 소작인 운동이었다.[29]


실천주의

1920년대 말부터 30년대 중반까지 현재 지역의 개념으로 보면 수원, 화성, 오산, 평택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사회운동의 핵심에 박승극이 있었다.[30] 그러나 평생 사회주의 이념을 신봉한 운동가 그리고 이론과 실천을 합일시키려했던 문학가로서의 강렬한 자의식 너머에 담긴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다여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31] "굳은 신념까지도 얇아져 간다. 희망의 불길은 꺼지랴 한다. 오라지 않어 식은 재가 될는지도 모른다. 고독의 정신! 이것만이 나를 지배하고- " - 『다여록』[32]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박승극 Institution: 배재고등보통학교 A graduates B
Person: 박승극 Institution: 국립출판사 A worksAt B
Person: 박승극 Group: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A isMemberOf B
Book: 「농민」 Person: 박승극 A creator B
Book: 「농민문학의 신과업(新課業)」 Person: 박승극 A creator B



Timeline




Network Graph




참고자원



(경기일보) 「일제하 수탈받는 빈농의 치열한 삶·투쟁 그린 농민문학가」, 『경기일보』online, 기관명, 작성일: 2015년 10월 18일.
수원시청, "[수원역사/인물 시대를 종횡하다 - 수원 출신 문인 박승극]", 『수원특례시 공식 블로그』online, 작성일: 2019년 3월 30일.
틀, "북한 소설가 박승극(朴勝極)", 『재봉틀의 국어방』online, 작성일: 2017년 1월 11일.





주석


  1. Korean Artist Proletarian Federation(KAPF,카프):1925년에 결성되었던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문학가들의 실천단체.
  2. 무산계급의 해방을 위하여 노동자 · 농민 등을 대상으로 삼는 계몽적 성격의 문학.
  3. 북한 소설가 박승극(朴勝極)
  4. 북한 소설가 박승극(朴勝極)
  5. 일제하 수탈받는 빈농의 치열한 삶·투쟁 그린 농민문학가
  6. 북한 소설가 박승극(朴勝極)
  7. 북한 소설가 박승극(朴勝極)
  8.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의 해산을 전후하여 문단에서 벌어진 문학의 세계관과 창작방법에 관한 논쟁.
  9. 북한 소설가 박승극(朴勝極)
  10. 북한 소설가 박승극(朴勝極)
  11. 북한 소설가 박승극(朴勝極)
  12. 북한 소설가 박승극(朴勝極)
  13. 북한 소설가 박승극(朴勝極)
  14. 북한 소설가 박승극(朴勝極)
  15. 북한 소설가 박승극(朴勝極)
  16. 북한 소설가 박승극(朴勝極)
  17. 북한 소설가 박승극(朴勝極)
  18. [수원역사/인물 시대를 종횡하다 - 수원 출신 문인 박승극]
  19. [수원역사/인물 시대를 종횡하다 - 수원 출신 문인 박승극]
  20. 일제하 수탈받는 빈농의 치열한 삶·투쟁 그린 농민문학가
  21. 일제하 수탈받는 빈농의 치열한 삶·투쟁 그린 농민문학가
  22. 일제하 수탈받는 빈농의 치열한 삶·투쟁 그린 농민문학가
  23. 일제하 수탈받는 빈농의 치열한 삶·투쟁 그린 농민문학가
  24. 일제하 수탈받는 빈농의 치열한 삶·투쟁 그린 농민문학가
  25. 일제하 수탈받는 빈농의 치열한 삶·투쟁 그린 농민문학가
  26. 일제하 수탈받는 빈농의 치열한 삶·투쟁 그린 농민문학가
  27. 일제하 수탈받는 빈농의 치열한 삶·투쟁 그린 농민문학가
  28. 일제하 수탈받는 빈농의 치열한 삶·투쟁 그린 농민문학가
  29. 일제하 수탈받는 빈농의 치열한 삶·투쟁 그린 농민문학가
  30. 일제하 수탈받는 빈농의 치열한 삶·투쟁 그린 농민문학가
  31. 일제하 수탈받는 빈농의 치열한 삶·투쟁 그린 농민문학가
  32. 일제하 수탈받는 빈농의 치열한 삶·투쟁 그린 농민문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