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철

North Korea Humanities

👩🏻‍🏫본 문서는 서울대학교 " 24-2 미디어위키를 활용한 역사 데이터 편찬" 수강생(오상경(JBNU2024))이 작성했습니다.




김우철 (金友哲)
김우철.png
출처 : http://nks.ac.kr/Word/View.aspx?id=1231 북한예술문화사전
 
한글명 김우철 한자명 (金友哲) 영문명 Kim Woo-chul 가나명 이칭 백은성
성별 남성 생년 1915년 몰년 1959년 출신지 평안북도 의주 전공 아동동문학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김우철(金宇哲, 1915년 9월 20일 ~ 1959년 6월 17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아동문학가, 시인이다. 백은성이라는 필명을 사용하기도 하였다.[1]

김우철은 백철인물의 견해에 가까이 서서 농민에 대한 계급의식의 일방적인 주입이 불가함을 역설하였고,

농민문학이 계급문학의 동맹자적인 지위에서 발전해야 함을 강조하였다.[2]


생애


출생과 신의주의보 중퇴 이후

평안북도 의주군의 농민 가정에서 출생해 신의주고등보통학교기관기관 재학 당시부터 문학에 뜻을 두고 '백은성'이라는 필명으로 동요를 창작해 발표하기 시작했다.[3]

프롤레타리아 아동문학에 관심을 가져 프롤레타리아 아동문학 연구회 단체에 성원으로 활동하여.[4] 이 시기 그는 선진적 학생들로 비밀리에 조직되었던 독서회에 참가하였으며 동맹휴학에도 두 차례 참가하였다.

이 일련의 일들은 그로 하여금 반일사상과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에 공명할 수 있게 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독서회 및 동맹휴학사건으로 퇴학당한 그는 1929년 봄 외국에 가서 중학교에 다니는 한편 문학작품을 창작하여 『별나라』서적, 『신소년』서적 등의 잡지에 발표하였다.[5].

그는 1929년 봄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수학을 포기하고 1931년경에 귀국하였다.[6]


귀국한 뒤 아동문학 연구회와 카프 활동

1931년 귀국한 이후 신의주에서 ‘프롤레타리아 아동문학연구회’의 한 성원으로 창작활동을 계속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동시 <진달래꽃>서적, 동요 〈화차〉서적(1933), 동화〈섣달 그믐날서적(1933), <닭똥장사>서적. 소설 <방학날>서적 등 아동문학작품들과 수십 편의 시, 소설, 수필, 평론들을 창작 발표했다.[7]

후반기 카프(KAPF :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단체의 맹원으로 활동을 벌이면서 아동문학의 문제를 계급적인 관점에서 논의한 평론을 발표하였다.[8] 하지만 1934년 ‘신건설사사건(新建設社)’ 사건에 연류가 되어 1년여의 옥고를 치렀고, 카프가 해산하게 되었다.[9]


카프 해산 이후

<총알과 기병>서적(『조선문단』 1934. 1.)·<양류촌>서적(『조선문단』, 1936. 11.) 등의 소설도 썼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카프’가 해산된 후에는 주로 시와 평론들을 창작 발표하였으며 농민문학론과 낭만주의론 관련 평론을 발표했다. 특히 「민족문학의 문제학술지―백철의 논문을 읽고」(『조선일보』, 1933. 6. 5.~7.)에서 민족주의 문학과 백철의 문학이론을 비판해 주목을 끌었으며, 1936년 새로운 창작방법으로서 리얼리즘과 낭만주의를 합치려는 「낭만적 인간탐조」(『조선중앙일보』, 1936. 4. 15.~28.)를 제창했다. 여기서 그는 혁명적 낭만정신을 계기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0]


해방 이후

1945년 해방이 되자 그는 북조선 문학예술총동맹 평안북도위원회기관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사회주의 국가건설의 현실을 노래한 시 작품들을 창작하였다. 해방 직후에 창작한 서정시 <조국에 드리는 노래>서적에서 시인은 자신의 끓어넘치는 창작적 열정을 시에 담아내었고, 이러한 시적 열정은 <나의 조국>서적, <농촌위원회의 밤>서적을 비롯한 서정시들과 동요 <벼낟가리>서적, 동시 <산수>서적 등 아동시 작품들에도 반영되어 있다. 1947년에 그의 첫 시집 『나의 조국』이 출판되었다. 1950년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종군작가로 활동하면서 인민군 용사들의 영웅성을 노래한 많은 작품들을 창작하였다. 1957년 4월에 발간된 『김우철 시선집』에는 해방 전부터 발표한 그의 우수한 시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한설야 인물 숙청에 따른 당의 문예정책에 반발, 철도에서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1]





연구


그의 작품세계

김우철의 비평 가운데 문단적 쟁점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던 것은 1930년대 초반 백철을 중심으로 야기된 농민문학론이다. 계급문학운동에서 농민문학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백철이 안함광과 논전을 벌이고 있을 때, 김우철은 백철의 견해에 가까이 서서 농민에 대한 계급의식의 일방적인 주입이 불가함을 역설하였고, 농민문학이 계급문학의 동맹자적인 지위에서 발전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12]


<농촌위원회의 밤>

김우철 시인은 대표작으로 지칭되는 <농촌위원회의 밤>(1946)을 창작하여 역사적인 토지개혁에 대한 농민들의 감격과 기쁨을 노래하였다. 이 작품은 해방 전 궁핍한 산골에서 화전농사로 살던 농민들이 토지개혁에 관한 법령 소식을 듣고 감격에 휩싸이는 내용이다.토지개혁을 전해들은 농민들은 그날 밤으로 농촌위원회에 모여 지나온 나날을 회상하며 미래의 아름다운 생활을 기쁨과 행복으로 설계한다. 토지개혁으로 인하여 비참했던 과거 시대는 끝이 나고 자기 땅을 소유한 농민들은 이런 배려를 해준 김일성 수령에게 감사를 표한다. 그러므로 이 시는 토지개혁의 역사적 의의를 밝히면서 농촌의 정서를 환희와 기대들로 찬 공간으로 바꾸고 있다. 이것은 그 동안 억눌린 농민들을 통해서 항일혁명 투사로서의 김일성 공적을 찬양하고 부각시키려는 계획된 의도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권 수립을 위한 김일성의 의도를 받들어 이 시인은 농민들을 통해서 일반화하고 있다.[13]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김우철 Person: 백철 A isRelatedTo B
Person :김우철 Person: 한설야 A isRelatedTo B
Person: 김우철 Institution: 신의주의보고(신의주 고등보통학교) A drop out B
Person: 김우철 Group: 프롤레타리아 아동문학 연구회 A isMemberOf B
Book: <별나라> Person: 김우철 A creator B
Book: <신소년> Person: 김우철 A creator B
Book: <진달래꽃> Person: 김우철 A creator B
Book: <조국에 드리는 노래> Person: 김우철 A creator B
Book: <나의 조국> Person: 김우철 A creator B
Book: <농촌위원회의 밤> Person: 김우철 A creator B
Person: 김우철 Group: 카프 A isMemberOf B
Person: 김우철 Institution: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평안북도위원회 A worksAt B



Timeline




김우철






참고자원







주석


  1. 위키백과online
  2. 네이버지식백과online
  3. 다음백과 online참조
  4. 위키백과online
  5. 북한예술문화사전online
  6. 네이버백과사전online
  7. 북한예술문화사전online
  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9. 네이버백과사전online
  10. 북한예술문화사전online
  11. 네이버백과사전online
  12. 틀, "[시인ㆍ문학평론가 김우철(金宇哲)]", 『네이버블로그online, 작성일: 2009년 6월 22일
  13. 틀, "[시인ㆍ문학평론가 김우철(金宇哲)]", 『네이버블로그online, 작성일: 2009년 6월 22일